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규/발행인
2024.06.25 PM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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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하면 편해지고, 순응하면 쉬워진다. 그냥 흘러 가는대로 가만히 내버려두면 사실 신경 쓸 일도 별로 없다. 대신 간섭하면 피곤해지고, 지적하면 손가락질 받는다. 당장 먹고 사는 일과 상관없는 일에 일일이 핏대를 세웠다가는 ‘꼰대’가 되기 십상이다. 시비(是非)를 가리기보다 이해(利害)만을 따지는 세태가 만든 풍경이다.
정의(正義)는 사회나 공동체를 위한 옳고 바른 도리를 말한다. ‘정의는 살아있다.’라는 강렬한 외침은 늘 가슴을 뜨겁게 하지만, ‘정의는 죽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표현에 다름 아니다. 만약 이 땅에 정의가 엄연히 살아있다면, 굳이 정의의 생존여부를 따지고 외칠 필요가 없기에 그렇다.
진주역사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도 마찬가지다. ‘진주는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역사도시이다’라는 주장의 이면에 도사린 ‘역사도시 진주’의 현실과 냉정하게 마주해야 한다. 현재 우리가 역사도시라는 명성에 걸맞는 진주를 만들어 가고 있는가에 대해 자문자답해야 한다는 뜻이다. 적어도 지금은 진주역사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후한 점수를 주기는 어려울 것 같다.
대안이 필요하다. 진주역사를 오롯이 담아내는 그릇을 만들어야 한다. 진주만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 문화유산인 진주정신을 담아내고, 천년 역사도시 진주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채워나가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분명 힘들고 쉽지 않은 일임에 분명하다. 속된 말로, ‘돈 되는 일’도 아니다. 시간도 오래 걸릴뿐더러, 단기간에 확연한 성과를 낼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오래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온 지역사회의 요청에 바탕을 두고 있다. 진주학(晋州學)이 바로 그것이다.
진주학은 진주의 지리나 역사, 문화 등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으로, 역사·문학·철학·지리·사회·건축·도시조경 등 분야간 연계 연구를 통해 조명하는 융합학 성격을 지니는 학문분야이다.
진주학이 가지는 최우선 가치는 역사도시 진주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담보하는 공간을 창출해 내는데 있다. 그리고 이 공간을 바탕으로 진주역사가 갖고 있는 다양한 가치를 확대 재생산해 지역사회에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진주학은 지역주민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은 물론 지역의 특화된 발전 방향을 찾아내는 근거가 된다. 동시에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초자료도 제공할 수 있다. 더불어 지역 브랜드로 기능할 상징 및 상품을 생산할 수 있는 자원이 되어 산업과 관광진흥에도 도움이 된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 연구에 눈을 뜨고 집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진주시도 진주학 수립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인문도시진주경상국립대학교사업단과 진주학 수립을 위한 용역에 이어 간담회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진주학 정립을 위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이다.
반가운 일이면서 한편으로는 걱정도 앞선다. 현 한국 지역학이 갖고 있는 한계를 뛰어넘어야만 온전한 진주학의 정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역학의 제도 정비와 지역학 연구기관의 개선, 지역주민의 참여와 수요창출, 지역학의 다양한 활용방안 모색, 지역학 관련 주체들의 협력 등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특히 지방자치단체 소속 지역학 연구기관들이 직면하고 있는 지속가능성 등의 현안문제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해법이 제시되는 진주학이 반드시 수립되기를 희망하고 또 희망한다.
진주학은 새로운 천년 진주 역사를 준비하는 우리의 자세를 평가하는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진주문화관광재단 정의(正義)를 입에 담으면 ‘참으로 어리석다’는 핀잔이 화살처럼 날아와 박히는 세상이다. 이미 세상이 시비(是非)보다 이해(利害)의 관점에서 판단하는 것이 상습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고작 ‘정의’ 따위가 무슨 의미를 갖느냐는 식이다. 정작 ‘정의’는 사라지고 ‘위선’이 판을 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명 조식은 ‘바른 선비는 범의 가죽과 같다’고 했다. 정의로운 사람을 바른 선비라고 가정한다면, ‘정의는 범(虎)’이라고 전제할 수 있다. ‘범 같은 정의’가 필요한 세상이지만, 정작 세상은 범을 자신의 곁에 두고 싶어 하지 않는다. ‘정의의 발톱’에 자기가 다칠까 두려워서다. 그래서 주변에는 하나같이 하이에나, 여우, 늑대 같은 동물들이 득실대기 마련이다.진주문화관광재단 출범 당시, 지역사회의 기대가 높았다. 문화예술정책 전문성 강화, 체계적인 지원시스템 구축 등을 통해 진주 문화예술계의 미래를 밝혀 줄 것이라는 믿음 또한 충만했다. 근데 현실은 진주의 문화와 관광을 지배하는 공공 권력이 되고 있다는 지적의 연속뿐이다. 몇몇 사례를 들어 본다.‘진주논개제’ 주최 단체가 하루 아침에 진주문화원에서 진주문화관광재단으로 바뀌었다. 진주문화원의 극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공론화 절차는 생략됐고,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민간 단체가 수행하던 사업을 사실상 강탈한 것이나 진배없지만 진주문화관광재단은 아무런 문제 의식없이 당연한 것처럼 여겼다. 그리고는 마치 진주문화관광재단의 엄청난 실적인 양, 언론에 홍보를 해댔다. 애당초 진주문화관광재단 설립을 반대했던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이후, 민간 영역의 적지 않은 사업들이 실적에 눈이 먼 진주문화관광재단이라는 블랙홀에 무차별적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진주문화예술재단의 핵심사업인 ‘대한민국 등 공모대전’도 진주문화관광재단이 사실상 강탈했다. 애초에 사업 수행의 노하우 여부 따위는 문제 삼지 않았다. 진주문화예술재단으로부터 사업을 빼앗아 진주문화관광재단의 실적을 채우는 것이 더 우선이었다. ‘진주시가 하라는데 어쩔 수 없다’는 비겁한 변명을 해서는 안된다. 아닌 건 아닌 것이다. 민간재단 사업을 빼앗아 제 살 찌우라고 만든 진주문화관광재단이 아니다.진주남강유등축제 초혼점등의 하이라이트인 ‘불꽃 놀이’와 ‘드론 쇼’도 올해부터 진주문화관광재단이 차지했다. 예산권을 쥔 진주시가 예산을 넘겨 주자 진주문화관광재단은 덥썩 물었다. 이러한 진주시의 독단적인 정책 결정이 지역 문화예술계에 미칠 악영향을 알면서도 진주문화관광재단은 모른 척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침묵은 암묵적 동의이며, 사실상 공범이다. 이런 일이 계속된다면 향후 진주문화관광재단의 존재 필요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는 핵심적인 이유가 될 것이다.특히 진주문화관광재단이 진주공예인협회의 민간 보조금 예산 전액을 가로챈 사실은 충격적이다. 오직 진주문화관광재단의 성과를 위해 민간 단체의 예산을 사실상 강탈한 것이다. 더군다나 사업 추진 과정에서 불거진 불협화음과 공동사업 추진 약속을 내팽개친 진주문화관광재단의 모습은 ‘문화 권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진주문화관광재단에 대한 지역사회의 지적이 쏟아지자, ‘어느 날 갑자기 진주에 정의로운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는 비아냥이 내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재단운영에 대해 지적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거친 항의를 하는 등 불편한 심기를 굳이 감추려 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진주문화관광재단의 태도에 최근 지역의 문화예술단체들은 눈치를 보며 납작 엎드리고 있다. 진주문화관광재단이 어느새 ‘갑 중의 갑(甲)’ ‘옥상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알고 있다면 다행이지만, 모른다면 정말 문제이다. 현재로선 이러한 모습이 바로 진주문화관광재단이다. ‘범(虎) 같은 정의’가 필요한 이유는 차고 또 넘친다.
황경규/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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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다 아는 논개, 아무나 모르는 논개 진주 출신 고 이형기 시인은 ‘정신(精神)은 그것이 정신인 줄 아는 사람에게 있어서만 정신이 된다’라고 했다. 달리 표현하자면 ‘역사(歷史)는 그것이 역사인 줄 아는 사람에게 있어서만 역사’가 되는 이치와 같다. ‘대한민국 누구나 다 잘 아는 논개이지만, 정작 아무나 모르는 논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이유이다. 이른바 논개 담론의 역사에는 해묵은 논란들이 여전히 진행중이다. 임진왜란 당시 순국한 장수들은 충렬(忠烈)의 이름을 얻었고, 논개는 조선왕조로부터 의기사(義妓祠)라는 사당을 받으면서 의기(義妓)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하지만 충렬로 나라의 승인을 받은 논개는 시대를 거치면서 의기(義妓)에서 후처(後妻)로, 충신(忠臣)에서 열녀(烈女)로 격하되고 각색되는 역사변형의 과정을 거쳐 이제는 ‘누구나 다 아는 논개’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논개 담론의 핵심은 ‘짓밟힌 나라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몸을 던진 한 어린 여인의 정당한 분노’로 정의된다. 근데 ‘천민과 양반’ ‘기생과 부인’과 같은 논개 담론의 곁가지만 붙들고 의미 없는 논란만 지속적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논개의 순국이 의미하는 메시지’에 대한 끊임없는 사유화 욕심이다. 다산 정약용은 ‘진주의기사기(晋州義妓祠記)’라는 글에서 논개 순국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보잘것없는 한 여자가 적장을 죽여 보국(報國)을 하였으니, 군신(君臣)간의 의리가 환히 하늘과 땅 사이에 빛나서, 한 성에서의 패배가 문제 되지 아니했다. 이 어찌 통쾌한 일이 아닌가.’ 논개의 신분과 출생 관련 논란의 시작점이자, ‘누구나 다 아는 논개이지만, 아무나 모르는 논개’로 전락하게 된 진짜 이유가 여기에 있다.언론, 칼럼, 소설, SNS에도 ‘누구나 다 아는 논개’가 활개 치고 있다. S 신문의 기사를 소개한다. ‘논개는 기생이 아니었다. 양반 가문의 규수였고 의병을 일으킨 최경회의 아내였다.’ 반론을 하고 싶다. 조선 영조는 논개에게 의로운 기생을 모시는 사당이라는 의미의 ‘의기사(義妓祠)’를 내렸다. 이것이 바로 ‘아무나 모르는 논개’의 본질이다.금기(禁忌)라는 말이 있다. ‘마음에 꺼려서 하지 않거나 피하는 것’을 말한다. 논개는 ‘나라를 위한 충절’을 대표하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여인상이다. 따라서 논개에 있어서 금기시되는 것은 ‘역사적 근거가 담보되지 않는 신분과 출생에 대한 무분별한 논개에 대한 기록’이다. 특히 의기 논개의 역사적 현장인 의기사와 의암이 있는 진주에서는 더욱 금기시된다. 진주문화관광재단이 운영하는 ‘진주관광’이라는 공식 블로그 ‘진주역사’에 논개 관련 글이 두 편이 게시되어 있다. ‘의암바위 전설, 논개 설화. 진주성에서 만나 본 논개’와 ‘논개(포토 툰) 논개이야기’이다. 이 글을 보면 의기 논개는 ‘의로운 기생’이 아니라 ‘장수군 주촌면 양반가에서 태어난 최경회의 후실’로 정의되어 있다. 역사적 오류도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여과 장치 없이 이 글을 게재한 진주문화관광재단에 일차적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전문성이 있었더라면 애초에 이런 일이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일각의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수정, 삭제 등의 일련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진주시가 동일한 사안에 대한 지적이 제기되자 마자 홍보영상을 즉각 삭제 조치한 것과 비교된다. 의기 논개와 관련한 진주시와 진주문화관광재단의 생각과 태도가 서로 다르다고 해석할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과연 누구의 태도가 옳은가? 진주시인가? 진주문화관광재단인가?‘정신(精神)은 그것이 정신인 줄 아는 사람에게 있어서만 정신이 된다’고 이형기 시인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황경규/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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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대첩광장과 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의 박석 김해시 봉화마을에 있는 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에는 글귀가 새겨진 얇고 넓적한 바닥 각인석이 있다. 바로 박석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박석 하나 하나에 국민들이 직접 쓴 글이 새겨져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애도하는 국민들의 존경, 사모, 사랑을 담은 메시지들이다. 박석에 새겨진 문구 몇 개를 소개한다. 가장 바보였기에 오히려 위대했던 분’ 당신 국민이어서 행복합니다.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노짱 영원한 대통령. 우리는 박석에 새겨진 글귀를 통해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의 삶을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다. 진주대첩광장에도 박석이 있다. 진주대첩을 이룩한 1592년을 기념하고자 1592개의 박석에 시민들의 메시지를 담았다. 진주대첩은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이자, 진주정신을 상징하는 자랑스런 진주의 역사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진주대첩광장 박석에 새겨진 문구 몇 개를 소개한다. 강의 도시 부강 진주.K-기업가 정신의 산지.진주 르네상스 포용도시로 비상하라. 세계를 주도한 부강한 진주의 기적을 행복한 시민이 일궈 나가요. 박석에 새겨진 글귀에서 과연 진주대첩을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진주대첩이 가진 과거, 현재, 미래의 역사적 가치를 일거에 오염시키는 폭거에 가깝다. 진주대첩광장의 모든 박석에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는 건 물론 아니다. 대부분의 박석에는 ‘3천이 3만을 이긴 7일의 전투’ ‘4백 년 전 그날의 함성’ 등 진주대첩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긍지를 담은 메시지가 새겨져 있다. 박석을 통해 ‘나라 없는 겨레 없고 겨레 없는 나라 없다’는 충의 하나로 피에 굶주린 섬 오랑캐에 치욕스런 패배를 안겨준 청사에 빛나는 진주대첩의 그날을 기억해 내기에 충분하다. 그나마 다행이다. 진주시의회가 진주대첩광장에 조성된 박석의 문구를 조사했다. 진주대첩의 역사와 충절 관련 문구 이외에 진주 관련 문구 361개, 기업가정신 관련 문구 50개, 기적 관련 문구 178개, 하모 관련 문구 21개, 우주항공 관련 문구 180개 등 모두 790개의 문구가 진주대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문구였다. 이러한 글귀가 새겨지게 된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주시의 진주대첩광장 바닥재 각인 문구 공모 과정과 의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진주시는 진주의 기적을 3종류로 분류했다. 진주시 제1의 기적인 진주대첩 승전과 제2의 기적인 K-기업가 정신, 그리고 제3의 기적이 될 우주항공산업 도시로 비상할 진주시의 도약을 표현하는 상징적 문구가 공모 주제와 내용이다. 진주대첩에 K-기업가정신과 우주항공도시를 억지로 포함시키는 이른바 역사 끼워 팔기 시도로 여겨진다. 특히 K-기업가정신이 진주의 기적이라는 논리의 비약은 충격적이다. 진주대첩이 진주시민이 이루어 낸 기적이라는 사실에 누구도 반대의견을 내기 어렵다. 근데 진주시의 시책에 불과한 K-기업가정신을 진주의 기적으로 규정하고 역사화 시키는 행위는 납득하기 어렵다. 역사 앞에 부끄러운 일이면서 진주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기에 그렇다. 역사의 사유화 시도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진주대첩은 공적 자산이다. 공적 자산을 비역사적 혹은 비공익적인 용도로 사사롭게 사용하는 것은 형법상 횡령·배임 행위와 다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주대첩광장 조성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역사회의 지적에 대해 진주시는 우주항공도시와 기업가정신이 진주대첩과 맞먹는 기념비적인 일이며 시민 공모를 했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명백한 진주 역사의 왜곡이자, 궤변 중의 궤변이 아닐 수 없다. K-기업가 정신과 우주항공산업이 어떠한 역사적 가치 측면에서 진주대첩과 동등한 역사적 지위를 갖는다는 것인가? 이는 심각한 역사 왜곡이다. 진주시의 주장은 진주대첩광장에 진주시정 슬로건을 박제화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천년 진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왜곡한 부끄럽고 한심한 역사로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고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의 박석에는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의 삶이 온전히 담겨 있다. 반면에 진주대첩광장의 박석에는 진주대첩에 대한 시민들의 애정 어린 메시지와 진주시의 시정 구호가 마구 뒤섞여 있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진주대첩의 역사를 기리는 공간인지, 진주시정을 홍보하는 공간인지 알 길이 없다. 역사의 지나친 신성화도 경계해야 하지만, 역사의 사유화 비판을 초래하는 행위 역시 극히 삼가야 한다. 역사를 과도하게 사유화하고, 그것을 통해 토호처럼 이익을 편취하려는 시도에 대해 류 근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역사를 사유화한 권력과 기득권의 말로가 어찌 되는지 역사는 다 알고 있다. 진주대첩광장 조성과 박석 논란에 대처하는 진주시의 자세가 참으로 공의롭지 못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황경규/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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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와 비주류로 사는 법 영화 암살에서 독립군(獨立軍) 안옥윤이 묻는다. ‘왜 동지를 팔았나?’ 밀정(密偵) 염석진이 고해성사하듯 대답한다. ‘몰랐으니까, 해방될지 몰랐으니까, 알면 그랬겠나?’ 안옥윤이 권총을 겨누며 차갑게 말한다. ‘16년 전 임무, 염석진이 밀정이면 죽여라. 지금 수행합니다.’ 밀정 염석진은 그렇게 역사의 심판을 받는다. 청부살인업자 하와이 피스톨이 안옥윤에게 묻는다. ‘강인국과 가와구치 둘만 죽이면 독립이 되는가?’ 안옥윤이 답한다. ‘모르지. 근데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 돈 때문에 뭐든지 하는 당신처럼 살 수는 없잖아.’ 하와이 피스톨은 목숨을 걸고 안옥윤을 구한다.영화 암살은 주류와 비주류로 사는 법에 대해 질문하고 답한다. 광복이라는 희망을 품고 살던 사람들 중 일부는 무기력감과 현실 순응이라는 핑계로 친일파라는 당시로서는 주류의 길을 걷기도 하고, 광복의 희망을 끝끝내 부둥켜안고 독립군이라는 비주류의 삶을 선택하기도 했다. 근데 후일 역사는 평가한다. ‘시대의 흐름만 쫓다가 역사의 흐름을 놓치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된다. 시대는 잘못된 선택을 해도 역사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 역사는 ‘광복’을 통해 비주류의 삶이 옳았음을 증명해 냈다.홀로코스트의 실무책임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은 재판에서 ‘나는 신 앞에서는 유죄라고 느끼지만, 법 앞에서는 아니다.’고 강변했다. 자신의 행위는 오직 국가적 공식 행위였으며, 맡은 바 책임을 다했기에 무죄라는 것이다. 재판을 지켜본 독일계 정치이론가인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유대인 학살 행위가 관료의 출세욕이라는 너무나 평범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악이란 특별히 악한 존재 혹은 악한 무언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개인의 무사유(無思惟)에서도 비롯될 수 있다.’ 여기서 천망회회(天網恢恢)라는 구절을 떠올리게 된다. ‘하늘의 그물은 크고 넓어 엉성해 보이지만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역사의 그물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나 하나 낱낱이 역사에 기록한다. 절대로 역사를 경원시(敬遠視)해서는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주류와 비주류의 갈림길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시대를 살고 있다. 매 순간 주류와 비주류의 길을 고민하게 만든다. 잔인한 일이다. 비주류이기를 강요하는 일도 당연시되고 있다. 이른바 백성을 그물질하고 있는 시대이며, 맹자가 말한 망민(罔民)이 바로 이것이다. 백성들의 생업을 빌미로 법과 제도를 이용해 ‘주류와 비주류’로 가르는 것이 바로 ‘백성을 그물로 잡아들인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프랑스의 비평가이자, 행동하는 지식인의 상징인 에밀 졸라는 이렇게 말했다. ‘진실이 땅에 묻히면 그것은 조금씩 자라나 엄청난 폭발력을 획득하며, 마침내 그것이 터지는 날 세상 모든 것을 날려 버릴 것이다.’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것은 역사(歷史)와 정의(正義)의 가치를 믿는 시민들의 힘에 기초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의미이다.영화 밀정에서 안옥윤과 염석진의 삶이 달랐던 이유는 ‘시대와 역사를 판단하는 가치관의 차이’ 때문이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를 거부하고 기꺼이 광복이라는 역사의 정의를 선택한 비주류 안옥윤과 시류에 편승해 친일파라는 주류의 길을 선택한 염석진의 삶이 서로 다른 결과를 초래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주류와 비주류로 사는 법은 의외로 간단할지 모른다. 역사가 가리키는 길을 따라 걸으면 된다. 혹시 그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스스로를 돌아보면 된다. 주류인지, 비주류인지 선명히 보일 것이다. 그리고 영원한 주류와 비주류도 없다.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진주대첩광장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황경규/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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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의회가 나서지 않는 이유 구부러진 판자를 바르게 펴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반듯한 판자를 그 위에 올려놓으면 된다. 한 장으로 부족하면 여러 장을 포개면 된다. 조금 시간이 걸릴지라도 언젠가는 반듯하게 펴진다. 공자님 말씀이다. 비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성급하게 판단할 필요도 없다. 사실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최대 4년 주기로 구부러진 판자는 빼서 갖다 버리기도 한다. 유권자가 가진 힘이다.지방자치제의 가장 큰 폐해는 ‘지방의회와 행정의 사유화’이다. 강준만 교수가 그의 책 『지방은 식민지이다』에서 한 말이다. 선거 과정에서 동원된 지연·학연·동향·측근 인사들에게 특혜를 베풀어 신세를 갚는 방편으로 사용하거나 향후 정치 행보의 기초를 다지는 당연한 과정으로 이해한다. 더 큰 문제는 정치 무대에 등장시켜 준 시민들의 목소리에 정작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름 끼칠 정도로 냉철한 정치적·개인적 이해관계가 그 뒤에 도사리고 있음은 물론이다. 지역사회가 안고 있는 현안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보다는 여론의 비판과 같은 윤리적인 문제로 치환해서 바라보는 인식의 문제도 심각하다. 때로는 권력이 제공하는 달콤함에 젖어 감시와 비판의 기능도 하지 못한다. 안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지방자치에 역행하는 지방의회의 사유화를 근본적으로 치료하기 어렵게 만드는 원인을 스스로 잉태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그게 현실이다. 인간이 주는 먹이에 길들여진 야생동물은 결국 그 야생성을 잃고 애완동물이 되고 만다. 지방의회 사유화의 근절은 막기 어려워도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다. 이른바 지방의회를 포함한 공공영역이 사유화로 인해 탕진되는 것을 막는 것 이상의 큰 개혁은 없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감시와 비판이 이제 진주시의회로 향하고 있다는 점을 지금 인식해야 한다.진주평론이 주최한 ‘진주대첩광장 이대로 괜찮은가’ 전문가 초청 토론회에서 진주시의회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진주대첩광장이 17년 동안 940억 원이라는 시민의 세금이 쓰인 사업임에도 진주시의회가 철저하게 감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감시는 커녕 비판의 목소리를 들은 기억도 거의 없다. 그런데도 진주시의회는 여전히 고개를 주억거리며 여론의 향배만 쫓고 있는 듯하다. 어떤 타이밍을 재고 있는지 알 길도 없다. ‘진주대첩광장에 진주대첩의 역사가 없다.’는 지적에 집중해야 한다. 진주대첩계사순의로 순국한 조상의 영령을 위무하는 ‘추모광장(追慕廣場)’을 없애 버리고, 그 자리에 콘크리트 공연장을 대신 세웠다. 그래 놓고 ‘진주대첩’이라는 명칭을 부끄럼없이 사용하고 있다. 지금의 진주대첩광장 조성 사업이 과연 진주성의 역사적 가치와 진주대첩에 빛나는 진주정신을 과연 담고 있는지에 대한 원론적인 의문이 드는 이유이다. 진주시민들은 진주시의회의 입장에 대해 궁금증을 갖고 있다. 근데 진주시의회 전체 의원의 절반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도시환경위원회가 나서서 입장표명을 했다. 아마 전체 의원들의 의견 조율에 실패했을 것이다. 집행부의 눈치를 보며 망설이거나 입장조차 낼 배짱이 없는 의원이 여전히 수두룩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진주시의회의 현주소이다.물론 의원 개개인의 입장 표명에 대한 권리는 정당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권리가 막연하게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단 한 명이라도 진주시민의 요구가 있다면 최소한 권리보다는 책임을 다하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것이 진주시의회의 본질이고, 진주시의회 의원의 의무이다. 시민들에게 구부러진 판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은 물론이다. 진주대첩광장에 반대의견을 내라고 종용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혹여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도 있는 비생산적인 논란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라도 진주시의회가 나서 해결의 물꼬를 터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 진주시는 진주대첩광장의 공정율을 이유로 ‘진주시민토론회’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다. 물론 이해한다. ‘진주시민설문조사’를 통해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할 의사도 보이지 않는다. 그 또한 이해된다. 하지만 사전에 토론회나 설문조사를 실시해 시민의견을 수렴했더라면 시민들의 반발이 이처럼 크지 않았을 것이다. 진주시 최대의 실수이자, 오판임을 향후 진주역사가 증명해 줄 것이다.근데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은 감시와 비판의 기능을 수행해야 할 진주시의회가 이런 상황에서 입 다물고, 외면하고, 고개를 돌려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진주시의회가 적극 나서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판자의 교체 시기만 앞당길 뿐이라는 시민들의 따끔한 지적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진주에서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 역시 ‘강 건너 불구경’하다가 제 옷에 불이 옮겨 붙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만약 선거 철새라는 비판을 듣고 싶지 않다면 목소리를 내는 것이 현명한 태도일 수 있다.특히 진주시의회와 직접적인 소통 채널을 갖고 있는 진주지역 국회의원들의 관심도 촉구한다. 여러 곳에 의견을 묻고 있는 차에, 서울 지인이 전화가 왔다. 격앙된 진주 사투리로 이렇게 말했다. ‘국회의원 한테 일러 바쳐삐라.’ 잠시였지만 참으로 부끄러웠던 시간이었다.
황경규/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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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어지러우면 악덕 무당이 판친다. 제법 괜찮다는 길목엔 천지인을 상징하는 삼색천을 매단 대나무를 대문간에 세워두고 안방엔 신당을 차린다. 소위 신군(神君)을 자처하는 그들은 세상 살이 다급한 민초를 대상으로 혹세무민한다. 그리고 마치 세상 사람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판관처럼 행세한다. 보편적 인식이 그렇다는 말이다. 비단 무당에만 그치지 않는다. 조폭도 마찬가지이다. 이른바 ‘패밀리’의 머릿수가 곧 ‘힘’인 이들은 ‘대부’의 그늘에서 복
‘잣대’라는 말이 있다. 길이를 재는 자로 사용되는 대막대기 혹은 나무 막대기의 일종으로 통칭 ‘자막대기’라고도 부른다. 이 말은 자고로 도덕적인 행위나 사물의 기준을 재단하는 객관적인 근거로 인용되곤 했다. 흔히 ‘객관적이지 못한 일’이나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은 이 잣대를 기준으로 잘잘못을 가리곤 한다.그런데 이 잣대란 말은 그 자체로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잣대가 적용되는 순간, 그것은 객관적이지 못하며 형평성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이 ‘잣대’는 일부 소수 권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