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평론 민주당이 진주에서 패배하는 이유
민주당이 진주에서 패배하는 이유 민주당 당원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민주당 정치인으로서 진주에서 어떤 이미지를 만들면 좋겠느냐’는 물음에 ‘민주당이 진주에서 패배하는 이유’에 대해 솔직하게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대화는 2시간여 동안 계속되었다. 민주당은 진주에서 진주시장과 국회의원을 배출하지 못했다. 지난 20여년간의 선거를 분석해 보면 꾸준히 일정한 득표층을 확보했음에도 결정적인 벽을 넘지 못했다. 지난 2026년 전국동시지방선거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엇이 문제일까? 민주당 후보 개인의 문제는 아니다. 진주가 가진 정치지형과 전략부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정치공학적 접근방식이 가진 민주당의 한계가 여실히 반복되고 있지만 돌파하지 못했다. 진주의 정치 환경에 대한 이해 부족 혹은 접근성에서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진주는 오랜 전통의 보수정당 강세지역이다. 진주가 보수의 텃밭으로 자리매김한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공무원과 퇴직공무원의 비중이 높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민주당과 거리를 두는 경향이 높다. 도농복합도시인 진주의 특성상 농촌지역의 보수성이 강한 것도 민주당에게는 약점이다. 더 큰 문제는 진주의 정치가 ‘지역 유지 중심의 인맥정치’가 강하다는 점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민주당은 기초의회에 발을 들여 놓기가 쉽지 않았다. 초창기에는 ‘진주시의회가 지역유지의 놀이터라’는 비아냥이 제기될 정도였다. 지금은 민주당의 지방의회 진출은 많이 나아졌지만 존재감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정당 보다 사람’이라는 진주의 정치 성향이 민주당에게 불리하게 작용되었다. 따라서 민주당은 시작부터 약 40점 이하에서 선거를 시작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진주에서 민주당 계속해서 패배하는 이유이다. 민주당이 실패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로 분석된다.우선 ‘선거철에만 나타나는 정당’이라는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평소에는 존재감이 없다는 의미이다. 근데 선거 6개월을 남겨 놓은 시점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기자회견, 현수막, 공약발표를 시작한다. 하지만 시민들은 이렇게 생각한다.“평소에는 안 보이던 사람들이 또 나타났다.” 진주의 정치는 평소의 신뢰가 결정한다는 이야기가 회자되는 이유이다. 지나친 평가일지 모르지만, ‘민주당은 후보만 바뀌었을 뿐 정당은 성장하지 않았다.’는 지적돠 만만치 않다. 예를들면 후보가 낙선하면 조직도 함께 사라졌다. 그 결과 4년 마다 ‘처음부터 시작’하는 비효율성이 반복되었다. 후보중심의 정치가 낳은 폐해이다. 진주가 직면한 수많은 현안에 대한 이슈 선점에도 무관심했다. 최근에는 LH기능 이전, 발전공기업 통합본사 유치, 공공기관 2차이전 등 진주의 미래가 걸린 아젠다가 있지만 민주당은 조용하다. 이뿐만 아니다. 원도심 공동화, 신 경제성장 동력 부재, 청년 유출, 소상공인 문제, 일자리 부족, 도시 미래 전략 부재 등이 명확함에도 나서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민주당이 이러한 이슈를 선점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선거정국 이외에는 시정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좀 더 사실적으로 말하면 국민의힘 의원보다 한참 떨어지는 수준이다. 물론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진주에서는 여당이 국민의힘이고 야당이 민주당’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이는 지방의회에서 국민힘에 비해 민주당의 역할이 떨어진다는 지적의 우회적인 표현이다. 시민들은 대안을 원하지만 민주당은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비판과 감시의 기능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안을 제시하는 것 자체가 애초에 무리였는지 모른다. 민주당은 ‘진주의 현안에 대한 대안은 이것이다’라는 인식을 주지 못했다. 사실 민주당 스스로 지역 의제를 만들지 못했다는 사실은 애당초 대안이 있을 수 없었다는 점을 스스로 자인한 꼴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다. 민주당은 국민의힘 의원보다 더 지역의제를 발견하고 대안을 제시하면서 시민들과 함께 걷는 길을 만들지 못한 것이 최대의 패인이다. 민주당은 전국정치 이슈에만 집중한다. 진주에서 계엄심판, 정권심판, 정권교체 등 전국정치 이슈에만 집중한다. 상대적으로 지역 이슈는 등한시되었다. 진주의 서민들이 원하는 일자리, 교통, 문화 등의 지역 아젠다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는 진주의 보수층은 물론 중도층을 설득하지 못한 결과로 작용되었다. 사실 지방의회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지역 의제를 만들어 내고 집행부에 촉구하고 대안을 만들어내는 일은 거의 보지 못했다. 민주당이 진주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있다. 민주당은 ‘전국정치’가 아닌 ‘진주정치’를 이야기해야 한다. 진주시장 선거에 있어서 시민들은 ‘민주당 진주시장’이 아니라 ‘진주를 살린 시장’을 필요로 한다. 전국정치에서 벗어나 ‘생활정치’를 일상화해야 한다.진주가 안고 있는 현안에 대해 365일 다뤄야 한다. 선거때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기자회견을 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민주당의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왜 이러한 상황이 되풀이 되는지에 대해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방의회 의원부터 강해야 한다.진주의 민주당 시의원의 역할에 대해 점수를 매긴다면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렵다. 의원 개개인의 활동을 보면 5분 자유발언은 곧잘 하지만 시정질문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까지 진주가 안고 있는 수많은 현안에 대해 민주당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그에 반해 국민의힘 의원들은 시정질문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존재감은 물론 진주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있음을 시민들에게 알린다. 근데 민주당은 없다. 의원 개인의 문제로 귀결되는 대목이다.더 불편한 말을 한다면 ‘진주의 민주당 시의원들은 진주의 민주당이 아닌 의원 개인의 민주당에만 골몰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의제를 이끌어내고, 시민들과 토론하고, 성과를 만들어내는데 까지 이르지 못한다는 의미이다.개인적으로 제9대 진주시의회에서 민주당 시의원의 역할에 점수를 매긴다면 40점도 후할 정도이다. 진주는 어떤 정치인을 원하는 것일까?진주는 이념형 정치인이 아니라 생활형 정치인을 필요로 한다. 시민들이 원하는 후보는 진주를 잘 알고, 민원을 잘 해결하고, 싸움보다 성과를 내고, 전문가 이미지를 가진 정치인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당원을 제외하고 민주당과 진주시민의 거리는 결코 가깝지 않다. 민주당 당원이 아니면 터부시하는 경향이 심하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지도 모른다. 그래가지고는 민주당이 진주에서 자리를 잡기는 어려울 것이다. 민주당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선거가 없는 4년동안 매주 해야 할 일이 있다. 지역현안 브리핑, 정책토론회, 청년간담회, 원도심간담회, 예산 분석, 시민제안 플랫폼 운영, 골목 민원 해결 등이다.이런 활동이 4년 동안 쌓인다면 민주당은 ‘선거때만 나타나는 정당’이 아니라 ‘진주시민들의 아픔을 함께 하는 정당’으로 변모하게 될 것이다. 진주에서 민주당이 패배하지 않기 위한 핵심은 ‘진주시민과의 신뢰의 축적’이다. 민주당이 진주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 속에서 펼치는 정책과 활동으로 존재감을 쌓아 나가는데서 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이라서 찍는다’가 아니라 ‘진주를 위해 가장 잘 준비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때 비로소 진주의 정치지형을 바꿀 가능성이 생길 것이다. 민주당이 진주에서 승리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적은 글이다.
- 2026-08-21
-
작성자
황경규/진주평론 발행인
-
조회수
103
Tour Jinju 자연마을을 찾아서 4. 수곡면 원계리-이순신장군의 흔적을 발견하다
원계리 창촌리에서 25번 진주시도의 북쪽으로 달리면 원계리다. 동남쪽에 도량마을, 중앙에 원계마을, 가장 북쪽에 동월마을이 위치하고 있다.원계리는 전형적인 동서고저 지형이다. 서쪽으로는 덕천강이 흐르고 그 주변으로 논밭과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데 반해, 동쪽은 해발 고도 약 300m의 산지로 재궁산, 마항골, 독산 등에 둘러싸여 있다. 도량마을도량마을은 원계리의 가장 동쪽에 위치한 마을로써, 하동과 진주를 연결하는 길목이란 뜻에서 도량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출렁이는 강물이 보이는 풍경은 선비들이 가장 선호하는 풍경이었을 터, 그 증거 하나가 이곳 덕천강변에 있다. 마을 남쪽 덕천강 주변에 농바위라는 큰 바위가 있는데, 주변에 세 개의 바위가 더 있었더란다. 너럭바위는 아니더라도 여러 사람 어울려 풍류를 즐기기에 손색이 없는 조건이었는지 예부터 선비들이 즐겨 찾았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농바위에는 삼락대(三樂臺)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원계마을삐그덕대는 놀이기구, 기린이며 호랑이같은 석조장, 이순신 장군 동상, 세종대왕 동상, 그리고 교장선생님의 지겨운 훈시가 있었던 교단까지. 폐교가 된 원계초등학교에 아직도 남아있는 것들이다. 원계초등학교를 지나자 진짜 마을로 들어선 느낌이다. 원계라는 마을 이름은 옛날 사곡에서 살던 밀양손씨가 옮겨와 살면서 '엥기'라 부른데서 유래돼 이후 원계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지는데, 다른 마을에 비해 눈여겨 볼만 한 것들이 많다. 원계리 노거수 마을에 정자나무나 마을을 보호하는 당산나무가 있는 경우는 흔하지만,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를 보기란 그리 흔치 않다. 그 흔치 않은 구경을 원계마을에서는 실컷 할 수 있다. 원계경로당 앞에, 지난 1982년 도지정 보호수로 지정된 원계리 노거수가 떡 하니 버티고 섰기 때문이다. 수령 550년으로 경남에서도 오래된 느티나무로 손꼽히는 원계리 노거수는 그 높이만 12m에 나무 내부가 큰 동공으로 되어있는 등 매우 기이한 형태를 띠고 있다. 게다가 전체 폭이 워낙 넓어서 서 있는 것인지 누워있는 것인지 분간이 힘들 정도다. 몸체의 중간을 쇠봉에 의지하고 있는 형편이긴 하지만, 튼튼한 둥치며 푸른 잎들이 건재함을 과시한다.이렇게 유명세를 타는 나무라면 남다른 사연도 있을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노거수에 나뭇잎이 일시에 피면 그해에 풍년이 온다는 전설이 마을에 전해져 온다고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 한 가지! 누가 말하지 않아도 주민들은 마을의 재난을 노거수가 막아주고 있다고 선한 마음으로 믿고 있다는 점이다. 이충무공진배미유적지월계마을에서 꼭 보고 넘어가야 할 한 가지를 꼽으라면 아마 누구라도 진배미 유적지를 선택할 것이다. 진배미는 이순신 장군의 인생에 있어 대전환점을 맞은 곳이다. 조선 수군의 총지휘관인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하루 아침에 도원수 권율 밑에서 백의종군하는 신세로 전락했을 때, 다시금 삼도수군통제사의 임명 교서를 받고 전의를 다지며 군사를 훈련시킨 곳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이후, 마을사람들은 원계리 앞 큰 들판이었던 이곳을 가리켜 ‘진뱀이’라고 부르고 있다.진뱀이의 ‘진’은 군사들의 대오가 있는 곳을, ‘뱀이’란 ‘논뱀이’의 준말로 ‘논두렁으로 둘러싸인 논의 하나하나의 구역’을 뜻함으로써, 즉 진뱀이란 군사들의 대오가 있는 논을 말한다.한편, 1975년 12월 이순신 장군의 호국정신과 얼을 되살리기 위해 옛 훈련장의 일부지역에 문화공보부 기념물 제16호로 높이 약 4m, 너비 1.1m 정도의 ‘이충무공 군사훈련 유적비(李忠武公 軍事訓練 遺蹟碑)”가 세워졌다. 이 유적비는 도로에서 100미터 떨어진 곳, 비닐하우스 단지 사이에 있는데 마을 주민들에겐 남다른 자부심의 공간이기도 하다. 외지 관광객이 찾아와 길이라도 물을라 치면 손짓으로 함부로 가르쳐 주는 법 없이 자청해 대뜸 길 안내를 나설 정도라니 말이다. 손경례 고택이충무공진배미유적지를 둘러보았다면 이번엔 당연히 손경례 고택을 둘러볼 차례다. 이곳은 백의종군하던 이순신 장군이 1597년(선조 30) 7월 27일에 머물렀던 곳으로, 며칠이 지난 8월 3일에 삼도수군통제사 재임명 교서를 받은 곳으로 더욱 유명하다. 위치를 찾는 것도 어렵지 않다. 원계리 노거수가 서 있는 뒤편으로 언덕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손씨 재실이 보이고, 그와 이웃한 집에 손경례의 후손들이 지금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대문을 걸어잠궈놓은 상태F 함부로 드나들 순 없지만, 그들에게 청을 넣으면 언제든 이순신 장군의 흔적을 찾을 수 있도록 집을 공개하고 있다.목조기와집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규모인 고택 마당에는 여기가 바로 이충무공이 재임명교서를 받은 유적지임을 알리는 표석이 세워져 있다. 양정 하경복 묘원계마을과 구태마을을 연결하는 농로에서 조금 떨어진 구릉에 4각 석조분 1기가 눈에 띄인다. 하경복은 본관이 진주로, 무과에 급제한 후 함경도 경성병마절도사,함경도절제사,경상도병마절제사를 지내며 조선 초기 국방 강화에 큰 공을 세웠을 뿐 아니라 온화한 인품의 소유자로 주변에 많은 인덕을 베풀었다고 전해진다. 묘는 1983년 8월 2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53호로 지정되어 현재 잘 관리되고 있다. 동월마을동월마을은 원계리 북쪽에 위치한 마을로 산청군 단성면과 인접해 있다.처음에는 마을이름을 매화정이라고 하였는데, 병자년 대홍수 때 매화나무가 모두 유실되는 바람에 산 밑으로 약간 옮겨내려와 동월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을 서쪽에는 두뫼산이, 북쪽에는 큰 시리봉과 작은 시리봉이 있다. 특히 큰 시리봉의 꼭대기엔 옛 진양군과 하동군, 산청군 3개군의 경계라 하여 표석이 세워져 있다. 마을을 지날 때마다 표지석을 확인하는 버릇이 발동하여 마을 앞에 잠시 멈춰섰다. 그런데 동월마을 표지석 옆에는 표지석보다 더 큰 크기의 ‘효(孝)’라고 적힌 비석이 서 있다. 마을로 들어서기 전에 부모님께 효도하겠다는 맹세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짧지만 강력한 메시지다.도로 맞은편에는 딸기집하장과 경로당이 있고, 마을 안쪽으로는 비닐하우스가 즐비하다. 그런데, 마을 안으로 몇 발짝 떼기가 무섭게 오른쪽으로 펼쳐진 넓은 들을 만나게 된다. 당연히 비닐하우스 단지겠거니 하고 걷다가 뜻밖의 풍경에 살짝 당황햐지려는 찰라, 여기가 바로 칠성백이라는 마을주민으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다. 칠성백이는 마을 서쪽에 있는 큰들이라는 의미다. 옛날 이 들 한 복판에는 북두칠성처럼 생긴 바위 7개가 있었다고 해서 불리워진 이름이라고 한다. 한낱 헛된 입소문이 아니다. 농경지정리로 인해 과거와 달리 위치가 변하고 2개의 바위가 소실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칠성백이 들 맞은 편 비닐하우스 단지 사이에 5개의 바위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마을에서 만난 주민 한 분은 그 모양새를 자신이 분명 보았고 또렷하고 기억하고 있다며 한참을 강조하셨다. 어디 별 이야기 뿐이겠는가. 마을 입구 오른편에 위치한 동월마을 동산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성성한데, 이곳은 일명 토끼가 달을 올려다보는 언덕이라 하여 망월동산으로 불리기도 한단다. 이밤..., 동월마을 망월언덕에는 북두칠성이 떨어지듯 달이 떨어지기를 바라는, 그래서 동화 속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길 바라는 토끼 한 마리가 귀를 쫑긋 세우고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 2026-08-21
-
작성자
황경규/진주향당 상임고문
-
조회수
65
Story of 진주 (STORY OF 진주2) 14. 익룡(翼龍), 진주 하늘을 지배하다
익룡(翼龍), 진주 하늘을 지배하다고고(古古)한 자연사,진주익룡발자국전시관 백악기(白堊紀) 익룡(翼龍)이 진주의 하늘을 지배했다. 일억 일천만 년 전 백악기 익룡의 땅이었던 진주(晋州)는 자연사(自然史)의 보고(寶庫)이다. 중생대 백악기 공룡(恐龍)은 진주 땅의 지배자였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육식공룡의 화석을 보유한 화석산지(化石産地) 진주는 1억여 년 전 백악기 자연유산(自然遺産)의 보물창고임에 손색없다. 진주에는 4개의 공룡화석산지가 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천연기념물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공룡축제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경남 고성군은 화석 관련 천연기념물이 2개에 불과하다. ‘화석산지(化石産地) 진주(晋州)’의 가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세계 최대의 중생대 익룡 발자국 화석이 전시된 진주익룡발자국전시관에서 ‘고고(古古)한 자연사 여행’을 떠나 본다. 익룡(翼龍), 진주 하늘을 날다 세계 최대 규모의 중생대 익룡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물갈퀴 새’를 포함해 새 발자국 화석 642개와 육식공룡인 수각류의 발자국 화석 67개가 발굴되었다. 당시 이 화석산지는 문화재계와 학계를 비롯한 전 세계적으로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진주는 다양한 중생대 백악기 생물들의 흔적인 화석이 존재하고 있는 세계 최대, 최고의 화석산지로 고고학계에 등장했다. 진주혁신도시 조성 공사 중 발견된 천연기념물 제543호 진주 호탄동 익룡·새·공룡 발자국 화석산지가 바로 그곳이다. 경남 진주 혁신도시 개발 사업 조성 공사 구역 내 입회 조사를 실시하던 중 토목공사 구역의 퇴적층에서 익룡 발자국 화석, 새 발자국 화석, 수각류 발자국 화석 등의 화석이 대규모로 발견되었다. 발굴 조사에서 발견된 익룡 발자국은 개수, 밀집도, 그리고 보존 형태 등에서 국내 최대로 발견되어 학술적 가치와 그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2011년 10월 14일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진주익룡발자국전시관’에 백악기 하늘을 지배했던 익룡과 다양한 화석들이 전시되어 있다. 익룡발자국자연유산적 가치 세계 최대 규모의 익룡발자국 화석이 매우 다양한 크기와 형태로 발견되었다. 이는 중생대 백악기 당시 익룡의 행동 특성 연구와 익룡의 해부학적 특성을 이해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갖고 있다. 특히 단일 지역 내에서 최고의 생물 다양성 군집을 이루고 있다는 점은 전 지구적인 백악기 공룡시대의 고생태와 고환경 이해에 있어 중요한 자연사적 가치를 갖고 있다. 이 지역에 분포하는 백악기 진주층은 호수 또는 호수주변부 퇴적환경에서 형성되었으며 발자국 화석의 생성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했다.고고학계에 따르면 세계 최대 규모의 익룡 발자국을 비롯해 매우 잘 보존된 도마뱀 발자국, 세계 최소 랩터 발자국 등 진주에서 발견된 우수한 화석들이 가지는 가치와 중요성이 높다. 국내에서는 1996년 전남 해남에서 아시아 최초로 300여 점의 익룡 발자국이 발견된 이후, 경남 하동, 사천, 거제 등지에서도 나타났다. 하지만 진주의 화석산지는 규모 면에서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가장 많이 산출된 곳으로 관심을 모았다. 특히 발자국 화석의 경우에는 걸어 다닌 흔적인 ‘보행렬’도 5개 이상 발견이 된 것은 물론 보존 상태도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진주는 진주익룡발자국전시관을 개관하고, 익룡 발자국 2,500여점을 비롯해 중생대 백악기 생물들의 화석을 전시함과 동시에 1억 1천만년 전 익룡과 공룡 등 당시 동물들의 발자국 화석을 보유한 진주의 고고학적 가치를 대내외에 알리고 있다. 진주 호탄동 익룡·새·공룡 발자국 화석산지에서 발견된 주요 발자국 화석은 익룡 발자국 2,486개, 새 발자국 1,220개, 육식공룡 발자국 122개, 초식공룡 발자국 47개, 척추동물 발자국 11개 및 악어·도마뱀·개구리·포유류 발자국 등 약 4,000여개인 것으로 보고되었다.현재 진주익룡발자국전시관에 전시된 주요 화석은 다음과 같다. ▲밀집된 익룡 발자국 화석 ▲ 아주 작은 아기 익룡의 발자국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개구리의 발자국 ▲ 세계에서 가장 작은 육식 공룡인 랩터의 발자국 ▲ 중생대 백악기 호수에 살았던 악어와 거북의 발자국 ▲ 가느다란 발가락 자국들이 선명하게 남겨진 도마뱀 발자국 ▲ 캥거루처럼 뒷발 두 개로만 깡충깡충 뛰어다니던 뜀걸음형 포유류의 발자국 ▲ 수컷 육식 공룡이 짝짓기를 위해서 암컷 육식 공룡을 유혹했던 구애 흔적 ▲ 네 발로 걸어 다닌 포유류의 발자국 ▲ 정체를 알 수 없는 대형 척추동물의 발자국 등이다. 진주익룡발자국전시관의 진주화석관(晋州化石館)에는 진주혁신도시 조성 공사 중 발견된 1억 1천만 년 전 살았던 익룡 발자국 화석뿐만 아니라 희귀한 도마뱀 발자국과 세계에서 가장 작은 랩터 발자국, 캥거루쥐 발자국까지 다양한 발자국 화석이 전시되어 있다. 도마뱀 보행열희귀한 도마뱀 발자국 진주익룡발자국전시관)에는 전 세계에서 단 3개만 발견된 1억 1천천만년 전 도마뱀 발자국이 전시되어 있다. 도마뱀은 무게가 가벼워 발자국을 남기기 어렵고 서식지가 달라 공룡에 비해 화석으로 발견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랩터 발자국 거대한 육식공룡의 이미지와 달리 세계에서 가장 작은 공룡인 랩터 발자국이 발견되었다. 발자국 길이가 1cm로 ‘진주에서 발견된 드로마에오사우루스의 발자국’이라는 의미로 ‘드로마에오사우리포미페스 라루스(Dromaeosauriformipes rarus)라고 불린다. 일반적으로 랩터는 세 개의 발가락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먹이를 낚아 채기 위해 위로 휘어져 있어 두 개의 발자국을 남긴다. 최초 발견, 억어 발자국 화석 혁신도시 조성 공사 중 가장 먼저 발견된 화석은 중생대 백악기 공룡과 함께 생활한 악어(鰐魚) 발자국 화석이다. 발견된 화석수는 2,486개이다. 악어는 앞다리는 5개의 발가락, 뒷다리는 4개의 발가락을 갖고 있다. 뜀걸음 포유류 발자국 화석 코리아살티페스 진주엔시스(Koreasaltipes Jinjuensis)는 ‘진주에서 발견된 한국의 뜀걸음 발자국’이라는 의미의 학명이다. 이 발자국 화석은 캥거루처럼 두 발로 깡충깡충 뛰어다녔던 작은 포유류이다. 진주익룡발자국전시관의 진주화석관(晋州翼龍館)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익룡 발자국 화석들이 전시되어 있다. 진주에 살았던 익룡으로 추정되는 듕가리프테루스의 뼈 화석(복제)가 대표적이다. 수각류 발자국세계 최고 익룡 발자국 화석산지 진주혁신도시에서 발굴된 익룡 발자국은 8개의 발굴 지층에서 2,500여 개가 발견되었다. 대부분의 발자국은 1, 4, 8층에서 800여 개씩 발견되었다. 특히 일부 익룡 발자국에는 물갈퀴와 발톱까지 선명하게 남아 있어 ‘최대 최고의 익룡 발자국 화석산지’라는 명성을 얻었다. 진주에 살았던 익룡 진주에서 발견된 익룡 화석은 ‘듕가리프테루스 화석(Dsunggaripterus Weii)’와 ‘안항구에라 화석(Anhangguera Blittersdorfi)’이다. 듕가리프테루스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끝이 뾰족하고 길쭉한 턱으로 위로 굽어있고, 턱 앞부분은 이빨이 없으나 턱 뒤쪽에는 강하고 뭉툭한 이빨을 가지고 있어 부리로 조개 등을 찾아 이빨로 부숴 먹었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안항구에라는 포르투칼어로 ‘늙은 악마’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약 4.6m의 큰 날개를 가지고 있는 중형급 익룡이다. 세계 최고(最古)의 개구리 발자국 진주에서 발견된 개구리 발자국은 세계적으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4번째 발견이다. 개구리 발자국 화석을 보면 4개의 앞발과 뒷 발자국이 보존되어 있고, 연속적인 뜀걸음 보행렬(hopping trackway)이 관찰된다. 새 발자국 화석들이 함께 보존되어 있는데, 이것을 통해 새들이 개구리를 잡아먹기 위해서 이곳을 돌아다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개구리 발자국 화석은 최소 1억 1천만 년 전에 개구리가 점프 능력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증거이다. 전 세계가 진주를 주목하다 진주 호탄동 익룡·새·공룡 발자국 화석산지에 전 세계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논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들 논문들 중에 주목을 받고 있는 논문은 ▲ 세계에서 가장 작은 랩터 공룡 발자국(사이언티픽 리포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개구리발자국(백악기연구) ▲가장 큰 도마뱀 발자국(사이언티픽 리포트) ▲동북아시아 최초의 악어발자국(백악기연구) ▲뜀걸음형 포유류 발자국 ▲육식 공룡 발자국 화석 등 백악기 공룡생태계를 알 수 있는 다양한 화석들에 대한 연구였다.‘진주에서 최초로 발견된 화석’으로 이름이 명명된 것은 3종류이다. ‘드로마에오사우리포미페스 라루스’(Dromaeosauriformipes rarus), ‘네오사우로이데스 이노바투스’(Neosauroides innovatus), ‘코리아살티페스 진주엔시스’(Koreasaltipes jinjuensis)다. 더불어 새로운 종류의 익룡 발자국으로 테라이크너스 그라실리스(Pteraichnus gracilis)로 명명된 화석이 있다. 한국, 일본, 스페인에서 보고되었던 소형 익룡 발자국과 비교해 앞발자국에서 뒤쪽을 향하는 세 번째 발가락이 길이가 더 길고, 좁고 긴 형태를 보이고 있는 이 소형 익룡 발자국 화석은 중생대 백악기 동안 호수에서 퇴적된 진주층에서 발견되었으며 약 1억 700만 년 전에 살았던 익룡이 남긴 발자국이다. 중생대 백악기 화석산지의 중심, 진주 진주는 전 세계적인 화석산지의 중심이다. 현재 진주의 화석산지는 ▲진주 유수리 백악기 화석산지(천연기념물 제390호) ▲진주 가진리의 새발자국 및 공룡발자국 화석산지(천연기념물 제395호) ▲진주 정촌면 백악기 공룡·익룡발자국 화석산지(천연기념물 제566호) ▲진주 호탄동 익룡·새·공룡 발자국 화석산지(천연기념물 제543호)가 있다. 진주 가진리의 새 발자국 및 공룡 발자국 화석산지 천연기념물 제395호로 새와 공룡의 발자국이 함께 남아 있는 드문 경우에 해당하는 화석산지이다. 약 1억년 전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세계적인 공룡과 새 발바국 화석산지이다. 원래 해발 55m 정도의 구릉지였다. 경남과학교육원 신축과정에서 화석이 발견되었다. 발굴 결과, 5개 지역에서 새 발자국 2,500개, 공룡 발자국 80개, 양 날개 길이가 20m에 달하는 익룡 발자국 20개가 발견되었다. 새발자국은 3종으로 나뉘는데 가장 큰 발자국은 길이가 419m에 달한다. 땅의 겉표면이 말라 거북이등처럼 갈라져 터진 모양과 물결자국 등도 발견되었다. 진주 유수리 백악기 화석산지 천연기념물 제390호이다. 이 화석산지는 약 1억 년전 중생대 백악기에 물과 바람에 의해 모래와 진흙이 쌓이면서 만들어진 퇴적층으로 두 개의 공룡화석층이 150m 사이를 두고 발견되었다. 대한민국 최초로 용각류의 지골, 발가락 뼈, 새끼 공룡의 좌골화석, 종류를 알 수 없는 두개골 화석 2점, 장골편 등 147점에 달하는 공룡화석이 발굴되었다. 오래된 토양층이나 나무 그루터기 화석, 숯 화석, 각종 과거 생물의 생활 흔적 화석 등 다양한 화석들이 발견되었다. 이는 공룡이 살던 당시의 환경과 화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진주 정촌면 백악기 공룡·익룡발자국 화석산지 천연기념물 제566호이다. 중생대 백악기의 공룡과 익룡을 비롯해 1만 여개의 발자국 화석이 대거 발견되었다. 단일 화석지로 높은 밀집도와 다양성이 있는 화석 산지로 보고되었다. 세계적으로 희귀한 사례로 보고되었다 7,000여개의 공룡 발자국이 집단 보행을 하는 화석이 발견된 것이다. 특히 2cm 남짓한 아주 작은 크기의 발자국부터 50cm가량 되는 대형 육식 공룡 발자국까지 나타났다.이 화석산지는 발자국의 밀집도, 다양성, 학술적 가치 측면에서 독보적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더불어 1억 년전 대한민국에 살았던 동물들의 행동양식, 서식환경, 고생태 등을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정보를 담고 있다. 진주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주요 화석산지이다. 진주 권역에 집중된 공룡 발자국 등의 화석의 보관과 관리, 연구의 필요성이 매우 높다. 현재 중생대 백악기 화석산지인 진주에 국립지질유산센터의 설립을 추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2026-07-26
-
작성자
황경규/진주향당 상임고문
-
조회수
189
주간평론 제10대 진주시의회에 바란다
제10대 진주시의회에 바란다 제10대 진주시의회 전반기 원구성이 마무리됐다. 다수당인 국민의 힘이 의장과 상임위원장 자리를 독식했고, 더불어민주당은 상임위원장 배정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진주시민은 더불어 민주당에 압도적인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 예상된 결과였다. 지역 언론에서는 전반기 원구성의 과정을 상세히 보도했다. 하지만 시민들이 궁금한 것은 따로 있다. ‘진주시의회는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이며, 무엇을 바꾸어 나갈 수 있을 것인가’이다.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 진짜 원구성의 시작이다. 사실 지방의회 원구성 때마다 반복되는 풍경이 있다. 의장 선거, 상임위원장 배분, 정치적 셈법 등이다. 하지만 시민들에게는 누가 어떤 자리에 앉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시민들이 내어준 자리에 앉아서 ‘시민을 위해 어떤 일을 할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의회의 존재 이유는 행정을 감시하고 예산을 꼼꼼히 살피며 시민의 목소리를 대신하는데 있다.지난 의회를 돌아보면 시민들이 아쉬움을 느꼈던 부분도 분명 있었다. 그래서 시민사회에서는 이러한 질문들이 계속 제기되었다. ‘집행부에 대한 견제는 충분했는지, 수천억 원의 예산은 제대로 검증했는지, 시민들이 궁금해하는 문제를 끝까지 파고들었는가?’ 일각에서는 비판만 하는 의회가 문제라는 지적을 하곤한다. 하지만 비판하지 못하는 의회는 더 큰 문제이다. 비판과 감시, 견제와 협력, 이 두 가지를 균형 있게 해내는 것이 지방의회의 본래 역할이라는 점을 늘 잊지 않아야 한다. 앞으로 진주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청년들은 도시를 떠나고 있고, 여전히 원도심을 활력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지역경제는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하고, 대형 개발사업은 시민의 세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끊임없이 검증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럴 때일수록 진주시의회는 집행부의 동반자이면서도, 시민을 대신해 질문하는 감시자가 되어야 한다. 의장은 의회를 하나로 이끄는 리더십을 보여야 하고, 상임위원장은 전문성을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은 공부하는 의원, 현장을 뛰는 의원이라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진주시의회에 지지를 보낸 시민들에게 보답하는 길이 될 것이다. 시민들은 더 이상 보여주기식 정치를 원하지 않는다. 사진 한 장 찍기 보다는 정책 제안을 원한다. 얼굴 알리기를 위한 행사 참석보다는 치열한 토론을 바란다. 정당간의 정쟁보다는 시민의 삶을 바꾸는 결과를 가져오는 정치를 원한다. 이제 전반기 원구성은 끝났다.이제부터는 평가가 시작된다. 앞으로 2년 동안 시민들은 의원들의 말보다 행동을, 약속보다 결과를 기억할 것이다.그리고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의회의 권위는 자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신뢰에서 나온다’ 제10대 진주시의회가 '자리의 정치'를 넘어 '책임의 정치'를 보여주는 의회가 되길 기대한다.
- 2026-07-26
-
작성자
황경규/진주평론 발행인
-
조회수
232
Tour Jinju 자연마을을 찾아서 3. 미천면 효자리 효자마을
미천면 효자리 효자마을 모든 가치의 우선이 효였던 시절이 있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삶의 의무처럼 존중받던 시절에도 충을 넘어서는 단 하나의 가치가 바로 부모에 대한 자식의 효성이었다. 부모의 말씀을 거역한다는 걸을 상상할 수조차 없던 때. 그때가 언제일까..., 문득 이 세상에는 없는 일인 냥 궁금해진다. 자식이 있어도 혼자 외로이 늙어가는 노인들이 늘고, 중년에 접어든 사람들은 자식에게 봉양받을 거라는 생각 따위는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속 편하다고 말하는 요즘, 자식들은 떳떳하게 효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보험금 몇 푼을 위해 부모의 목숨을 앗아가는 세상을 바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면, 너무 비관적인 생각일까? 그런 생각을 할 즈음, 무방비 상태에서 적의 공격을 당할 때처럼 마음을 뒤흔드는 마을이 눈 앞에서 펼쳐진다. 가난하지만 효자 효부가 많아 주위의 부러움을 사는 마을, 이름 효자리 효자마을이다. 1914년, 진주군 안간면 효자동 일부로서 효자리라 하였는데, 미천면 효자리는 효잠․독점․무동을 합한 지역으로 미천면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진주를 기준으로 해서 보면 가장 먼 곳에 위치해 있으면서 산청군 생비량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한데 합쳐진 세 마을을 면면을 살펴보자만, 효잠마을은 수원 백씨가 대성을 이루고 살았으며, 마을안에는 최근 건립한 숭효제가 있다. 또 독점마을은 밀양 박씨가 대성을 이루었으며 효잠 저수지 뒤편에 밀양 박씨 규정공파의 재실인 우석정이 있다. 무동마을은 마을 뒷산이 춤추는 사람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조씨가 많이 살았다. 모든 마을이 집현산 자락에 걸쳐져 있는데, 독점과 무등은 특히나 더 골이 깊어 외부인의 출입이 거의 상태라고 한다. 효자마을이란 지명은 아무렇게나 붙여진 게 아님을 역설하듯, 마을에는 효자비와 효부비가 있다.백갑수 덕수 형제의 효행을 적은 효자백갑수덕수형제행적비가 추계마을 입구에 있고, 효열부광산김씨의 비가 도로변에 있다. 효자마을이 워낙 깊은 골 가운데 있어 사람들이 보기 쉬운 곳에 비를 세웠다고 한다. 효자 효부의 내력은 과거에 그친 것이 아니다. 가난한 살림을 꾸리면서 시아버지 병수발에 남편 병수발, 거기에 시동생 병수발까지 하는 사람들이, TV나 라디오에서 소개되는 아름다운 미담이 이곳에서는 생활이 되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혼자 사는 노인들조차 마음이 편히 산다고 한다. 외로움이야 인간으로 태어난이상 짊어지고 가야할 고단한 숙제일 따름이고. 하지만, 마을을 들어서면 집현산에 포위라도 당한 듯 눌러앉은 모습이다. 골이 워낙 깊어 한 겨울에도 골 안과 밖의 온도차가 5℃까지 난다고 하니, 골이 얼마나 깊은 지 짐작이 가고도 남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마을은 경제적으로는 척박한 인상을 풍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 1968에 준공한 저수지가 있어 물 걱정은 하지 않고 살아도 된다는 점이다. 효자마을과 독점마을 사이에 위치한 저수지는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 주민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물 공급원으로, 지난 해엔 확장공사까지 끝마쳐 웬만한 가뭄에도 끄덕없다. 게다가 우석정과 어우러진 모습이 아름다워 지친 일상의 시름을 덜어주고 있다. 식수 또한 풍부한 편에 속한다. 효자리에는 마을 앞까지 상수도가 들어와 있지만, 실제로 상수도를 연결해서 이용하는 주민들은 적은 편이고, 집현산에서 내려오는 물과 지하수를 더 많이 이용하고 있다. 물 맛이 기가 막히다는 자랑이 뒤를 잇는다. 미천면은 진주시 관내에서도 밤나무가 많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마을이 깊은 골짜기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겨울철에는 해를 보는 시간이 짧아 시설작목 재배가 곤란해 주민들은 논농사 외에 밤나무로 소득을 올렸던 것이다. 밤생산이 소득은 좋은 편이긴 하지만 워낙 일손이 부족해 수확에 많은 어려움을 겪어 왔는데, 지금은 그나마 수령이 많아서 대부분 베어내고 그 자리에 단감 나무를 심어 소득을 보충하고 있다. 돈이 있다고 행복한 것도 돈이 없다고 불행한 것도 아니라는 것은 효자마을은 골짜기 깊은 곳에 숨어 조용히 웅변하고 있다. 가끔 외식을 하고 때가 되면 그거면 됐다는 식으로 용돈이나 내미는 것이 효가 아니라는 것을, 효는 마음이 즐겁도록 하는 것이라는 것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새삼 깨닫게 된다.
- 2026-07-26
-
작성자
황경규
-
조회수
162
Tour Jinju 자연마을을 찾아서 2. 대평면 당촌(堂村)마을 - 대평 무 종자채종지
대평 무 채종지 당촌(堂村) 당촌(堂村)은 ‘一文山 二大坪’이라는 말이 나오게 한 곳이다. 남강댐으로 인한 수몰이전만 하더라도 가구수가 100호가 넘었던 대촌(大村)인데다 무 종자채종으로 경제적으로도 윤택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1973년 2월 26일 법률 제2555호로 종묘관리법이 제정되기 전까지만 해도 당촌의 무 종자 생산량은 72kg들이 400가마를 생산한 대평면내 최고의 무 채종지였다. 당촌리 김덕용(金德龍)은 면내에서 생산된 무 종자를 600여가마를 수집해 대전 전주 흥농종묘지사(興農種苗支社)로 80여가마를 내다 팔고, 나머지는 강원도, 경기도 등 전국각지에 내다파는 무 거상(巨商)이었다.그러나 종묘관리법 제정 이후에는 이곳 당촌에서는 무 종자를 생산하지 못하게 되었고, 대전 전주 흥농종묘지사에서 종자를 생산해 「진주 대평 무」라 이름붙여 전국에 보급하고 있다. 또 일제강점기에 대평면내에서 벼 공출을 제일 많이 한 곳이 이곳 당촌(堂村)마을이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당시 원활한 공출미 수송을 위해 일제가 건설한 당촌교와 지하교이다. 물론 준공년도일이 표시된 일본왕연호는 해방직후 정으로 쪼아진 채 삭제돼 있다. 조선조 말엽에 1만2,000여평이나 되는 못이 있어 대평리 어은마을에 보(洑)를 막던 안상영이라는 부자가 당촌리와 내촌리 일대에 논을 만들려고 못둑을 만들다가 실패한 곳이기도 하다. 특히 당촌리 지하(池下) 삼거리는 경제적으로 윤택한 곳이었다. 무 종자를 구하러 오는 상인들로 북적였고 마을안에 큰 상점이 있어 늘 많은 사람들이 왕래를 했던 곳이다.대평면내 여느 마을처럼 당촌도 희망찬 미래를 기대할 수 없는 곳이다. 남강댐 보강공사가 끝나면 마을 전역이 수몰지구로 편입되는 것이다. 당촌마을 사람들은 비옥한 땅을 송두리째 내주어야 했던 것처럼 일부는 이주단지로 또 일부는 진주시내로 이주하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29세대 정도만이 잔류를 이야기하고 있다.한동안 풍요롭고 평화로웠던 농촌공동체가 남강댐 건설이라는 시대적 요청 앞에 순식간에 붕괴되고 만 당촌마을. 예로부터 사람이 많이 모여 산 곳에 이름 붙여졌던 당(堂)이라는 글자를 따서 이름지어졌던 당촌(堂村)마을은 이제 변변한 집 한 채 없는 마을로 전락했다.
- 2026-07-20
-
작성자
황경규
-
조회수
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