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평론 박완수 경남도지사 좌하 2
박완수 경남도지사 좌하 2 초대합니다. 조만간 진주에 오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귀한 시간을 내시어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을 방문해 주시기를 희망합니다. 가능하시다면 대규모 공연이 있는 날이면 좋겠습니다. 공연 한 시간 전에 도착하신다면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 주차 전쟁으로 발을 동동 구르는 안쓰러운 도민들의 모습을 직접 확인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별안간 초대장을 보내 드린 이유는 도지사님이 직접 방문하시어 이 아수라장 같은 현장을 목격하셔야만 십 수 년 동안 질질 끌어온 주차장 문제 해결의 단서를 비로소 마련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입니다. 혹시 바쁜 일정으로 인해 오시지 못해도 무방합니다. 보시고 문제없다고 생각하시면 이대로 두셔도 상관없습니다. 도민들의 지속된 개선 요구를 외면한 것이 이미 한 두해가 아니기에 그렇습니다.과거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 개관 이후, 주변 상권은 엄청난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리모델링 이후에 침체기에 접어들었고 지금은 끝이 보이지 않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습니다.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고 보시면 될듯합니다. 공연이 없는 날에는 주차장은 텅 비어 있고 사람 구경은 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공연이 있는 날에는 주차 전쟁으로 도민들은 공연을 감상한 뒤에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여유 따위를 가질 겨를도 없이 짜증을 내며 돌아가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 관장이 교체되어도 사정은 그대로 입니다.최근 언론보도를 접했습니다.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 사용료 인상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가 상승분을 감안한다면 무려 12년 간 동결된 공연장 사용료 역시 현실화되어야 마땅합니다. 누가 반대하겠습니까. 다만 현재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이 당면한 문제에 대한 현실 인식과 해결 방안에 대해서는 여전히 침묵한다면 도민들은 흔쾌히 동의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공연료 인상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도민들은 의문을 가질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박수를 보내기 어려운 도정의 일부분이 될 것입니다.경남도립예술단 창단을 계기로 건립된 경남도문화예술회관 주차장 부지 속의 경남도립예술단창작관의 활성화 여부도 챙겨봐 주십시오. 경남도립예술단은 지역 예술 생태계 활성화와 도민의 문화 향유권 향상을 위해 창단되었습니다. 현재 경남도립극단만이 이 시설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공연 준비 이외에는 창작관의 활용도가 높지 않다는 지적입니다. 더불어 주차장 부족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 원흉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다른 종목의 경남도립예술단 창단 계획은 없으신지요? 만약 없으시다면 도민들이 공유하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은 어떠신지요. 지난 2017년에 수립된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 중장기 발전 방안도 챙겨봐 주시기를 희망합니다. 2022년 현행화를 목표로 한 이 발전 방안은 지금은 그야말로 휴지조각이 되었습니다. 당시 발전 방안을 보면 현황과 문제점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추진 방향 역시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듯합니다. 대공연장 1개소로 공연 수용 애로와 공연장 객석 수 대비 주차공간 부족, 부대시설 및 편의시설 부족 등입니다. 근데 계획은 실로 거창했지만 달라진 것은 별로 없습니다. 현 상황을 감안한다면 단언컨대,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이 경상남도를 대표하는 위상을 갖고 있다고 말하기조차 부끄럽습니다. 경남도민들은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이 갖는 건축사적 가치와 역사성에 대해 여전히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경상남도의회에서도 여러 차례에 걸쳐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의 전체적인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 요구를 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박완수 경남도지사 좌하’라는 이름으로 두 번째 올리는 글입니다. 도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답장을 기대합니다.
- 202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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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규/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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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평론 진주문화원의 품격
제14대 진주문화원장 선거를 앞두고 진주문화원의 새길 찾기라는 기고를 한 적이 있다. 4년 전의 일이다. 진주문화원의 미래 100년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가 선택되기를 기대했다. 백지상태의 문화 불모지에서 지역문화의 새 지평을 열었던 진주문화원의 초심을 회복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와 진주문화원의 품격이 곧 진주의 품격이 된다는 문화계 원로들의 바람도 담았다.과거 진주문화원은 서부 경남의 문화 선도 기관이라는 명예를 잃고 전국 문화원 가운데 사고 문화원으로 낙인찍힌 적도 있다. 지역문화의 구심점이 아닌 특정 사조직이나 지방 권력의 하수인 혹은 지역문화 권력자들의 견고한 모임으로 퇴색했다는 비아냥도 감수해야 했다. 그런 점에서 특정 세대에 편중된 사업과 특정 세대만의 전유물로 인식되어 온 진주문화원의 새길 찾기는 진주문화원의 명예와 품격을 되찾는 중요한 기회였음은 물론이다. 진주문화원장의 선출 방식과 운영시스템의 파격적인 변화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선거가 치러질 때마다 극단적인 파벌을 양산하는 기존의 선거방식을 고수하기보다는 문화적 소양과 비전을 갖춘 인재를 원장으로 추대하는 방식으로의 전환이 없다면 진주문화원의 옛 위상을 되돌릴 방법은 없다고 전망했다. 결론만 놓고 본다면 진주문화원은 새길 찾기를 희망하지 않았다. 진주문화원의 명예와 위상은 내팽개치고 ‘오로지 당선’을 위해 아무 거리낌없이 오래된 폐단을 그대로 답습했다. 진주문화원장 선거 직후, ‘불법 선거 의혹’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의 논란에 휩싸인 건 물론이다. 진주문화원장 선거 결과, 투표인 수 대비 투표용지가 더 많이 발견되었고, 회원의 신상정보가 담긴 회원명부가 유출돼 선거에 이용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쯤 되면 역대 진주문화원장 선거 가운데 가장 최악의 선거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재판부는 진주문화원장 선거 무효 확인 소송 1심에서 선거 무효 판결을 내린 것은 물론 본안 소송 종료까지 진주문화원장의 직무집행을 정지시켰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에 대해서는 벌금을 선고했다. 이같은 재판부의 판결만으로 현 진주문화원이 역사상 최악의 진주문화원이라는 불명예를 떠안기에 충분했다. 더불어 진주문화원을 구성하는 구성원 모두가 스스로 새길 찾기를 등한시한 결과이기도 하다. 현재 진주문화원은 원장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제15대 진주문화원장 선거를 또다시 목전에 두고 있다.이제는 진주문화원의 새길 찾기를 희망하지 않는다. 뻔한 결말이 보이는 삼류영화를 벗어나기 힘들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문화정책의 변화와 패러다임의 전환 따위의 시대적 변화에 따른 환골탈태를 적시하는 것도 의미 없어 보인다. 차기 진주문화원장 선거를 앞두고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면 변화나 개혁의 여지가 전혀 없어 보이기에 그렇다. 진주문화원의 품격 회복이 아니라 권력만을 욕망하는 공간으로 또다시 전락한다면 바랄 수 있는 것은 단언컨대 없다. 진주문화원 회원들의 각성만이 정답일 것이다.진주문화원은 그동안 지역문화의 컨트롤 타워에서 마당쇠 역할까지 자임해 왔다. 그동안 진주문화원이 진주 문화에 끼친 영향력역시 절대로 적다고 할 수 없다. 명실상부한 민간 문화조직의 원조라는 자부심으로 지역문화의 좌표 역할을 수행하는데도 부족함이 없었다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문제는 앞으로 진주문화원장이 되고자 하는 후보들의 냉철한 자기반성과 비전제시에 있다. 진주문화원의 수장은 진주의 문화계를 대표하는 자리이다. 만약 출마 의지가 있다면 진주문화원의 100년 미래를 위한 비전을 시민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단지 자리 욕심만 내는 후보가 당선된다면 진주문화원의 미래는 지금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바라건대, 제15대 진주문화원장 선거가 과거의 점철된 오욕을 씻어내고 새로운 진주문화원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 202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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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규/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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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평론 2025년 12월 14일
정치인과 권력자들은 자신이 갖고 있던 권력을 하루아침에 잃게 되면 마치 주먹으로 온몸을 두들겨 맞는 듯한 엄청난 통증을 느낀다고 한다. 이른바 권력 상실의 고통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 제37대 대통령인 리처드 닉슨이 ‘범죄 드라마’를 능가하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인해 백악관을 떠나는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닉슨은 백악관에 주저앉아 양탄자를 주먹으로 내리치며 이렇게 외쳤다. ‘단순한 주거침입이 어떻게 이런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무슨 일을 한 거야,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냐고.’ 권력 상실의 고통은 인간만 느끼는 건 아니다. 침팬지 서식 집단에서도 발견된다. 우두머리 침팬지가 어느 날 젊은 수컷의 도전을 받았다. 힘 겨루기를 하다가 사실상 패배를 직감하는 순간, 우두머리 침팬지는 갑자기 썩은 과일처럼 나무에서 떨어진 후에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몸부림을 치고, 비참하게 소리를 마구마구 질러댔다고 한다. 국민에게 탄핵이라는 성적표를 받아 든 윤석열 대통령은 과연 어땠는가. 하늘처럼 섬겨야 할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행위와 의회해산 시도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헌정질서를 짓밟은 내란죄임이 명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차례의 담화를 통해 지금까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강변하고 있다. 국민들은 과연 그가 무엇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건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권력자’를 단죄하기 위해 국민의 이름으로 탄핵을 했다. 어찌 보면 닉슨과 침팬지처럼 추악한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일 지경이다. 권력은 멀쩡하던 사람의 뇌를 바꾼다고 한다. 정치인 고 김종필은 ‘괜찮던 사람도 청와대만 들어가면 사람이 바뀐다’고 했다. 권력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자신의 정당성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게 되고 결국에는 모든 상황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진다고 한다. 권력에 눈이 먼 권력자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모범 사례이다. 과거 대한민국은 오만한 권력자에 의해 민주주의가 짓밟히는 국가적 위기에 처했던 사례가 발생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는 깨어있는 국민들이 있었다. 화염병과 돌멩이로 군사독재 정권과 맞서 싸웠던 국민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또렷하게 기억한다. 어둠을 밝히는 촛불로 국정농단을 일삼았던 정치인을 단죄했던 국민들이 있었다는 사실 또한 우리는 분명히 기억한다. 그리고 2024년 12월 14일, 그 추운 겨울의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에서 오색찬란한 응원봉과 깃발을 흔들며 반헌법적 비상 계엄와 내란음모 시도를 날려버린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민이 있었다는 사실 역시 우리는 기억한다. 이렇게 대한민국의 역사는 군사독재, 국정농단, 내란을 일으킨 역사의 죄인은 반드시 처단된다는 사실을 명명백백히 증언하고 있다. 부패는 권력의 숙명이다. 그래서 권력은 부패하며,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혹시 지금도 자신이 절대권력을 가졌다고 착각하는 정치인과 권력자들이 아직도 계신다면 꼭 들려 드리고 싶은 헌법 조문이 있다.‘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바로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이다.이제는 동네를 돌아다니는 강아지조차 달달 외울 법한 이렇게 간단한 법조문이 그렇게 기억하기 어려운지 이해가 안된다. 아니면 기억하기 싫은 것인지 궁금하다. 앞서 보여준 국민들의 역사적 단죄가 두렵다면 이 평범한 사실을 한시라도 까먹지 마시고 지금이라도 몸소 실천하시길 권해드리고 싶다. 국민의 힘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온전히 지켜낸 자랑스럽고 자랑스러운 역사적 그날은, 2024년 12월 14일이다.
- 2025-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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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규/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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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평론 국민, 한 사내(一夫)를 목베다(誅)
한 사내를 목베다(誅一夫)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非常戒嚴)에 대해 맹자(孟子)는 이렇게 질책한다. ‘오직 어진 자가 마땅히 높은 지위에 있어야 한다. 어질지 못한 자가 높은 지위에 있게 되면 이것은 악의 씨를 백성들에게 퍼트리는 일이 된다.(惟仁者 宜在高位 不仁而在高位 是播惡於衆也)’ 맹자는 이번 비상계엄이 한국 민주주의의 심장에 주사된 암(癌)과 같은 존재이며, 국민들의 손으로 깔끔하게 도려내어 반드시 민주주의를 온전히 회복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맹자는 다음과 같이 전제조건을 제시한다. ‘어짐(仁)을 훔치는 자를 일컬어 적(賊)이라 하고, 옳음(義)을 훔치는 자를 일컬어 잔(殘)이라 한다. 도적의 잔당(殘賊)을 한 사내(一夫)라고 한다. 한 사내인 주(紂)를 죽였다는 말은 들었으나 임금을 시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賊仁者謂之賊 賊義者謂之殘 殘賊之人 謂之一夫 聞誅一夫紂矣 未聞弑君也)’ 대통령의 비상계엄의 근간에는 권력욕(權力欲)이 내재되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권력은 공동체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합의와 희생으로 도출되고 위임되었다는 측면에서 그 자체로 경건하다. 따라서 권력을 감히 행사할 때에는 그야말로 등줄기에 땀이 나는 전율(戰慄)이 있어야 한다. 만약 오로지 개인의 권력욕에 의한 권력행사라면 이는 계약 위반이며 주벌(誅伐)의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작금의 국민들의 탄핵요구는 ‘인의(仁義)를 도적질한 한 사내를 목 베는 일’이다. 맹자의 말씀은 시대를 떠나 언제나 옳다. ‘정(政)은 안민(安民)에 있으며 요민(擾民)에 있지 아니하고, 치(治)는 제해(除害)에 있고 양해(養害)에 있지 아니하다’ 유학자 최한기는 혼조(昏朝)에서 권력만을 탐하는 권신(權臣)을 자처한 현 정치권이 안민제해(安民除害)의 길을 가지 않고 요민양해(擾民養害)의 길을 걷고 있지 않는지 스스로 뒤돌아 보기를 권하고 있다. 우리의 역사는 권력을 차지하고자 추악한 아귀다툼을 벌이다가 명줄을 재촉하고 패가망신하는 자들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적어도 ‘역사의 죄인’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국민은 시간이 지나면 다 잊어버리고 또 뽑아준다.’ 모 국회의원의 발언을 요약하면 그렇다. 대통령 탄핵 투표 불참으로 혼조의 권신이 되기를 자처한 모 국회의원이 국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있는 젊은 피의 국회의원에게 했다는 조언이다. 한편으로 그런 생각을 할 법도 하다. 그토록 저질이라고 매도하던 저 선량(選良)들을 뽑은 건 정작 누구였던가? 과연 그들에게 낙선(落選)의 쓴 잔을 안겨주기는 했는가? 이제 반드시 기억하고 낙선의 쓴 잔을 그들의 손에 들려주어야 할 것이다. 이런 말을 듣고도 다시 뽑아준다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사실 처음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보면서 속으로 비웃었다. 그 이유는 이 땅의 민주주의와 국민들을 우습게 여긴 처사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보란 듯이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승리했다. 국민들이 옳았다. 맹자의 가르침대로 국민들의 손으로 ‘악의 씨앗, 한 사내를 목베는 일’을 수행했다. 이제 국민과 민주주의를 우습게 본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한다.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비상계엄에 동조한 그 누구든지 말이다. 더불어 국민을 향해 총구를 겨눈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한 평범한 범부의 몰락을 지켜볼 차례이다. 탄핵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제는 자신들의 행동에 책임을 질 시간이다.
- 2024-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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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규/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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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평론 진주문화관광재단
진주문화관광재단 정의(正義)를 입에 담으면 ‘참으로 어리석다’는 핀잔이 화살처럼 날아와 박히는 세상이다. 이미 세상이 시비(是非)보다 이해(利害)의 관점에서 판단하는 것이 상습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고작 ‘정의’ 따위가 무슨 의미를 갖느냐는 식이다. 정작 ‘정의’는 사라지고 ‘위선’이 판을 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명 조식은 ‘바른 선비는 범의 가죽과 같다’고 했다. 정의로운 사람을 바른 선비라고 가정한다면, ‘정의는 범(虎)’이라고 전제할 수 있다. ‘범 같은 정의’가 필요한 세상이지만, 정작 세상은 범을 자신의 곁에 두고 싶어 하지 않는다. ‘정의의 발톱’에 자기가 다칠까 두려워서다. 그래서 주변에는 하나같이 하이에나, 여우, 늑대 같은 동물들이 득실대기 마련이다.진주문화관광재단 출범 당시, 지역사회의 기대가 높았다. 문화예술정책 전문성 강화, 체계적인 지원시스템 구축 등을 통해 진주 문화예술계의 미래를 밝혀 줄 것이라는 믿음 또한 충만했다. 근데 현실은 진주의 문화와 관광을 지배하는 공공 권력이 되고 있다는 지적의 연속뿐이다. 몇몇 사례를 들어 본다.‘진주논개제’ 주최 단체가 하루 아침에 진주문화원에서 진주문화관광재단으로 바뀌었다. 진주문화원의 극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공론화 절차는 생략됐고,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민간 단체가 수행하던 사업을 사실상 강탈한 것이나 진배없지만 진주문화관광재단은 아무런 문제 의식없이 당연한 것처럼 여겼다. 그리고는 마치 진주문화관광재단의 엄청난 실적인 양, 언론에 홍보를 해댔다. 애당초 진주문화관광재단 설립을 반대했던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이후, 민간 영역의 적지 않은 사업들이 실적에 눈이 먼 진주문화관광재단이라는 블랙홀에 무차별적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진주문화예술재단의 핵심사업인 ‘대한민국 등 공모대전’도 진주문화관광재단이 사실상 강탈했다. 애초에 사업 수행의 노하우 여부 따위는 문제 삼지 않았다. 진주문화예술재단으로부터 사업을 빼앗아 진주문화관광재단의 실적을 채우는 것이 더 우선이었다. ‘진주시가 하라는데 어쩔 수 없다’는 비겁한 변명을 해서는 안된다. 아닌 건 아닌 것이다. 민간재단 사업을 빼앗아 제 살 찌우라고 만든 진주문화관광재단이 아니다.진주남강유등축제 초혼점등의 하이라이트인 ‘불꽃 놀이’와 ‘드론 쇼’도 올해부터 진주문화관광재단이 차지했다. 예산권을 쥔 진주시가 예산을 넘겨 주자 진주문화관광재단은 덥썩 물었다. 이러한 진주시의 독단적인 정책 결정이 지역 문화예술계에 미칠 악영향을 알면서도 진주문화관광재단은 모른 척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침묵은 암묵적 동의이며, 사실상 공범이다. 이런 일이 계속된다면 향후 진주문화관광재단의 존재 필요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는 핵심적인 이유가 될 것이다.특히 진주문화관광재단이 진주공예인협회의 민간 보조금 예산 전액을 가로챈 사실은 충격적이다. 오직 진주문화관광재단의 성과를 위해 민간 단체의 예산을 사실상 강탈한 것이다. 더군다나 사업 추진 과정에서 불거진 불협화음과 공동사업 추진 약속을 내팽개친 진주문화관광재단의 모습은 ‘문화 권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진주문화관광재단에 대한 지역사회의 지적이 쏟아지자, ‘어느 날 갑자기 진주에 정의로운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는 비아냥이 내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재단운영에 대해 지적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거친 항의를 하는 등 불편한 심기를 굳이 감추려 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진주문화관광재단의 태도에 최근 지역의 문화예술단체들은 눈치를 보며 납작 엎드리고 있다. 진주문화관광재단이 어느새 ‘갑 중의 갑(甲)’ ‘옥상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알고 있다면 다행이지만, 모른다면 정말 문제이다. 현재로선 이러한 모습이 바로 진주문화관광재단이다. ‘범(虎) 같은 정의’가 필요한 이유는 차고 또 넘친다.
- 2024-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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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황경규/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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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평론 누구나 다 아는 논개, 아무나 모르는 논개
누구나 다 아는 논개, 아무나 모르는 논개 진주 출신 고 이형기 시인은 ‘정신(精神)은 그것이 정신인 줄 아는 사람에게 있어서만 정신이 된다’라고 했다. 달리 표현하자면 ‘역사(歷史)는 그것이 역사인 줄 아는 사람에게 있어서만 역사’가 되는 이치와 같다. ‘대한민국 누구나 다 잘 아는 논개이지만, 정작 아무나 모르는 논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이유이다. 이른바 논개 담론의 역사에는 해묵은 논란들이 여전히 진행중이다. 임진왜란 당시 순국한 장수들은 충렬(忠烈)의 이름을 얻었고, 논개는 조선왕조로부터 의기사(義妓祠)라는 사당을 받으면서 의기(義妓)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하지만 충렬로 나라의 승인을 받은 논개는 시대를 거치면서 의기(義妓)에서 후처(後妻)로, 충신(忠臣)에서 열녀(烈女)로 격하되고 각색되는 역사변형의 과정을 거쳐 이제는 ‘누구나 다 아는 논개’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논개 담론의 핵심은 ‘짓밟힌 나라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몸을 던진 한 어린 여인의 정당한 분노’로 정의된다. 근데 ‘천민과 양반’ ‘기생과 부인’과 같은 논개 담론의 곁가지만 붙들고 의미 없는 논란만 지속적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논개의 순국이 의미하는 메시지’에 대한 끊임없는 사유화 욕심이다. 다산 정약용은 ‘진주의기사기(晋州義妓祠記)’라는 글에서 논개 순국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보잘것없는 한 여자가 적장을 죽여 보국(報國)을 하였으니, 군신(君臣)간의 의리가 환히 하늘과 땅 사이에 빛나서, 한 성에서의 패배가 문제 되지 아니했다. 이 어찌 통쾌한 일이 아닌가.’ 논개의 신분과 출생 관련 논란의 시작점이자, ‘누구나 다 아는 논개이지만, 아무나 모르는 논개’로 전락하게 된 진짜 이유가 여기에 있다.언론, 칼럼, 소설, SNS에도 ‘누구나 다 아는 논개’가 활개 치고 있다. S 신문의 기사를 소개한다. ‘논개는 기생이 아니었다. 양반 가문의 규수였고 의병을 일으킨 최경회의 아내였다.’ 반론을 하고 싶다. 조선 영조는 논개에게 의로운 기생을 모시는 사당이라는 의미의 ‘의기사(義妓祠)’를 내렸다. 이것이 바로 ‘아무나 모르는 논개’의 본질이다.금기(禁忌)라는 말이 있다. ‘마음에 꺼려서 하지 않거나 피하는 것’을 말한다. 논개는 ‘나라를 위한 충절’을 대표하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여인상이다. 따라서 논개에 있어서 금기시되는 것은 ‘역사적 근거가 담보되지 않는 신분과 출생에 대한 무분별한 논개에 대한 기록’이다. 특히 의기 논개의 역사적 현장인 의기사와 의암이 있는 진주에서는 더욱 금기시된다. 진주문화관광재단이 운영하는 ‘진주관광’이라는 공식 블로그 ‘진주역사’에 논개 관련 글이 두 편이 게시되어 있다. ‘의암바위 전설, 논개 설화. 진주성에서 만나 본 논개’와 ‘논개(포토 툰) 논개이야기’이다. 이 글을 보면 의기 논개는 ‘의로운 기생’이 아니라 ‘장수군 주촌면 양반가에서 태어난 최경회의 후실’로 정의되어 있다. 역사적 오류도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여과 장치 없이 이 글을 게재한 진주문화관광재단에 일차적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전문성이 있었더라면 애초에 이런 일이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일각의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수정, 삭제 등의 일련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진주시가 동일한 사안에 대한 지적이 제기되자 마자 홍보영상을 즉각 삭제 조치한 것과 비교된다. 의기 논개와 관련한 진주시와 진주문화관광재단의 생각과 태도가 서로 다르다고 해석할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과연 누구의 태도가 옳은가? 진주시인가? 진주문화관광재단인가?‘정신(精神)은 그것이 정신인 줄 아는 사람에게 있어서만 정신이 된다’고 이형기 시인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 2024-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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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황경규/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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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8

주간평론 진주대첩광장과 고 노무현 묘역의 박석
진주대첩광장과 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의 박석 김해시 봉화마을에 있는 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에는 글귀가 새겨진 얇고 넓적한 바닥 각인석이 있다. 바로 박석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박석 하나 하나에 국민들이 직접 쓴 글이 새겨져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애도하는 국민들의 존경, 사모, 사랑을 담은 메시지들이다. 박석에 새겨진 문구 몇 개를 소개한다. 가장 바보였기에 오히려 위대했던 분’ 당신 국민이어서 행복합니다.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노짱 영원한 대통령. 우리는 박석에 새겨진 글귀를 통해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의 삶을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다. 진주대첩광장에도 박석이 있다. 진주대첩을 이룩한 1592년을 기념하고자 1592개의 박석에 시민들의 메시지를 담았다. 진주대첩은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이자, 진주정신을 상징하는 자랑스런 진주의 역사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진주대첩광장 박석에 새겨진 문구 몇 개를 소개한다. 강의 도시 부강 진주.K-기업가 정신의 산지.진주 르네상스 포용도시로 비상하라. 세계를 주도한 부강한 진주의 기적을 행복한 시민이 일궈 나가요. 박석에 새겨진 글귀에서 과연 진주대첩을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진주대첩이 가진 과거, 현재, 미래의 역사적 가치를 일거에 오염시키는 폭거에 가깝다. 진주대첩광장의 모든 박석에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는 건 물론 아니다. 대부분의 박석에는 ‘3천이 3만을 이긴 7일의 전투’ ‘4백 년 전 그날의 함성’ 등 진주대첩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긍지를 담은 메시지가 새겨져 있다. 박석을 통해 ‘나라 없는 겨레 없고 겨레 없는 나라 없다’는 충의 하나로 피에 굶주린 섬 오랑캐에 치욕스런 패배를 안겨준 청사에 빛나는 진주대첩의 그날을 기억해 내기에 충분하다. 그나마 다행이다. 진주시의회가 진주대첩광장에 조성된 박석의 문구를 조사했다. 진주대첩의 역사와 충절 관련 문구 이외에 진주 관련 문구 361개, 기업가정신 관련 문구 50개, 기적 관련 문구 178개, 하모 관련 문구 21개, 우주항공 관련 문구 180개 등 모두 790개의 문구가 진주대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문구였다. 이러한 글귀가 새겨지게 된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주시의 진주대첩광장 바닥재 각인 문구 공모 과정과 의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진주시는 진주의 기적을 3종류로 분류했다. 진주시 제1의 기적인 진주대첩 승전과 제2의 기적인 K-기업가 정신, 그리고 제3의 기적이 될 우주항공산업 도시로 비상할 진주시의 도약을 표현하는 상징적 문구가 공모 주제와 내용이다. 진주대첩에 K-기업가정신과 우주항공도시를 억지로 포함시키는 이른바 역사 끼워 팔기 시도로 여겨진다. 특히 K-기업가정신이 진주의 기적이라는 논리의 비약은 충격적이다. 진주대첩이 진주시민이 이루어 낸 기적이라는 사실에 누구도 반대의견을 내기 어렵다. 근데 진주시의 시책에 불과한 K-기업가정신을 진주의 기적으로 규정하고 역사화 시키는 행위는 납득하기 어렵다. 역사 앞에 부끄러운 일이면서 진주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기에 그렇다. 역사의 사유화 시도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진주대첩은 공적 자산이다. 공적 자산을 비역사적 혹은 비공익적인 용도로 사사롭게 사용하는 것은 형법상 횡령·배임 행위와 다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주대첩광장 조성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역사회의 지적에 대해 진주시는 우주항공도시와 기업가정신이 진주대첩과 맞먹는 기념비적인 일이며 시민 공모를 했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명백한 진주 역사의 왜곡이자, 궤변 중의 궤변이 아닐 수 없다. K-기업가 정신과 우주항공산업이 어떠한 역사적 가치 측면에서 진주대첩과 동등한 역사적 지위를 갖는다는 것인가? 이는 심각한 역사 왜곡이다. 진주시의 주장은 진주대첩광장에 진주시정 슬로건을 박제화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천년 진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왜곡한 부끄럽고 한심한 역사로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고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의 박석에는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의 삶이 온전히 담겨 있다. 반면에 진주대첩광장의 박석에는 진주대첩에 대한 시민들의 애정 어린 메시지와 진주시의 시정 구호가 마구 뒤섞여 있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진주대첩의 역사를 기리는 공간인지, 진주시정을 홍보하는 공간인지 알 길이 없다. 역사의 지나친 신성화도 경계해야 하지만, 역사의 사유화 비판을 초래하는 행위 역시 극히 삼가야 한다. 역사를 과도하게 사유화하고, 그것을 통해 토호처럼 이익을 편취하려는 시도에 대해 류 근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역사를 사유화한 권력과 기득권의 말로가 어찌 되는지 역사는 다 알고 있다. 진주대첩광장 조성과 박석 논란에 대처하는 진주시의 자세가 참으로 공의롭지 못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 2024-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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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규/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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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평론 주류 혹은 비주류로 사는 법
주류와 비주류로 사는 법 영화 암살에서 독립군(獨立軍) 안옥윤이 묻는다. ‘왜 동지를 팔았나?’ 밀정(密偵) 염석진이 고해성사하듯 대답한다. ‘몰랐으니까, 해방될지 몰랐으니까, 알면 그랬겠나?’ 안옥윤이 권총을 겨누며 차갑게 말한다. ‘16년 전 임무, 염석진이 밀정이면 죽여라. 지금 수행합니다.’ 밀정 염석진은 그렇게 역사의 심판을 받는다. 청부살인업자 하와이 피스톨이 안옥윤에게 묻는다. ‘강인국과 가와구치 둘만 죽이면 독립이 되는가?’ 안옥윤이 답한다. ‘모르지. 근데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 돈 때문에 뭐든지 하는 당신처럼 살 수는 없잖아.’ 하와이 피스톨은 목숨을 걸고 안옥윤을 구한다.영화 암살은 주류와 비주류로 사는 법에 대해 질문하고 답한다. 광복이라는 희망을 품고 살던 사람들 중 일부는 무기력감과 현실 순응이라는 핑계로 친일파라는 당시로서는 주류의 길을 걷기도 하고, 광복의 희망을 끝끝내 부둥켜안고 독립군이라는 비주류의 삶을 선택하기도 했다. 근데 후일 역사는 평가한다. ‘시대의 흐름만 쫓다가 역사의 흐름을 놓치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된다. 시대는 잘못된 선택을 해도 역사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 역사는 ‘광복’을 통해 비주류의 삶이 옳았음을 증명해 냈다.홀로코스트의 실무책임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은 재판에서 ‘나는 신 앞에서는 유죄라고 느끼지만, 법 앞에서는 아니다.’고 강변했다. 자신의 행위는 오직 국가적 공식 행위였으며, 맡은 바 책임을 다했기에 무죄라는 것이다. 재판을 지켜본 독일계 정치이론가인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유대인 학살 행위가 관료의 출세욕이라는 너무나 평범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악이란 특별히 악한 존재 혹은 악한 무언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개인의 무사유(無思惟)에서도 비롯될 수 있다.’ 여기서 천망회회(天網恢恢)라는 구절을 떠올리게 된다. ‘하늘의 그물은 크고 넓어 엉성해 보이지만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역사의 그물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나 하나 낱낱이 역사에 기록한다. 절대로 역사를 경원시(敬遠視)해서는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주류와 비주류의 갈림길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시대를 살고 있다. 매 순간 주류와 비주류의 길을 고민하게 만든다. 잔인한 일이다. 비주류이기를 강요하는 일도 당연시되고 있다. 이른바 백성을 그물질하고 있는 시대이며, 맹자가 말한 망민(罔民)이 바로 이것이다. 백성들의 생업을 빌미로 법과 제도를 이용해 ‘주류와 비주류’로 가르는 것이 바로 ‘백성을 그물로 잡아들인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프랑스의 비평가이자, 행동하는 지식인의 상징인 에밀 졸라는 이렇게 말했다. ‘진실이 땅에 묻히면 그것은 조금씩 자라나 엄청난 폭발력을 획득하며, 마침내 그것이 터지는 날 세상 모든 것을 날려 버릴 것이다.’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것은 역사(歷史)와 정의(正義)의 가치를 믿는 시민들의 힘에 기초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의미이다.영화 밀정에서 안옥윤과 염석진의 삶이 달랐던 이유는 ‘시대와 역사를 판단하는 가치관의 차이’ 때문이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를 거부하고 기꺼이 광복이라는 역사의 정의를 선택한 비주류 안옥윤과 시류에 편승해 친일파라는 주류의 길을 선택한 염석진의 삶이 서로 다른 결과를 초래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주류와 비주류로 사는 법은 의외로 간단할지 모른다. 역사가 가리키는 길을 따라 걸으면 된다. 혹시 그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스스로를 돌아보면 된다. 주류인지, 비주류인지 선명히 보일 것이다. 그리고 영원한 주류와 비주류도 없다.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진주대첩광장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 2024-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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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규/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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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평론 진주시의회가 나서지 않는 이유
진주시의회가 나서지 않는 이유 구부러진 판자를 바르게 펴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반듯한 판자를 그 위에 올려놓으면 된다. 한 장으로 부족하면 여러 장을 포개면 된다. 조금 시간이 걸릴지라도 언젠가는 반듯하게 펴진다. 공자님 말씀이다. 비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성급하게 판단할 필요도 없다. 사실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최대 4년 주기로 구부러진 판자는 빼서 갖다 버리기도 한다. 유권자가 가진 힘이다.지방자치제의 가장 큰 폐해는 ‘지방의회와 행정의 사유화’이다. 강준만 교수가 그의 책 『지방은 식민지이다』에서 한 말이다. 선거 과정에서 동원된 지연·학연·동향·측근 인사들에게 특혜를 베풀어 신세를 갚는 방편으로 사용하거나 향후 정치 행보의 기초를 다지는 당연한 과정으로 이해한다. 더 큰 문제는 정치 무대에 등장시켜 준 시민들의 목소리에 정작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름 끼칠 정도로 냉철한 정치적·개인적 이해관계가 그 뒤에 도사리고 있음은 물론이다. 지역사회가 안고 있는 현안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보다는 여론의 비판과 같은 윤리적인 문제로 치환해서 바라보는 인식의 문제도 심각하다. 때로는 권력이 제공하는 달콤함에 젖어 감시와 비판의 기능도 하지 못한다. 안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지방자치에 역행하는 지방의회의 사유화를 근본적으로 치료하기 어렵게 만드는 원인을 스스로 잉태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그게 현실이다. 인간이 주는 먹이에 길들여진 야생동물은 결국 그 야생성을 잃고 애완동물이 되고 만다. 지방의회 사유화의 근절은 막기 어려워도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다. 이른바 지방의회를 포함한 공공영역이 사유화로 인해 탕진되는 것을 막는 것 이상의 큰 개혁은 없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감시와 비판이 이제 진주시의회로 향하고 있다는 점을 지금 인식해야 한다.진주평론이 주최한 ‘진주대첩광장 이대로 괜찮은가’ 전문가 초청 토론회에서 진주시의회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진주대첩광장이 17년 동안 940억 원이라는 시민의 세금이 쓰인 사업임에도 진주시의회가 철저하게 감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감시는 커녕 비판의 목소리를 들은 기억도 거의 없다. 그런데도 진주시의회는 여전히 고개를 주억거리며 여론의 향배만 쫓고 있는 듯하다. 어떤 타이밍을 재고 있는지 알 길도 없다. ‘진주대첩광장에 진주대첩의 역사가 없다.’는 지적에 집중해야 한다. 진주대첩계사순의로 순국한 조상의 영령을 위무하는 ‘추모광장(追慕廣場)’을 없애 버리고, 그 자리에 콘크리트 공연장을 대신 세웠다. 그래 놓고 ‘진주대첩’이라는 명칭을 부끄럼없이 사용하고 있다. 지금의 진주대첩광장 조성 사업이 과연 진주성의 역사적 가치와 진주대첩에 빛나는 진주정신을 과연 담고 있는지에 대한 원론적인 의문이 드는 이유이다. 진주시민들은 진주시의회의 입장에 대해 궁금증을 갖고 있다. 근데 진주시의회 전체 의원의 절반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도시환경위원회가 나서서 입장표명을 했다. 아마 전체 의원들의 의견 조율에 실패했을 것이다. 집행부의 눈치를 보며 망설이거나 입장조차 낼 배짱이 없는 의원이 여전히 수두룩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진주시의회의 현주소이다.물론 의원 개개인의 입장 표명에 대한 권리는 정당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권리가 막연하게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단 한 명이라도 진주시민의 요구가 있다면 최소한 권리보다는 책임을 다하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것이 진주시의회의 본질이고, 진주시의회 의원의 의무이다. 시민들에게 구부러진 판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은 물론이다. 진주대첩광장에 반대의견을 내라고 종용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혹여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도 있는 비생산적인 논란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라도 진주시의회가 나서 해결의 물꼬를 터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 진주시는 진주대첩광장의 공정율을 이유로 ‘진주시민토론회’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다. 물론 이해한다. ‘진주시민설문조사’를 통해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할 의사도 보이지 않는다. 그 또한 이해된다. 하지만 사전에 토론회나 설문조사를 실시해 시민의견을 수렴했더라면 시민들의 반발이 이처럼 크지 않았을 것이다. 진주시 최대의 실수이자, 오판임을 향후 진주역사가 증명해 줄 것이다.근데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은 감시와 비판의 기능을 수행해야 할 진주시의회가 이런 상황에서 입 다물고, 외면하고, 고개를 돌려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진주시의회가 적극 나서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판자의 교체 시기만 앞당길 뿐이라는 시민들의 따끔한 지적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진주에서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 역시 ‘강 건너 불구경’하다가 제 옷에 불이 옮겨 붙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만약 선거 철새라는 비판을 듣고 싶지 않다면 목소리를 내는 것이 현명한 태도일 수 있다.특히 진주시의회와 직접적인 소통 채널을 갖고 있는 진주지역 국회의원들의 관심도 촉구한다. 여러 곳에 의견을 묻고 있는 차에, 서울 지인이 전화가 왔다. 격앙된 진주 사투리로 이렇게 말했다. ‘국회의원 한테 일러 바쳐삐라.’ 잠시였지만 참으로 부끄러웠던 시간이었다.
- 2024-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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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황경규/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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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평론 성심당(聖心堂)과 실크테라(SILKTERA)
성심당(聖心堂)과 실크테라(SILKTERA)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3대 빵집이 있다. 군산 이성당, 순천 화월당, 대전 성심당이다. 군산 이성당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이며 순천 화월당, 대전 성심당과 함께 대한민국에서 보기 드문 먹거리 관련 백년 기업 중 한 곳으로 꼽힌다. 더불어 이들 3대 빵집은 지역을 대표하는 향토기업이자, 지역민이 사랑하는 문화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성심당(聖心堂)은 대전 대흥동성당에서 원조받은 밀가루 두 포대로 대전역 앞에 천막을 치고 찐빵집을 시작했다. 배고픈 사람들과 찐빵을 나누면서 ‘평생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살겠다’고 약속한 성심당은 대한민국 제과업계를 대표하는 대전의 향토기업이자, 자부심이 되었다. 군산 이성당(李盛堂)은 가게 앞 좌판 할머니에게 공간과 빵을 제공하는 ‘나눔’을 실천하면서 군산의 자랑이자, 명소가 되었다. 순천 화월당 역시 기업의 역사만큼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에 진심이었다. 대한민국 3대 빵집이라는 명성과 위상을 얻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실크(SILK)는 진주(晋州)의 자랑이다. 실로 10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한때는 세계 5대 실크 주산지였다. 실크 산업의 쇠퇴일로 이전까지 진주는 ‘대한민국 실크의 대명사’ 그 자체였다.실크 산업의 부활과 저변확대를 위한 대대적인 투자가 이루어졌다. 진주 실크 전시회, 실크 패션쇼, 디자인 경진대회와 ‘실크융복합전문단지’ 조성에 이어 최근에는 ‘진주실크박물관’ 건립도 추진되고 있다. ‘진주 실크 재건 의지’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진주 실크 산업은 좀체 기지개를 펴지 못하고 있다. ‘실크=의류’라는 전통적 범주와 인식에서 탈피하기도 어려웠다. 실크 산업의 다변화로 이른바 ‘먹는 실크’라는 최신 트랜드가 등장했다. 대표적인 것이 ‘실크 커피(SILK COFFEE)’와 ‘실크테라(SILKTERA)’이다. 정작 문제는 이들 ‘먹는 실크’가 ‘진주 실크산업 부흥의 모멘텀’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과연 ‘진주 실크의 미래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 볼 문제라는 의미이다. 진주 실크 산업의 핵심 공간인 ‘실크융복합전문단지’에 뽕잎가루가 들어간 빵과 음료를 만드는 ‘실크테라(SILKTERA)’가 입주했다. ‘뽕잎을 실크로 볼 수 있는가’라는 논란을 제쳐두더라도 ‘실크=견직물’이라는 경계를 허문 새로운 시도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근데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드러난 진주시민들의 인식은 전혀 아니다. ‘진주 실크의 새로운 도전’이 아니라 ‘진주 핫플, 정원이 있는 초대형 신상카페’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실크테라에 정작 실크가 보이지 않는다’ ‘커피와 빵을 파는 카페가 실크융복합전문단지에 입주 가능한가’라는 시민들의 지적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크테라의 입주를 허가한 진주시 역시 ‘과연 진주 실크 산업의 미래가 맞는가’ ‘차라리 카페를 하지, 앞으로 누가 견직 제조업을 하겠는가’라는 지적에 대해 진주실크의 미래가 명확하게 담보된 책임있는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진주 실크의 미래를 위한 진주시의 선택이 옳았음이 머지 않은 시간에 증명되어야 할 것이다. 진주 실크 산업 다변화의 선두주자로 평가받고 있는 실크테라가 ‘신상 초대형 진주 핫플 카페’가 아니라 전주 이성당, 순천 화월당, 대전 성심당과 같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빵집으로 성장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더불어 '합법(合法)을 가장한 불법(不法)이다' ‘특혜 아니냐’ ‘진주의 전통 실크 산업을 이용한다’는 비판적인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는 자세를 가졌으면 한다. 실크테라 스스로 언론을 통해 ‘진주 실크 산업의 부흥’을 분명히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진주 실크에 대한 진주사람들이 가진 애정은 상상초월이다.
- 2024-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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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황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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