황경규
2024.07.17 PM 15:49
193
○ 오늘은 석영미 시인의 시집 「눈물로 키워지지 않는 사랑은 어디에도 없다」를 소개해 주실텐데요, 오늘의 시인을 먼저 소개해 주시죠?
▶ 시인 석영미는 1971년 진주에서 태어나 경상대학교를 졸업했고 1995년 경남장애인복지관에서 근무했지만 1996년 가을 이후 난치병인 중증 근무력증으로 투병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석영미 시인은 등단경력이 전혀 없는 평범한 여성입니다.
그럼에도 그를 시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마치 유행처럼 죽음의 시학을 빚어내기 바쁜 시인들과 달리 그의 시는 생명의 외경을 진솔하게 노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석영미 시인의 시집이 그 어느 시인의 시집보다 가슴에 와닿는 이유 역시 이 때문일 것입니다.
시집을 다 읽고 나면, 만 스물 아홉의 나이에 요절한 시인 기형도의 이 시가 기억납니다.
세상은 온통 크레졸 냄새로 자리잡는다.
누가 떠나든 죽든, 우리는 모두가 위대한 혼자였다.
살아 있으라, 누구든 살아 있으라.
죽음과 늘 함께 하고 있는 석영미 시인에게 있어 글쓰기는 무엇일까요.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영원히 함께 할
내 영혼을 만나는 일 글쓰기
그래서 글쓰기는 또 하나의 기도이다.
바로 내 삶
내 생명인 것이다.
석영미 시인의 시집에는 ‘한번은 날아야 한다네’, ‘행복’ 등 60편의 시와 ‘글을 쓰면 행복하다’ 등 9편의 산문이 실려 있습니다.
○ 삶과 죽음 앞에 놓인 육성의 기록과 같은 시에 대해 문학성을 운운하기는 힘들 것 같은데요, 석영미 시인의 시에 대한 평가는 어떻습니까?
▶ 이 시집 전체에서 느껴지는 것은 시와 삶이 거의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버릇’이라는 시의 일부입니다.
죽음을 넘어서고
나는
남은 삶에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지
언제나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리고 죽음을 생각하며 라는 시의 일부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남겨두고
떠나야 할 길이 아쉬워
눈물이 흐른다
이 두 편의 시를 읽으면서 과연 어떤 기준을 가지고 문학성을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석영미의 시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삶의 진정성이라는 영역안에 있기 때문에 그의 시는, 곧 그의 삶 자체입니다.
그리고 이 시집에 나타난 그리움의 대상은 자신을 위해 헌신적인 사랑을 베푼 사람들에게로
옮겨 가고 있습니다.
‘아버지’라는 시입니다.
오늘 같은 날이면
아버지 가슴에 묻혀 울고 싶다.
죽어가는 이 몸
중환자실에 뉘여 놓고
성당에 엎드려 통곡하셨다는 아버지
엄마와 나를 두고
고향에 내려가
며칠 밤낮을 방황하셨다는
아버지
우리 아버지
그리고 이 시집에서는 ‘하고 싶다’라는 표현을 숱하게 찾을 수 있습니다.
나는 이상을 날고 싶다
바다에 첨벙 달려들고 싶다
멋지게 날고 싶다
무엇보다 신성한 존재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은 석영미 시인의 글쓰기에 있어 가장 근원적인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부모, 수녀, 지인들에 대한 그만의 사랑이 녹아 있는 시와 글들이 시집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스스로에게 힘을 불어 넣습니다.
‘바라는 만큼’이라는 시입니다.
너무나도 나약해서 자신이 없습니다.
쓰러지는 제 영혼에 용기를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고, 기다리고, 바라고, 감사하는 동안
내 마음엔 어느새
바라는 만큼의 용기가
자리를 잡고 있곤 했다.
석영미 시인은 비록 육체적 회복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글쓰기를 통해 정신적 회복은 종교적 믿음과 더불어 완벽한 치유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수술’이라는 시에서 그의 육체적 치유에 대한 과감한 선언적 노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죽는다 하여도
한 번 죽지
두 번 죽지 않는다
내 몸을 던져라
석영미 시인의 시집에는 주어진 육체적 조건을 이겨내겠다는 굳건한 의지와 어떤 절대적인 존재를 향한 종교적 믿음이 있었기에 삶이 가능했다는 말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병이 내게 준것’이라는 시에서 그의 이러한 의식은 절정에 달합니다.
진정 그 죽음이
나에게 다가온다면
누구보다 더 해맑은 영혼으로 맞이하고 싶다는 바람을
가슴속에 간직하게 된다
석영미 시인은 시집을 내면서 못다 이룬 사회복지사의 꿈을 접은 대신에 장애인을 비롯한 이 땅의 소외받고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도 가지고 있습니다.
시로써 죽음과 맞서는 경이 ―김규정 시집 『넋두리』 (사람과나무, 2022) 김남호(시인, 문학평론가) 김규정 시인은 여러 측면에서 경이롭다. 첫 번째는 나이를 초월했다는 점이다. 2003년에 69세의 나이로 등단했다. 주류의 시인들이 대표작 몇 편으로 문단에 근근이 이름을 올려놓고 있을 그런 나이에 등단했다는 것만으로도 놀랍다. 아무리 나이란 숫자에 불과하다고 해도 나이를 초월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무의식까지도 나이에 종속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시에 대한 열정이다. 지금까지 일곱 권의 시집을 상재했다. 이번 시집이 여덟 번째 시집이다. 등단은 2003년에 했지만 ‘산청문협’에서 활동을 시작한 건 2002년 3월이라고 하니(강희근, 『집으러 가는 길』 해설), 올해 3월로써 만 20년이다. 20년 동안 8권의 시집을 내는 셈이니 2년 6개월마다 1권 꼴이고, 이번 시집까지 모두 696편의 시를 썼으니 거의 열흘에 1편 꼴이다. 2009년까지만 해도 “주당 1편 꼴”(강희근, 앞의 글)이던 게 최근 들어서 체력이 달려 시작(詩作)의 터울이 길어진 것 같다. 일반적으로 시인에게 통계적 수치는 크게 의미가 없긴 하지만 이 경우는 다르다. 시인의 열정을 가장 명료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경이로운 세 번째 이유는 지치지 않고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과 맞선다는 점이다. ‘왜 시를 쓰는가’하는 근본적인 질문에 김규정 시인은 일말의 주저도 없이 답한다. “길이길이 살고파서/밤잠을 참으며 시를 쓴다”(「머리시」)고. 영원히 살고파서, 죽는 게 두려워서 시를 쓴다고. 그는 시를 쓰는 동안 죽음을 잊고, 시를 쓰는 동안 죽음을 산다. 그의 기왕의 시집들도 ‘죽음’으로 질펀하다. ‘생로병사’를 피해갈 수 없는 목숨 가진 존재의 안간힘이 가감 없이 드러나 있다. 그는 이 외통수의 길을 외면하지도 우회하지도 않고 정면으로 직시한다. 늙어서 씩씩하고 용감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심신이 내 의지를 벗어나서 죽음의 편에 다가가는데 어찌 씩씩하고 용감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흰구름’조차도 “눈물 마른 하얀 혼령들”(「흰구름 2」)로 보이는데 늙어서 어찌 밝고 건강하길 바라겠는가? 그런데 김규정의 시는 밝고 건강하다. 고통스런 옛날을 회상할 때조차도 밝고, 이제 그만 죽여 달라고 신에게 매달릴 때조차도 건강하다. 나이를 초월하여 시가 밝고 건강할 수 있다니 경이롭지 않은가. 2 강희근 시인은 김규정 시인의 이런 기개가 ‘선비정신’에서 기인한다고 보았다. 첫 시집 『바람의 흔적』 해설의 서두에서 한 말이지만 이 통찰이 틀리지 않았음을 이어지는 시집들이 확인시켜 주었다. ‘선비정신’이란 간단히 정의하기가 어렵긴 하지만 “인격적 완성을 위해 끊임없이 학문과 덕성을 키우며, 세속적 이익보다 대의와 의리를 위해 목숨까지도 버리는 정신”이라는 사전적 정의가 시의 이해에 종요롭다. 죽어버리고 싶은데죽지를 못하고 사는 까닭눈을 감고 누워 생각해 본다 곡기(穀氣) 끊으신 아버님이종(移種) 끝냈다고 여쭙자그날 밤 세상 떠나시더라 서울의 단짝 친구가보고 싶다던 여동생 만나고그날 밤 저세상 갔다더라 아마도 나 죽을 날은마음에 쏙 드는 시 한 수세상에 남기는 날인가 싶다자꾸자꾸죽었다가 살아나는 걸 보면- 「죽을 날 2」 전문 시인에 의하면 “죽어버리고 싶은데/죽지를 못하고 사는 까닭”은 죽는 것보다 더 중요한 과업이 있기 때문이다. 그 근거로 “아버님”은 이종(移種) 끝냈다고 아뢰자 그날 밤 세상을 떠난다. 여기서 ‘이종’이란 ‘모내기’를 뜻한다. 농사꾼에게 모내기는 내 ‘죽음’보다 더 화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그것은 ‘삶’을 이어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죽음이 삶을 이길 수는 없다. 나의 죽음이 사사로운 것이라면 모내기야말로 대의(大義)가 아니겠는가. 모내기가 다 끝났다는 보고를 받는 날 아버님은 ‘비로소’ 이승을 떠나신 것이다. 또 다른 근거로 단짝 친구를 든다. 그는 오매불망하던 여동생을 만나고 그날 밤 세상을 뜬다. 죽음보다 더한 간절함이 있기 때문이다.이 두 근거를 종합해보면 죽음보다 더 중요한 건 ‘대의명분’(이종)이고 ‘간절함’(여동생)이라는 것. 그렇다면 나는 왜 죽지 못하는가? 나의 죽음을 유예시킬 만한 대의와 간절함은 무엇인가. 바로 시(詩)이다. “자꾸자꾸/죽었다가 살아나는 걸 보면” “마음에 쏙 드는 시 한 수/세상에 남기는 날”이 “아마도 나 죽을 날”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나에게 죽음보다 더 중요한 건 마음에 쏙 드는 시 한 수 남기는 일이고, 그 일은 내 죽음을 미룰 만큼 간절하다. 이보다 더 비장한 ‘선비정신’이 있겠는가. ‘선비정신’이란 결국 자신의 신념 앞에서 ‘오뚝이’가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간밤에 죽을 줄 알았더니아침에 다시 살아나 시를 쓴다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내가만만한 짓이 그것밖에 없어 언제 죽을지도 모르면서돈도 안 되는 시를 쓰고 있다 달리 소일거리가 없으니사는 날까지 써 보는 수밖에-「오뚝이」 전문 간밤에 죽을 줄 알았던 시인이 이튿날 아침에 다시 살아나 시를 쓰고 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시를 쓰고 있다. 그에게 시 쓰기가 그저 “만만한 짓이 그것밖에 없어”, “달리 소일거리가 없으니” 심심파적으로 하는 걸까. 그에게 시는 곧 죽음과 맞서는 일이다. 달리 말하면 그에게 시작(詩作)은 삶을 잇는 일이자 죽음을 잊는 일이고, 삶을 견디는 일이자 죽음을 이해하는 일이다. 그러니 그에게 시 쓰기는 죽는 날 끝나는 게 아니라 시 쓰기를 그만두는 날 죽게 될 것이다. 오뚝이는 서 있는 동안만 오뚝이다. 쓰러진 오뚝이는 이미 오뚝이가 아니다. ‘시인’ 김규정은 시를 쓰는 동안만 김규정이다. 시를 버리고 죽음에 투항한 김규정은 김규정이 아니다. 이 때의 그는 다른 무엇으로 규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의 시에는 수사(修辭)의 현란함이 없다. 에두를 줄 모르는 직설의 언어는 짧은 비수처럼 날렵하고 예리하다. 그래서 죽음과 비애를 이야기할 때조차도 힘차다. 시에 의지한 채 자신의 죽음을 마주하는 시인의 삶은 그 자체가 감동적인 시다. 많은 시인들이 ‘죽음’을 마치 전매특허처럼 남발하면서 허무와 우울을 과장하지만, 정작 ‘죽음’을 겪고 있는 노시인의 육성 앞에서 우리는 되레 의연함과 명랑함을 느낀다. 부디 ‘시의 힘’으로 시인의 남은 시간이 아름답고 충일하기를 빈다. 김남호/평론가
김남호(평론가)
178
○ 오늘은 꼬챙이처럼 마른 몸매에 긴 생머리, 그리고 도인같은 분위기를 풍기지만 글에 영혼을 불어넣는 작가로 잘 알려진 이외수의『하악하악』이라는 책을 소개해 주실텐데요, 작가소개와 책 소개를 먼저 해주시죠? ▶ 독특한 상상력, 기발한 언어유희로 사라져 가는 감성을 되찾아 주는 작가 이외수가 경남출신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문 것 같습니다. 1946년 경남 함양군에서 태어난 이외수는 춘천교대를 자퇴한 후 특유의 괴벽으로 바보같은 천재, 광인같은 기인으로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한 문학세계를 구축해온 예술가이자,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아름다움의 추구이며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 바로 예술의 힘이라는 사실을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보여 주고 있습니다. 1975년 장편소설『훈장』으로 데뷔한 이후『꿈꾸는 식물』『장수하늘소』『칼』에 이어 인생에서 처음으로 자신만의 집을 갖고 싶어 썼다는 소설『벽오금학도』그리고 지난 2007년 소통법『여자도 여자를 모른다』에 이어 2008년에는 최고의 히트작인『하악하악』을 출판해 독자들로부터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외수의 생존법’이라는 부제에서 짐작할수 있듯이 이 책은 때로는 따뜻하고 때로는 날카로운 이외수식 세상읽기가 주 내용을 이루고 있습니다. 지은이가 지난 2007년 3월 인터넷 누리집을 연 뒤 매일 쓴 짧은 글 가운데 독자반응이 특별히 좋았던 글 260꼭지를 따로 모은 것이 바로 이 책입니다. 거친 숨소리를 뜻하는 인터넷 용어인 ‘하악하악’은 난처한 상황에 사용되거나 광적으로 좋아하는 것에 대한 변태스러운 반응을 나타낸 말로 팍팍한 인생을 거침없이 팔팔하게 살아보자는 작가의 메시지가 더해져 자기자신과 세상, 세대간의 소통하는 길을 열어주고 있는 이외수의 두 번째 소통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일부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메마른 영혼에 감성의 바람을 불어 넣는 은밀한 기분전환법을 배울수 있다고 하는데요, 이외수가 말하는 생존법은 무엇인지 소개를 좀 해주시죠? ▶ 책 표지를 넘기자 마자, 사정없이 나타나는 작가 이외수의 첫 번째 물음에 말문이 막힙니다.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자기가 마음대로 돈을 그려서 무제한으로 쓸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그대가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은?’ 돈의 노예로 살아가는 이 땅의 사람들에게, 갑자기 당신이 돈의 주인이 되었으니 무엇을 하고 싶느냐고 묻는 작가의 의외성에 아마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짧은 시간안에 생각을 정리해서 대답하기 어려우실 겁니다.이처럼 이외수의 하악하악은 위트와 아이러니가 돋보이는 짧은 우화들을 통해 일상에서 마주칠 수 있는 깨달음의 순간들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이런 글입니다.‘문은 들어가기 위해 만들어졌나요, 아니면 나가기 위해서 만들어 졌나요. 세상에는 간혹 이 따위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문은 드나들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그런데도 전자가 옳다느니, 후자가 옳다느니 말다툼을 벌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에게 물어 보고 싶다. 코는 숨을 들이쉴 때 쓰는 거니, 아니면 내쉴 때 쓰는 거니’ 그리고 작가는 세상살이에 대해 다양한 그만의 독설을 내뱉기도 합니다.폐인에 대한 백신이라는 작은 제목이 붙어 있는 글입니다. ‘요즘은 인생역전이라는 말을 늙은이들 보다 젊은이들이 더 남발한다. 살아보지도 않은 인생을 어떻게 역전시킨단 말인가. 게다가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로또를 역전의 주력무기로 생각한다. 당첨확률이 벼락을 두 번 맞을 확률만큼이나 희박하다는 로또를’ 그리고 책을 통해 이런 질문을 정신없이 해댑니다. ‘양의 탈을 쓴 늑대가 더 나쁜 놈일까요, 아니면 늑대의 탈을 쓴 양이 더 나쁜 놈일까요?’ ‘해는 왜 아침마다 빙그레 웃으면서 떠오르는 것일까?’ 알려진 바와 같이 작가 이외수는 젊은 날 가난과 절망의 시기를 지나왔습니다. 따라서 그는 이 책을 통해 악플러와 자신을 향한 근거없는 비난에 소신있게 반격할 줄도 알고, 문학계를 비롯한 정치, 교육, 외모지상주의 등 사회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문제에 대해 쓴 소리를 내뱉고 편협한 생각에는 일침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여러 우화적 예문을 통해 다양성을 인정하며, 유머속에 반전을 가미해 깨달음의 깊이를 전해주면서 젊은 세대를 위한 희망의 메시지 또한 빼놓지 않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정치가들은 내륙산간지방 실개천에도 고래 떼가 살도록 만들겠다는 공약 따위를 남발한다. 나중에 국민들이 실현하지 못한 이유를 따져 물으면 잘못은 고래 떼에게 있다고 답변한다.’ 그리고 젊은이들에게도 이렇게 말합니다. ‘하루살이는 하루를 살더라도 먹이 때문에 땅바닥에 배를 끌고 기어 다니지는 않는다. 젊은이들이여, 진실로 인간답게 살고 싶다면 지금부터라도 의식의 날개를 가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라’ 문학계에 대한 쓴소리도 있습니다. ‘어떤 문필가는 ’술 끊는 법‘이라는 책을 발간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술을 끊는 대신 책을 끊게 만들기도 한다.’ 이외에도 자녀교육에 유별난 이 시대의 교육을 향한 글도 있습니다. ‘중국에서 다년간 공부를 하고 돌아온 아들놈을 보면, 혹시 저 자식도 짝퉁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생길때가 있다’ 이외수의 글을 읽으면 한편으로는 속시원하고, 한편으로는 진정으로 깊이 고민하게 하는 힘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외수의 이 글이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작은 힘이나마 되기를 바라면서 마지막으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대가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것도 없고 하늘로부터 물려 받은 것고 없는 처지라면, 그대의 인생길은 당연히 비포장도로처럼 울퉁불퉁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두려워 하지 말라. 하나의 장애물은 하나의 경험이며, 하나의 지혜다. 명심하라. 모든 성공은 언제나 장애물 뒤에서 그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황경규
201
그리움을 말하는 오랜 방식―김수환 시집 『사람이 간다』 (시인동네, 2024) 김남호(시인, 문학평론가) 진주에 사는 김수환 시인이 지난 봄에 첫 시조집 『사람이 간다』를 상재했다. 아시다시피 2021년 4월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문학진흥법」 일부가 통과되면서 시조가 시로부터 분리되면서 법적으로 독립된 장르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독자들은 이미 한물간 장르라고 거들떠보지도 않는 시조에 그는 오로지 목을 맨다. 그의 시조는 흘러간 옛 노래처럼 아득하지만 그 아득함이 종종 가장 모던한 시보다도 더 새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가장 오랜 방식으로 새롭게 말하고자 하는 그의 시조는 우리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흔히들 시조를 두고 ‘K-문학’이라고 한류(韓流)식 명명을 하지만 관심은 날로 식어가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코너의 첫 번째 시집으로 김수환 시인의 시조집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김수환의 시를 떠받치고 있는 두 개의 기둥은 그리움과 아픔이다. 이 두 기둥은 시조라는 전통의 형식으로 주춧돌을 삼고, 시인의 DNA에 각인된 리듬으로 칸을 짓는다. 지붕은 “줄줄 새는 밤”(「돛대도 아니 달고」)으로 엮어서 이었다. 이렇게 세운 그의 집은 ‘저녁’이라는 ‘시간성’이 측면을 비추고, ‘뒤쪽’이라는 ‘방향성’이 후광으로 받치면서 윤곽이 드러나긴 하지만 흐릿하다. 이 흐릿함으로 인해 그의 시는 모호하지만, 화선지 위에 떨어뜨린 먹물처럼 한없이 번져나가는 여운이 있다. 그래서 그의 시는 실제보다 훨씬 멀리보이는 볼록거울의 효과를 거둔다. 그의 좋은 시편들에서 종종 느끼게 되는 막막함이나 아득함은 바로 이 효과에서 기인한다. 먼저 아프면서도 그리운 시편 하나. 촉석사거리 미소약국 계단 앞에 한 여자손으로 얼굴 가리고 미동조차 않는다쓰다 만 노을 한 구절 원망처럼 걸어두고 가녀린 손가락과 저 굽은 손바닥으로아무리 가려도 숨길 수 없는 생의 자국 가다 만 굽이 굽이가 땅거미로 지워진다 다섯 시, 하루가 이미 결판이 난 시간남강의 물결은 저리도 요동치는데 도시의 사구로 밀려 좌초한 피사체 하나- 「가린다는 것」 전문 “촉석사거리”, “미소약국 계단 앞”이라는 구체적인 장소와 “하루해가 이미 결판이 난” “다섯 시”라는 구체적인 시간, “가녀린 손가락”과 “굽은 손바닥”으로 얼굴 가리고 있는 구체적인 인물이 만들어내는 장면은 매우 극적(劇的)인 이미지다. “아무리 가려도 숨길 수 없는 생의 자국”은 거칠고, “이미 결판이 난” 하루는 절망적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여자”는 “쓰다 만/노을 한 구절”을 “원망처럼 걸어두고” “도시의/사구로 밀려/좌초”한 채 서 있다. 이런 구체적인 장소와 시간과 인물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시는 여전히 모호하다.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복잡한 속내를 숨기려 하지만 “가녀린 손가락”과 “굽은 손바닥”이 먼저 말하고 있는 탓에 이 은폐의 몸짓은 숨기고자 하는 것을 더욱 드러나게 할 뿐이다. 이 시는 “가린다는 것”의 불가능성을 드러내면서 시의 비극성을 더욱 고조시킨다. 가림으로써 드러나게 하고,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하는 기법은 단순한 시작(詩作)의 기교가 아니다. 시인이 세상을 읽는 방식이자 세계를 비의(秘意)를 말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가 그리움을 말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 이번 시집에서 가장 아픈 뒤쪽은 아마도 시인의 아버지일 것이다. 한때는 가장 든든한 배후였을 아버지가 치매를 앓으면서 처절한 뒤쪽의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목욕탕, 플라스틱 팔걸이의자 앞에 팔순 아비 몸을 씻는 육순 아들 분주하다 앙상한 생의 저녁에 멈칫대는 저 손길 황소바람 숭숭 뚫는 해지고 닳은 남루굽은 기둥 서까래들, 힘 부치는 오두막 까무룩 잠기는 어둠 몇 겹이나 깊어졌나 뉘신지 참 고맙소만, 고물거리는 검은 입 아닙니다, 아녜요 잠기고 마는 아버지이 빈집, 불 다 꺼져도 제게는 꽃대궐입니다 - 「빈집」 전문 아들은 팔순의 아버지를 “목욕탕, 플라스틱 팔걸이의자”에 앉혀서 씻겨드리고 있다. “앙상한 생의 저녁”을 맞아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나버린 아버지는 자신을 씻기는 아들 앞에서 민망함으로 멈칫댄다. 시인은 “황소바람 숭숭 뚫는 해지고 닳은 남루” 같고, “굽은 기둥 서까래들, 힘 부치는 오두막” 같은 아버지에게서 “까무룩 잠기는” 몇 겹의 어둠을 만난다. 자식도 알아보지 못하는 아버지는 “고물거리는 검은 입”으로 “뉘신지 참 고맙소만”하고 감사를 표한다. 억장이 무너지는 자식은 “아닙니다, 아녜요” 목소리가 그예 잠기고 만다. “불 다 꺼”진 “빈집” 같은 아버지이지만 그래도 이승에 계서서 “제게는 꽃대궐”이라고 시인은 울먹였으리라. * 이처럼 그의 시는 그리워서 아프고, 아파서 그립다. 그립고 아픈 것들은 한결같이 등을 보이며 돌아서 있거나 “하루가 이미 결판이 난”(「가린다는 것」) 저물녘의 모습을 하고 있다. 화장기 지운 세상의 맨얼굴은 거기에 있다고, 그것들이야말로 세상의 속살이라고, 그래서 그것들을 불러 모아 인사를 건네고 말을 나누고 그들의 말을 받아쓴 것들이 바로 이 시집이다. 이 시집의 시들은 대상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부담이 없어서 편안하고, 가까운 이야기를 멀게 하는 탓에 아득하다. 이를테면 그는 그립다는 말조차도 대놓고 못하는 숙맥이라서 “못 잊었다”는 말을 “던져 놓으면 싹이 나고/잎이 나고 열매 맺는다”(「먹다 만 토마토」)고 말하는 식이다. 이런 오랜 형식의 화법이야말로 그리움을 말하는 가장 강력한 방식이기도 해서 높은 전압이 발생한다. 하지만 이때의 전압은 쩌릿한 전율로 독자를 긴장시키는 게 아니라, 구들이 두꺼운 아랫목처럼 은근해서 독자의 마음을 내려놓게 만든다. 시조에 대한 세간의 오해와 편견에 대해 가장 오랜 방식으로 가장 첨예하게 맞서는 시인의 뚝심은 믿음직스럽다.
김남호
250
김남호(金南鎬) 평론가 경남 하동에서 나고 자랐다. 2002년 계간 『현대시문학』을 통해 평론가의 길을 나섰다. 2005년에는 계간 『시작』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시집 『링 위의 돼지』 『고래의 편두통』 『두근거리는 북쪽』, 디카시집으로 『고단한 잠』 평론집으로 『불통으로 소통하기』 『깊고 푸른 고백』이 있다. ‘문학평론’이 아닌 ‘평론문학’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글쓰기에 임하고 있다. 제1회 형평지역문학상, 제8회 디카시작품상을 수상했다. 현재 박경리문학관 관장을 맡고 있다.
황경규
164
남명의 산문집-허권수 ○ 남명 조식선생은 조선 전기의 대학자이자 영남학파의 거두입니다. 낙동강을 경계로 경상우도 지역 즉, 오늘날의 경상남도 지역을 중심으로 학맥을 형성한 조식 선생은 '단성소'라고 불리는 '을묘사직소'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 황경규의 책 이야기에서는 남명 선생이 남긴 산문 모음집인 경상대학교 한문학과 허권수 교수의『남명의 산문선』이라는 책을 소개주실텐데요, 먼저 작가소개와 책소개를 먼저 부탁드립니다. ▶ 허권수 교수는 경상남도 함안출신으로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한문학과 문학박사이며 경상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주요 경력으로는 북경사범대학 고급방문학자, 중국화중 사범대학 겸직교수,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소장, 우리한문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한국한문교육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이 책은 경상대학교 남명학 연구소가 펴낸 남명 조식에 관한 교양총서 여섯 권 중의 한 권으로 오늘날에 교훈을 줄 수 있으면서도 일반인이 읽어도 어렵지 않는 산문만을 선별해 담고 있습니다. 먼저 이 책에는 지식이 아니라 실천을 위주로 했던 남명의 학문사상이 가득해 음미하면 음미할수록 무궁무진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어 일반인이 읽어도 그리 어렵지 않은 교양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남명 조식선생하면 곧바로 단성소를 떠올리게 되는데요, 이 책에는 주로 어떤 글들이 실려 있습니까? ▶ 흔히들 단성소로 많이 알려져 있는 을묘사직소를 비롯해 편지글과 비문 등 22편의 산문이 실려 있습니다. 이중 단성소는 특히 남명 조식선생의 선비정신이 어떠했는지를 잘 알수 있습니다. 남명선생은 을묘년에 사직하는 상소문을 통해 당시 임금인 명종과 그의 어머니 문정왕후를 두고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자전 즉, 임금의 어머니께서는 생각이 깊으시기는 하나 깊숙한 궁중의 한 과부에 지나지 않고, 전하께서는 어리시어, 다만 돌아가신 임금님의 어린 아드님 이실 뿐이니 천 가지 백 가지의 하늘이 내린 재앙과 억만 갈래로 찢어진 인심을 무엇으로 감당해내며 무엇으로 수습하시겠습니까?’ 이 글은 천길낭떠러지에 서 있는듯한 남명의 기상과 국정을 신랄하게 비판한 남명의 선비정신을 엿볼 수 있는 글입니다. 당시 생사여탈권을 가진 대비를 과부로, 왕을 외로운 아들로 표현한 것은 남명이 아니면 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남명은 단성소를 통해 조정과 관료의 부패, 왜적방비의 허술함 등을 지적했으며 흐트러진 나라를 바로잡고자 했고, 이른바 재야에서 자신의 도덕적 수양에 그치지 않고 사회기강을 바로잡는 올바른 선비정신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또한 남명선생이 당시 성리학에 있어서 쌍벽을 이루던 퇴계 이황에게 보낸 편지글은 공부하는 선비들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며 당시 조정의 막후 권력자였던 이황을 은근히 훈계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요즘 공부하는 자들을 보건대, 손으로 물 뿌리고 비질하는 절도도 모르면서, 입으로는 천리를 담론하여 헛된 이름이나 훔쳐서 남들을 속이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리어 남에게 상처를 입게 되고, 그 피해가 다른 사람에게 까지 미치니 아마도 선생같은 장로께서 꾸짖어 그만두게 하지 않기 때문일것입니다. 저와 같은 사람은 마음을 보존한 것이 황폐하여 배우러 찾아오는 사람이 드물지만, 선생같은 분은 몸소 상등의 경지에 도달하여 우러르는 사람이 참으로 많으니 십분 억제하고 타이르심이 어떻겠습니까’ 이 편지글은 당시 조선의 학문이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성리설에 관심을 두고 있는 상황을 우려해 퇴계에게 편지를 보내 그런 사람들을 타이름과 동시에 바로잡아 주기를 간곡하게 바라는 내용을 적은 것입니다.이외에도 민암부라는 글을 통해서는 백성과 임금과의 관계를 물과 그 위에 떠있는 배에 비유해서 임금이나 위정자의 폐부를 찌르는 풍자를 했습니다.잠깐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백성은 물과 같다는 말은, 예로부터 있어 왔노니 백성은 임금을 받들기도 하지만 백성은 나라를 엎어버리기도 한다’라고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실로 남명의 기개가 어떤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그리고 새로 즉위한 선조가 내린 벼슬을 사직하면서 승정원에 올린 글에서는 초야에 묻힌 어진 이를 불러내, 이름만 얻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시급한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에 구급(救急) 즉 급한 일을 해결하시오 라는 두 글자를 써서 올리면서 먼저 할 일과 나중에 할 일을 구분하여 판단하고, 헛되고 형식적인 일보다 근본적이고 현실적인 일에 힘쓰라고 간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무진년에 올리는 봉사’라는 글에서는 당시 조선의 실정은 서리들이 부정부패를 저질러 나라를 망치고 있는데, 조정관리들은 한통속이 되어 그들에게 이용당하거나 묵인하고 있으니, 임금은 정신을 차리고 나라 일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직간하고 있습니다.그런 한편 이 책에서는 남명과 가까운 친구사이였던 구암 이정과 사이가 좋지 않게 된 사연을 어릴적 친구인 대곡 성운에게 하소연하는 인간적인 면도 발견할 수 있으며, 이론보다는 체득과 실천을 중요시 여긴 남명답게 제자들에게 실천위주의 공부를 하라고 권하는 편지글도 있습니다.이처럼 남명의 산문집을 꼼꼼이 읽다보면 남명이라는 인물의 사람됨과 학문이 어떠한지를 곧바로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5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옛날과 같은 비도덕적인 일들이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남명의 산문집을 통해서 오늘날 위정자가 가야 할 길과 공부하는 사람의 도리, 그리고 무엇이 선비정신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황경규
185
세상이 어지러우면 악덕 무당이 판친다. 제법 괜찮다는 길목엔 천지인을 상징하는 삼색천을 매단 대나무를 대문간에 세워두고 안방엔 신당을 차린다. 소위 신군(神君)을 자처하는 그들은 세상 살이 다급한 민초를 대상으로 혹세무민한다. 그리고 마치 세상 사람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판관처럼 행세한다. 보편적 인식이 그렇다는 말이다. 비단 무당에만 그치지 않는다. 조폭도 마찬가지이다. 이른바 ‘패밀리’의 머릿수가 곧 ‘힘’인 이들은 ‘대부’의 그늘에서 복
‘잣대’라는 말이 있다. 길이를 재는 자로 사용되는 대막대기 혹은 나무 막대기의 일종으로 통칭 ‘자막대기’라고도 부른다. 이 말은 자고로 도덕적인 행위나 사물의 기준을 재단하는 객관적인 근거로 인용되곤 했다. 흔히 ‘객관적이지 못한 일’이나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은 이 잣대를 기준으로 잘잘못을 가리곤 한다.그런데 이 잣대란 말은 그 자체로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잣대가 적용되는 순간, 그것은 객관적이지 못하며 형평성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이 ‘잣대’는 일부 소수 권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