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6-02-18 15:14(수)

전체기사
로그인 구독신청
구독신청
전체평론(265건)
(STORY OF 진주2) 10. 황소 목은 꺽어도 진주기생은 못꺽는다 썸네일 이미지

Story of 진주 (STORY OF 진주2) 10. 황소 목은 꺽어도 진주기생은 못꺽는다

황소 목은 꺾어도 진주 기생은 못 꺾는다논개· 산홍, 그리고 진주의 예인들 진주성(晋州城) 촉석루(矗石樓)를 바라보면 눈 맛이 절로 난다. 수다스런 단청도, 주책 맞은 니스 칠도 없다. 단아하고 기품이 있으며, 일체 속악한 것들이 발붙이지 못한다. 추한 것들이 진정한 아름다운 것을 짓밟는 행패 속에 얼마 남지 않은 진주(晋州)의 자산(資産)이자, 진주정신(晋州精神)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의기(義妓) 논개(論介)를 찾아서 가파란 바윗길(危巖)을 내려와 의암(義巖)에 오르면 시퍼런 남강 물 빛 속에 서릿발 친 여인의 눈매와 손가락 마디마디 피 멍이 물 든 가락지 낀 여인의 한(恨)이 비친다. 의기 논개가 지금 이 시간에도 진주성(晋州城) 의암(義岩) 아래 시퍼런 물속 저 어딘가에서 흉악한 왜추(倭酋)를 부둥켜 안은 채 아직도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듯하다. 시인 강희근은 이렇게 말했다. ‘진주성의 아우성 소리를 흘러간 과거의 아우성이 아니라, 현재 이 시점의 아우성으로 듣는 사람이 향토에 얼마나 있겠는가?’ 임진왜란 계사년 제2차 진주성 전투가 종결된 것이 아니라는 역사의식, 바로 그것이 역사에 대한 살아 있는 접근이라는 뜻이다. 의기 논개의 정신을 오늘에 다시 되새겨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진주성임진대첩계사순의단에 부조된 의기 논개산홍(山紅)은 구한말 진주 기생이다. 을사오적인 매국노 이지용(李址鎔)의 죄를 꾸짖었다. 『매천야록(梅泉野錄)』 광무 10년(1906)조 기록이다. 진주기생 산홍은 얼굴이 아름답고 서예도 잘하였다. 이때 을사오적의 하나로 지목되는 이지용이 천금을 가지고 와서 첩이 되어 줄 것을 요청하자, 산홍은 사양하기를 “세상 사람들이 대감을 5적의 우두머리라고 하는 첩이 비록 천한 기생이긴 하지만 사람 구실하고 있는데, 어찌 역적의 첩이 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이에 이지용이 크게 노하여 산홍을 때렸다. 이후 산홍의 기개와 관련한 기사들이 줄을 이었다.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는 일본 특사로 가는 이지용에게 ‘일본에 산홍이 같은 기생이 또 있을까 두렵소’라고 비꼬았다. 『황성신문(皇城新聞)』에는 ‘미녀가 천금을 웃어넘기다(美人一笑輕千金)’라는 기사가 실렸다. 후학들에게 의리(義理)를 천명하고 강상(綱常)의 도리를 세우는 것이 급선무임을 강조한 유학자인 양회갑(梁會甲, 1884~1961)은 산홍의 절개를 칭찬하는 시(詩)를 남겼다. 바로 「기녀 산홍이 매국노의 죄를 나무라며 잠자리를 거절하고 스스로 죽다.(妓山紅 數罪賣國賊 不許寢 自死)」라는 시이다. 이렇게 매국노에게 당당히 맞선 산홍은 당시 진주 기생의 기개를 만천하에 알렸다.인터넷 자료구한말 기생 산홍(山紅)이 의기 논개의 사당인 의기사(義妓祠)를 참배하고 시(詩) 한 수를 남겼다. ‘의기사감음(義妓祠感吟)’이란 시이다. 의기 논개는 왜장을 안고 의암에서 순국해 천추에 의미있는 이름을 남겼지만, 자신은 일없는 세상에 태어나 피리와 북소리 따라 무의미하게 살고 있음을 한탄하는 내용이다. 역사에 길이 남을 진주의 의로움두 사당에 또 높은 다락 있네일 없는 세상에 태어난 것이 부끄러워피리와 북소리 따라 아무렇게 놀고 있네 「땅의 역사」의 저자인 박종인 작가가 진주를 방문해 산홍(山紅)과 역사적인 만남을 가졌다. 진주성과 촉석루, 그리고 의기사를 둘러보고는 ‘지조 있는 기생 산홍, 지조 없는 매국노를 심히 꾸짖더라’라는 제목으로 글을 남겼다. 박종인 작가와 인터뷰를 나눈 전 경남일보 논설위원 장일영이 이렇게 말했다. 황소 목은 꺾어도 진주 기생은 못 꺾는다. 그만큼 강단이 있다는 거다. 진주 기생의 강단(剛斷)은 절개(節槪)와 지조(志操)이다. 의기 논개와 산홍으로 이어지는 진주 기생의 계보는 진주걸인기생독립운동(晋州乞人妓生獨立運動)으로 이어진다. 황소 목은 꺾어도 진주 기생은 못 꺾는다 진주 기생의 강단(剛斷)은 절개(節槪)와 지조(志操)이다. 의기 논개와 산홍으로 이어지는 진주 기생의 의열(義烈)은 쉼없이 이어졌다.경성에서 독립선언문이 선포됐다. 1919년 3월 1일의 일이다. 그로부터 18일 뒤 진주기생조합원 50명이 태극기를 들고 경남도청에서 촉석루로 행진했다. 6명이 체포되고 고초를 겪었다. 바로 진주걸인기생독립운동이다. 일제강점기에 발행한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인 『매일신보(每日申報)』는 이 사건을 두고 ‘기생이 앞서서 형세 자못 불온’이라고 보도했다. 3월 19일에 진주 기생 한 떼가 구 한국 국기를 휘두르고 이에 참가한 노소 여자가 많이 뒤를 따라 진행하였으나 주모자 여섯 명의 검속으로 해산되었는데, 지금 불온한 기세가 진주에 충만하여 각처에 모여 있다더라’라고 적었다. 당시 진주 기생 한금화가 일본 순사에게 붙잡혀 구금되었다. 한금화는 손가락을 깨물어 흰 명주자락에 이렇게 혈서를 썼다. ‘기쁘다. 삼천리 강산에 무궁화 다시 피누나’ 교방문화(敎坊文化)의 맥을 잇기 위한 진주 기생들에 대한 기록도 적지 않다.『매일신보(每日申報)』는 1914년 3월 12일 자 기사에 ‘진주 기생의 졸업식’을 보도했다. 주요 내용을 보면 ‘진주는 자고로 기생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나 금년에는 가무음률(歌舞音律)을 아는 기생이 하나도 없어서 유명무실이더니 작년에 기생 금련이가 이것을 개탄하여 기생조합을 설립하고 율객(律客) 중 유명한 김창조를 어렵게 모셔 와 기생들에게 음률을 가르치더니 본 월 7일에 수업식을 행하였는데 가야금에는 김귀연 명월이요, 양금에는 계선, 영옥, 매월 등인데 대대로 학습하는 기생이 다수하다더라’라고 보도했다. 진주 기생들의 선행(善行)에 관한 기록도 있다. 『매일신보』 1921년 2월 25일자에는 ‘진주예기 조합에서는 2월 23일 신구연극을 공연하기로 결정하고 그 수입금을 진주에 새로 설립된 공회당에 기부한다더라’라고 보도했다. 1928년 9월 21일자에는 ‘진주 기생 수해 구제 연주, 동정을 갈망’ 제하의 기사가 보도되었다. 진주권번에서 19일부터 2일간 진주지역기자단 및 북선수해구제회의 후원으로 관북 이재민 구제를 목적으로 연주회를 개최한다는 내용이었다.『조선중앙일보』는 1933년 8월 14일자로 ‘진주 수해음악회 2일간 대성황’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보도했다. 주요 내용은 진주신문구락, 진주육학생, 진주기생권번 등이 주최가 되어 지난 8일과 9일 양일에 걸쳐 진주좌(晋州座)에서 수해구제 음악연주회를 개최했다는 것이다. 연주회에는 매일 밤 4~5백명이 참석해 대성황을 이루었다고 보도했다. 이듬해인 1934년 8월 19일자 『조선중앙일보』는 ‘진주 여성단체 수해구제음악회’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보도했다. 진주여자위친계와 진주기생권번의 공동 주최로 진주좌에서 음악회를 개최했으며 권번기생들의 연주로 대성황을 이루었다고 보도했다. 무대에 오르면 예인(藝人), 내려오면 천민(賤民) 서해안 배연신굿 중요무형문화재 김금화는 교방(敎坊)의 예기(藝妓)들이 무형문화재의 뿌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시선은 냉랭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무대에 오르면 예인(藝人), 내려오면 천민(賤民) 사실 현재 인간문화재로 대접받는 일부 예술인들의 문화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큰 집’은 ‘교방’이며, ‘큰 스승’은 ‘기생’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어쩌면 대한민국 무형문화재의 뿌리가 교방문화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하지 못한 것도 교방문화와 예기였던 기생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때문이다. 하지만 진주 사람들은 교방문화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진주교방문화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교방문화에 대한 재평가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교방문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개선과 재조명의 필요성을 지적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제작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진주교방문화는 당시 만능 언테테인먼트였던 그들의 존엄성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교방 문예의 부흥을 기대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고 있다.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플랫폼으로 방송을 보여주는 VOD 서비스인 OTT(OVER THE TOP) 방송인 ‘TIVING’에서 다큐멘터리 「기생, 꽃의 고백」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교방문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생긴 이유와 최고의 예인인 기생의 정의에 이어 기생이 시대의 희생물이자, 비운의 역사를 갖게 된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일본의 게이샤들이 들어오면서 문화 예술적인 부분이 사라지게 되었다. 특히 1942년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일본의 총동원령으로 기생에게 가무(歌舞)를 금(禁)하는 명령이 내려진다. 이로 인해 ‘접대만 하라, 접대부 역할만 하라’는 강제에 따라 접대부라는 용어가 해방 이후 전쟁까지 이어지고 일반 대중들에게 부정적인 인식이 뿌리 깊게 내리게 된 것이다.하지만 ‘기생은 우리시대 최고의 예인(藝人)’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기생은 당시 최고의 예인이었지만 예인 대접을 받지 못했다. 기생에서 시작된 한국의 춤은 무대화, 제도화에 이어 문화재로 지정된 역사성과 기생이 일제강점기 말에 비록 천대를 받았지만 전통 가무악의 핵심을 이어받은 점도 지적했다. 해방과 전쟁 이후에도 전통 가무악의 명맥을 간신히 이어왔으며 대한민국 전통 예술의 명맥을 지키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음도 강조했다.마지막으로 일제강점기 권번 기생이 전통예술의 계승과 후대 전승의 역할을 한 점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문화를 부정하는 일이 된다면서 ‘기생은 시대의 희생물이자, 비운의 역사’라고 끝을 맺었다. YouTube 채널의 「역사 돋보기」에서도 ‘조선의 기생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주제로 한국사회의 기생 인식에 대한 문제점 개선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임영상 교수와 전통 춤이론가 김영희가 출연해 기생에 대한 인식변화를 요청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엔터테인먼트나 연예계에 대해 천하다고 여기는 사회적 시선도 결국은 기생에 대한 잘못된 편견의 연장선이라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언론도 ‘기생의 부정적인 인식 개선’에 나서고 있다.『중앙일보』의 오피니언 칼럼인 서소문포럼은 ‘아직도 기생을 깎아내리나’라는 제하의 칼럼을 게재했다. 주요 내용은 기생은 ‘우리 춤과 노래를 지켜온 종합예술인’이며 3·1운동 때는 독립운동에도 가세한 사실을 기억해야 하며 문화 각계서 재평가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음을 지적했다. 예단일백인(禮壇一白人)과 진주 기생 「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는 일제강점기에 발행한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이다. 이 신문의 전신은 양기탁, 어니스트 베델이 설립한 《대한매일신보》다. 대한매일신보는 1902년 한국에 온 영국인 기자 어니스트 베델이 양기탁 등 민족 계몽 계열 독립운동가들의 지원을 받아 창간한 신문이다.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가 일어나고 단 하루만에 동시에 총독부의 일본어판 기관지 《경성일보》에서 대한매일신보를 인수하여 제호에서 '대한'을 뺀 뒤 경성일보의 자매지로 재출범하여 1910년 8월 30일자 부터 발행을 시작했다.매일신보는 1914년 ‘예단일백인(禮壇一白人)’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연재했다. 당시 전국의 유명한 예인(藝人) 100명을 소개하는 코너였다. 매일신보에 소개된 예인 중 진주 교방 출신 기생 6명이 소개되었다. 화홍(花紅)「매일신보」의 1914년 1월 31일자 신문에 예단일백인 4번째 인물에 진주 출신 기생 화홍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화홍은 15세에 고향 진주에서 기생이 되어 16세에 경성으로 올라왔다. 당시 나이는 21세였다. 육자배기, 잡가, 시조에 능통했다고 되어 있다. 월중선(月中仙)「매일신보」의 1914년 2월 5일자 신문 예단일백인 8번째 인물은 진주 기생 출신 월중선이다. 월중선은 진주군 수정봉 아래 대안면에서 일대 명기로 태어났다. 10세에 기안에 입참해 진주에서 이름을 날렸으며, 서울로 상경한 뒤 23세에 광교기생조합의 취체역(수석기생)이 되었다. 현금, 양금, 가야금, 승무, 검무, 입무 등에 재주가 있었다. 난홍(蘭紅)「매일신보」의 1914년 2월에 예단일백인으로 난홍이 소개되었다. 난홍은 13세부터 진주에서 동기(童妓)로 지내다가 15세에 상경했다. 광교기생조합에서 가무(歌舞)를 배웠는데 재주가 뛰어났다. 동료 가운데 제일 먼저 검무(劍舞)의 묘방(妙方)을 얻었고, 양금, 노래, 가사, 시조, 육자배기, 흥타령에 뛰어났다. 금홍(錦紅)「매일신보」의 1914년 3월 3일자 신문에 예단일백인 28번째 인물로 진주 기생 금홍을 소개했다. 금홍은 21세로 노래와 가사, 육자배기, 잡가 등에 능통했고, 그중에 단가(短歌)와 가야금을 잘했다고 한다. ‘경향 기생 중에 금홍 같이 가야금에 익숙함은 아마도 그 짝이 없을 것이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농옥(弄玉)「매일신보」의 1914년 5월 1일자 신문에 진주 기생 농옥을 소개했다. 농옥은 14세에 상경해, 노래, 가사, 잡가에서 제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시곡기생조합에서 체취역을 맡았는데 가야금과 양금이 장기었다. 매일 아침 여러 기생을 지휘해 기예를 배우게 하고 공익을 자담하고 자선을 표창하여 기생계의 선두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난주(蘭珠)「매일신보」의 1914년 6월 7일자 신문에 예단백인 97번째 인물로 난주가 소개되었다. 난주는 진주 출신으로 15세에 상경해 광교기생조합에 적을 두었다. 천성이 재기롭과 민첩하며 수신(修身)으로 기생계의 최고라는 평판을 얻었다. 황소 목은 꺾어도 진주 기생 목은 못 꺾는다. 의기 논개와 산홍, 그리고 예인으로 살았던 진주의 문화예술가들에 대한 새로운 시대 인식이 필요하다. 조선미인보감(朝鮮美人寶鑑)에 실린 진주 예기(晋州 藝妓) 일제강점기 경성에서 출판된 조선미인보감(朝鮮美人寶鑑)은 조선의 예기 611명의 사진과 이력 등을 기록한 화보집이다. 일제강점기 문화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사료이며 기생사 연구에 필수적인 문헌으로 평가되고 있다. 경성일보사의 사장인 아오야나기 고타로가 신구서림(新舊書林)을 운영하던 지송욱(池松旭)과 함께 제작한 책이다. 조선 전도의 미인의 사진과 기예와 이력을 수집하고 조선 언문과 한문으로 서술한 책이다. 발간 목적은 풍속교화를 달성하고 예기들의 용모와 기예를 평가하기 위해서였다. 조선미인보감에는 경성을 비롯한 진주, 대구, 동래, 평양의 권번 혹은 기생조합에 소속되어 있었던 예기 611명에 대한 개인 프로필과 사진을 싣고 있다. 예기들의 연령대는 9세부터 33세까지 다양하다. 조선미인보감에는 진주(晋州)의 예기(藝妓) 15명의 프로필이 실려있다. 원적(原籍)과 현 주거지, 이름과 나이, 그리고 대표적인 기예(技藝)를 상세히 적고 있다.조선미인보감에 실려있는 예기는 다음과 같다. 김영희(金英熙, 錦香, 30세), 김단계(金丹桂, 25세), 왕월출(王月出, 22세), 이매홍(李梅紅, 22세), 정진홍(鄭眞紅, 22세), 박농화(朴弄花, 21세), 강채희(姜彩姬, 20세), 이화향(李花香, 18세), 문초운학(文楚雲鶴, 19세), 이죽향(李竹香, 19세), 김계선(金桂仙, 18세), 황능파(黃綾波, 18세), 홍국화(洪菊花, 17세), 김학희(金鶴喜, 16세), 진선옥(陳仙玉, 16세) 김영희(金英熙, 錦香) 원적은 경상남도 진주군(晋州郡) 평안동(平安洞)이다. 전명(前名)은 금향(錦香)이다. 기예(技藝)로는 각종 정재무(呈才舞)와 검무(劍舞)에 뛰어났다. 특히 노래(歌), 우계면(羽界面), 가사(歌詞)에 특별한 재능을 가졌다. 김단계(金丹桂) 원적은 경상남도 진주군(晋州郡)이다. 기예(技藝)로는 노래(歌), 각종 정재무(呈才舞), 서남잡가(西南雜歌), 양금(楊琴)에 뛰어났다. 왕월출(王月出) 원적은 진주군(晋州郡) 중안동(中安洞)이다. 기예(技藝)로는 노래(歌), 우조(羽調), 각종 정재무(呈才舞)를 잘했고 특히 진연때 추던 궁중무용인 춘앵무(春鶯舞)가 특기였다. 이매홍(李梅紅) 원적은 진주군(晋州郡) 진주면(晋州面)이다. 기예(技藝)로는 노래(歌), 우계면(羽界面), 각종 정재무(呈才舞), 남무(南舞), 검무(劍舞), 가야금, 양금, 삼미선(三味線), 경사잡가(京西雜歌)에 뛰어났다. 정진홍(鄭眞紅) 원적은 진주군(晋州郡) 진주면(晋州面) 대안동(大安洞)이다. 기예(技藝)로는 양금(楊琴), 가야금(伽倻琴), 각종 정재무(呈才舞)를 잘했다. 정진홍의 경우에는 특상(特上)의 기예라는 명칭을 붙였다. 특히 노래(歌), 우계면(羽界面), 가사(歌詞), 시조(時調), 검무(劍舞), 승무(僧舞)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박농화(朴弄花) 원적은 진주군(晋州郡) 진주면(晋州面) 내성동(內城洞)이다. 기예(技藝)로는 남방리요(南方俚謠), 각종 정재무(呈才舞)를 잘했다. 가야금(伽倻琴)과 산조(酸調), 삼미선(三味線), 내지요(內地謠), 국어(國語)에 뛰어났다. 강채희(姜彩姬) 원적은 경상남도 진주군(晋州郡)이다. 기예(技藝)로는 노래(歌), 우조(羽調), 서남잡가(西南雜歌), 검무(劍舞)에 재능을 발휘했다. 이화향(李花香) 원적은 진주군(晋州郡) 진주면(晋州面)이다. 기예(技藝)로는 서도잡가(西道雜歌), 남도이요(南道俚謠)에 재능이 있었다. 문초운학(文楚雲鶴) 원적은 진주군(晋州郡)이다.기예(技藝)로는 각종 정재무(呈才舞), 춘앵무(春鶯舞), 무산향(舞山香), 검무)劍舞), 남방리요(南方俚謠)에 재능이 있었다. 이죽향(李竹香) 원적은 진주군(晋州郡) 진주면(晋州面)이다. 기예(技藝)로는 남방리요(南方俚謠)와 국어(國語)에 재능이 있었다. 김계선(金桂仙) 원적은 진주군(晋州郡)이다. 기예(技藝)로는 우조(羽調)와 남중잡가(南中雜歌)이다. 황능파(黃綾波) 원적은 진주군(晋州郡)이다. 기예(技藝)로는 서도이가(西道俚歌), 남방이요(南方俚謠)이다. 홍국화(洪菊花) 원적은 진주군(晋州郡)이다. 기예(技藝)로는 검무(劍舞), 양금(楊琴), 노래(歌), 우계면(羽界面), 각종 정재무(呈才舞), 춘앵무(春鶯舞), 무산향(舞山香)에 재능을 있었다. 특히 남중잡가(南中雜歌)로 이름을 날렸다. 김학희(金鶴喜) 원적은 진주군(晋州郡) 진주면(晋州面)이다. 기예(技藝)로는 남방이요(南方俚謠), 서도잡가(西道雜歌)에 뛰어났다. 진선옥(陳仙玉) 원적은 진주군(晋州郡)이다. 기예(技藝)로는 노래(歌), 우계면(羽界面), 남방이곡(南方俚曲), 춘앵무(春鶯舞)에 뛰어났다.

  • 2026-02-18
  • 작성자

    황경규/진주향당 상임고문

  • 조회수

    76

진주평론 로고

주간평론 (황경규의 시사정미소) 1. 침묵 뒤에 숨겨진 진실

침묵 뒤에 숨겨진 진실 선한 개혁은 기득권의 심기를 건드린다. 지역사회에 기생하는 기득권은 겉으로는 ‘공동체’를 운운하지만 정작 자신에게 다가올 손해에 대해서는 불편함을 숨기지 않는다. 기득권에 기생하는 무리들은 기득권의 눈치를 살피며 자신의 손에 쥐어질 이익에 맞춰 말하고 행동한다. 이익이 된다면 비록 자신의 행동이 위악(爲惡)이라는 비난도 일체 개의치 않는다. 그리고 정작 말하고 행동해야 할 시기가 다가오면 침묵하면서 진실 뒤에 숨는다. 진주가 침묵하는 이유는 무관심이 아니다. ‘지금은 침묵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라는 논리의 그물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논쟁이 생기면 피하려고 한다. 갈등이 예상되면 덮으려 한다. 논쟁은 진주가 방향을 잡아가는 과정이며, 갈등은 도시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그럼에도 침묵은 진주의 해묵은 논쟁과 갈등을 침몰시킴과 동시에 진실을 가려버린다. 진주는 지금 구조적 쇠퇴 앞에서 흔들리고 있다. 청년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진주를 떠나고 있다. 구도심은 텅텅 비어 있지만 그 누구도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오랜 시간동안 내팽겨쳐둔 산업기반은 시민들의 삶을 빈곤하게 만들고 있다. 이렇게 진주의 중심이 흔들리고 있지만 ‘리더’를 자처하는 자들의 ‘침묵’ 또한 여전하다. 미안하지만 그들에게는 ‘진주의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진실을 가리고 있는 침묵을 제거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정치인은 늘 책임을 강조하지만 책임지지 않는다. 행정은 늘 시민을 말하지만 시민이 아닌 ‘정치생명의 연장’을 위한 도구로만 이용한다. 지역사회는 공동체를 말하지만 정작 공동체를 위해 손해를 감수하려는 자세는 희미하다. ‘진주는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도시’이면서 ‘진주는 변화할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은 도시’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진주의 침묵이 감추는 진짜 진실에 대해 이제 이야기해야 한다. 진주는 미래를 바꿀 두 번의 기회를 날렸다. 첫 번째는 대전~진주간 고속도로 개통이다. 개통만 되면 진주의 발전은 ‘따놓은 당상’인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결과는 통영시의 압승이었다. 개통을 앞두고 진주는 아무 준비를 하지 않았다. ‘지나가는 도시’에 그쳤고 그저 ‘박수’만 칠 줄 아는 주변인에 불과했다. 더 큰 문제는 그 누구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렇게 대전~통영 고속도로 개통 이후 진주의 대응과 책임에 대해서는 모두가 침묵하고 있다. 지나간 일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으면 앞으로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두 번째는 ‘남부내륙철도의 거점역 선정’의 진실이다. 남부내륙철도의 거점역 선정은 진주의 미래를 바꿀 ‘기념비적인 기회’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거점역은 통영시가 거머쥐었다. 지금 통영은 ‘새로운 통영’을 준비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반면 진주는 어떤가? 거점역 선정에 무슨 노력을 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나서 책임을 지고 있는 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통영을 부러워하고 있을 일이 아니다. 진주의 미래가 달린 일에 무관심하고 침묵했다면 마땅히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진주가 남부내륙철도의 거점역으로 선정되지 못한 이유는 진주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진주는 지리적·정치적·산업적·행정전략의 4대 구조 속에서 ‘거점이 되기에 어려운 조건’을 스스로 만들었다. 더 큰 문제는 이 불리한 구조를 뒤집을 만한 정치적·행정적 전략 부재도 한 몫을 했다. 거점역은 ‘사람이 모이게 만드는 역’이지만 진주는 사람을 모이게 하는 설계도를 준비하지 못했다. 진주가 ‘통과 도시’라는 핸디캡을 안고 있었다면 대안을 미리 준비했어야 했다. 진주역 중심의 광역 환승체계와 통영-거제-사천-남해로 이어지는 셔틀전략, 철도관광 패키지, 역세권 복합개발의 명확한 비전 등이 포함된 ‘전략적 패키지’를 준비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생각해 보자. 과연 진주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거점역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은 ‘경남의 관광거점’이라는 국가적 명분을 ‘통영’에 빼앗겼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진주는 남부내륙철도 사업을 단순한 교통사업으로 오인했고, 국가균형발전과 관광철도라는 명분을 확보하는데 실패했다. 반면 통영은 너무 강력했다. 남해안 관광벨트의 상징, 대한민국 해양관광도시 이미지 확보, 거제와 남해까지 묶는 확장성을 내세웠다. 진주는 졌고, 통영은 이겼다. 거점역은 그냥 선정되지 않는다. 지역 출신 국회의원들이 공동으로 전선을 구축하면, 지방자치단체들은 공격적으로 대안을 마련하고, 지역사회는 여론전을 벌인다. 그런데 진주는 남부내륙철도 거점역 선정이라는 거대한 전쟁 앞에서 사실상 침묵했다. 진주 특유의 ‘체면 정치’와 ‘침묵 행정’이 거점역 경쟁에서 오히려 치명적인 약점이 된 것이다.진주는 ‘거점역을 우리에게 주세요’ 정도로 부탁하는 도시였으나, 통영은 ‘우리가 아니면 안됩니다’며 생사를 거는 도시였다. 진주는 거점역에서 밀린 것이 아니라 사실상 거점역 경쟁을 하지 않았다.‘노력했지만 실패했다’는 말로 핑계는 말이 안된다. ‘지역소멸이라는 위기’ 앞에서도 ‘열심히 했다’라는 말로 면피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열심히’가 아니라 ‘잘했어야 했다’. 이제 침묵 뒤에 숨겨진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침묵을 깨고 진실을 말하고, 책임을 지고, 대책을 마련하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진주가 건강해진다.

  • 2026-02-18
  • 작성자

    황경규/진주평론 발행인

  • 조회수

    124

KTX 착공, 진주의 승부수가 안보인다 썸네일 이미지

주간평론 KTX 착공, 진주의 승부수가 안보인다

KTX 착공, 진주의 승부수가 안보인다 남부내륙고속철도가 ‘진주를 살릴 호재’라는 세간의 호들갑 중에 절반은 맞다. 비유하자면, 서울에서 진주로 오는 길이 빨라지지만 역으로 진주에서 서울로 떠나는 길도 빨라진다. ‘진주의 미래를 여는 기회’인 동시에 ‘지역 소멸을 앞당기는 가속페달’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정작 문제는 KTX 개통에 대비한 ‘진주의 승부수’가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냉철하게 지적한다. ‘진주의 대응은 지나치게 안이하고, 너무 느리며, 지나치게 행정적이다.’ KTX 착공식이 진주의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사실 착공식은 도시발전의 증거물이 아니라, 정치적 소비의 한 장면에 불과하다. 진짜 승부는 착공식 이후부터 시작된다. ‘2시간대 진주’가 ‘서울 생활권 진주’로 바뀔 수 있다는 긴장감을 가져야 한다. ‘인재와 기업이 떠나는 도시’가 될 위험성도 최소화해야 한다. KTX가 가져올 도시구조의 변화를 정확히 꿰뚫고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진주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착공식 축하 박수’가 아니라 ‘진주의 각성’이다. 과거의 교훈을 생각해야 한다. 대전~진주 고속도로 개통 당시 큰 수혜를 입은 도시는 진주가 아니라 통영이었다. 통영은 대박이었지만, 진주는 그냥 거쳐 가는 도시로 남겨졌다. 대형국책사업의 ‘유치’에는 성공했지만 ‘진주의 발전’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이다. 이는 진주가 ‘전략’이 아니라 단순한 ‘기대’에만 머물렀기 때문이다. 어쩌면 진주가 준비한 것은 늘 ‘환영’이었고, 준비하지 않은 것은 ‘미래’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냉정하게 보자면 KTX 착공식은 ‘보장된 기회’가 아니라 ‘치열한 경쟁’이다. KTX가 개통되면 ‘진주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 것인가?’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거제시는 수도권과 남해안의 연결, 인구·산업기반 강화 등에 전력하고 있다. 진주 역시 과연 그러한가. 지금 진주가 준비할 것은 꽃다발이 아니라 전략이고, 현수막이 아니라 도시 설계도이다. 남부내륙고속철도시대는 대전~진주 고속도로의 사례처럼 ‘진주의 새로운 시험대’가 된다는 점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한다. 또 망칠 것인가. 이제는 진주에 질문을 던져야 할 차례이다. ‘KTX시대에 대비해 진주는 어떤 산업을 육성할 것인가’ ‘진주역 주변은 어떤 도시공간으로 재편할 것인가’ ‘진주를 찾는 관광객이 머무는 콘텐츠는 무엇인가’ ‘진주를 떠나는 청년은 어떻게 잡을 것인가’ ‘KTX시대에 걸맞는 진주만의 브랜드는 무엇인가’ 진주는 지금까지 무엇을 준비했는지 자문자답해야 한다. ‘자신있게 대답하기 어렵다면, 진주는 아직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KTX시대를 대비한 진주의 대안은 늘 ‘관광’이었다. 그러면서 진주성, 남강, 촉석루, 논개를 들먹인다. 근데 진주는 관광콘텐츠가 부족한 도시가 아니라 콘텐츠를 산업으로 전환하는 능력이 부실한 도시이다. ‘관광 자원 부족’이 아니라 ‘기획의 부재’라는 것이다. KTX 시대를 대비한 진주의 관광전략은 과연 있는가?관광객은 기차를 타고 진주에 오겠지만, 보고 머무를 곳이 없으면 다른 도시로 떠난다. 대전~진주고속도로 개통 이후 처절하게 겪었지 않았는가. 체류형 관광도시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에 책임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러면서 진주는 ‘관광 자원이 많다’고 자랑스럽게 말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갈 곳이 없다’고 말한다. 그게 현실이다. 이제 착공식은 끝났다. ‘진주가 멍하니 넋 놓고 앉아서 KTX 특수를 날려 버릴 것인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진주의 미래를 설계할 것인가’의 갈림길에 서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남부내륙고속철도는 착공했지만, 진주의 미래는 아직 착공되지 않았다. 대전~진주 고속도로의 아픈 교훈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

  • 2026-02-14
  • 작성자

    황경규/진주평론 발행인

  • 조회수

    153

트로이의 목마와 진주시장 선거 썸네일 이미지

주간평론 트로이의 목마와 진주시장 선거

트로이의 목마와 진주시장 선거 트로이의 목마는 단순한 전쟁 이야기의 교훈을 넘어 오늘날 정치·행정·조직 운영 전반에 걸쳐서 실제로 적용되는 구조적 경고로 회자된다. 특히 정치 분야에서는 선의로 위장된 권력 집착, 안정을 가장한 권력 유지, 협력의 가면을 쓴 지배 의지, 시민의 방심과 착각을 영양분으로 삼는 권력 쟁취 따위를 상징하는 가장 강력한 은유이기도 하다. 트로이의 목마는 겉으로 보기에는 신의 선물이자, 평화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자신들의 손으로 도시를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한 ‘판단의 실패’를 대표하는 산물로 기억되고 있다. 트로이의 비극이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트로이는 전쟁에서 패배한 것이 아니라, 트로이의 목마를 자발적으로 성 안에 들인 판단 오류에 기인한다는 점이다. 진주시장 선거는 트로이의 목마를 성 안에 들이는 중요한 판단과 결정의 과정이다. 전쟁에 지친 트로이 시민들이 목마를 끌어들인 심리의 재현이 되어서는 안된다. 위험해 보이지 않는 선택, 무난해 보이는 선택, 안전해 보이는 선택이 오히려 최악의 선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트로이의 비극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사실 관료형, 관리형, 안전형 리더십이 가지는 가장 큰 위험은 ‘실패’가 아니라 ‘정체’에 있다. 이러한 리더십은 가는 길은 있지만 제대로 된 방향이 없고, 갈등은 없지만 토론도 없으며, 변화도 없지만 책임도 없다. 행정의 모든 과정은 적법한 범위 내에 있지만 인구 감소, 청년 유출, 원도심 붕괴, 재정 부담을 낳는다. 이른바 트로이의 패착을 답습하게 되는 것이다. 진주시장과 트로이의 목마와 공통점은 도시의 성패를 손에 쥔 존재라는 점이다. 만약 ‘행정 경험이 풍부하다’ ‘안정적으로 시를 운영한다’ ‘중앙과 소통이 잘 된다’는 일반적 평가를 받는 인물이 도시의 장기 비전도 없이 중앙 논리와 개발 논리를 들여오는 통로가 된다면 이는 성을 지키는 장수가 아니라 트로이의 목마가 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트로이 시민들이 목마를 선물로 믿었듯이 유권자 역시 이러한 리더십을 안전한 선택으로 오인한다는 점이다. 지금 진주는 안전한 관리가 아니라 비전과 방향이 필요하고, 도시 발전에 대한 결단이 필요하다. 단언컨대, ‘전략과 비전 없는 안정은 쇠퇴의 다른 이름이다’라는 사실을 이번에야 말로 반드시 적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진주의 현주소를 돌아보자. 진주의 미래를 일구어낼 성장 동력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인구는 감소 국면에 들어섰고, 산업 구조는 특정 산업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 원도심은 쇠퇴하는 반면 신도시는 확장되고 있지만 자족 기능은 약하다. 대형 개발사업은 많았지만 성과가 시민의 삶의 질 개선으로 체감되지 않는다. 다가오는 진주시장 선거는 단순한 인물 교체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의 진로를 바꿀 수 있는 전략적 선택의 범주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다시 말하면 ‘정체를 관리할 것인가’ 아니면 ‘전환을 선택할 것인가’의 갈림길에 선 중요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관리형 리더십 보다는 변화형 리더십을 선택해야 한다. 진주의 도시 전략을 단위로 설계할 수 있는 지역비전 자립형 리더십도 시급하다. 더불어 도시의 운명을 설계하고 책임질 전략가형 리더쉽도 반드시 나와야 한다. 트로이를 무너뜨린 것은 ‘이제 위협은 끝났다’는 자기 안심이었다. 진주를 정체와 쇠퇴로 몰아 넣은 것도 ‘이 정도면 잘하고 있다’ ‘안정이 최선이다’라는 자기 합리화이다. 이에 안주하는 순간 진주를 이끄는 시장은 도시를 지키는 성주가 아니라 적에게 성문을 여는 목마가 된다. 이와 함께 ‘진주는 안전하게 늙어가고 기회는 조용히 사라진다.’ 트로이의 교훈을 직시하지 않는다면 진주의 몰락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 2026-01-20
  • 작성자

    황경규/진주향당 상임대표

  • 조회수

    195

역대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남긴 불편한 기록 썸네일 이미지

주간평론 역대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남긴 불편한 기록

역대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남긴 불편한 기록 지방자치제도의 성숙도와 가늠자 역할을 하는 역대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남긴 불편한 기록이 있다. 선거 과정에서 공개된 후보자 정보에서 적지 않은 출마자들이 각종 범죄경력이 있음에도 특별한 제약 없이 선거에 나선 것은 물론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는 사실이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전체 당선자의 약 33%인 1,341명이 각종 범죄전력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범죄 유형도 선거법 위반부터 폭력·사기 등 기타 형사 범죄를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기록이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범죄 경력 출마자들은 형사 범죄, 선거형 범죄, 권력형 범죄, 공직 신뢰를 훼손한 중대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사법적 책임을 졌고, 사면·복권되었으니 문제가 없다.’는 논리를 보호장치로 삼는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정치적 판단은 유권자의 몫이다.’라는 말로 책임을 유권자에게 떠넘긴다. ‘선거로 원하는 결과만 얻으면 된다.’는 식에 다름 아니다. 범죄 사실에 대한 사법적인 책임 종료가 곧바로 공적인 신뢰 회복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아가 사면·복권 역시 엄밀하게 말하면 국가가 형벌을 면제한 행위일 뿐이지, 유권자에게 신뢰를 회복해야 할 의무까지 면제된 것은 아니다. ‘법적 책임 이후에도 정치적·윤리적 책임은 남는다.’는 엄연한 사실을 떠올려야 하는 이유이다. 범죄 경력자의 공직선거 출마에 대해서는 법적 검증 시스템이 가진 한계에 대한 현실적 비판도 존재한다. 하지만 공직사회 전체에 대한 시민 신뢰 하락과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 등 부정적 정치문화의 싹을 키운다는 점에서 우려가 적지 않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법적으로 가능한 일’지만 ‘바람직한 일’인가에 대해서 반드시 냉철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출발점이자 공직 권력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유일한 절차이기에 그렇다. 현행 법제도는 특정한 범죄에 대해서만 출마를 제한하고, 그 이외의 경우에는 유권자의 판단에 맡기고 있다. 법치주의적 관점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구조이다. 하지만 법적인 허용이 곧 정치적 정당성과 공직 적합성과 연결되지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범죄 행위’라는 존재가 아니라 ‘범죄의 성격’이라는 것이다. 선거형 범죄·권력형 범죄를 사기와 폭력 같은 단순 범죄와 같은 기준에 둘 수 없다는 뜻이다 민주주의는 망각 위에 세워지지 않는다. 법적인 자격을 뛰어넘어 ‘정치적 책임에 대한 명백한 태도’와 ‘사회적 신뢰 회복에 대한 설명과 검증이 선행’되어야 한다. ‘침묵’과 ‘기억상실’을 기대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는 성숙한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범죄 경력자의 각종 선거 출마와 관련한 논란은 특정 개인의 일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공직사회의 기준과 수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의 문제이자, 민주주의의 회복과 지방자치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이다. 만약 우리 사회가 기준을 낮게 잡는다면 지방자치는 물론 민주주의의 신뢰마저 침식되고 말 것이다. 다가오는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윤리적 기준과 책임정치의 문턱을 높여야 한다. 단순히 범죄 경력자의 정치 참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자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책임을 유권자에게 전가하기 보다는 출마자 스스로 신뢰 회복을 위한 설명과 검증을 감수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유권자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이기 때문이다. 강조컨대, 유권자를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는 비민주적인 현직 출마예정자에게도 반드시 적용되어야 한다. 지방자치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최전선이다. 그 출발점인 공직 선거에서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가 작동되지 않는다면 지방자치의 미래는 낙관하기 어렵다. 역대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남긴 불편한 기록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 2025-12-19
  • 작성자

    황경규/진주향당 상임고문

  • 조회수

    281

평균의 늪에 빠진 진주 썸네일 이미지

주간평론 평균의 늪에 빠진 진주

평균의 늪에 빠진 진주 진주가 ‘평균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역사적 관점에서 결코 복제 가능한 도시가 아님에도 ‘획일화’ 혹은 ‘평균화’의 수렁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다. 진주의 강점을 스스로 희석시키고, 자발적 평준화에 동참하면서 대한민국 여러 도시 가운데 ‘One of them(그저 그런 도시 중의 하나)’로 퇴색되고 있는 것이다. 진주가 가진 도시 고유의 가치가 발현되었던 ‘Only one(오직 이곳)’이었던 진주의 위상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도시의 평균화와 획일화가 진행되면 도시의 역사성과 정체성은 흐려진다. 타 도시에서 ‘검증된 모델’과 ‘성공사례’가 무차별 도입되면 도시는 개성을 잃게 된다. 궁극에는 시민들도 ‘나도 그냥 그 중의 하나’라는 공동체의 붕괴로 이어지게 된다. 지역사회 일각에서 ‘지금 진주는 어떤 도시로 기억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유이다. 도시의 경쟁력은 독창성과 차별화에서 나온다. 근데 진주는 ‘차별화가 아닌 평준화’, ‘변화가 아닌 안전한 모방’을 선호한다. 타 지자체의 우수사례와 선도도시 모델 등에 주목한다. 다른 도시에서 효과를 거둔 사업이면 ‘실패할 확률이 적다’라는 안전한 선택논리가 작동한다. 더불어 이러한 시도의 이면에 진주의 차별성과 창의성을 갉아먹을 수도 있다는 비판적 인식은 배제된다. 이미 정해져 있는 쉬운 길을 쫓아가는 ‘One of them 도시’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타 지역에서 소비된 모델을 뒤늦게 가져다 추진하는 사업도 적지 않다. 전국에 복제되다시피한 ‘청년몰 모델과 재래시장활성화사업’, 핫플레이스 흉내 프로젝트처럼 변해버린 ‘특화 공간 조성’, 예산 투입과 사업실적이 목표가 된 ‘공공 건축’ 등의 사례처럼 하나같이 공간의 상품화에만 올인하고 있다. 통합전략 없이 개별 사업이 서로 고립된 채 진행되면서 결국 행사성 사업의 반복으로 귀결된다. 도시의 정체성을 ‘찾는 일’에는 소홀한 ‘명분한 화려한 공공사업’만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진주가 ‘Only one 도시’에서 ‘One of them 도시’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은 오래되었다. 행정이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선택의 반복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검증된 모델만 선택한다. 외부 설계와 공모전 당선작을 지역의 맥락과 검토 없이 무조건적으로 수용한다. 창의적 실험과 접근은 ‘안전하지 않다’는 이유로 회피한다. 시민 의견의 수렴과정은 형식적이며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다. 이런 행정 정책의 반복 속에서 결과물은 비슷해지고 도시의 색깔은 날로 희미해진다. 과정속에서 진주만의 독창성이 상실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진주의 정책 설계의 중심에 도시의 고유성·시민성·역사성이 부여되어 있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이러한 고민에 앞서 더 중요한 것은 ‘시민이 던지는 질문’이다. ‘이 사업이 진주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가?’ ‘이 거리는 진주 시민의 일상을 담아내고 있는가?’ ‘이 공간은 진주의 역사와 정체성을 잇고 있는가?’ ‘이 정책의 주인이 시민인가, 행정인가?’ 만약 이 질문에 명확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정책이라면 지금이라도 과감히 중단되어야 한다. 진주가 ‘그저 그런 도시’의 반열에 머물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일회성 오류의 반복이 아니라 구조화된 행정 관행에 있다는 지역사회의 지적은 뼈아프다. ‘뭐라도 하나 더 만드는 도시’가 아니라 ‘하나라도 제대로 만드는 도시’로의 전환점을 맞이해야 한다. 과거 진주는 역사·문화·예술·경제 등 많은 분야에 있어서 적어도 ‘Only one’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도시였다. 지금도 과연 그런가? 진주가 평균의 늪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지금의 진주가 옳은 길을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 그것이 ‘Only one’ 도시 진주를 다시 만드는 첫걸음이다.

  • 2025-11-19
  • 작성자

    황경규/진주향당 상임고문

  • 조회수

    3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