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Story 조선미인보감(朝鮮美人寶鑑)에 실린 진주 예기(晋州 藝妓) : 1. 조선미인보감 서지정보와 김영희(金英熙, 錦香)
조선미인보감(朝鮮美人寶鑑)에 실린 진주 예기(晋州 藝妓)일제강점기 경성에서 출판된 조선미인보감(朝鮮美人寶鑑)은 조선의 예기 611명의 사진과 이력 등을 기록한 화보집이다. 일제강점기 문화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사료이며 기생사 연구에 필수적인 문헌으로 평가되고 있다.경성일보사의 사장인 아오야나기 고타로가 신구서림(新舊書林)을 운영하던 지송욱(池松旭)과 함께 제작한 책이다. 조선 전도의 미인의 사진과 기예와 이력을 수집하고 조선 언문과 한문으로 서술한 책이다. 발간 목적은 풍속교화를 달성하고 예기들의 용모와 기예를 평가하기 위해서였다. 조선미인보감에는 경성을 비롯한 진주, 대구, 동래, 평양의 권번 혹은 기생조합에 소속되어 있었던 예기 611명에 대한 개인 프로필과 사진을 싣고 있다. 예기들의 연령대는 9세부터 33세까지 다양하다. 조선미인보감에는 진주(晋州)의 예기(藝妓) 15명의 프로필이 실려있다. 원적(原籍)과 현 주거지, 이름과 나이, 그리고 대표적인 기예(技藝)를 상세히 적고 있다.조선미인보감에 실려있는 예기는 다음과 같다.김영희(金英熙, 錦香, 30세), 김단계(金丹桂, 25세), 왕월출(王月出, 22세), 이매홍(李梅紅, 22세), 정진홍(鄭眞紅, 22세), 박농화(朴弄花, 21세), 강채희(姜彩姬, 20세), 이화향(李花香, 18세), 문초운학(文楚雲鶴, 19세), 이죽향(李竹香, 19세), 김계선(金桂仙, 18세), 황능파(黃綾波, 18세), 홍국화(洪菊花, 17세), 김학희(金鶴喜, 16세), 진선옥(陳仙玉, 16세) 1. 김영희(金英熙, 錦香) 원적은 경상남도 진주군(晋州郡) 평안동(平安洞)이다. 전명(前名)은 금향(錦香)이다. 기예(技藝)로는 각종 정재무(呈才舞)와 검무(劍舞)에 뛰어났다. 특히 노래(歌), 우계면(羽界面), 가사(歌詞)에 특별한 재능을 가졌다.
- 2024-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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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경규 사진제공/신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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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Photo&Story 영남포정사 문루
영남포정사 문루는 조선 광해군 10년(1618) 병마절도사 남이흥이 2층으로 신축했습니다.진주목 시절에는 진주성 내성의 관문이었고, 고종 32년(1985) 관찰부가 설치되면서 진주관찰부의 관문으로 영남의 정사를 선포하는 행정중심지를 뜻하는 말로 '영남포정사'라는 현판을 내걸었습니다.1896년 진주관찰부가 경상남도청으로 바뀌면서 관찰사의 집무실인 선화당의 정문으로 사용되었으며, 1925년 도청 소재지가 부산으로 옮겨지기 전까지 경남도청의 정문역할을 했습니다.
- 2024-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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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글/ 황경규 사진/신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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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Story 남강선교(南江船橋) / 배다리(1910년대)
일제강점기에 반전사진관(飯田寫眞館)이 발행한 엽서이다. 발행날짜는 기재되어 있지 않아 정확한 연도는 알기 어렵다. 사진은 진주선교(晋州船橋) 즉 배다리의 모습이다. 엽서에 의하면 진주선교는 1914년 5월 16일 개통했다고 적혀있다. 사진의 오른쪽에는 1910년대 촉석루와 성곽이 거의 사라져 훼손이 된 진주성의 모습을 볼 수 있다.배다리를 건너는 시민들의 모습과 우마차를 이용해 짐을 나르는 풍경이 보인다.
- 2024-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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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경규 사진/신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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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Story 지리산과 진주명화(名花) 류앵
일본 오사카 매일신문 주최로 개최된 조선8경 일반 투표에서 3등에 당선된 사진이다. 경남과 전라남북도를 아우르는 지리산의 풍경과 경남 진주의 명화(名花, 기생) 류앵의 사진을 함께 싣고 있다.
- 2024-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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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경규 사진/신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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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
Photo&Story 진주성(1934년)
한국전쟁으로 소실되기 이전의 촉석루의 모습을 볼수 있고 강건너에서 빨래를 하는 아낙네의 모습이 정겹다.
- 2024-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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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 : 신현규(중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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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Story 진주 영정 경찰서 앞 거리
진주군 대안면, 중안면, 성내면 지역으로 1914년 이들 지역 각 일부를 통합하여 진주면 대안동이라 했다.1932년에는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일본식 지명으로 개칭되어 영정(榮町)이라 불렀다. 사진의 아래쪽에는 조선 진주(朝鮮 晋州) 진주영정경찰서전통(晋州榮町警察署前通)이라고 적혀 있다. 영정(榮町)은 일본식 지명으로 '사카에초'이며, 일제강점기 '진주의 명동'이었던 곳이 바로 영정이다.
- 2024-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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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 : 신현규(중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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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Story 대사지 / 진주성 3D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소장하고 있는 해동지도진주목 지도(조선, 1730년경)에는 대사지의 물길이 진주성의 동쪽을 돌아서 진주 남강과 합류하고 있다. 지도상의 진주성은 서쪽으로는 깎아지른 절벽, 북쪽과 동쪽의 대사지, 남쪽의 남강에 둘러싸인 고립된 하나의 섬이 되어 천혜의 요새로 자리매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사지의 규모는 계명대학교 소장 19세기 진주성도(보물 제1600호)에서 알 수 있다. 현존하는 진주성도 가운데 대사지의 규모와 모습을 가장 자세하게 그리고 있다. 계명대학교 소장 진주성도에 나타난 대사지의 규모는 지금의 진주성 북장대 아래에서부터 시작되어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진주성 외성의 신북문까지 연결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 2024-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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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영(준플래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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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Story 선화당 / 진주성 3D
선화당은 본래 경상남·북도의 낙동강 서부지역을 총괄하던 육상방어기구인 경상도 우병영의 관청이었던 운주헌(運籌軒)이었으며 옛 이름은 관덕당(觀德堂)이었다. 우병영은 경상우도의 병무 중심지와 영남 서부의 방어 기지로서 조선 말기까지 존속하다가 1894년 갑오개혁으로 성립된 김홍집 내각에 의해 1894년 7월 15일 각 도의 병영 혁파와 함께 폐지되었다.조선말 경상도(慶尙道)가 경상남도(慶尙南道)와 경상북도(慶尙北道)로 나뉘고, 관찰사가 진주에 주재하면서 진주는 경남도청의 소재지가 되었고, 이후 경남도정의 본산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에 따라 경상 우병영의 관청이었던 운주헌은 우병영이 폐지되고 진주에 관찰사(觀察使)가 부임하면서 선화당(宣化堂)이라는 명칭으로 바뀌었다.
- 2024-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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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준영(준플래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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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Story 동장대
진주성 동장대는 진주성에 설치됐던 4개의 장대 중에 가장 바깥쪽 성벽에 위치한 누각이다.임진왜란 당시에는 진주성의 취약지를 방어하던 외성벽의 신북문과 공문 사이에 위치해 가장 치열한 접전이 벌어진 장소이다.
- 2024-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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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규(중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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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Story 중영/진주성 3D
중영(中營)은 경상우병영 우후(虞候)의 군영이었다. -우후(虞候)는 경상우병영의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보좌하는 종3품의 외관직 무관직으로 병마절도사의 참모장이다. 1. 중영(中營) 복원(復元)의 의미경상우도 병무 중심지이자, 영남의 중점 방어기지로서 천년도시 진주가 영남웅도(嶺南雄都)임을 증명하는 장소이다. 2. 중영 복원(2023년)총사업비 17억원. 정면 7칸, 측면 3칸, 1고주(高柱, 대청마루 한 가운데에 다른 기둥보다 높게 세운 기둥) 5량가(도리의 개수), 연면적 1만461㎡이다.
- 2024-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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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준영(준플래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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