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6-07-14 15:08(화)

전체기사
로그인 구독신청
구독신청

기득권 카르텔은 지방선거에서 손 떼라

  • 작성자

    황경규/진주향당 상임대표

  • 작성일

    2026.05.18 PM 16:42

  • 조회수

    369

정치에 기생하는 기득권 세력은 6.3 지방선거에서 손을 떼어야 한다. 부패한 기득권은 자신의 배는 불릴 줄 알지만 진주의 미래를 갉아먹는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 부패한 기득권이 물러나면 새로운 기득권이 출현하겠지만 선한 영향력을 가진 기득권이 들어서기를 바래볼 뿐이다.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부패한 기득권 세력의 축출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기득권 카르텔은 지방선거에서 손 떼라 썸네일 이미지

정치는 결국 신뢰다. 유권자들은 완벽한 정치인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평소 자신의 언행과 과거 정치적 행보에 대해 최소한의 도의적인 책임을 지는 모습을 기대한다. 

근데 최근 선거 양상을 보면 특정 정당의 도움으로 권력을 잡고도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탈당하거나 무소속을 선택하는 정치인들의 모습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제각각 내세우는 명분은 다양하지만 유권자들의 시선은 차갑다. 유권자를 정치적 명분의 도구로 이용하거나 볼모로 잡는 삼류정치의 전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정당정치는 정치적 우산이 아니다. 

일종의 정치적 약속이다. 

공천 과정에서 촉발된 문제는 정당 내부에서 해결해야 마땅하다. 

절대로 유권자에게 그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된다. 

정당의 그늘 속에서 막대한 권력을 행사하다가, 정당 내에서 처지가 불리해지면 ‘이제는 시민만 믿고 간다’는 말로 무소속 명분을 포장하는 주장들은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더 심각한 것은 대부분의 무소속 출마자들이 마치 ‘정의로운 결단’처럼 포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그럴까. 

유권자의 눈에는 ‘권력에 대한 강한 집착’으로 보일 뿐이다. 

 

더 큰 문제는 ‘보이지 않는 손’의 선거 개입 의혹이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일부 행정 조직, 관변단체, 동창회, 퇴직 공무원의 선거 개입 의혹은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되어 온 문제이다. 

물론 전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이들 일부 보이지 않는 손들은 오랜 기간 형성된 인맥과 영향력을 선거에 개입시켜 개인의 기득권 추구를 최우선 목표로 삼는다. 

특정 후보의 권력 연장의 도구로 자처함을 부끄럽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지역사회에서는 이러한 보이지 않은 손을 ‘기득권 카르텔’이라고 부른다. 

지방선거가 오랜 기간동안 지역 권력을 공유해온 기득권 카르텔간의 권력다툼의 장이 된 점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방선거에서 일부 행정 조직과 퇴직 공무원 등의 선거 개입은 단순한 개인적 정치 활동과는 차원이 다르다. 

시민들은 그것을 ‘개인 권력 쟁취의 연장선’으로 본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이른바 이들이 가진 권력과 영향력을 선거판에 동원해 기득권이나 이권을 챙기려는 의도가 저변에 깔려있다는 점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출자·출연기관의 중요 직책 대부분을 퇴직 공무원이 독차지하고 있음을 보면 알 수 있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현 공무원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선거 때마다 정치 권력에 줄 서는 문화가 반복되면서 ‘공직사회의 중립성’은 무너져 왔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유권자들이 더 강한 피로감을 느끼는 것은 일부 관변단체를 비롯한 동창회 등의 조직적인 움직임이다. 

선거철만 되면 대놓고 특정 후보 주변으로 몰려드는 모습은 시민들에게 심각한 허탈감을 안긴다. 

시민을 위한 단체인지, 권력에 집착하는 단체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더 큰 문제는 지역 여론을 왜곡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부 관변 네트워크가 선거를 좌우하려는 시도를 계속 이어간다면 지방자치를 해치는 ‘낡고 병든 정치문화’로 낙인 찍혀 시민들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특정 관변단체들의 노골적인 선거 개입은 ‘단체 기득권 챙기기’에 불과할 뿐이다. 

특정 관변단체의 비호를 받는 후보가 있다면 시민들은 표로써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 

 

이제 ‘시민은 무엇을 심판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차례이다.

 ‘시민과 정당과의 약속을 저버린 정치’, ‘관변단체와 동창회 등의 조직 동원 정치’, ‘일부 퇴직 공무원과 행정 권력의 그림자’, ‘시민 위에 군림하는 기득권 권력 문화’를 심판해야 한다. 

이제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시민을 악용하려는 후보에게는 철퇴를 내려야 한다.

 그리고 시민을 위해 권력을 사용하는 후보를 잘 선택해야 진주의 선거문화가 건강해진다. 

 

정치권력에 기생하는 기득권 카르텔은 당장 지방선거에서 손을 떼야 한다.

당신을 위한 추천 평론
여성 의장 시대에 바란다 썸네일 이미지

여성 의장 시대에 바란다

‘여성의장 시대’ 여성 의장 시대는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와 다선 여성 의원의 증가를 확인할 수 있는 의미있는 변화라고 평가할 수 있다. 지방자치가 시작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꽤 오랫동안 지방의회는 여전히 남성이 독식하는 정치문화가 강했다. 그런 점에서 여성 의장의 증가는 지방의회가 과거와 달리 다양성과 대표성을 점점 넓혀가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된다. 전국 곳곳에서 여성 의장이 잇따라 선출되었다. 경남지역을 보면 진주시의회, 창원시의회, 하동군의회, 함양군의회, 거창군의회에서 여성 의장이 탄생했다. 여성 의장의 탄생은 지방의회의 변화로도 읽힌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정착 측면에서는 분명 환영해야 할 일이지만, 주목해야 할 부분도 적지 않다. ‘지방의회의 의장이 여성으로 바뀌면 의회도 바뀔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과연 그럴까? 아쉽지만 그렇지는 않다. 성별이 리더십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결국 성별을 떠나 공정성과 소통, 그리고 책임감이 리더십을 결정한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지방의회 의장의 역할은 분명하다. 최우선 덕목은 집행부에 대한 감시이다. 더불어 지역사회의 미래를 설계하고, 의원 간 갈등을 조정하며, 시민의 목소리를 의회 운영에 담아내는 최고 책임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의장이 특정 정당의 대표처럼 행동하거나, 집행부와 친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하면서 의회의 독립성은 지속적으로 흔들려왔다. 매번 집행부의 거수기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기도 했다. 시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집행부의 손을 들어 주는데 골몰했다. 물론 이면으로 개인의 이익을 도모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의장이 시민들의 대표가 아니라 시장이나 군수의 협력자가 된다면 시민은 의회를 결코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은 뼈아픈 교훈으로 남아 있다. 더 큰 문제는 ‘여성 의장 시대’라는 상징성만 내세워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여성 의장 시대’ 그 이후에 대한 냉정한 평가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여성 의장 시대 이후에 예산 심사는 더 치밀해졌는가, 행정사무감사는 더 날카로워졌는가, 주민의 목소리는 더 많이 반영됐는가이다. 만약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여성 의장 증가는 정치적 기록일 뿐, 정치적 변화로 이어지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여성 의장이 늘어난 지금이야말로 더 엄격한 평가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그래서 ‘여성이라서 잘할 것’이라는 기대도, ‘여성이라서 부족할 것’이라는 편견은 사라져야 한다. 평가 기준은 오직 하나이다. 공정하게 의회를 운영했는가.강하게 집행부를 견제했는가.시민 편에 섰는가. 지방의회는 집행부 거수기가 되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되어서는 안된다. 더구나 의장은 꽃자리가 아니라 가장 무거운 책임을 지는 자리이다. 지방의회가 시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의장의 성별이 아니라 구태의연한 의회의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다수당이 독식하는 원구성 이전에 토론문화가 자리 잡아야 하고, 계파 정치보다 정책 경쟁이 우선돼야 하며, 정당의 이해보다 시민의 이익이 앞서야 한다. 여성 의장 시대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이제 시민은 단순히 성별을 보지 않고 성과를 볼 것이다.직함을 보지 않고 품격을 볼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이렇게 물을 것이다.당신은 여성 의장이었습니까, 아니면 좋은 의장이었습니까?“ 그 질문 앞에서 당당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여성 의장 시대는 지방정치의 진정한 발전으로 기록될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해두고 싶다.정치는 성별로 평가받지 않는다. 다만 의장의 이름앞에 붙어야 할 수식어는 ‘여성의장’이 아니라 ‘공정한 의장’ ‘당당한 의장’ ‘시민의 의장’이어야 한다. 여성 의장 시대가 풀뿌리 민주주의가 정착하는 변화의 계기가 되기를 바래본다.

  • 2026-05-18
  • 작성자

    황경규/진주평론 발행인

  • 조회수

    84

화투판 꼬라지 썸네일 이미지

화투판 꼬라지

화투판 꼬라지 일제강점기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오락거리는 단연 ‘화투’였다. 밤이면 사랑방이나 주막에서 화투판이 벌어졌고, 농한기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화투를 즐기기도 했다. 근데 문제는 이 화투판이 심하면 가산탕진에 자식까지 내다 팔게 하는 또 다른 마약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정치판도 선거판도 도긴개긴이다. 화투가 불러온 이같은 망조(亡兆)는 국제통화기금시대를 지나, 경제가 겨우 허리를 펴고 있다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소위 ‘육백’ ‘삥오도시’ ‘섯다’ ‘짓고땡’ ‘아도사키’로 이어졌고, 급기야 한때는 ‘박정희 고스톱’ ‘전두환 고스톱’ 으로 부활해 막가기도 했다. 한때는 그랬다. 화투판 풍경을 보자. ‘현금 박치기’ ‘안면 몰수’ ‘촌수 불문’으로 불리는 화투판은 ‘어머님 죽어요’ ‘아버님 쌌어요’라는 막가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상가의 밤샘 고스톱은 그래도 양반 축에나 꼈지만, 해외 공항 로비에서 신문지를 깔고 서너 명 둘러앉아 고스톱을 치는 광경은 각종 언론을 도배하기도 했다. 화투판이 정치판과 다를 게 없다는 비아냥 속에서 이른바 ‘화투판의 불문율’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화투판의 불문율에 칠 것 없으면 ‘비풍초똥팔삼’을 버리라는 말이 있다. 점수도 잘 안 나고 광도 아니고 띠도 아닌 애매한 패들을 빗대어 부르는 표현이다. 근데 이러한 패를 요즘 선거판에 비춰보면 하나도 틀린 게 없다. 하나씩 풀어보자. ‘비’는 비리와 각종 의혹에도 질끈 눈을 감아버리고 일단 ‘모르쇠’로 버티는 사람이다. 사실 결과는 뻔하지만 우선 살고 보자는데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고(go) 스톱(stop) 구분이 잘 안되는 경우이다. ‘풍’은 살랑살랑 바람 부는 대로 이곳저곳 떠돌며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곳만 기웃거리는 사람이다. 겉으로는 ‘어른행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네 아이들조차 손가락질하는 줄은 모르는 사람들이다. ‘초’는 초치고 다니는 사람들을 이름인데, 겨우 먹고 사는 민초들의 멱살을 잡고 대장 앞에 무릎을 꿇리는게 도와주는 일인 양 착각하니 불쌍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이다. 정치를 종교로 생각하는 부류가 이들이다. ‘똥’은 말 그대로 구린내 나는 자들인데, 각종 특혜 의혹 제기에도 ‘깨끗한 놈 있으면 나와 봐라는 식’으로 제 식구 감싸기는 물론이고 주변의 손가락질에는 깔끔하게 고개 돌려 외면하시는 분들이다. ‘팔’은 겉만 보면 팔팔해 보이는데 속은 팍삭 늙은 분을 말하는데, 내거는 기치는 가히 개혁적으로 보이지만 마무리는 ‘상전 눈치보기’의 대가여서 저래도 되나 싶은 분이다. ‘삼’은 평생을 로터리에 서서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손바닥에 침을 뱉어 갈 길 점치는 자이니, 높은 자리에서 배 불리 먹고도 성에 안 차는 사람이다. 앞장서서 내뱉는 해괴한 말주변은 우리를 아연실색케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비풍초똥팔삼'은 버려야 한다는 화투판 선각자들의 얘기가 맞는 듯하다. 아끼다가는 ‘피박’ ‘멍박’ ‘설사’로 피칠갑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옛 어르신들은 화투판과 정치판에 빠진 사람을 보고 ‘모기가 피 빨아 먹듯 돈을 빨아 먹는다’고 했다. ‘화투판은 피를 빨아 먹는 게임’이라는 농담과 궤를 같이 한다. 오래된 잡지에 실린 ‘모기’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정치판이나 화투판에서도 상통하는 글이다. ‘이 땅에 사람으로 태어나 10g도 안되는 너와 더 이상 씨름하고 싶지 않다. 압사한 너의 시체에 경악하거나, 니가 사라진 장롱 위를 노려보며 버티는 것도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 너, 돌아가라. 네 친구들인 파리와 바퀴벌레에게도 조심하라고 일러라. 나 오늘 홈키파 사왔다.’

  • 2026-05-18
  • 작성자

    황경규/진주평론 발행인

  • 조회수

    303

기득권이 사람의 뇌를 바꾼다 썸네일 이미지

기득권이 사람의 뇌를 바꾼다

기득권이 사람의 뇌를 바꾼다 거의 난장판을 방불케 하는 오늘날의 세태 속에서 유독 정치만이 정연하기를 바라는 건 어쩌면 개인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헤게모니를 둘러싸고 철 따라 때 따라 이합집산(離合集散)하며 기득권을 쫓는 집단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는 그 오래된 환상 속에서 늘 헤맬 뿐이다. 짐작컨대 아직도 우리 진주는 기득권 패거리의 망령으로부터 벗어나기에는 아직 멀다. 개혁(改革). 무릇 그 개혁을 외쳐 온 지가 언제부터인가. 그러나 그 개혁은 민망하게도 우리의 열망과 비례하지 않았다. 어쩌면 기득권 세력을 더욱 공고히 하는 빌미만 제공했을 뿐이다. 그래서 사회 일각에서 외쳐대는 개혁은 여전히 실감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권력에 빌붙은 자들이 득세하는 세상이 길어지고 있다. 반면 권력의 눈 밖에 난 자들의 보호장치는 점차 허물어지고 있다. 선거 때마다 새로운 귀속의 대상을 찾아 헤매는 정체성의 위기에 내몰린 지도 오래이다. 장밋빛 그림은 오직 권력자와 기득권의 몫일 뿐이라는 회의 섞인 우려가 사회 전반에 가득 채워지고 있다. 그것이 오늘날 진주의 현주소라면 오버센스한 것일까? 이대로 간다면 극단의 길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그 누군들 극치의 어둠을 거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짧게 본다면 어둠의 현실은 더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의 긴 호흡으로 본다면 끝내 어둠의 현실에 고분고분하지 않을 진주시민다운 저력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천년 진주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깨어난 인간이라야 어둠의 역사를 빛으로 구원한다’는 함석헌 옹의 말투를 빌리자면 그렇다. 선거를 앞두고 시민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정치의 하늘을 여는 일이다. 정치의 하늘이란 무엇인가. 오염된 세력들의 ‘헤쳐 모여’가 아니라 진주의 새로운 대의를 여는 일이다. 그리고 이 땅의 정치인들이 선거 때마다 그토록 앵무새처럼 되뇌어온 ‘민심 천심’의 그 하늘이다. 진주의 정치가 리더를 자처하는 자들의 독단과 기득권의 밀실거래만으로 좌지우지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선거를 앞두고 질문을 던진다. 왜 기득권과 권력자들은 하늘에 묻지 않고, 그들 스스로 하늘인 양 위장하고 있는가.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된 보석을 잘 살펴 가리고 골라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진주의 하늘을 뒤덮고 있는 ‘힘 있는 쪽의 유리’, ‘힘 없는 쪽의 불리’라는 오래되고 케케묵은 공식을 이 땅에서 지워낼 수 있다.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어버린 이 땅의 질서를 되찾는 길은 단 하나이다. 그것은 난장판을 다듬어 내고 정연한 저자 마당을 펴내고자 하는 진주시민들의 각성과 행동이다. 천년 진주를 지탱했던 도리(道理)가 땅에 떨어졌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예의염치가 사라지고, 과거 진주를 이끌었던 앞소리꾼의 기개와 절개 역시 아침이슬처럼 사라진 지 오래다. ‘권력과 이권’의 유혹 앞에 앞뒤 가리지 않고 불나방처럼 달려든다. ‘인간성의 상실’은 참아도 ‘기득권의 상실’은 참을 수 없다는 식이다. 권력과 기득권을 움켜 쥔 사람들이 도덕적 우월감까지 누리면서 그걸 무기 삼아 시민에게 호통을 치고 있으니, 이 어찌 놀라운 진주의 현실이 아닌가.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을 맞아 남명 조식의 단성소(丹城疎)와 서리망국론(胥吏亡國論)을 꺼내 읽어 본다. 단성소는 권력 앞에서 당당히 진실을 말한 양심선언이며, 서리망국론은 서리들의 무능으로 인해 국가와 조직이 무너지는 구조를 꿰뚫어 본 정치철학이다. 남명이 무소불위의 권력 앞에 던진 이 두 가지 질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해야 한다. 그리고 이번 지방선거는 남명의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이어야 한다. 그래야 천년 진주임이 증명된다고 굳게 믿는다. ‘기득권이 사람의 뇌를 바꾼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는 요즘이다.

  • 2026-05-18
  • 작성자

    황경규/진주평론 발행인

  • 조회수

    362

(황경규의 시사정미소) 3. 원도심 공동화의 주범이 진주시민이라고? 썸네일 이미지

(황경규의 시사정미소) 3. 원도심 공동화의 주범이 진주시민이라고?

원도심 공동화의 주범이 진주시민이라고? 진주시장 선거의 핫 이슈로 떠오른 원도심활성화와 관련한 글을 페이스북에서 보았다. 아마 열렬한 현 진주시장의 지지자인 걸로 이해된다. 대략 글의 요지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원도심 공동화의 근본 원인은 온라인을 주로 이용하는 글쓴이를 비롯한 진주시민’이며 ‘전국적인 상황임에도 진주시정만 탓하는 것은 너무 쉽고 단순한 비판이다’는 주장에 이어 서울 상가도 텅텅 비고, 핫플 성수동도 흔들리는 전국적인 상황에서 유독 진주시정만 실패한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현실을 제대로 보지 않는 주장’이라는게 글의 골자이다.진심으로 그런 의도로 쓴 글이 아니길 빈다. 만약 이 주장이 맞다면 설왕설래할 필요도 없이 정답은 이미 나와 있다. ‘원도심 공동화의 주범은 진주시민’이며 ‘원도심 공동화에 진주시의 책임은 없다’이다. 하기사 진주시가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지난 8년 동안 열심히 했는데 진주시민들이 전혀 도와주지 않아서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뜻 아닌가? 섭천 쇠가 웃을 주장이지만 진주시장 지지자의 글이니 현 진주시장의 의사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나 싶다. 컨펌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현명한 진주시민들이 보기에 진주시장에게 도움이 되는 글은 아니지 싶다. 실제 온라인 소비가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전국 어디를 가나 원도심 상가의 공실이 증가하는 것도 맞다. 문제는 ‘사실의 일부를 전제하면서 책임의 전부를 피해가려는 혹세무민의 태도’에 있다. ‘진주시 행정의 실패’를 ‘사회구조의 변화’로 가리고, ‘진주시 정책의 부재’를 ‘시대의 흐름’으로 변명하는 것도 모자라 책임의 화살을 온라인으로 주문하며 사는 ‘시민의 생활 방식’에 돌리고 있다. 아무리 진주시장을 비호(庇護)하고 싶어도 진주시민을 욕하면서 하는 건 아니다 싶다. 정작 글을 쓴 자신도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거리의 빈 점포만 보고 행정의 실패라고 말하는 것은 공정한 비판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진주시정은 지난 8년 동안 도시의 소비구조가 바뀌고, 상권의 형태가 바뀌는 것을 충분히 보고 예측할 수 있는 시간 속에 있었다. 온라인 쇼핑의 성장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미 10년 전부터 전 세계가 예측했던 변화였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가능하다. ‘그 변화에 대비해 진주시는 무엇을 준비했는가?’ ‘행사나 이벤트 몇 번 더 열고, 시설 몇 개 짓는 것으로 진주 경제의 구조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고 믿었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정책이 아니라 명백한 ‘무능한 실정(失政)’에 불과할 뿐이다. 근데 ‘진주시민의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는 논조의 주장은 어디서부터 나왔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진주시가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열심히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원도심 도시재생 거점으로 청년 허브하우스를 짓고, 중앙지하도상가 공실문제 해결을 위해 청년창업 준비공간으로 바꾸는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강변하고 있다. 인정한다. 만약 8년동안 손놓고 있었다면 진주시민들의 채찍에 혼이 났을 것이다. 근데 주장을 하려면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근거를 들이밀어야 한다. 묻고 싶다. 청년 허브하우스 하나 짓는다고 원도심 활성화가 이루어진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는가? 사실상 재기불능의 상태인 지하도상가 활성화가 청년창업 준비공간 등의 정책을 추진한다고 해서 바닥을 치고 올라설 수 있다고 믿는가? 이것은 진주시가 지난 몇 년동안 추진해 왔지만 실패한 정책으로 이미 낙인찍힌 상태다. 제발 지역 언론에서 무수히 쏟아 낸 보도 내용을 한번 쯤은 살펴보고 글을 쓰는 것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 대한 기본 예의’이다. 그것도 모르고 진주시의 목소리만 앵무새처럼 따라 한다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진주시를 도와주려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오히려 진주시를 욕 먹이는 일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악수(惡手)라는 뜻이다. 원도심 활성화를 위한 대안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다시 사람을 거리로 나오게 할 것인가’ ‘어떻게 지역 상권만의 매력을 만들 것인가’ ‘어떻게 머물고 소비하는 구조를 만들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진주시가 이 사실을 몰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제대로 된 정책을 만들어 내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면서 ‘남 탓은 초등학생도 잘한다’면서 진주시민의 지적을 초등학생 수준 이하로 매도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어서 ‘원도심 활성화 해법은 어렵다’고 강변한다. 어쩌라는 것인가? ‘원도심 공동화의 책임은 진주시이다’라는 주장은 초등학생같은 진주시민의 지적질이며, ‘해법이 어려우니 진주시의 전적인 책임은 아니다’라는 것인가? 백번 양보한다 하더라도 ‘남 탓은 초등학생도 잘한다’라는 말은 두루두루 적용되는 말이긴 하지만 ‘진주시민’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진주시 행정’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시민의 소비행태를 탓하는 행정’ ‘시대의 변화를 탓하는 행정’ ‘경제상황을 탓하는 행정’이었기 때문에 원도심 활성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생각은 어째서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도대체 원도심 공동화의 근본적인 책임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진주시의 책임이 아니라면 진주시민의 책임이라는 뜻인가? 그런 것인가? 누구의 책임인지 명백히 밝히지 않고 대충대충 설렁설렁 책임소재를 흐리는 태도는 옳지 못하다. 책임의 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래야만 말이든 글이든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원도심 공동화 문제는 시민의 잘못도, 시대의 탓도 아니다. 오히려 도시전략의 문제이다. 그리고 전략은 행정의 책임이다. 도시는 시민이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이 설계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진주시 행정이 잘못된 설계와 정책으로 원도심 공동화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진주시민의 지적이 잘못되었단 말인가? 진주시민은 묻고 싶어진다. 도대체 진주시는 지난 8년 동안 뭐했노? 더 큰 문제는 거의 같은 내용의 글이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SNS에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이다.선거법은 개인의 선거운동은 제한하지 않는다. 근데 페이스북에는 두 사람의 명의로 올라와 있는 글이 거의 같다. 시작하는 부분만 다를 뿐이다. 글을 올린 시간도 1분 차이밖에 되지 않는다.선거법과는 관련없을지 모르겠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민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애쓴다'라는 서글픈 생각이 든다.냉정하게 평가하자면, '눈가리고 아웅'하는 진주시 행정을 그대로 닮았다. 이런 행위가 진정으로 진주시장을 도우는 일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다음의 사진을 보고 제 개인의 의견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얼핏보면 이 두 글은 겉으로는 균형잡힌 문제제기처럼 보이지만 '책임의 방향을 흐린다'는 비판을 맏아 마땅하다.문제의 본질보다는 문제 제기 자체를 문제로 만드는 전형적인 프레임이다. 상가 공실은 단순한 시장의 상황으로 설명해서는 안된다.도시정책, 상권활성화계획, 인구정책, 교통정책, 도시개발 전략이 총체적으로 실패했을 때 나타나는 결과이다.그런데 이 글은 그 성적표를 진주시민에게 '일부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돌리고 있다.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원도심 공동화의 책임을 '모두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2. 공실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정책의 결과이다. 공실은 시장의 변덕이 아니라 행정의 선택이 누적된 결과다. 따라서 '시정만 탓해선 안된다'라는 말은 '결정은 우리가 했지만 결과는 나눠 갖자'라는 식이다.이는 책임의 민주화가 아니라, 책임의 희석에 불과하다.3. '경기' '소비패턴' '시민 불이용' 등의 문제는 사실일 수 있다.그러나 이러한 설명들이 동시에 등장한다면, 그것은 '행정의 책임을 분산시키기 위한 구도'라고 판단할 수 밖에 없다.4. 상가 공실이 늘어나면 시민의 삶이 무너진다. 이 과정에서 시민은 결정 주체가 아닌 결과를 감당하는 주체이다. 따라서 시민의 책임이 있다고 말하기 전에 '이 결정을 누가 했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충분히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다만 선거를 눈 앞에 두고 이와 같은 교묘한 글들이 원도심 공동화로 상처받은 서민들의 삶에 다시 한 번 더 생채기를 내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것이다.리드문을 제외하고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글과 '다시 뛰는 원도심, 다시 살아나는 상권'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사진을 보면서 한 가지 생각이 든다. '8년 전부터 꾸준히 노력했으면 원도심공동화라는 시민들의 지적은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최근 국민의힘 진주시장에 출마한 김권수예비후보가 지난 2월 26일 원도심 활성화 정책의 하나로 ‘원도심에 진주시청 제2청사를 추진하겠다’ ‘진주시 출자출연기관들을 원도심으로 이전하겠다’는 요지의 기자회견을 했다. 근데 지난 3월 16일 조규일 진주시장이 원도심활성화 관련 기자회견을 했다. 내용을 보니 ‘시청내 3개 부서를 원도심으로 이전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직접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하고 현장 점검을 하는 사진도 떡하니 신문에 실렸다. 물론 김권수 예비후보의 공약을 전부 배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는 뜻이다. 지난 8년 동안 손 놓고 모른척 하고 있다가 부랴부랴 내놓은 원도심활성화 정책이 ‘김권수 예비후보의 정책을 일부 배끼는 수준’이었다. 조규일 진주시장의 이번 기자회견은 지난 8년 동안 원도심 활성화에 대안이 없었음을 이번에 스스로 증명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페이스북의 글은 이렇게 마무리를 짓고 있다. ‘남 탓은 초등학생도 잘 합니다. 하지만 해법은 어렵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문제일수록 비난보다 더 필요한 것은 현실을 인정하고 방향을 잡고 꾸준히 풀어가는 노력입니다. 상가 공실 문제를 정말 해결하고 싶다면 이제는 공격보다 대안을 말해야 합니다. 진짜 필요한 것은 책임 떠넘기기가 아니라 상권을 다시 살리기 위한 긴 호흡의 해법입니다.’ 그 긴 호흡이 ‘시청 일부 부서 이전’을 두고 한 말은 진심으로 아니길 빈다. 진주시장 선거를 앞두고 누구든지 개인의 의사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말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근데 이 글이 조규일 진주시장을 돕는 글인지는 알기 어렵다. 지금 진주에 필요한 것은 진주시민을 훈계하는 행정이 아니라 정책의 실패를 먼저 인정하는 행정이다.그리고 그것이 진주시정 8년을 평가하는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다. 한 개인의 글을 폄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원도심 공동화의 주범이 글쓴이를 포함한 진주시민이라는 전제를 보고 진주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화가 나서 몇자 적었을 뿐이다. 진정으로 원도심 활성화를 염원한다면 지난 8년의 과오를 재차 범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현 진주시정이든, 차기 진주시정이든 관계없다. 시정의 목표는 진주시민의 삶의 질 향상이다. 특정인의 정치적 목표 달성을 위해 진주시민에게 과오를 뒤짚어 씌우는 것은 상식 이하의 행동이다. 더불어 이 비상식적인 글들이 SNS를 떠돌아 다니는 상황이, 현 진주시장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 역시 말해주고 싶었다. 진주시민들은 이렇게 묻고 있다. 그래서 지난 8년 동안 뭐했길래, 원도심이 아직도 이 모양 이 꼴이고?그래서 진주시장은 책임이 없단 말이가?그래서 진주시민이 잘못했다는 말이네? 그래서 SNS에 실린 이 글은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번에는 진주시장을 잘 뽑아야 한다.

  • 2026-05-18
  • 작성자

    황경규/진주평론 발행인

  • 조회수

    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