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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평론

주간평론(2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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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평론 진주성 원형 찾기

진주성은 진주 미래 100년을 책임질 소중한 자산 중의 하나이다. 진주성에 녹아 있는 천년 역사의 흔적과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성곽 문화자원을 발굴·활용한 관광자원 개발의 가능성은 무한대이다. ‘진주성을 활용한 진주 관광 미래 100년 마스트 플랜의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지역사회의 주장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옛 진주성의 온전한 모습을 찾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진주성은 조선시대 고지도에 그 형태가 표기돼 있지만 현재는 내성(內城)만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대사지 매립을 시작으로 1930년대 중·후반에 이르러 진주성 외성(外城)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도시화를 위해 성벽을 허문 자리에는 근대식 건물이 들어섰고, 대사지는 외성의 성벽으로 채워졌다. 그렇게 진주성 외성은 무려 9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땅 속에 묻힌채, 기억에서 잊혀지고 있다. 진주성 외성의 복원이 대전제가 되어야 한다. 다만 도심 속 건물에 파묻혀진 외성의 복원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우선 진주성 외성 찾기가 그 대안이 될 것이다. 현재 진주성 외성의 위치를 확인하는 방법은 조선 후기에 제작된 각종 고지도와 진주시 지적원도 등의 각종 자료를 통해 추정할 수 있다. 진주성 외성의 위치를 찾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건축가와 역사·문화 분야 자원봉사자로 이루어진 진주성 외성 찾기팀을 구성했다. 사업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의미있는 일이라는데 뜻을 모았다. 진주시도 진주성 외성 찾기의 필요성에 동의했다. 올해 안으로 도심 속 땅에 파묻힌 진주성 외성의 위치를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존의 연구성과물을 바탕으로 세밀한 측량작업 등을 통해 진주성 외성의 위치를 특정함과 동시에 동문(東門)과 동장대(東將臺), 북문(北門) 등 외성을 구성하고 있는 성곽 문화자원의 발굴로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 더불어 진영못으로 불렸던 대사지의 정확한 위치의 특정과 진주객사, 진주목관아, 향청 등 진주의 읍치를 구성했던 건물에 대한 조사작업도 병행해야 한다. 진주성 외성 찾기는 향후 복원을 전제로 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진주성 외성 찾기에만 그쳐서는 안된다. 현 진주성 내성에서 외성까지 성곽길을 따라 가는 진주성 성곽 투어와 진주객사, 진주목관아 등 주변의 역사 문화자원을 활용한 새로운 도심여행 코스 개발 등과 같은 역사관광자원화까지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특히 진주성 성곽 투어는 진주성 외성 공간인 본성동, 동성동, 장대동, 중안동 등 원도심과 중앙시장을 살리는 기폭제가 됨과 동시에 성북동·칠암동·중안동에서 추진되고 있는 도시재생사업과의 연계개발을 통해 진주성을 중심으로 한 경남관광 허브로 부상시킬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진주성 성곽 문화자원을 활용한 성곽 투어는 무궁무진한 관광스토리와 코스개발의 가능성이 높아 진주성이 가진 관광자원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일이 될 것이다. 진주성 외성 찾기에 이어 진주성 성곽 탐방 종합 정보 플랫폼 구축은 물론 진주성 성곽 종합 가이드 북 제작, 진주성 성곽 스마트폰 앱 개발 등 진주성 성곽 투어를 위한 관련 관광정보 제공을 위한 준비작업도 병행해야 한다. 성곽 투어가 단순히 성곽 라인만 안내하는 방식으로는 지속적인 탐방이 이어지기 어렵다. 따라서 성곽 주변 지역과 연계된 먹거리·볼거리·즐길거리가 포함된 코스 개발과 성곽 인근 관광자원과 연계된 성곽 투어 프로그램 개발도 중요하다. 진주성 외성 찾기는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진주성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회복하는 일임과 동시에 진주 관광 미래 100년을 책임지는 마스트 플랜을 세우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진주성 외성 찾기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다.

  • 2024-06-25
  • 작성자

    황경규/발행인

  • 조회수

    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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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평론 진주 역사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외면하면 편해지고, 순응하면 쉬워진다. 그냥 흘러 가는대로 가만히 내버려두면 사실 신경 쓸 일도 별로 없다. 대신 간섭하면 피곤해지고, 지적하면 손가락질 받는다. 당장 먹고 사는 일과 상관없는 일에 일일이 핏대를 세웠다가는 ‘꼰대’가 되기 십상이다. 시비(是非)를 가리기보다 이해(利害)만을 따지는 세태가 만든 풍경이다. 정의(正義)는 사회나 공동체를 위한 옳고 바른 도리를 말한다. ‘정의는 살아있다.’라는 강렬한 외침은 늘 가슴을 뜨겁게 하지만, ‘정의는 죽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표현에 다름 아니다. 만약 이 땅에 정의가 엄연히 살아있다면, 굳이 정의의 생존여부를 따지고 외칠 필요가 없기에 그렇다. 진주역사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도 마찬가지다. ‘진주는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역사도시이다’라는 주장의 이면에 도사린 ‘역사도시 진주’의 현실과 냉정하게 마주해야 한다. 현재 우리가 역사도시라는 명성에 걸맞는 진주를 만들어 가고 있는가에 대해 자문자답해야 한다는 뜻이다. 적어도 지금은 진주역사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후한 점수를 주기는 어려울 것 같다. 대안이 필요하다. 진주역사를 오롯이 담아내는 그릇을 만들어야 한다. 진주만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 문화유산인 진주정신을 담아내고, 천년 역사도시 진주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채워나가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분명 힘들고 쉽지 않은 일임에 분명하다. 속된 말로, ‘돈 되는 일’도 아니다. 시간도 오래 걸릴뿐더러, 단기간에 확연한 성과를 낼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오래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온 지역사회의 요청에 바탕을 두고 있다. 진주학(晋州學)이 바로 그것이다. 진주학은 진주의 지리나 역사, 문화 등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으로, 역사·문학·철학·지리·사회·건축·도시조경 등 분야간 연계 연구를 통해 조명하는 융합학 성격을 지니는 학문분야이다. 진주학이 가지는 최우선 가치는 역사도시 진주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담보하는 공간을 창출해 내는데 있다. 그리고 이 공간을 바탕으로 진주역사가 갖고 있는 다양한 가치를 확대 재생산해 지역사회에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진주학은 지역주민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은 물론 지역의 특화된 발전 방향을 찾아내는 근거가 된다. 동시에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초자료도 제공할 수 있다. 더불어 지역 브랜드로 기능할 상징 및 상품을 생산할 수 있는 자원이 되어 산업과 관광진흥에도 도움이 된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 연구에 눈을 뜨고 집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진주시도 진주학 수립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인문도시진주경상국립대학교사업단과 진주학 수립을 위한 용역에 이어 간담회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진주학 정립을 위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이다. 반가운 일이면서 한편으로는 걱정도 앞선다. 현 한국 지역학이 갖고 있는 한계를 뛰어넘어야만 온전한 진주학의 정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역학의 제도 정비와 지역학 연구기관의 개선, 지역주민의 참여와 수요창출, 지역학의 다양한 활용방안 모색, 지역학 관련 주체들의 협력 등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특히 지방자치단체 소속 지역학 연구기관들이 직면하고 있는 지속가능성 등의 현안문제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해법이 제시되는 진주학이 반드시 수립되기를 희망하고 또 희망한다. 진주학은 새로운 천년 진주 역사를 준비하는 우리의 자세를 평가하는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 2024-06-25
  • 작성자

    황경규/발행인

  • 조회수

    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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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평론 침묵 혹은 외면

세상이 어지러우면 악덕 무당이 판친다. 제법 괜찮다는 길목엔 천지인을 상징하는 삼색천을 매단 대나무를 대문간에 세워두고 안방엔 신당을 차린다. 소위 신군(神君)을 자처하는 그들은 세상 살이 다급한 민초를 대상으로 혹세무민한다. 그리고 마치 세상 사람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판관처럼 행세한다. 보편적 인식이 그렇다는 말이다. 비단 무당에만 그치지 않는다. 조폭도 마찬가지이다. 이른바 ‘패밀리’의 머릿수가 곧 ‘힘’인 이들은 ‘대부’의 그늘에서 복종하다가 ‘틈’만 보이면 주인을 무는 ‘들개’로 둔갑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각 조직의 우두머리들은 ‘분배’에 힘쓰면서 ‘절대 권력’을 유지한다. 이 과정에서 힘없는 소시민들은 그들의 먹잇감이 된다. 영화 같은 간접 경험에서 그려지는 이미지이다. 무당과 조폭은 ‘바퀴벌레’ 못지않은 생명력을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세상이 하수상하면 어느새 등장해 활개를 친다. 시중에 파는 ‘홈*퍼’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벌레 퇴치약을 쉼 없이 뿌려대면 사라질 거라는 희망은 애당초 갖지 않는 것이 맘 편하다. 그들만의 생존방식의 근저에 ‘금전과 권력’이 있기에 그렇다.근데 참으로 맘대로 되지 않는 게 ‘돈과 권력’이다. ‘돈’은 쫓는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고, ‘권력’은 잡았다고 늘 곁에 있는 게 아니다. 돈을 쫓아다니다 넘어지고, 권력을 행사하다가 코가 깨진다. 돈과 권력은 그런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실감 나게 경험하고 있지 않는가. 돈과 권력을 쫓는 자(者)들의 말로(末路)를 말이다. 돈과 달리 권력(權力)은 전 분야를 막론하고 사회악의 근원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권력은 멀쩡한 사람의 뇌를 바꾼다’는 전문가의 진단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더불어 ‘침묵’은 권력의 최후 무기이며, 힘을 가진 자만이 말할 권리와 말하지 않을 권리를 독점하는 것이 ‘침묵의 법칙’이기도 하다. 그래서 유불리(有不利)에 따라 침묵은 권력의 유용한 도구로 긴요하게 사용되어 왔다. 오늘날 불합리한 일부 행정을 경험하면서 무당과 조폭을 떠올리는 건 사실 무리수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의식이 정착된 이 시대에 행정=무당=조폭이라는 등식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무한대의 비난과 질타를 받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어떤 분야이든간에 시민들은 안중에 두지 않고 아주 조금이라도 독선의 길을 걷고 있다면 혐의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서론이 길었던 이유는 다시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 주차장에 관한 문제 제기를 하기 위해서이다. 지역사회와 시민들이 수 년 동안 부족한 주차장 대책을 수없이 읍소한 것도 모자라, 도의회 차원에서도 문제 제기를 했다. 근데 경남도는 ‘침묵’하고 있다. 과거 인근 학교 운동장을 대안으로 내놨지만 ‘봉합은 해법이 아니다’라는 사실만 재차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주차는 이용하는 분들이 그냥 알아서 하세요’라고 오해할 만한 ‘외면’만이 있을 뿐이다.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에 공연이 있는 날이면 부족한 주차장으로 인해 관람객들의 불평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주변을 아무리 돌아도 주차할 곳은 없다. 그러니 불법 주차는 물론이고, 거의 도로 한 가운데 세우고 공연장으로 뛰어 들어간다. 상황이 이런데도 경상남도는 ‘침묵’하고 있다. 이제는 경상남도에 ‘부족한 주차장 대안을 마련해 달라’는 요구 자체는 의미가 없지 싶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침묵’ 또는 ‘외면’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대신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을 이용하시는 관람객들에게 이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듣고 싶다. ‘과연 경남문화예술회관의 주차장 이용에 만족하십니까?’ ‘침묵’과 ‘외면’이 시민을 상대로 사용하는 절대 권력의 도구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 2024-06-25
  • 작성자

    황경규/발행인

  • 조회수

    1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