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규/발행인
2024.06.27 PM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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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의 무형문화유산은 그 역사성에 비해 제대로 된 가치를 발현하지 못하고 있다. 굳이 이유를 찾는다면 무형문화유산 보존과 계승에 대한 무관심과 자발적 노력의 부재 탓이다. 국가 유산 정책 방향 역시 무형문화유산보다는 유형문화유산에 인력과 예산이 집중되어 온 것 역시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진주가 진정한 문화유산도시로 성장하려면 무형문화유산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그 보존과 전승 방향을 다시 점검하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진주라는 지명을 굳이 적시하지 않아도 전국적인 명성을 갖고 있는 무형문화유산이 있다. 난봉가, 비빔밥, 냉면, 소싸움, 논개 등이다. 이들 진주무형문화유산이 가진 공통점은 문화유산의 발상지 진주의 위상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무형문화유산의 역사성이 희미해지고 정체성마저 퇴색해 가고 있다는 일각의 오래된 지적은 더욱 뼈아프다.
진주난봉가는 경상우도의 중심지인 진주와 남강을 배경으로 교방문화라는 문화적 특수성을 갖고 있다. 시집살이를 인내하며 살아 온 여성들의 항거의식이 내재돼 있으며 1980년대 군부독재시절의 억압받던 민중들의 삶과 대비되어 전국적인 인지도를 갖고 있다. 근데 진주에서는 인지도가 낮고 향유자도 흔치 않다. 지난해 진주유스오케스트라가 ‘진주난봉가 주제에 의한 환상곡’을 선보인 것이 그나마 지역 최초일 정도이다.
근데 진주난봉가는 진주를 벗어나면 더 유명하다. 지금 진주난봉가는 전국적으로 국악, 합창, 뮤지컬, 방송 등 장르를 넘나들며 활용되고 있다. 최근 ‘헬로트로트’라는 방송프로그램에서 가수 하이량은 진주난봉가를 불러 안방극장에 깊은 여운을 남겼다. 정작 진주는 어떤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빔밥도 마찬가지이다. 대한민국 비빔밥의 원조라는 위상을 지켜왔던 진주비빔밥은 이미 오래전에 전주비빔밥에 밀려난지 오래라는 지적이다. 전주비빔밥은 지역경제활성화를 이끄는 대표적인 토속음식으로 자리 잡은 반면 진주비빔밥은 지금 그 명맥만 겨우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진주를 대표하는 무형문화유산이라는 명성에만 안주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냉면도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 평양냉면과 쌍벽을 이루는 진주냉면의 맛과 역사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평양냉면은 전국 어디서든 맛 볼 수 있지만 정작 진주냉면은 그렇지 못하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평양냉면은 전국구이지만, 진주냉면은 지역구라는 지적은 겸허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소싸움도 청도의 유명세에 밀려났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소싸움 원조논쟁으로 한때 전국적인 관심을 받은 진주 소싸움은 최근 들어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여기에는 특정 단체의 소싸움에 대한 문제 제기도 한 몫을 했다. 하지만 최근 소싸움의 국가무형문화유산 지정 추진에 진주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점은 두고두고 아쉽다. 어쩌면 그것이 진주 소싸움의 현주소일지도 모른다.
논개는 어떠한가. 지금 논개는 ‘의로운 기생’이라는 타이틀을 상실할 위기에 놓여 있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바로 확인 할 수 있다. 조선 조정이 내린 ‘의기사’라는 사당이 갖는 의미가 퇴색되고 있어도 ‘강 건너 불구경’이다. 진주·장수·함양 중에 논개 선양에 가장 적극적인 곳이 진주라고 말하기 어렵다. 불편하지만 사실이다.
진주난봉가, 진주비빔밥, 진주냉면, 진주소싸움, 의기논개는 진주를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무형문화유산이다. 만약 이들 무형문화유산이 갖고 있는 명성에만 기대고 안주한다면 언젠가는 잃어버리거나 빼앗기고 말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 무형문화유산은 늘 거듭나고 재창조되는 것이 본질이자 생명이다. 진주무형문화유산의 보존·전승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구축과 비전이 제시되어야 한다.
늦지 않았다.
박완수 경남도지사 좌하 2 초대합니다. 조만간 진주에 오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귀한 시간을 내시어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을 방문해 주시기를 희망합니다. 가능하시다면 대규모 공연이 있는 날이면 좋겠습니다. 공연 한 시간 전에 도착하신다면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 주차 전쟁으로 발을 동동 구르는 안쓰러운 도민들의 모습을 직접 확인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별안간 초대장을 보내 드린 이유는 도지사님이 직접 방문하시어 이 아수라장 같은 현장을 목격하셔야만 십 수 년 동안 질질 끌어온 주차장 문제 해결의 단서를 비로소 마련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입니다. 혹시 바쁜 일정으로 인해 오시지 못해도 무방합니다. 보시고 문제없다고 생각하시면 이대로 두셔도 상관없습니다. 도민들의 지속된 개선 요구를 외면한 것이 이미 한 두해가 아니기에 그렇습니다.과거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 개관 이후, 주변 상권은 엄청난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리모델링 이후에 침체기에 접어들었고 지금은 끝이 보이지 않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습니다.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고 보시면 될듯합니다. 공연이 없는 날에는 주차장은 텅 비어 있고 사람 구경은 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공연이 있는 날에는 주차 전쟁으로 도민들은 공연을 감상한 뒤에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여유 따위를 가질 겨를도 없이 짜증을 내며 돌아가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 관장이 교체되어도 사정은 그대로 입니다.최근 언론보도를 접했습니다.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 사용료 인상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가 상승분을 감안한다면 무려 12년 간 동결된 공연장 사용료 역시 현실화되어야 마땅합니다. 누가 반대하겠습니까. 다만 현재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이 당면한 문제에 대한 현실 인식과 해결 방안에 대해서는 여전히 침묵한다면 도민들은 흔쾌히 동의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공연료 인상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도민들은 의문을 가질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박수를 보내기 어려운 도정의 일부분이 될 것입니다.경남도립예술단 창단을 계기로 건립된 경남도문화예술회관 주차장 부지 속의 경남도립예술단창작관의 활성화 여부도 챙겨봐 주십시오. 경남도립예술단은 지역 예술 생태계 활성화와 도민의 문화 향유권 향상을 위해 창단되었습니다. 현재 경남도립극단만이 이 시설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공연 준비 이외에는 창작관의 활용도가 높지 않다는 지적입니다. 더불어 주차장 부족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 원흉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다른 종목의 경남도립예술단 창단 계획은 없으신지요? 만약 없으시다면 도민들이 공유하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은 어떠신지요. 지난 2017년에 수립된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 중장기 발전 방안도 챙겨봐 주시기를 희망합니다. 2022년 현행화를 목표로 한 이 발전 방안은 지금은 그야말로 휴지조각이 되었습니다. 당시 발전 방안을 보면 현황과 문제점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추진 방향 역시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듯합니다. 대공연장 1개소로 공연 수용 애로와 공연장 객석 수 대비 주차공간 부족, 부대시설 및 편의시설 부족 등입니다. 근데 계획은 실로 거창했지만 달라진 것은 별로 없습니다. 현 상황을 감안한다면 단언컨대,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이 경상남도를 대표하는 위상을 갖고 있다고 말하기조차 부끄럽습니다. 경남도민들은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이 갖는 건축사적 가치와 역사성에 대해 여전히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경상남도의회에서도 여러 차례에 걸쳐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의 전체적인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 요구를 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박완수 경남도지사 좌하’라는 이름으로 두 번째 올리는 글입니다. 도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답장을 기대합니다.
황경규/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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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대 진주문화원장 선거를 앞두고 진주문화원의 새길 찾기라는 기고를 한 적이 있다. 4년 전의 일이다. 진주문화원의 미래 100년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가 선택되기를 기대했다. 백지상태의 문화 불모지에서 지역문화의 새 지평을 열었던 진주문화원의 초심을 회복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와 진주문화원의 품격이 곧 진주의 품격이 된다는 문화계 원로들의 바람도 담았다.과거 진주문화원은 서부 경남의 문화 선도 기관이라는 명예를 잃고 전국 문화원 가운데 사고 문화원으로 낙인찍힌 적도 있다. 지역문화의 구심점이 아닌 특정 사조직이나 지방 권력의 하수인 혹은 지역문화 권력자들의 견고한 모임으로 퇴색했다는 비아냥도 감수해야 했다. 그런 점에서 특정 세대에 편중된 사업과 특정 세대만의 전유물로 인식되어 온 진주문화원의 새길 찾기는 진주문화원의 명예와 품격을 되찾는 중요한 기회였음은 물론이다. 진주문화원장의 선출 방식과 운영시스템의 파격적인 변화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선거가 치러질 때마다 극단적인 파벌을 양산하는 기존의 선거방식을 고수하기보다는 문화적 소양과 비전을 갖춘 인재를 원장으로 추대하는 방식으로의 전환이 없다면 진주문화원의 옛 위상을 되돌릴 방법은 없다고 전망했다. 결론만 놓고 본다면 진주문화원은 새길 찾기를 희망하지 않았다. 진주문화원의 명예와 위상은 내팽개치고 ‘오로지 당선’을 위해 아무 거리낌없이 오래된 폐단을 그대로 답습했다. 진주문화원장 선거 직후, ‘불법 선거 의혹’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의 논란에 휩싸인 건 물론이다. 진주문화원장 선거 결과, 투표인 수 대비 투표용지가 더 많이 발견되었고, 회원의 신상정보가 담긴 회원명부가 유출돼 선거에 이용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쯤 되면 역대 진주문화원장 선거 가운데 가장 최악의 선거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재판부는 진주문화원장 선거 무효 확인 소송 1심에서 선거 무효 판결을 내린 것은 물론 본안 소송 종료까지 진주문화원장의 직무집행을 정지시켰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에 대해서는 벌금을 선고했다. 이같은 재판부의 판결만으로 현 진주문화원이 역사상 최악의 진주문화원이라는 불명예를 떠안기에 충분했다. 더불어 진주문화원을 구성하는 구성원 모두가 스스로 새길 찾기를 등한시한 결과이기도 하다. 현재 진주문화원은 원장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제15대 진주문화원장 선거를 또다시 목전에 두고 있다.이제는 진주문화원의 새길 찾기를 희망하지 않는다. 뻔한 결말이 보이는 삼류영화를 벗어나기 힘들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문화정책의 변화와 패러다임의 전환 따위의 시대적 변화에 따른 환골탈태를 적시하는 것도 의미 없어 보인다. 차기 진주문화원장 선거를 앞두고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면 변화나 개혁의 여지가 전혀 없어 보이기에 그렇다. 진주문화원의 품격 회복이 아니라 권력만을 욕망하는 공간으로 또다시 전락한다면 바랄 수 있는 것은 단언컨대 없다. 진주문화원 회원들의 각성만이 정답일 것이다.진주문화원은 그동안 지역문화의 컨트롤 타워에서 마당쇠 역할까지 자임해 왔다. 그동안 진주문화원이 진주 문화에 끼친 영향력역시 절대로 적다고 할 수 없다. 명실상부한 민간 문화조직의 원조라는 자부심으로 지역문화의 좌표 역할을 수행하는데도 부족함이 없었다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문제는 앞으로 진주문화원장이 되고자 하는 후보들의 냉철한 자기반성과 비전제시에 있다. 진주문화원의 수장은 진주의 문화계를 대표하는 자리이다. 만약 출마 의지가 있다면 진주문화원의 100년 미래를 위한 비전을 시민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단지 자리 욕심만 내는 후보가 당선된다면 진주문화원의 미래는 지금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바라건대, 제15대 진주문화원장 선거가 과거의 점철된 오욕을 씻어내고 새로운 진주문화원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황경규/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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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과 권력자들은 자신이 갖고 있던 권력을 하루아침에 잃게 되면 마치 주먹으로 온몸을 두들겨 맞는 듯한 엄청난 통증을 느낀다고 한다. 이른바 권력 상실의 고통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 제37대 대통령인 리처드 닉슨이 ‘범죄 드라마’를 능가하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인해 백악관을 떠나는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닉슨은 백악관에 주저앉아 양탄자를 주먹으로 내리치며 이렇게 외쳤다. ‘단순한 주거침입이 어떻게 이런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무슨 일을 한 거야,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냐고.’ 권력 상실의 고통은 인간만 느끼는 건 아니다. 침팬지 서식 집단에서도 발견된다. 우두머리 침팬지가 어느 날 젊은 수컷의 도전을 받았다. 힘 겨루기를 하다가 사실상 패배를 직감하는 순간, 우두머리 침팬지는 갑자기 썩은 과일처럼 나무에서 떨어진 후에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몸부림을 치고, 비참하게 소리를 마구마구 질러댔다고 한다. 국민에게 탄핵이라는 성적표를 받아 든 윤석열 대통령은 과연 어땠는가. 하늘처럼 섬겨야 할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행위와 의회해산 시도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헌정질서를 짓밟은 내란죄임이 명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차례의 담화를 통해 지금까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강변하고 있다. 국민들은 과연 그가 무엇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건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권력자’를 단죄하기 위해 국민의 이름으로 탄핵을 했다. 어찌 보면 닉슨과 침팬지처럼 추악한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일 지경이다. 권력은 멀쩡하던 사람의 뇌를 바꾼다고 한다. 정치인 고 김종필은 ‘괜찮던 사람도 청와대만 들어가면 사람이 바뀐다’고 했다. 권력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자신의 정당성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게 되고 결국에는 모든 상황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진다고 한다. 권력에 눈이 먼 권력자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모범 사례이다. 과거 대한민국은 오만한 권력자에 의해 민주주의가 짓밟히는 국가적 위기에 처했던 사례가 발생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는 깨어있는 국민들이 있었다. 화염병과 돌멩이로 군사독재 정권과 맞서 싸웠던 국민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또렷하게 기억한다. 어둠을 밝히는 촛불로 국정농단을 일삼았던 정치인을 단죄했던 국민들이 있었다는 사실 또한 우리는 분명히 기억한다. 그리고 2024년 12월 14일, 그 추운 겨울의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에서 오색찬란한 응원봉과 깃발을 흔들며 반헌법적 비상 계엄와 내란음모 시도를 날려버린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민이 있었다는 사실 역시 우리는 기억한다. 이렇게 대한민국의 역사는 군사독재, 국정농단, 내란을 일으킨 역사의 죄인은 반드시 처단된다는 사실을 명명백백히 증언하고 있다. 부패는 권력의 숙명이다. 그래서 권력은 부패하며,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혹시 지금도 자신이 절대권력을 가졌다고 착각하는 정치인과 권력자들이 아직도 계신다면 꼭 들려 드리고 싶은 헌법 조문이 있다.‘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바로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이다.이제는 동네를 돌아다니는 강아지조차 달달 외울 법한 이렇게 간단한 법조문이 그렇게 기억하기 어려운지 이해가 안된다. 아니면 기억하기 싫은 것인지 궁금하다. 앞서 보여준 국민들의 역사적 단죄가 두렵다면 이 평범한 사실을 한시라도 까먹지 마시고 지금이라도 몸소 실천하시길 권해드리고 싶다. 국민의 힘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온전히 지켜낸 자랑스럽고 자랑스러운 역사적 그날은, 2024년 12월 14일이다.
황경규/발행인
125
한 사내를 목베다(誅一夫)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非常戒嚴)에 대해 맹자(孟子)는 이렇게 질책한다. ‘오직 어진 자가 마땅히 높은 지위에 있어야 한다. 어질지 못한 자가 높은 지위에 있게 되면 이것은 악의 씨를 백성들에게 퍼트리는 일이 된다.(惟仁者 宜在高位 不仁而在高位 是播惡於衆也)’ 맹자는 이번 비상계엄이 한국 민주주의의 심장에 주사된 암(癌)과 같은 존재이며, 국민들의 손으로 깔끔하게 도려내어 반드시 민주주의를 온전히 회복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맹자는 다음과 같이 전제조건을 제시한다. ‘어짐(仁)을 훔치는 자를 일컬어 적(賊)이라 하고, 옳음(義)을 훔치는 자를 일컬어 잔(殘)이라 한다. 도적의 잔당(殘賊)을 한 사내(一夫)라고 한다. 한 사내인 주(紂)를 죽였다는 말은 들었으나 임금을 시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賊仁者謂之賊 賊義者謂之殘 殘賊之人 謂之一夫 聞誅一夫紂矣 未聞弑君也)’ 대통령의 비상계엄의 근간에는 권력욕(權力欲)이 내재되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권력은 공동체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합의와 희생으로 도출되고 위임되었다는 측면에서 그 자체로 경건하다. 따라서 권력을 감히 행사할 때에는 그야말로 등줄기에 땀이 나는 전율(戰慄)이 있어야 한다. 만약 오로지 개인의 권력욕에 의한 권력행사라면 이는 계약 위반이며 주벌(誅伐)의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작금의 국민들의 탄핵요구는 ‘인의(仁義)를 도적질한 한 사내를 목 베는 일’이다. 맹자의 말씀은 시대를 떠나 언제나 옳다. ‘정(政)은 안민(安民)에 있으며 요민(擾民)에 있지 아니하고, 치(治)는 제해(除害)에 있고 양해(養害)에 있지 아니하다’ 유학자 최한기는 혼조(昏朝)에서 권력만을 탐하는 권신(權臣)을 자처한 현 정치권이 안민제해(安民除害)의 길을 가지 않고 요민양해(擾民養害)의 길을 걷고 있지 않는지 스스로 뒤돌아 보기를 권하고 있다. 우리의 역사는 권력을 차지하고자 추악한 아귀다툼을 벌이다가 명줄을 재촉하고 패가망신하는 자들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적어도 ‘역사의 죄인’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국민은 시간이 지나면 다 잊어버리고 또 뽑아준다.’ 모 국회의원의 발언을 요약하면 그렇다. 대통령 탄핵 투표 불참으로 혼조의 권신이 되기를 자처한 모 국회의원이 국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있는 젊은 피의 국회의원에게 했다는 조언이다. 한편으로 그런 생각을 할 법도 하다. 그토록 저질이라고 매도하던 저 선량(選良)들을 뽑은 건 정작 누구였던가? 과연 그들에게 낙선(落選)의 쓴 잔을 안겨주기는 했는가? 이제 반드시 기억하고 낙선의 쓴 잔을 그들의 손에 들려주어야 할 것이다. 이런 말을 듣고도 다시 뽑아준다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사실 처음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보면서 속으로 비웃었다. 그 이유는 이 땅의 민주주의와 국민들을 우습게 여긴 처사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보란 듯이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승리했다. 국민들이 옳았다. 맹자의 가르침대로 국민들의 손으로 ‘악의 씨앗, 한 사내를 목베는 일’을 수행했다. 이제 국민과 민주주의를 우습게 본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한다.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비상계엄에 동조한 그 누구든지 말이다. 더불어 국민을 향해 총구를 겨눈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한 평범한 범부의 몰락을 지켜볼 차례이다. 탄핵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제는 자신들의 행동에 책임을 질 시간이다.
황경규/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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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문화관광재단 정의(正義)를 입에 담으면 ‘참으로 어리석다’는 핀잔이 화살처럼 날아와 박히는 세상이다. 이미 세상이 시비(是非)보다 이해(利害)의 관점에서 판단하는 것이 상습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고작 ‘정의’ 따위가 무슨 의미를 갖느냐는 식이다. 정작 ‘정의’는 사라지고 ‘위선’이 판을 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명 조식은 ‘바른 선비는 범의 가죽과 같다’고 했다. 정의로운 사람을 바른 선비라고 가정한다면, ‘정의는 범(虎)’이라고 전제할 수 있다. ‘범 같은 정의’가 필요한 세상이지만, 정작 세상은 범을 자신의 곁에 두고 싶어 하지 않는다. ‘정의의 발톱’에 자기가 다칠까 두려워서다. 그래서 주변에는 하나같이 하이에나, 여우, 늑대 같은 동물들이 득실대기 마련이다.진주문화관광재단 출범 당시, 지역사회의 기대가 높았다. 문화예술정책 전문성 강화, 체계적인 지원시스템 구축 등을 통해 진주 문화예술계의 미래를 밝혀 줄 것이라는 믿음 또한 충만했다. 근데 현실은 진주의 문화와 관광을 지배하는 공공 권력이 되고 있다는 지적의 연속뿐이다. 몇몇 사례를 들어 본다.‘진주논개제’ 주최 단체가 하루 아침에 진주문화원에서 진주문화관광재단으로 바뀌었다. 진주문화원의 극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공론화 절차는 생략됐고,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민간 단체가 수행하던 사업을 사실상 강탈한 것이나 진배없지만 진주문화관광재단은 아무런 문제 의식없이 당연한 것처럼 여겼다. 그리고는 마치 진주문화관광재단의 엄청난 실적인 양, 언론에 홍보를 해댔다. 애당초 진주문화관광재단 설립을 반대했던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이후, 민간 영역의 적지 않은 사업들이 실적에 눈이 먼 진주문화관광재단이라는 블랙홀에 무차별적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진주문화예술재단의 핵심사업인 ‘대한민국 등 공모대전’도 진주문화관광재단이 사실상 강탈했다. 애초에 사업 수행의 노하우 여부 따위는 문제 삼지 않았다. 진주문화예술재단으로부터 사업을 빼앗아 진주문화관광재단의 실적을 채우는 것이 더 우선이었다. ‘진주시가 하라는데 어쩔 수 없다’는 비겁한 변명을 해서는 안된다. 아닌 건 아닌 것이다. 민간재단 사업을 빼앗아 제 살 찌우라고 만든 진주문화관광재단이 아니다.진주남강유등축제 초혼점등의 하이라이트인 ‘불꽃 놀이’와 ‘드론 쇼’도 올해부터 진주문화관광재단이 차지했다. 예산권을 쥔 진주시가 예산을 넘겨 주자 진주문화관광재단은 덥썩 물었다. 이러한 진주시의 독단적인 정책 결정이 지역 문화예술계에 미칠 악영향을 알면서도 진주문화관광재단은 모른 척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침묵은 암묵적 동의이며, 사실상 공범이다. 이런 일이 계속된다면 향후 진주문화관광재단의 존재 필요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는 핵심적인 이유가 될 것이다.특히 진주문화관광재단이 진주공예인협회의 민간 보조금 예산 전액을 가로챈 사실은 충격적이다. 오직 진주문화관광재단의 성과를 위해 민간 단체의 예산을 사실상 강탈한 것이다. 더군다나 사업 추진 과정에서 불거진 불협화음과 공동사업 추진 약속을 내팽개친 진주문화관광재단의 모습은 ‘문화 권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진주문화관광재단에 대한 지역사회의 지적이 쏟아지자, ‘어느 날 갑자기 진주에 정의로운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는 비아냥이 내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재단운영에 대해 지적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거친 항의를 하는 등 불편한 심기를 굳이 감추려 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진주문화관광재단의 태도에 최근 지역의 문화예술단체들은 눈치를 보며 납작 엎드리고 있다. 진주문화관광재단이 어느새 ‘갑 중의 갑(甲)’ ‘옥상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알고 있다면 다행이지만, 모른다면 정말 문제이다. 현재로선 이러한 모습이 바로 진주문화관광재단이다. ‘범(虎) 같은 정의’가 필요한 이유는 차고 또 넘친다.
황경규/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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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어지러우면 악덕 무당이 판친다. 제법 괜찮다는 길목엔 천지인을 상징하는 삼색천을 매단 대나무를 대문간에 세워두고 안방엔 신당을 차린다. 소위 신군(神君)을 자처하는 그들은 세상 살이 다급한 민초를 대상으로 혹세무민한다. 그리고 마치 세상 사람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판관처럼 행세한다. 보편적 인식이 그렇다는 말이다. 비단 무당에만 그치지 않는다. 조폭도 마찬가지이다. 이른바 ‘패밀리’의 머릿수가 곧 ‘힘’인 이들은 ‘대부’의 그늘에서 복
‘잣대’라는 말이 있다. 길이를 재는 자로 사용되는 대막대기 혹은 나무 막대기의 일종으로 통칭 ‘자막대기’라고도 부른다. 이 말은 자고로 도덕적인 행위나 사물의 기준을 재단하는 객관적인 근거로 인용되곤 했다. 흔히 ‘객관적이지 못한 일’이나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은 이 잣대를 기준으로 잘잘못을 가리곤 한다.그런데 이 잣대란 말은 그 자체로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잣대가 적용되는 순간, 그것은 객관적이지 못하며 형평성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이 ‘잣대’는 일부 소수 권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