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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향기

고전의 향기(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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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향기 잘난 척 하는 사람을 대처하는 좋은 방법

○ 오늘 고전의 향기는 어떤 내용입니까? ▶ 사람의 크기를 무엇으로 잴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자본주의 시대에 걸맞게 오직 돈와 명예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혹은 공부를 많이 해서 박학다식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오늘 고전산책에서는 고전이 말하는 ‘사람의 크기’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현대사회에서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가진 사람을 동경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고전에서는 좀 다르겠죠? ▶ 고전을 보면 이 세가지를 경계하는 글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먼저 춘추좌씨전을 보면 부를 거머쥔 사람들을 경계하는 글이 있습니다. ‘부이불교자 선(富而不驕者 鮮)이요 교이불망자(驕而不亡者) 미지유야(未之有也) 니라’ 즉 ‘부자이면서 교만하지 않는 자가 드물고, 교만하면서 망하지 않는 자가 있지 아니하다’라는 뜻입니다.따라서 일반적으로 부를 가진 사람은 교만하기가 쉬운데 증자(曾子)라는 사람은 부유하다고 해서 잘난체 하는 사람을 대처하는 좋은 방법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피이기부(彼以其富) 아이오인(我以吾仁)’이라 해서 부(富)를 가지고 잘난체 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어질게 행동한다면 전혀 문제될게 없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그리고 명예와 관련해서는 맹자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성문과정(聲聞過情)을 군자(君子) 치지(恥之)니라’ 즉, ‘명성이 실제보다 지나친 것을 군자는 부끄러워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지금 이 세상에는 자신보다 잘난 사람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너무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지식인층을 살펴보면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집니다.권력 또한 국민의 신의를 바탕으로 생기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소위 권력자들은 권력을 가지는 순간 곧바로 국민위에 군림하려고 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그래서 고전에서 사람의 크기를 구분할 때는 반드시 그 사람이 가진 사랑이 얼마나 크고 넓은 지로 경계로 삼고 있습니다. ○ 사랑의 크기로 사람의 크기를 재단하기에는 객관적으로 조금 어렵지 않을까요? ▶ 그래서 고전을 읽다보면 군자(君子)와 소인(小人), 대인(大人)과 소인(小人)이니 하는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이것 역시 사람을 구분하는 잣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인사(人事)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너무 잘 알고 있는 단어이고 일상생활에서 늘 하는 행동이지만 사실 정확히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알고 계신 분들은 드문 것 같습니다. 인사라는 것은 사람 인(人)에 일 사(事), 즉 사람이 해야 할 일, 사람의 도리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사람으로써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하면 군자가 되는 것이고, 그 도리를 알고도 행하지 않는다면 소인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크기는 그 사람이 가진 사랑의 크기가 얼마만큼 큰가에 따라 구분을 지을 수 있습니다. 만약 그 사랑이 천하를 덮을 정도라면 그 사람은 천하만큼 큰 사람입니다. 제 한몸의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알았던 백범 김구 같은 분들을 우리가 위대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설원(說苑)이라는 책에 ‘대인자 은급사해(大人者 恩及四海)요 소인자 지어처자(小人者 止於妻子)’라고 했습니다. 즉, ‘대인은 그 은혜가 천하에 미치고, 소인은 처자에게 그친다’는 뜻입니다.보통 사람들의 사랑은 자기 가족을 살피는데 그치는게 일반적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자기 가족만큼의 크기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 보다 못한 사람은 자기자신만을 사랑하는데 그치게 되는데 그 사람은 자신만큼의 크기를 갖게 됩니다. ○ 말을 뒤집어 본다면 자신의 크기만큼 남을 사랑할 수 있다는 뜻도 되지 않겠습니까?▶ 고전에서 사람의 크기를 말할 때 늘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 대장부의 정의입니다. 맹자는 사내가 세상에 태어나면 무릇 대장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대장부에 대한 정의를 내림과 동시에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맹자가 말하는 대장부는 ‘인(隣)이라는 천하(天下)의 넓은 집에 살고, 예(禮) 라는 천하(天下)의 바른 위치에 서서, 의리(義理)라는 천하(天下)의 큰 도(道)를 행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곧, 천하를 사랑할 수 있는 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입니다.그리고 많은 성현들이 대장부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도 했습니다.맹교(孟郊)라는 사람은 ‘군유장부루(君有丈夫淚) 읍인불읍인(泣人不泣人)’이라고 해서 ‘그대에게 대장부의 눈물이 있다면, 남을 위하여 흘리고 자신을 위해 흘리지 말라’고 했습니다.그리고 원매라는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 영웅이 되고 미인을 얻는 것은 ‘일신의 사랑’이지 ‘천하의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모름지기 세상에 태어나면 일신의 영달이나 추구하는 작은 사람이 아니라 천하의 영달을 추구하는 큰사람이 되기를 희망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백거이라는 사람은 신제능오성감이유영(新制綾襖成感而有詠)이라는 시를 통해 대장부의 포부를 이야기 하기도 했습니다. 헐벗어서 구제할 수 없는 백성들이 많은데혼자만 따뜻하면 어떤 마음일까어찌하면 만 장 길이의 큰 가죽 옷을 구해서온 낙양성 사람을 덮어 줄 수 있겠는가 천하의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가진 사람만이 마치 큰 사람처럼 보이는 거짓된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수긍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되돌아보게 됩니다.거대한 기업들은 국민을 먹여 살린다고 강변하면서 때로는 협박까지 일삼고 있고, 알량한 명예를 지닌 사람들은 마치 세상을 다 거머쥔 것처럼 오만을 떨고 있으며, 권력을 쥔 사람들은 마치 자신의 행동이 법이라도 되는 것처럼 막무가내식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런 사람들의 사람의 크기는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여기서 과연 나의 사랑은 어디까지를 덮고 있는가를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의 사랑이 미치는 곳이 국가인지? 가족인지? 아니면 자신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한번 던져 보시고 만약 그 어딘가에 자신의 마음이 머문다면 그곳이 나의 사람됨의 크기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고전은 말하고 있습니다.

  • 2024-10-04
  • 작성자

    황경규

  • 조회수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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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향기 정치를 등치는 사람들

정치를 등치는 사람들▶ ‘정치를 등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권력을 앞세워 법을 악용하는 무리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은 사람이 만든 법을 가지고 언제나 사람에게 군림하고, 법을 인간의 족쇄로 만들고 있습니다.‘정치와 권력의 함수’라고 부릅니다. ○ 오늘날처럼 권력의 장치가 공고히 다져져서 무서운 힘을 발휘하는 시대는 없는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 사실 정치를 하는 힘은 권력에 있습니다. 따라서 권력을 쥔 사람은 항상 자신이 칼자루를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법과 힘으로 밀어 붙이거나 아니면 갖은 술수를 부리고 엄포를 놓아서 주눅이 들게 해 세상을 억지로 꿰맞추려고 합니다.역사적으로 보면 이런 이유 때문에 변란이 일어나 때로는 밀려나고 물러나고 빼앗고 빼앗기면서 정권의 다툼이 요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이른바 다스리는 사람, 즉 치자들이 정권욕에 사로잡히면 잿밥에 눈이 팔려 염불을 못하는 중과 다를바가 없게 됩니다. 왜 백성들이 정치를 불신하겠습니까? 정권을 잡으면 특권층이 신흥세력으로 부상하고, 정권을 빼앗기면 다음날로 신흥세력에 의해 구세력이 축출되는 그런 구태를 일삼아왔기 때문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인의 장막에서 부정부패가 기승을 부려 한평생 독립운동을 했던 보람도 없이 망명을 해야 했고, 박정희대통령은 독재의 엄호를 받은 측근세력들의 세도에 희생당했고, 전두환대통령은 척족들이 이권의 사냥꾼들이 되는 바람에 권좌에서 물러난 뒤 절간에서 유배생활을 했습니다. 이처럼 대권을 쥔 이른바 치자들의 말로가 비참하거나 부끄러운 결말에 이른 까닭은 올바른 다스림의 정치를 하지 못하고 힘으로 다스리는 정치, 즉 사람위에 군림하는 정치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2,500년전부터 위정이덕(爲政以德) 즉, ‘정치는 덕으로 하라’고 가르쳤습니다. ○ 사람을 잘 쓰는 것도 나라를 잘 다스리는 중요한 일이 되지 않을까요? ▶ 순자(荀子)의 군도(君道)라는 글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현명한 임금은 금이나 보석 등은 사사로이 사람들에게 주지만, 관직이나 직책은 사사로이 사람들에게 주는 법이 없다’라고 했고, 한시외전(韓詩外傳)에는 ‘인사가 도리에 합당하면 귀신의 일에도 순응할 수 있고 귀신의 일에 순응하면, 내리는 복이 크고 넓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지도자가 인지상정에 얽매여서 인사의 공정을 잃으면 조직의 근본이 흔들리게 됨을 경고한 말입니다.춘추시대의 일입니다. 진나라의 문공이 구범(咎犯)이라는 사람에게 서하라는 곳의 태수로 누구를 삼으면 좋을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구범은 우자고(虞子羔)라는 사람을 추천합니다. 그러자 문공이 우자고와는 서로 원수지간인데 어떻게 추천할 수 있느냐고 묻자, 우자고는 이렇게 대답합니다.‘임금께서는 누가 태수로 적당한지를 물었지, 누가 원수인가를 물은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인간이면서 감정의 애증을 초월할수 없지만 공적으로는 객관적인 시각에서 대상을 판단할 수 있어야 리더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면서도 그 잘못을 알고 미워하면서도 그 장점을 아는 것, 이것이 바로 리더의 엄정함입니다. 구범이라는 사람은 이러한 엄정함을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 임금이 잘못하던 신하가 잘못하던간에 정치를 등치는 사람들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자는 국민들 아니겠습니까? ▶ 이른바 힘으로 하는 정치는 정치를 보기 좋게 화장을 해주는 경우로 변질되기 쉽습니다. 이렇게 되면 법이라는 것이 거미줄과 같아서 새는 그 거미줄을 뚫고 날아가 버리지만 벌레 따위는 걸리고 만다는 탄식이 국민들의 입에서 떠나 본적이 없습니다.그렇다면 법망을 비웃고 날아가는 새는 무엇일까요? 바로 권력을 가진 이른바 힘있는 무리이고, 법망에 걸려드는 벌레는 힘없는 국민들을 말합니다. 따라서 법을 어기지 않으면 아무런 일이 없는 세상을 살수 있지만, 법대로만 하다가는 살아갈 수가 없다는 국민들의 말을 흘려 버릴 수 없습니다.아무리 법치의 세상이라 하더라도 정치를 하는 사람의 됨됨이가 인의(仁義)에 바탕을 두지 않는다면 세상은 항상 무섭게 돌아가고 맙니다. 사람보다는 컴퓨터를 더 믿으려는 세상이 되면 될수록 세상을 다스리는 일에 비인간화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그래서 공자는 권력을 치부의 수단이나 특권으로 여기는 사람을 사이비 정치꾼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 최근 검찰총장 후보자가 논란 끝에 사퇴를 하기도 했지 않습니까? ▶ 아마 이번 사건을 두고 많은 국민들은 소위 이 땅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한번쯤은 생각을 해보셨을 것 같습니다. 사실 검찰총장은 대검찰청의 최상급자이면서 권력의 핵심이나 다름없습니다.그런데 인사청문회를 한 결과는 어땠습니까? 위장전입에 주택 구입자금 의혹, 의심스러운 부인의 명품 쇼핑, 스폰스와 해외골프 여행, 그리고 자녀 결혼식을 국내 최고가의 6성급 호텔에서 하고서도 그곳을 소박하게 ‘조그만 교외’라고 표현하는 후보자의 모습에서 아마 많은 국민들은 우리나라의 이른바 상류층의 도덕불감증과 거짓말 투성이의 위선에 허탈감을 느끼셨을 겁니다.물론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현재 이 땅에서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그와 비슷한 수준에 있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내다보지 않아도 뻔하다는 생각 역시 한번 해보셨을 겁니다. 지금 난장판을 벌이고 있는 여야 정치권이 원하는 것은 과연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과연 그들이 그토록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 과연 국민을 위한 일일까요? 지금 여야 정치권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게 아니라 자신들을 위한 정치를 하고 있다는 국민들의 따끔한 지적을 과연 눈치나 채고 있을까요?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는 소위 대한민국 권력의 핵심을 들여다보면서 과연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합니다.공자는 ‘덕으로 정치를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마도 또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겁니다. ‘제발 정치를 등치지 마라, 이것은 백성의 소원이다’라고 말입니다.

  • 2024-09-15
  • 작성자

    황경규/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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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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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향기 끓는 물 식히려면 장작불 부터 꺼라

끓는 물을 식히려면 장작불 부터 꺼라 ‘끓는 물을 식히려면 장작불을 끄는 것이 가장 좋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결과란 원인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좋은 원인을 만들면 당연히 좋은 결과가 뒤따른다는 말입니다. 예로부터 현명한 사람들은 이러한 이치를 잘알기 때문에 좋은 원인을 먼저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원인이 결과를 만든다’는 고전의 가르침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사실 보통 사람들은 좋은 원인을 만드는 것은 등한시하면서도 좋은 결과만 기대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 사실 좀 어려운 것 같은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조금 쉽게 설명드리면 ‘평소에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고 시험성적이 좋기만을 바라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회남자(淮南子) 범론훈(氾論訓)편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송나라 사람이 딸을 시집보내면서 “혹시 나중에 이혼을 당할 수 도 있으니 돈을 은밀히 좀 모아두어라. 너에게 돈이 많이 있으면 다시 시집 가기가 쉬울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시집을 간 딸은 아버지가 일러준 계책대로 돈을 은밀히 모아두었지만 나중에 이 사실이 발각되어서 결국 시집에서 쫓겨나게 됩니다.딸의 아버지는 이혼에 대비해서 돈을 훔쳐 모아둘 필요성은 알았지만, 그것이 이혼의 사유가 될줄은 몰랐고, 어려움에 대비할 줄만 알았지 어려움이 생기지 않도록 할 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결국 좋은 결과를 만들지 못할 것에 대해서는 두려워했지만 좋은 원인을 만드는 것에는 등한시 했던 것입니다.그래서 문자(文子)는 미명(微明)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사람들은 모두 생겨난 환난에서 빠져 나올줄은 알지만 환난이 생겨나지 않게 할 줄은 모른다’이 글은 매사에 그 원인이 있는데 결과에만 매달리고, 그 원인에 천착하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지적한 글입니다. ○ 사실 요즘 세상을 살다보면 원인과 결과에 상관없이 진짜로 불합리하다 싶은 일들을 많이 경험하게 되지 않습니까? ▶ 수많은 인간군상들을 불후의 저서인 사기(史記)에 기록했던 사마천(司馬遷) 역시 원인과 결과에 부응하지 않는 인간세상의 불합리함을 두고 이렇게 통탄했습니다.‘하는 일이 올바르지 않고 법이 금지하는 일만 범하면서도 일평생을 호강하고 즐겁게 살며 대대로 부귀가 이어지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하면 걸음 한번 내 딛는데도 땅을 가려서 딛고, 공평하고 바른 길이 아니면 가지 않는데도 재앙을 만나는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이런 사실은 나를 당혹스럽게 한다. 만약에 이러한 것이 하늘의 도리라고 한다면 이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아니면 그른 것인가’사실 이러한 일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소위 팔자타령을 하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은 뼈빠지게 일해도 겨우 목에 풀칠할 정도로 늘 어렵게 살뿐이고, 뒤에 숨어서 온갖 못된 짓을 다하는 사람은 죽자살자 일을 하지 않아도 보란 듯이 떵떵거리고 사는 모습을 우리는 현실속에서 수없이 목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떨때는 정직하게 살던 사람이라도 이런 부조리한 현실과 부딪히게 되면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것인지 헷갈리게 됩니다. 법을 지키고 바른길을 가기보다는, 차라리 그들처럼 잘살기 위해서 불법이라도 자행하는 것이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세상이 점점 어지러워지면서 불법이 판을 치고, 불법을 하지 않으면 살기 어려운 세상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는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원인보다는 결과에만 집착하게 되는 세상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하지만 고전에는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일깨우는 좋은 글들이 많이 있을 것 같은데요? ▶ 고칙성(高則誠)의 비파기(琵琶記)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선행과 악행은 결국 응보가 뒤따른다. 다만 빠른가 느린가의 문제일 뿐이다.’사실 사람이 겪는 화(禍)와 복(福)은 짧은 시간에 판가름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복으로 알았지만 나중에 화가 되고, 화로 알았던 것이 후일에 복이 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경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떵떵거리고 살지만 그 재물을 정당치 못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라면 언젠가는 반드시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것도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노자(老子) 임위편(任爲篇)에도 天網恢恢(천망회회) 疎而不失(소이불실)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이 글은 ‘하늘의 그물은 넓고 넓으며, 성기지만 새는 곳이 없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다 자세하게 설명 드리면 하늘의 그물은 넓고 광대해 비록 그 그물의 눈이 성글게 보이지만 선악의 응보를 반드시 내리고 절대로 실패하는 일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그리고 회남자는 ‘뚜렷한 공이 없이 얻은 큰 이득은 뒤에 가면 장차 손실로 변한다’고 했고, 전국책에서는 ‘공이 없는 상과 힘쓰지 않고 받은 예우는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그리고 명심보감에서는 ‘까닭없이 큰 돈을 얻게 되면 큰 복이 아니라 반드시 큰 재앙이 있게 된다’라고 했고 구양수(歐陽修)도 ‘소인이 뜻을 이루면 한때 통쾌해 하지만, 진정 그 득실을 알려면 시간이 흐른뒤에야 비로소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 최근 비정규직법 문제가 적지 않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고전의 가르침은 어떻습니까? ▶ 이 문제야 말로 원인보다는 결과에만 천착하고 있는 어리석음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여야 모두가 비정규직법안에 대해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서로 자기가 옳다는 주장만 하고 있습니다. 여당은, 야당이 비정규직법 시행유예를 거부해 실업대란이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야당은 노동의 유연성만 강조하는 바람에 해고사태를 방조하고 있다고 서로 비난에만 열을 올리면서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논란의 중심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라는 법의 당초 취지가 아예 실종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한 법이 오히려 비정규직의 대량 해고사태를 불러온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있다면 그 근본원인에 대한 해법만 제시하면 될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논란을 보면 여야 모두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비정규직법안이 가져올 그 결과에만 서로 천착을 하면서 난장판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어 가고 있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는 것 같이 보입니다.앞서 말씀드렸듯이 끓는 물을 식히려면 장작불을 끄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지금 비정규직 법안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논란에 있어 어떤 것이 끓는 물이고, 어떤 것이 장작불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정치권을 보면 장작불을 끄기는커녕 끓는 물에 서로 손을 데여가면서 물을 식히는데만 골몰하고 있습니다.지금 이 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사마천이 당시 세상의 불합리함을 통탄했던 것과 같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비정규직법안을 놓고 다투는 정치권을 보면서 매사에 그 원인을 외면한채 결과에만 매달리고, 그 원인에 천착하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 2024-09-05
  • 작성자

    황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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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향기 중행무구(中行無咎), 중(中)을 행하면 허물이 없다

○ 오늘 고전의 향기는 어떤 내용입니까? ▶ 전설적인 성군(聖君)이었던 순(舜)임금은 우(禹)임금에게 자신의 왕위를 넘겨주면서 다음과 같이 간곡하게 당부를 합니다. ‘오로지 정신을 하나로 모아 성실한 마음으로 중(中)을 지켜라’ 이 말이 바로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謀 )편에 나오는 유정유일(惟精惟一) 윤집궐중(允執闕中)입니다.항상 균형과 공정을 유지하라는 당부가 바로 왕위를 인수인계 하는데 있어서 핵심이었던 것입니다.오늘 고전의 향기에서는 ‘하늘은 균형을 추구한다’는 고전의 가르침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하늘은 균형을 추구한다는 말은 어떤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까요? ▶ 노자(老子) 79장(章)을 보면 천도무친(天道無親)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하늘은 사사로운 친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즉 하늘은 특별히 어떤 존재를 이롭게 하거나 불리하게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따라서 일반적으로 사물의 구성과 만물의 관계가 공평해서 치우치지 않는 것이 천리(天理)이고 천도(天道)라고 하는데, 이러한 이치를 노자는 공정하다는 뜻의 공(公)이라고 했고, 중용에서는 가운데 라는 의미의 중(中)이라고 했습니다.노자는 공정함 즉 공(公)이 곧 왕의 처신이며, 왕의 처신이 곧 하늘의 뜻이라고 했고, 중용에서는 한 편으로 치우치거나 기울지 않는 것이며, 부족함이 없는 것이라고 했습니다.이와 관련한 고전속의 명언들이 많습니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에는 ‘화평은 공정함에서 나오고 공정함은 도에서 나온다’라고 했고, 한서(漢書)에는 ‘하늘은 고르지 않게 내려주지 않고, 땅은 치우치게 실어주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다시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극에 달하면 되돌아오고, 가득차면 덜게 된다’는 법칙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역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하늘의 도는 가득한 것을 덜어서 모자란 것에 보태고, 땅의 도는 가득한 것을 변화시켜 모자란 것으로 흐르게 한다.’개인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지배층과 피지배층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집니다.만약 지배층의 가렴주구가 극에 달해서 피지배층의 존재가 위협을 받게 되면 기존의 체제를 무너뜨리는 반동적인 움직임이 있었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혁명(革命)과 민란(民亂)이 바로 그것입니다. 따라서 ‘하늘은 균형을 추구한다’는 말은 복잡다단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늘 공정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세상을 살아가면서 중(中), 즉 공정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 허물이 없게 된다는 말씀인가요? ▶ 순자(荀子)라는 책에 보면 유좌지기(宥坐之器)라는 그릇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공자가 노나라 환공의 묘를 구경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한 쪽으로 기울어진 그릇을 발견하고는 묘지기에게 무슨 그릇인지를 물었습니다.그러자 그 묘지기는 “거처하는 옆에 두고 교훈을 삼는 그릇입니다.”라고 말합니다.이 그릇을 보고 돌아온 공자는 제자들에게 이 유좌지기(宥坐之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내가 듣건대, 유좌지기는 거처하는 옆에 두고 교훈을 삼는 그릇인데 비면 기울어지고, 알맞게 차면 바로 서며, 가득차면 엎어진다고 한다.”라고 말한 뒤 “가득 차고서도 엎어지지 않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라고 탄식을 했다고 합니다. 중국 곡부에 있는 대성전에는 이 유좌지기를 살펴보는 공자의 모습이 담긴 그림이 여러 점이 있습니다. 그림 속의 유좌지기는 공중에 매달린 양동이와 흡사한데, 손잡이 걸이가 무게 중심보다 약간 아랫부분 양쪽에 붙어 있어서 속이 비거나 가득차면 엎어지고, 적당히 물이 차면 바로 서는 그릇이었습니다.공자가 이 그릇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중행무구(中行無咎)’ 즉 중(中)을 행하면 허물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요즘처럼 복잡다단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공정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삶을 살아가기란 어렵습니다.세상이 복잡해지는 만큼 공정함의 경계도 애매모호해지고, 중용의 삶 즉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삶 역시 쉽지 않습니다.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공정함과 중용의 삶을 살려고 하는 의지마저 덩달아 약해지면서 자신의 삶의 기준도 세우지 못하고 세상이 움직이는 대로 몸을 맡기면서 사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 사실 중행을 실천하는 일이 그리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 스페인의 철학자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인생을 보는 지혜’라는 책을 보면 ‘인생의 지혜는 언제나 균형을 선호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즉 그라시안은 균형이 바로 인생의 지혜라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동서양이 공히 삶에 있어서 균형을 유지하는 일은 삶의 궁극적인 목표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라시안은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지나친 정의는 부당함이 될 수 있다. 달콤한 오렌지즙도 너무 오래 짜면 나중에 쓴맛이 나온다. 매사에는 지나침이 아닌 절제가 필요하다. 최고의 약도 과용하면 독이 되고, 우유도 너무 잔인하게 짜내면 피가 나온다. 인생의 지혜는 언제나 균형을 선호한다.’ 사실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지만, 언제나 이 말을 가슴에 새기고 일상생활에서 실천하지 못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공자가 말한 유좌지기 역시 곁에 두고 늘 교훈으로 삼을 만한 그릇이지만, 늘 곁에 두고서도 그 그릇이 주는 교훈을 실천하기 쉽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오늘 하루 우리의 삶이 얼마나 공정하고 중행에 맞는 앎과 실천을 했는지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2024-07-26
  • 작성자

    황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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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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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향기 망민(罔民), 백성을 그물질하다

망민, 백성을 그물질하다 ▷ 망민(罔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물 망(罔)자에 백성 민(民)자가 조합된 말로 ‘백성을 그물질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맹자 등문공에 나오는 말로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을 묻는 등문공에게 맹자가 답한 내용입니다.오늘 고전의 향기에서는 맹자가 말하는 망민의 죄, 즉 백성을 그물질하는 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 망민, 즉 백성을 그물질한다 라는 말을 조금 쉽게 설명을 해주시죠? ▶ 중국 등나라의 문공이라는 사람이 맹자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법을 묻자 맹자는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백성의 생활을 두루 공평하게 도와 윤택하게 해주면서 나라의 세금을 알맞게 해서 벼슬아치들을 청렴하게 하며, 백성을 교육시켜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 바로 나라를 잘 다스리는 방법이 된다’ 여기서 맹자는 백성을 항산자(恒産者)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항산자라는 말속에는 백성은 항상 일거리, 즉 먹고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이 있어야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백성들은 방탕해지고 사악해져서 반드시 죄를 저지르게 된다고 했습니다.그리고 맹자는 이러한 상황에 처해 있는 백성이 할 수없이 죄를 저질렀을때 이를 처벌하는 것은 백성을 그물질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군주가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여기서 바로 망민, 즉 백성을 그물질한다라는 말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사실 맹자가 살던 전국시대에는 인권이라는 개념은 물론이고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 역시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군주에 대한 충성을 당연시했던 맹자 또한 망민은 군주가 하지 말아야 할 첫 번째 일로 손꼽았습니다. 이러한 망민의 예는 또 있습니다.맹자 양혜왕편을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나라의 선왕이 맹자에게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옛날 성군인 문왕은 사방 칠십리나 되는 동산을 가지고 있었는데 백성들이 오히려 작다고 생각을 했는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동산은 문왕보다 훨씬 적은 사십리에 불과한데도 오히려 자신의 동산이 크다고 생각하는 백성들이 잘못됐다는 것입니다.이에 대해 맹자는 옛날 문왕의 동산이 칠십리나 됐지만 그 동산에는 풀을 베고 나무를 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동산을 드나들었고, 꿩이나 토끼를 잡는 사람들도 마음놓고 동산을 드나들 수 있도록 해서 문왕이 그 동산을 백성들과 함께 썼다는 점을 강조합니다.그런반면 제선왕은 동산의 크기는 비록 사십리에 불과하지만 동산의 큰 사슴이나 작은 사슴을 죽인 사람을 마치 사람을 죽인 죄와 같이 큰 형벌을 주었기 때문에 제선왕의 동산은 나라 가운데 큰 함정을 파 놓은 것과 같아서 백성들이 오히려 크게 여긴다고 대답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맹자가 말하고자 한 망민은 지도자가 잘못된 제도를 만들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백성들을 범법자로 만드는 일과 다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무릇 백성들의 지도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이같은 망민의 죄를 범하지 않도록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망민, 즉 백성을 그물질하는 것은 자신 스스로 죄를 짓는 것일 뿐 아니라 망민의 결과로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원망까지 짊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이 때문에 고전에서는 무지한 자가 백성을 다스리는 지도자의 길로 나가기를 탐해서도 않되며, 지도자의 길로 나간 자들은 행여나 자신의 독단이 백성들을 그물질 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지는 않은지 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 이와 관련해 올바른 지도자의 길을 이야기하고 있는 고전도 많을텐데 소개를 좀 해주시죠? ▶ 중국 전국 시대(戰國時代)에 오기(吳起)가 지은 병법서인 오자(吳子)의 도국(圖國)편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초나라의 장왕이 신하들과 함께 나랏일에 대해 계책을 논의했는데, 여러 신하들이 장왕의 지략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에 장왕은 조회를 마치고 난 뒤 신하 중에 인재가 없음을 크게 한탄했다고 합니다. 이런 생각을 했던 장왕은 훗날 중국을 통일한 춘추오패 중의 한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반면 위나라 무후라는 임금도 신하들과 나랏일을 의논했는데, 신하들중 아무도 무후의 지략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무후는 조회를 마치고 나와서 자신이 신하들보다 잘났다는 사실에 기뻐했다고 합니다. 훗날 무후는 초나라 장왕과는 달리 오패는 물론 전국칠웅에도 들지 못하는 평범한 임금에 머물고 말았습니다.비록 같은 상황을 맞이했지만 초장왕과 위무후의 모습은 서로 달랐고 그 결과도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자와 현자 즉 어리석은 임금과 현명한 임금의 차이입니다.이 이야기의 교훈은 바로 이면의 이치를 볼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임금은 겨우 현재만 보는데 그치지만 현명한 임금은 과거와 미래도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우자는 드러난 현상만 보는데 비해 현자는 이면에 숨은 원리를 볼 줄 압니다. 이렇기 때문에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그들의 판단과 행동은 정반대의 양상을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결과는 어떨까요? 문자(文子)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성인은 처음에는 이치에 거스르는 듯 하지만 나중에는 합치되며, 뭇사람은 처음에는 이치에 합당한 듯 하지만 나중에는 거스리게 된다’라고 했습니다. 오직 지혜로운 사람만이 이해관계의 변화를 알수 있기 때문에 최후의 합당함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 2024-07-17
  • 작성자

    황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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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향기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서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서(求放心) ○ 오늘 고전의 향기는 어떤 내용입니까? ▶ 조선시대 선비들은 나라를 움직이는 중심이었고, 시대정신을 이끌어가는 정신적 기둥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선비들은 과연 어떤 공부 과정을 거치면서 학자로서의 소양을 길렀을까요? 오늘 고전의 향기에서는 우리 선조들이 공부했던 과정을 살펴보면서 학문의 배움과 실천이 어떤 것인가를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 아무래도 지금의 교과과정처럼 공부를 하는 순서가 나름대로 있었을 것 같은데요, 어떻습니까? ▶ 기본적으로 조선시대 학자들의 공부 방법을 살펴볼 때 어떤 교재를 사용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아동용 교재로는 천자문과 동몽선습과 같은 교재가 있었고, 초급교재로는 소학과 격몽요결이라는 책을 공부를 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천자문은 공부를 하는 기초가 되는 서적이고 동몽선습은 서당에서〈천자문 千字文〉 다음에 가르쳤던 어린이들의 한문교재이기도 합니다. 이 과정이 지나고 나면 소학과 격몽요결을 배우게 됩니다. 소학은 성현들의 가르침을 집약한 초심자를 위한 수양입문서로 완전한 인간을 전제로 하여, 이를 위해 아이들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마음과 태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격몽요결은 어린이에게 부모를 봉양하고 남을 대접할 줄 알며, 몸을 닦고, 독서의 방향을 교육하기 위해 이이가 1577년(선조 10)에 저술한 책으로 왕으로부터 일반 유생에게까지 널리 읽혀졌으며 인조 대에는 전국 향교의 교재가 되기도 한 책입니다. 사서(四書) 중의 하나인 대학(大學) 서문을 살펴보면 8살부터 15살 이후에 어떤 공부를 했는지를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삼대의 법이 융성했을 때 그 법이 점점 갖추어졌으니, 그러한 뒤에 왕궁과 국도로부터 시골마을에 이르기까지 학교가 있지 않은 곳이 없어 사람이 태어나 8세가 되면 모두 소학에 입학하여 이들에게 물 뿌리고, 청소하며, 응하고 대답하며 나아가고 물러가는 예절(灑掃應對進退之節)과 예악사어서수(禮樂射御書數)의 문을 가르쳤다’고 적고 있습니다. 여기서 禮樂射御書數는 예의와 음악, 활쏘기, 말몰기, 경전, 수학 등의 학문을 가르킵니다.그리고 ‘15세가 되면 모두 태학에 들어가 이들에게 이치를 궁구하고 마음을 바루며 몸을 닦고 남을 다스리는 방법을 가르쳤다’고 했습니다.그리고 고급교재로는 사서 삼경을 공부했습니다. 이 사서 공부는 당시로서는 선비가 되는 가장 중요한 공부이기도 했습니다. 사서의 가르침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먼저 대학에서는 ‘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고 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먼저 다스려야 집안과 나아가서는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는 선비의 기본을 배웠고, 논어에서는 공자와 제자들의 대화를 통해 세상의 이치를 공부했습니다.맹자를 통해서는 도덕정치인 왕도정치를 통해 지도자의 길을 배웠고, 마지막으로 중용에서는 지금까지 배운 것을 편벽되지 않고 치우치지 않게 자신은 물론이고 나라를 바로세우는 방법을 공부했습니다.그리고 역사를 공부하는 책으로는 사기(史記)와 한서, 통감절요를 공부했고, 또한 병법서도 공부를 했는데요, 손자병법, 육도, 삼력 등의 책을 읽었으며 예기와 춘추 같은 책도 함께 읽었습니다. 종합해보면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어릴적 부터 자신을 다스리는 방법에서부터 세상의 이치, 지도자의 길, 그리고 어떻게 실천해야 인간이 하늘의 뜻에 따라 인간답게 살 수 있는지를 공부한 것입니다. ○ 그리고 공부하는 자세와 방법에 대한 것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 옛 성현들의 글을 보다 보면 공부와 관련해서는 유난히 학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글과 격려하는 글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공부하는 어려움은 공통된 숙제였던 것 같습니다. 중용은 우선 끈기있게 공부하라고 가르칩니다. 중용 20장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남이 한 번에 능하거든 나는 백번을 하고, 남이 열 번에 능하면 나는 천 번을 할지니라. 과연 이렇게 한다면 비록 어리석은 자라도 현명해 질것이요, 비록 연약한 자라도 반드시 굳세질 것이다 어떤 공부를 잘할 수 있는 것은 머리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려는 의지와 자세에 달려 있음을 강조한 글입니다.묵자는 수신이라는 글에서 ‘한가지 사물에 대해서 명확히 알지 못하면서 많은 것을 알려고 하지 말라’고 했고, 회남자는 ‘준마는 하루면 천리를 갈 수 있지만 둔한 말도 열흘을 달리면 도달할 수 있다’라고 해서 공부하는 사람의 자세가 중요함을 이야기했습니다.또한 공부가 왜 중요한가에 대한 글도 적지 않습니다. 논어 위령공편에서는 ‘농사를 짓더라도 그 가운데 굶주림이 있으나 학문을 하면 그 가운데 봉록이 있다’라고 했고, 설원이라는 책에서는 ‘젊어서 학문을 즐김은 동틀 녘의 별과 같고, 장년에 학문을 즐김은 대낮의 빛과 같으며 늙어서 학문을 즐김은 촛불의 밝음과 같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명심보감에서는 ‘가난하더라도 배움에 힘쓰면 출세를 할 수 있고, 부유하고도 배움에 힘쓰면 이름이 빛난다’라고 했습니다.이같이 학문을 권하는 글들은 한결같이 학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실천하는 학문이 될 수 있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죽도록 공부만 하고 배운 바 대로 실천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곧 죽은 학문이 된다는 것입니다. 순자는 ‘아는 것은 실천함만 못하니 학문은 실천에서 완성된다’고 했고, 한비자는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상황에 맞게 활용하는 것이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시외전에는 군자에게 세가지 근심이 있다고 했습니다.알지 못하는 것이 그 첫 번째요, 알게 되었지만 배워서 익히지 못함이 두 번째 근심이며, 배워 익혔지만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것이 그 세 번째 근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전습록이라는 책에서는 ‘지식은 행동의 시작이고, 행동은 지식의 완성이다’라고 해서 실천이 배움보다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교수이긴 하지만,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교수를 흔히 폴리페셔라고 합니다. 한때 사회적으로 폴리페셔에 대한 의견들이 분분한 적이 있었습니다. 교수들의 정치 참여로 인해 현실정치가 보다 성숙해 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학교 수업을 빼먹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뒤로 한 채 자리에만 연연하는 일부 폴리페셔들을 보고 교수라는 가면을 쓴 새로운 부류의 정치인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런반면 최근 이어지고 있는 대학 교수들의 시국선언을 보면서 이러한 것이야말로 ‘지식은 행동의 시작이고 행동은 지식의 완성’이라는 성현의 말씀을 실천한 의미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경상우도의 학맥을 이어 온 남명선생은 비록 벼슬길에 오르진 않았지만 을묘사직소를 통해서 생사여탈권을 가진 대비를 과부로, 왕을 외로운 아들로 표현하면서 국정을 신랄하게 비판해 어지러운 시대에 선비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몸소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공자는 爲己之學(위기지학)보다는 爲人之學(위인지학)을 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위기지학은 자신의 출세나 성공을 위해 하는 학문이고, 위인지학은 자신을 완성하는 것이 나라를 위한 학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세태속에서 가당키나 한 말이냐고 말할 분들도 많겠지만 그럴때일수록 진정으로 학문하는 근본 이유에 대해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어릴 때 물 뿌리고 청소하고 나아가고 물러나는 기본예절도 모르는 사람이 모름지기 나라를 위해 일하겠다는 다짐만 일삼는다면 과연 우리는 그 사람을 얼만큼 신뢰할 수 있을까요? 공부라고 하는 것은 잃어버린 자신의 마음을 찾는 것이라는 맹자의 진심 담긴 말을 공부에 찌들려 사는 우리 아이들에게 한번쯤 이야기 해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 2024-07-12
  • 작성자

    황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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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향기 말(言)을 하는 세가지 기준

말을 하는 3가지 기준 ○ 오늘 고전의 향기는어떤 내용입니까? ▶ 세상을 살다보면, 말로 인해 낭패를 보는 일이 많습니다. 말이 많다 보면 그 속에 반드시 잘못 내뱉는 말이 있고 그로 인해 인간관계가 손상되거나 때로는 큰 화를 입기도 합니다. 그래서 고전속에는 말을 경계하는 구절이 적지 않습니다. 오늘 고전고전의 향기에서는 ‘말(言)을 하는 세 가지 기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누구나 한 번쯤은 말 실수를 해서 곤란을 겪은 경험이 있을 텐데요, 말을 하는 세가지 기준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 볼까요? ▶ 중국의 철학자인 묵자(墨子)는 ‘말을 하는데 세가지 기준이 있으니, 말의 내용이 근본이 있을 것, 내용이 보편타당성이 있을 것, 하는 말이 상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일반적으로 말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정보를 남에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보에는 객관적인 사실도 있고 때로는 자기의 주관적인 견해도 있으며 남에게서 주워들은 이야기도 있습니다.따라서 이러한 정보를 남에게 전달할때는 반드시 먼저 그 내용이 실질적인 사례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그냥 자기 생각대로 말을 내뱉다 보면 반드시 거기서 후환이 따르게 됩니다. 특히 남의 허물을 말하는 것은 극히 경계해야 합니다.맹자는 <이루장구 하>에서 남의 허물을 말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경계했습니다. “남의 잘못을 말하다가 후환이 닥치면 어찌할 것인가?” 간단한 말이지만 가지고 있는 뜻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사람은 말의 진실 여부보다는 말로 인해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 입는 것을 참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말이 진실하다 하더라도 자신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진실된 말을 한다 하더라도 남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오히려 이런 말들은 자신에게 원망만 남길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는 말에는 진실이 담겨있어야만 유용한 말이 되는 것입니다.대학(大學)이라는 책에서는 말의 상관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언패이출자 역패이입하고 화패이입자 역패이출이라(言悖而出者 亦悖而入 貨悖而入者 亦悖而出) 풀어보면 말이 거슬리게 나가면 또한 거슬리게 들어오고, 재물이 이치에 맞지 않게 들어오면 또한 이치에 맞지 않게 나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안씨가훈(顔氏家訓)에서는 말을 많이 하지 말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無多言(무다언)하라 多言多敗(다언다패)니라 無多事(무다사)하라 多事多患(다무다환)이니라’ 즉 말을 많이 하지 마라, 말이 많으면 실패도 많다. 일을 많이 벌이지마라 일이 많으면 근심도 많아진다. 그리고 말을 함에 있어서는 내용의 보편타당성이 있어야 합니다. 입만 벌리면 허황된 말을 한다거나 근거없는 내용의 말을 마치 진실인 것처럼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경우 말하는 사람은 진실성을 담보하지 못해 오히려 상대방으로부터 신뢰라는 큰 것을 잃게 됩니다. 한번 신뢰를 잃어버린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설혹 그 말에 진실이 담겨 있다 할지라도 결코 신임을 얻지 못합니다. 따라서 스스로 생각해서 보편타당성이 없는 경우의 말이라면 스스로 말을 아끼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마지막으로 말을 하는데 있어서 기준이 되는 것은 유용지자(有用之者) 즉 자신과 남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 마주 앉아 말을 하는데 있어 단순히 자신의 지식만 과시하려고 할 뿐 자신과 상대방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허황된 말만 내뱉는다면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단지 그 시간이 지루하고 귀찮기만 할 뿐입니다. ○ 말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갖고 있는데, 고전속에서는 어떻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까? ▶ 맹자 역시 출호이자 반호이자(出乎爾者 反乎爾者)라고 해서 ‘자신에게서 나온 말은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의 행한 바에 말미암는다’라고 했습니다. 물론 이 말은 정치를 함에 있어서 경계하는 말로 사용되었지만 일상생활에서도 전혀 무관하지 않습니다.이와 관련해 설원(說苑)이라는 책에서도 ‘입은 관문과 같고, 혀는 병사와 같으니 말이 잘못 나가면 거꾸로 자신이 상하게 된다’라고 해서 말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습니다.그리고 사기(史記)에서도 ‘君子交節이라도 不出惡聲’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의 뜻은 군자는 관계를 끊은 후에도 그 사람에 대해서 나쁜 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말 역시 일상생활에서 지키기란 쉽지 않습니다.공자는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質直而好義 하고 察言而觀色하며 慮而下人하라’라고 했습니다. 이 글을 풀어보면 ‘곧게 말하면서도 의를 좋아하고 말을 살피면서 얼굴색을 관찰하고 생각해 다른 사람에게 겸손하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말을 할때는 항상 정직하고 더불어 의로움을 좋아하고, 상대방의 말뜻을 살피며 마음을 읽어내고 다른 사람에게 겸손할 것을 생각한다면 말이 초래하는 재앙에서 조금이나마 벗어 날 수 있을 것입니다.이러한 측면에서 최근 모 도지사가 한 말들을 보면 말이 왜 중요한지를 더욱 실감할 수 있습니다.최근 이 지사는 지난 10년간의 정권을 좌파정권이라고 말한데 이어서 지난 현충일 추념사중에 ‘친북은 진보고, 나라 수호는 보수 꼴통인가? 기가 찬다’라고 말한데 이어 한 통계를 인용해 20대 10명중 6명이 한국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 모르고 있고 국민의 40%가 모르고 있다면서 젊은 세대중 일부는 심지어 북침으로 알고 있고, 여기에는 육군사관 생도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지사의 이 말을 듣고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말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개인적인 판단기준에 따라 지난 10년간의 정권이 좌파정권이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350만 도민을 대표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그토록 개인적인 의견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다면 과연 도민들의 대표가 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져봐야 할 문제입니다. 결론적으로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굳히기 위해 도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말살한 전형적인 정치꾼에 불과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지사의 이러한 발언들을 묵자가 말한 말의 세가지 기준에 대입해 보면 단 한가지도 부합되는 것이 없습니다. 하는 말의 내용이 실질적인 사례로 뒷받침되지도 못했고, 말한 내용도 보편타당성을 얻지 못했으며, 그가 내뱉은 말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는 도움이 되었을지언정 다른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지 못한 경우입니다.아마 김지사의 이러한 발언들은 사실여부를 떠나서 맹자가 말했듯이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고, 대학에서도 말했듯이 거슬리게 나간 말은 거슬리게 들어오게 된다는 사실을 나중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는 말의 본질이 있다면, 자신에 대한 진실성과 타인에 대한 예의일 것입니다. 말이 많고 말재주 있는 것이 더 이상 폄하되거나 부정되지 않는 요즘 사람들에게 말을 가급적 하지 말도록 강요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범법행위겠지만, 적어도 거짓 생각으로 자신과 남을 속이거나, 거칠고 야비한 말투로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은 절실한 시대적 요청일 것입니다. 공자는 눌언(訥言) 즉 말을 많이 하지 않아야 군자가 될 수 있다고 했지만 지금은 말을 적게 하기 보다는 많이 하더라도 말을 가려서 하는 것이 생활화되어야 할 그런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 2024-07-10
  • 작성자

    황경규

  • 조회수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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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향기 리더의 조건

○ 오늘 고전의 향기는 어떤 내용입니까? ▶ 조직이나 단체에서 전체를 이끌어 가는 사람을 우리는 흔히 ‘리더’ 혹은 ‘지도자’라고 부릅니다. 한 나라로 치면 대통령이 되겠고, 기업이면 사장, 일반 모임이나 단체 정도라면 회장이 될 것입니다. 사실 요즘 세상처럼 모임이나 단체가 많은 시절에는 정말 수많은 리더들이 있는데요, 때로는 그 리더의 역할에 따라 그 단체의 흥망이 결정되는 모습을 자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사람이 진정한 리더가 되고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요.고전 속에 등장하는 리더의 조건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 자, 그럼 리더의 첫 번째 조건이 무엇인지 알아 볼까요? ▶ 벼슬길에 뜻을 두고 있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대중을 이끌어 가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아버지가 대답합니다. “땅과 같이 낮은 마음으로 대중을 섬겨라. 그러면 대중이 너를 하늘처럼 받들 것이다”아버지와 아들의 문답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만 리더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지도자의 첫 번째 조건이 된다는 사실을 고전속에서 찾아 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묵자(墨子)는 <상동(尙同)>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得下之情則 治 하고 不得下之情則 亂 이니라’ 즉 ‘아랫사람의 마음을 얻으면 다스려지지만, 아랫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어지러워진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중국 전한시대의 학자인 회남자(淮南子)도 태족훈(泰族訓)이라는 글에서 ‘能用人力者 必得人心者也’라고 해서 남의 힘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반드시 남의 마음을 얻는 사람이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리더의 첫 번째 조건이 된다면, 사람의 마음을 얻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맹자는 ‘以德服人者 中心悅而誠服也’라고 해서 덕으로써 사람을 복종시켜야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진심으로 복종한다고 했고, 장자(莊子)는 ‘不精不誠 不能動人’이라 해서 ‘정성이 없으면 남을 감동시킬 수 없다’고 했습니다.중국의 춘추시대때 천하를 제패한 다섯명의 임금을 일컫는 말인 춘추오패 이야기에서 사람을 얻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먼저 제(齊)나라 환공(桓公)이라는 사람은 자신을 죽이려고 화살을 쏘았던 관중(管仲)을 재상으로 임명해 춘추시대 최초의 패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초(楚)나라 장왕(莊王)은 연회 중에 불이 꺼지자 어둠 속에서 자기 후궁을 희롱한 신하를 용서했고, 진(秦)나라 목공(穆公)은 자신의 애마(愛馬)를 실수로 잡아먹은 무리에게 술을 하사했다고 합니다. 후일 초장왕과 진목공은 위험한 전투에서 지난날 용서받은 사람들의 맹활약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실수를 한 아랫사람에게 관용을 베품으로써 그들을 마음으로 복종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이른바 리더의 조건은 우선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첫 번째가 되며,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덕으로써 남을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됨을 알 수가 있습니다. ○ 올바른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을 바로 볼 줄 아는 식견도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 이른바 인재를 알아 볼 줄 알고 제대로 구할 줄 아는 것이 지도자가 가져야 할 두 번째 덕목입니다. 중국의 시인인 한유(韓愈)는 ‘世有 伯樂然後에 有千里馬니 千里馬 常有나 而伯樂不常有’라는 글을 남겼습니다.풀어보면, ‘세상에 백락이 있은 다음에 천리마가 있다. 천리마는 항상 있지만 백락은 늘 있지 않구나’라는 뜻입니다. 세상에 늘 천리마와 같은 인재는 있지만 다만 평범한 사람과 섞여 있어서 쉽게 구별이 되지 않을뿐입니다. 따라서 지도자는 인재 즉 천리마를 제대로 보는 눈을 가져야만 제대로 된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여기에서 알 수 있습니다. 또 중국 한나라의 유향(劉向)이라는 사람이 쓴 전국책(戰國策)이라는 책에는 ‘亡國者 非無賢人이요 不能用也’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풀어보면 ‘나라가 망하는 것은 현인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현인을 등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는 뜻입니다. 이는 곧 제대로 된 사람을 등용하는 혜안을 가진 지도자가 없으면 나라가 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적시하고 있습니다. 중국 주나라 주공(周公)은 형인 무왕을 도와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의 기초를 튼튼히 했던 정치인으로 인재등용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유명한 일화를 남겼습니다. ‘一沐 三捉髮하고 一飯 三吐哺라’이 글의 뜻은 멀리서 인재가 자신을 찾아오면 머리 한 번 감는 중에 몇 번이라도 개의치 않고 젖은 머리를 손에 쥔 채 뛰어나가고, 또 밥 한 끼 먹는 중에 몇 번이라도 입에 든 음식을 뱉어가며 찾아온 사람을 만나보았다는 뜻입니다. 주공이 이런 행동을 한 것은 혹시라도 자신을 찾아온 인재를 놓치지는 않을까 걱정해서였습니다.이렇게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인재를 알아 볼 줄 알고, 자신의 몸을 낮추어 인재를 쓸 줄 알아야만 제대로 된 리더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고전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리더가 가져야 할 덕목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 지도자는 최후의 고독한 의사 결정자입니다. 따라서 어떤 조직의 성패는 리더의 책임으로 귀착됩니다. 중국의 전설속 임금인 탕왕(湯王)은 지도자의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其爾 萬方有罪는 在予一人이요 予一人有罪는 無以 爾萬方이라’풀어보면 그대 모두에게 죄가 있으면 내 한 몸에 죄가 있는 것이고, 내 한 몸의 죄는 그대 모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라는 뜻입니다.이른바 최후의 결정자이면서 최종의 책임자, 그것이 바로 지도자라는 뜻입니다. 요즘 세상을 들여다 보면 스스로 지도자를 자처하는 사람은 쉽게 찾아 볼 수 있지만 진정한 지도자를 발견하기는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스스로 지도자의 덕목을 지니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때로는 돈으로 때로는 권력으로 스스로 지도자의 자리에 서기도 하고, 또 그렇게 지도자의 자리에 선 사람은 결국 나라를 망치거나 자신을 망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만약 스스로를 지도자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신다면, 자신의 몸을 낮출 줄도 모르고, 인재도 쓸 줄 모르며, 사람을 제대로 대우해 줄도 모르고 또한 자신이 책임질 줄 모르는 지도자로 인식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되돌아 보는 기회를 가지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2024-07-05
  • 작성자

    황경규

  • 조회수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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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향기 큰 시련을 겪어야 나중에 크게 쓰인다(孟子 告子章句 下 15章)

○ 자, 오늘 고전산책은 어떤 내용입니까? ▶ 오늘 소개드릴 맹자의 고자장구에 나오는 이 구절이 가슴에 남는 것은 최근의 경제위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계 금융위기로부터 시작된 최악의 경제상황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누구를 막론하고 겪지 않으면 안되는 어려움이기도 합니다.그런데 대한민국의 가장들을 정작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청년실업 문제이기도 합니다. 특히 험난한 세상에 맨 몸뚱이로 내던져지는 청년실업자들의 아픔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것은 남의 일이 아닌 바로 우리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과 같은 시절이 계속 이어진다면 머지 않아 우리의 아이들에게도 닥칠 일이지만, 우리 애들은 아니겠지 하는 위안을 삼기에는 지금의 세태가 너무 어렵습니다. 오늘 황경규의 고전의 향기에서는 ‘큰 시련을 겪어야만 나중에 크게 쓰인다’는 맹자의 말을 전해드리면서 이 시대의 아픔을 함께 보듬고 살아가는 서민들과 청년실업자들의 시련과 힘든 삶이 꼭 보답받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 맹자가 말하는 ‘큰 시련을 겪어야만 나중에 크게 쓰인다’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소개를 좀 해주시죠? ▶ 맹자는 먼저 중국의 여러 현인들 중 6명을 예를 들어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명군으로 알려진 중국의 신화 속 군주인 순임금은 역산이라는 곳에서 밭을 갈다가 요임금에게 등용이 되었고, 부열이라는 사람은 제방을 쌓는 사람이었지만 은나라 22대왕인 무정에게 등용되었습니다.그리고 교격이라는 사람은 난리를 만나 어물과 소금을 팔고 있었는데 문왕이 등용을 했고, 관중은 옥에 갇혀 있었는데 환공이 등용했으며 손숙오라는 사람은 바닷가에 은거하고 있었는데 초장왕이 등용했고, 백리혜라는 사람은 시장에서 등용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 현인들은 비록 자신이 처해 있는 위치는 천하고 보잘 것 없었지만 스스로를 닦아서 선현들의 지혜와 업적을 배우고 덕을 쌓아 입신을 이룩한 사람들입니다. 이어 맹자는 이들 현인들의 예를 든 다음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한 구절씩 풀어보겠습니다. 天將 降大任於是人也(천장 강대임어시인야)인댄- 하늘이 장차 큰 일을 어떤 사람에게 맡기려 할 때는 必先 苦其心志(필선고기심지)하며 - 반드시 먼저 그 마음을 괴롭히고 勞其筋骨(노기근골)하며 - 그 몸을 지치게 하고 餓其體膚(아기체부)하며 - 그 육체를 굶주리게 하고 空乏其身(궁핍기신)하야 - 그 생활을 곤궁하게 해서 行拂亂其所爲(행불란기소위)하나니 - 행하는 일이 뜻과 같지 않게 하니 所以動心忍性(소이동심인성)하야 - 이것은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그 성질을 참게 하여 曾益其所不能(증익기소불능)이니라 - 일찌기 할 수 없었던 일을 더욱 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人恒過 然後(인항과연후)에 - 사람은 언제나 과오를 저지른 뒤에야 能改(능개)하나니 - 능히 고칠 수 있으니 困於心(곤어심)하며 - 마음에 곤란을 당하며 衡於慮而後(형어려이후)에 作(작)하며 - 생각대로 잘 안된 뒤에야 분발하고 徵於色(징어색)하며 -얼굴빛에 떠오르고 發於聲而後(발어성이후)에 喩(유)니라 - 음성에 나타난 뒤에야 깨닫게 된다. 연후(然後)에 知生於憂患而死於安樂也(지생어우환이사어안락야)니라-그런 뒤에야 사람은 우환에서 살고 안락에서 죽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맹자의 이 말은 분명 뜻을 잃은 사람에게 용기와 신념을 심어주는 글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실의를 극복하고 새로운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행동하게 하는 힘을 분명히 갖고 있습니다.맹자가 말한 대임에는 좌절하거나 절망에 빠진 사람의 마음을 분발시켜 극복의 의지를 심어주는 시대를 초월하는 강력한 힘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고난과 시련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오히려 역전의 계기로 삼게 함은 물론이고 고통과 피곤함과 배고픔과 궁핍함의 참다운 가치를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따라서 참다운 능력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난관을 극복하면서 얻어지는 것이면서, 뜻있는 인내만이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시련과 역경을 극복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정신적 깨달음이 바로 성공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늘이 '능력을 증대시켜 주기 위한' 배려는 참으로 가혹합니다. 궁핍과 질병, 나아가 하는 일마다 방해하여 좌절과 절망의 수렁으로 몰아 넣은 뒤에야 비로소 대임(大任)을 허락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맹자는 이 구절을 통해서 극한의 고통, 절망의 정점에서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이며 주어진 장애 앞에 무릎을 꿇는 사람은 이미 희망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맹자의 이 구절은 세상이 살기 어려워질수록 많은 사람들에 의해 수없이 인용되고 회자되고 있습니다. 학창시절, 급훈이든 좌우명이든 간에 자주 접했던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라는 말처럼, 시절이 어려웠고 그러한 역경을 극복하려는 의지 때문에 당시에는 이러한 글들이 가슴에 와 닿았던 것 같습니다. 맹자 이외에도 채근담에서는 복구자(伏久者) 비필고(飛必高)라 해서 ‘오래 웅크린 사람이 높이 난다’고 하면서 어렵고 힘든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었습니다.동진시대 명장인 도강(陶剛)이라는 사람은 ‘성인도 촌음을 아끼는데 범인은 마땅히 분음을 아껴야 한다’며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자기수양에 힘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고 권면했습니다. 큰 시련을 겪어야만 나중에 크게 쓰인다는 맹자의 이 말이 절망적인 시기를 보내고 있는 이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작지만 소중한 위안의 말이 되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스스로 몸을 닦아 자신의 그릇을 크게 만들어서, 머지 않는 미래에 크게 쓰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가져 봅니다.

  • 2024-07-03
  • 작성자

    황경규

  • 조회수

    3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