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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등치는 사람들

  • 작성자

    황경규/발행인

  • 작성일

    2024.09.15 PM 22:44

  • 조회수

    113

 ‘정치를 등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권력을 앞세워 법을 악용하는 무리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은 사람이 만든 법을 가지고 언제나 사람에게 군림하고, 법을 인간의 족쇄로 만들고 있습니다. 공자는 '덕(德)으로 정치를 하라'고 말했습니다. 풀어보면 '제발 정치를 등치지 마라. 이것은 백성의 소원이다'라는 말씀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닐지...

정치를 등치는 사람들

▶ ‘정치를 등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권력을 앞세워 법을 악용하는 무리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은 사람이 만든 법을 가지고 언제나 사람에게 군림하고, 법을 인간의 족쇄로 만들고 있습니다.

‘정치와 권력의 함수’라고 부릅니다.

 

○ 오늘날처럼 권력의 장치가 공고히 다져져서 무서운 힘을 발휘하는 시대는 없는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 사실 정치를 하는 힘은 권력에 있습니다. 따라서 권력을 쥔 사람은 항상 자신이 칼자루를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법과 힘으로 밀어 붙이거나 아니면 갖은 술수를 부리고 엄포를 놓아서 주눅이 들게 해 세상을 억지로 꿰맞추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런 이유 때문에 변란이 일어나 때로는 밀려나고 물러나고 빼앗고 빼앗기면서 정권의 다툼이 요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른바 다스리는 사람, 즉 치자들이 정권욕에 사로잡히면 잿밥에 눈이 팔려 염불을 못하는 중과 다를바가 없게 됩니다. 

왜 백성들이 정치를 불신하겠습니까? 

정권을 잡으면 특권층이 신흥세력으로 부상하고, 정권을 빼앗기면 다음날로 신흥세력에 의해 구세력이 축출되는 그런 구태를 일삼아왔기 때문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인의 장막에서 부정부패가 기승을 부려 한평생 독립운동을 했던 보람도 없이 망명을 해야 했고, 박정희대통령은 독재의 엄호를 받은 측근세력들의 세도에 희생당했고, 전두환대통령은 척족들이 이권의 사냥꾼들이 되는 바람에 권좌에서 물러난 뒤 절간에서 유배생활을 했습니다. 

이처럼 대권을 쥔 이른바 치자들의 말로가 비참하거나 부끄러운 결말에 이른 까닭은 올바른 다스림의 정치를 하지 못하고 힘으로 다스리는 정치, 즉 사람위에 군림하는 정치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2,500년전부터 위정이덕(爲政以德) 즉, ‘정치는 덕으로 하라’고 가르쳤습니다.

 

○ 사람을 잘 쓰는 것도 나라를 잘 다스리는 중요한 일이 되지 않을까요?

 

▶ 순자(荀子)의 군도(君道)라는 글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현명한 임금은 금이나 보석 등은 사사로이 사람들에게 주지만, 관직이나 직책은 사사로이 사람들에게 주는 법이 없다’라고 했고, 한시외전(韓詩外傳)에는 ‘인사가 도리에 합당하면 귀신의 일에도 순응할 수 있고 귀신의 일에 순응하면, 내리는 복이 크고 넓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지도자가 인지상정에 얽매여서 인사의 공정을 잃으면 조직의 근본이 흔들리게 됨을 경고한 말입니다.

춘추시대의 일입니다. 

진나라의 문공이 구범(咎犯)이라는 사람에게 서하라는 곳의 태수로 누구를 삼으면 좋을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구범은 우자고(虞子羔)라는 사람을 추천합니다. 

그러자 문공이 우자고와는 서로 원수지간인데 어떻게 추천할 수 있느냐고 묻자, 우자고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임금께서는 누가 태수로 적당한지를 물었지, 누가 원수인가를 물은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인간이면서 감정의 애증을 초월할수 없지만 공적으로는 객관적인 시각에서 대상을 판단할 수 있어야 리더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면서도 그 잘못을 알고 미워하면서도 그 장점을 아는 것, 이것이 바로 리더의 엄정함입니다. 

구범이라는 사람은 이러한 엄정함을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 임금이 잘못하던 신하가 잘못하던간에 정치를 등치는 사람들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자는 국민들 아니겠습니까?

 

▶ 이른바 힘으로 하는 정치는 정치를 보기 좋게 화장을 해주는 경우로 변질되기 쉽습니다. 

이렇게 되면 법이라는 것이 거미줄과 같아서 새는 그 거미줄을 뚫고 날아가 버리지만 벌레 따위는 걸리고 만다는 탄식이 국민들의 입에서 떠나 본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법망을 비웃고 날아가는 새는 무엇일까요? 

바로 권력을 가진 이른바 힘있는 무리이고, 법망에 걸려드는 벌레는 힘없는 국민들을 말합니다. 

따라서 법을 어기지 않으면 아무런 일이 없는 세상을 살수 있지만, 법대로만 하다가는 살아갈 수가 없다는 국민들의 말을 흘려 버릴 수 없습니다.

아무리 법치의 세상이라 하더라도 정치를 하는 사람의 됨됨이가 인의(仁義)에 바탕을 두지 않는다면 세상은 항상 무섭게 돌아가고 맙니다. 

사람보다는 컴퓨터를 더 믿으려는 세상이 되면 될수록 세상을 다스리는 일에 비인간화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권력을 치부의 수단이나 특권으로 여기는 사람을 사이비 정치꾼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 최근 검찰총장 후보자가 논란 끝에 사퇴를 하기도 했지 않습니까?

 

▶ 아마 이번 사건을 두고 많은 국민들은 소위 이 땅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한번쯤은 생각을 해보셨을 것 같습니다. 

사실 검찰총장은 대검찰청의 최상급자이면서 권력의 핵심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인사청문회를 한 결과는 어땠습니까? 

위장전입에 주택 구입자금 의혹, 의심스러운 부인의 명품 쇼핑, 스폰스와 해외골프 여행, 그리고 자녀 결혼식을 국내 최고가의 6성급 호텔에서 하고서도 그곳을 소박하게 ‘조그만 교외’라고 표현하는 후보자의 모습에서 아마 많은 국민들은 우리나라의 이른바 상류층의 도덕불감증과 거짓말 투성이의 위선에 허탈감을 느끼셨을 겁니다.

물론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현재 이 땅에서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그와 비슷한 수준에 있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내다보지 않아도 뻔하다는 생각 역시 한번 해보셨을 겁니다.

 

지금 난장판을 벌이고 있는 여야 정치권이 원하는 것은 과연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과연 그들이 그토록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 과연 국민을 위한 일일까요? 

지금 여야 정치권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게 아니라 자신들을 위한 정치를 하고 있다는 국민들의 따끔한 지적을 과연 눈치나 채고 있을까요?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는 소위 대한민국 권력의 핵심을 들여다보면서 과연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공자는 ‘덕으로 정치를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마도 또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겁니다. 

‘제발 정치를 등치지 마라, 이것은 백성의 소원이다’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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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 척 하는 사람을 대처하는 좋은 방법

○ 오늘 고전의 향기는 어떤 내용입니까? ▶ 사람의 크기를 무엇으로 잴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자본주의 시대에 걸맞게 오직 돈와 명예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혹은 공부를 많이 해서 박학다식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오늘 고전산책에서는 고전이 말하는 ‘사람의 크기’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현대사회에서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가진 사람을 동경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고전에서는 좀 다르겠죠? ▶ 고전을 보면 이 세가지를 경계하는 글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먼저 춘추좌씨전을 보면 부를 거머쥔 사람들을 경계하는 글이 있습니다. ‘부이불교자 선(富而不驕者 鮮)이요 교이불망자(驕而不亡者) 미지유야(未之有也) 니라’ 즉 ‘부자이면서 교만하지 않는 자가 드물고, 교만하면서 망하지 않는 자가 있지 아니하다’라는 뜻입니다.따라서 일반적으로 부를 가진 사람은 교만하기가 쉬운데 증자(曾子)라는 사람은 부유하다고 해서 잘난체 하는 사람을 대처하는 좋은 방법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피이기부(彼以其富) 아이오인(我以吾仁)’이라 해서 부(富)를 가지고 잘난체 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어질게 행동한다면 전혀 문제될게 없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그리고 명예와 관련해서는 맹자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성문과정(聲聞過情)을 군자(君子) 치지(恥之)니라’ 즉, ‘명성이 실제보다 지나친 것을 군자는 부끄러워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지금 이 세상에는 자신보다 잘난 사람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너무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지식인층을 살펴보면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집니다.권력 또한 국민의 신의를 바탕으로 생기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소위 권력자들은 권력을 가지는 순간 곧바로 국민위에 군림하려고 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그래서 고전에서 사람의 크기를 구분할 때는 반드시 그 사람이 가진 사랑이 얼마나 크고 넓은 지로 경계로 삼고 있습니다. ○ 사랑의 크기로 사람의 크기를 재단하기에는 객관적으로 조금 어렵지 않을까요? ▶ 그래서 고전을 읽다보면 군자(君子)와 소인(小人), 대인(大人)과 소인(小人)이니 하는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이것 역시 사람을 구분하는 잣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인사(人事)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너무 잘 알고 있는 단어이고 일상생활에서 늘 하는 행동이지만 사실 정확히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알고 계신 분들은 드문 것 같습니다. 인사라는 것은 사람 인(人)에 일 사(事), 즉 사람이 해야 할 일, 사람의 도리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사람으로써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하면 군자가 되는 것이고, 그 도리를 알고도 행하지 않는다면 소인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크기는 그 사람이 가진 사랑의 크기가 얼마만큼 큰가에 따라 구분을 지을 수 있습니다. 만약 그 사랑이 천하를 덮을 정도라면 그 사람은 천하만큼 큰 사람입니다. 제 한몸의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알았던 백범 김구 같은 분들을 우리가 위대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설원(說苑)이라는 책에 ‘대인자 은급사해(大人者 恩及四海)요 소인자 지어처자(小人者 止於妻子)’라고 했습니다. 즉, ‘대인은 그 은혜가 천하에 미치고, 소인은 처자에게 그친다’는 뜻입니다.보통 사람들의 사랑은 자기 가족을 살피는데 그치는게 일반적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자기 가족만큼의 크기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 보다 못한 사람은 자기자신만을 사랑하는데 그치게 되는데 그 사람은 자신만큼의 크기를 갖게 됩니다. ○ 말을 뒤집어 본다면 자신의 크기만큼 남을 사랑할 수 있다는 뜻도 되지 않겠습니까?▶ 고전에서 사람의 크기를 말할 때 늘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 대장부의 정의입니다. 맹자는 사내가 세상에 태어나면 무릇 대장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대장부에 대한 정의를 내림과 동시에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맹자가 말하는 대장부는 ‘인(隣)이라는 천하(天下)의 넓은 집에 살고, 예(禮) 라는 천하(天下)의 바른 위치에 서서, 의리(義理)라는 천하(天下)의 큰 도(道)를 행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곧, 천하를 사랑할 수 있는 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입니다.그리고 많은 성현들이 대장부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도 했습니다.맹교(孟郊)라는 사람은 ‘군유장부루(君有丈夫淚) 읍인불읍인(泣人不泣人)’이라고 해서 ‘그대에게 대장부의 눈물이 있다면, 남을 위하여 흘리고 자신을 위해 흘리지 말라’고 했습니다.그리고 원매라는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 영웅이 되고 미인을 얻는 것은 ‘일신의 사랑’이지 ‘천하의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모름지기 세상에 태어나면 일신의 영달이나 추구하는 작은 사람이 아니라 천하의 영달을 추구하는 큰사람이 되기를 희망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백거이라는 사람은 신제능오성감이유영(新制綾襖成感而有詠)이라는 시를 통해 대장부의 포부를 이야기 하기도 했습니다. 헐벗어서 구제할 수 없는 백성들이 많은데혼자만 따뜻하면 어떤 마음일까어찌하면 만 장 길이의 큰 가죽 옷을 구해서온 낙양성 사람을 덮어 줄 수 있겠는가 천하의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가진 사람만이 마치 큰 사람처럼 보이는 거짓된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수긍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되돌아보게 됩니다.거대한 기업들은 국민을 먹여 살린다고 강변하면서 때로는 협박까지 일삼고 있고, 알량한 명예를 지닌 사람들은 마치 세상을 다 거머쥔 것처럼 오만을 떨고 있으며, 권력을 쥔 사람들은 마치 자신의 행동이 법이라도 되는 것처럼 막무가내식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런 사람들의 사람의 크기는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여기서 과연 나의 사랑은 어디까지를 덮고 있는가를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의 사랑이 미치는 곳이 국가인지? 가족인지? 아니면 자신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한번 던져 보시고 만약 그 어딘가에 자신의 마음이 머문다면 그곳이 나의 사람됨의 크기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고전은 말하고 있습니다.

  • 2024-09-15
  • 작성자

    황경규

  • 조회수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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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는 물 식히려면 장작불 부터 꺼라

끓는 물을 식히려면 장작불 부터 꺼라 ‘끓는 물을 식히려면 장작불을 끄는 것이 가장 좋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결과란 원인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좋은 원인을 만들면 당연히 좋은 결과가 뒤따른다는 말입니다. 예로부터 현명한 사람들은 이러한 이치를 잘알기 때문에 좋은 원인을 먼저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원인이 결과를 만든다’는 고전의 가르침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사실 보통 사람들은 좋은 원인을 만드는 것은 등한시하면서도 좋은 결과만 기대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 사실 좀 어려운 것 같은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조금 쉽게 설명드리면 ‘평소에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고 시험성적이 좋기만을 바라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회남자(淮南子) 범론훈(氾論訓)편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송나라 사람이 딸을 시집보내면서 “혹시 나중에 이혼을 당할 수 도 있으니 돈을 은밀히 좀 모아두어라. 너에게 돈이 많이 있으면 다시 시집 가기가 쉬울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시집을 간 딸은 아버지가 일러준 계책대로 돈을 은밀히 모아두었지만 나중에 이 사실이 발각되어서 결국 시집에서 쫓겨나게 됩니다.딸의 아버지는 이혼에 대비해서 돈을 훔쳐 모아둘 필요성은 알았지만, 그것이 이혼의 사유가 될줄은 몰랐고, 어려움에 대비할 줄만 알았지 어려움이 생기지 않도록 할 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결국 좋은 결과를 만들지 못할 것에 대해서는 두려워했지만 좋은 원인을 만드는 것에는 등한시 했던 것입니다.그래서 문자(文子)는 미명(微明)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사람들은 모두 생겨난 환난에서 빠져 나올줄은 알지만 환난이 생겨나지 않게 할 줄은 모른다’이 글은 매사에 그 원인이 있는데 결과에만 매달리고, 그 원인에 천착하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지적한 글입니다. ○ 사실 요즘 세상을 살다보면 원인과 결과에 상관없이 진짜로 불합리하다 싶은 일들을 많이 경험하게 되지 않습니까? ▶ 수많은 인간군상들을 불후의 저서인 사기(史記)에 기록했던 사마천(司馬遷) 역시 원인과 결과에 부응하지 않는 인간세상의 불합리함을 두고 이렇게 통탄했습니다.‘하는 일이 올바르지 않고 법이 금지하는 일만 범하면서도 일평생을 호강하고 즐겁게 살며 대대로 부귀가 이어지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하면 걸음 한번 내 딛는데도 땅을 가려서 딛고, 공평하고 바른 길이 아니면 가지 않는데도 재앙을 만나는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이런 사실은 나를 당혹스럽게 한다. 만약에 이러한 것이 하늘의 도리라고 한다면 이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아니면 그른 것인가’사실 이러한 일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소위 팔자타령을 하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은 뼈빠지게 일해도 겨우 목에 풀칠할 정도로 늘 어렵게 살뿐이고, 뒤에 숨어서 온갖 못된 짓을 다하는 사람은 죽자살자 일을 하지 않아도 보란 듯이 떵떵거리고 사는 모습을 우리는 현실속에서 수없이 목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떨때는 정직하게 살던 사람이라도 이런 부조리한 현실과 부딪히게 되면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것인지 헷갈리게 됩니다. 법을 지키고 바른길을 가기보다는, 차라리 그들처럼 잘살기 위해서 불법이라도 자행하는 것이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세상이 점점 어지러워지면서 불법이 판을 치고, 불법을 하지 않으면 살기 어려운 세상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는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원인보다는 결과에만 집착하게 되는 세상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하지만 고전에는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일깨우는 좋은 글들이 많이 있을 것 같은데요? ▶ 고칙성(高則誠)의 비파기(琵琶記)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선행과 악행은 결국 응보가 뒤따른다. 다만 빠른가 느린가의 문제일 뿐이다.’사실 사람이 겪는 화(禍)와 복(福)은 짧은 시간에 판가름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복으로 알았지만 나중에 화가 되고, 화로 알았던 것이 후일에 복이 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경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떵떵거리고 살지만 그 재물을 정당치 못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라면 언젠가는 반드시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것도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노자(老子) 임위편(任爲篇)에도 天網恢恢(천망회회) 疎而不失(소이불실)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이 글은 ‘하늘의 그물은 넓고 넓으며, 성기지만 새는 곳이 없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다 자세하게 설명 드리면 하늘의 그물은 넓고 광대해 비록 그 그물의 눈이 성글게 보이지만 선악의 응보를 반드시 내리고 절대로 실패하는 일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그리고 회남자는 ‘뚜렷한 공이 없이 얻은 큰 이득은 뒤에 가면 장차 손실로 변한다’고 했고, 전국책에서는 ‘공이 없는 상과 힘쓰지 않고 받은 예우는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그리고 명심보감에서는 ‘까닭없이 큰 돈을 얻게 되면 큰 복이 아니라 반드시 큰 재앙이 있게 된다’라고 했고 구양수(歐陽修)도 ‘소인이 뜻을 이루면 한때 통쾌해 하지만, 진정 그 득실을 알려면 시간이 흐른뒤에야 비로소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 최근 비정규직법 문제가 적지 않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고전의 가르침은 어떻습니까? ▶ 이 문제야 말로 원인보다는 결과에만 천착하고 있는 어리석음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여야 모두가 비정규직법안에 대해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서로 자기가 옳다는 주장만 하고 있습니다. 여당은, 야당이 비정규직법 시행유예를 거부해 실업대란이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야당은 노동의 유연성만 강조하는 바람에 해고사태를 방조하고 있다고 서로 비난에만 열을 올리면서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논란의 중심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라는 법의 당초 취지가 아예 실종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한 법이 오히려 비정규직의 대량 해고사태를 불러온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있다면 그 근본원인에 대한 해법만 제시하면 될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논란을 보면 여야 모두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비정규직법안이 가져올 그 결과에만 서로 천착을 하면서 난장판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어 가고 있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는 것 같이 보입니다.앞서 말씀드렸듯이 끓는 물을 식히려면 장작불을 끄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지금 비정규직 법안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논란에 있어 어떤 것이 끓는 물이고, 어떤 것이 장작불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정치권을 보면 장작불을 끄기는커녕 끓는 물에 서로 손을 데여가면서 물을 식히는데만 골몰하고 있습니다.지금 이 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사마천이 당시 세상의 불합리함을 통탄했던 것과 같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비정규직법안을 놓고 다투는 정치권을 보면서 매사에 그 원인을 외면한채 결과에만 매달리고, 그 원인에 천착하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 2024-09-15
  • 작성자

    황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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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행무구(中行無咎), 중(中)을 행하면 허물이 없다

○ 오늘 고전의 향기는 어떤 내용입니까? ▶ 전설적인 성군(聖君)이었던 순(舜)임금은 우(禹)임금에게 자신의 왕위를 넘겨주면서 다음과 같이 간곡하게 당부를 합니다. ‘오로지 정신을 하나로 모아 성실한 마음으로 중(中)을 지켜라’ 이 말이 바로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謀 )편에 나오는 유정유일(惟精惟一) 윤집궐중(允執闕中)입니다.항상 균형과 공정을 유지하라는 당부가 바로 왕위를 인수인계 하는데 있어서 핵심이었던 것입니다.오늘 고전의 향기에서는 ‘하늘은 균형을 추구한다’는 고전의 가르침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하늘은 균형을 추구한다는 말은 어떤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까요? ▶ 노자(老子) 79장(章)을 보면 천도무친(天道無親)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하늘은 사사로운 친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즉 하늘은 특별히 어떤 존재를 이롭게 하거나 불리하게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따라서 일반적으로 사물의 구성과 만물의 관계가 공평해서 치우치지 않는 것이 천리(天理)이고 천도(天道)라고 하는데, 이러한 이치를 노자는 공정하다는 뜻의 공(公)이라고 했고, 중용에서는 가운데 라는 의미의 중(中)이라고 했습니다.노자는 공정함 즉 공(公)이 곧 왕의 처신이며, 왕의 처신이 곧 하늘의 뜻이라고 했고, 중용에서는 한 편으로 치우치거나 기울지 않는 것이며, 부족함이 없는 것이라고 했습니다.이와 관련한 고전속의 명언들이 많습니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에는 ‘화평은 공정함에서 나오고 공정함은 도에서 나온다’라고 했고, 한서(漢書)에는 ‘하늘은 고르지 않게 내려주지 않고, 땅은 치우치게 실어주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다시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극에 달하면 되돌아오고, 가득차면 덜게 된다’는 법칙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역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하늘의 도는 가득한 것을 덜어서 모자란 것에 보태고, 땅의 도는 가득한 것을 변화시켜 모자란 것으로 흐르게 한다.’개인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지배층과 피지배층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집니다.만약 지배층의 가렴주구가 극에 달해서 피지배층의 존재가 위협을 받게 되면 기존의 체제를 무너뜨리는 반동적인 움직임이 있었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혁명(革命)과 민란(民亂)이 바로 그것입니다. 따라서 ‘하늘은 균형을 추구한다’는 말은 복잡다단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늘 공정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세상을 살아가면서 중(中), 즉 공정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 허물이 없게 된다는 말씀인가요? ▶ 순자(荀子)라는 책에 보면 유좌지기(宥坐之器)라는 그릇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공자가 노나라 환공의 묘를 구경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한 쪽으로 기울어진 그릇을 발견하고는 묘지기에게 무슨 그릇인지를 물었습니다.그러자 그 묘지기는 “거처하는 옆에 두고 교훈을 삼는 그릇입니다.”라고 말합니다.이 그릇을 보고 돌아온 공자는 제자들에게 이 유좌지기(宥坐之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내가 듣건대, 유좌지기는 거처하는 옆에 두고 교훈을 삼는 그릇인데 비면 기울어지고, 알맞게 차면 바로 서며, 가득차면 엎어진다고 한다.”라고 말한 뒤 “가득 차고서도 엎어지지 않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라고 탄식을 했다고 합니다. 중국 곡부에 있는 대성전에는 이 유좌지기를 살펴보는 공자의 모습이 담긴 그림이 여러 점이 있습니다. 그림 속의 유좌지기는 공중에 매달린 양동이와 흡사한데, 손잡이 걸이가 무게 중심보다 약간 아랫부분 양쪽에 붙어 있어서 속이 비거나 가득차면 엎어지고, 적당히 물이 차면 바로 서는 그릇이었습니다.공자가 이 그릇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중행무구(中行無咎)’ 즉 중(中)을 행하면 허물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요즘처럼 복잡다단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공정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삶을 살아가기란 어렵습니다.세상이 복잡해지는 만큼 공정함의 경계도 애매모호해지고, 중용의 삶 즉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삶 역시 쉽지 않습니다.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공정함과 중용의 삶을 살려고 하는 의지마저 덩달아 약해지면서 자신의 삶의 기준도 세우지 못하고 세상이 움직이는 대로 몸을 맡기면서 사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 사실 중행을 실천하는 일이 그리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 스페인의 철학자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인생을 보는 지혜’라는 책을 보면 ‘인생의 지혜는 언제나 균형을 선호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즉 그라시안은 균형이 바로 인생의 지혜라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동서양이 공히 삶에 있어서 균형을 유지하는 일은 삶의 궁극적인 목표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라시안은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지나친 정의는 부당함이 될 수 있다. 달콤한 오렌지즙도 너무 오래 짜면 나중에 쓴맛이 나온다. 매사에는 지나침이 아닌 절제가 필요하다. 최고의 약도 과용하면 독이 되고, 우유도 너무 잔인하게 짜내면 피가 나온다. 인생의 지혜는 언제나 균형을 선호한다.’ 사실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지만, 언제나 이 말을 가슴에 새기고 일상생활에서 실천하지 못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공자가 말한 유좌지기 역시 곁에 두고 늘 교훈으로 삼을 만한 그릇이지만, 늘 곁에 두고서도 그 그릇이 주는 교훈을 실천하기 쉽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오늘 하루 우리의 삶이 얼마나 공정하고 중행에 맞는 앎과 실천을 했는지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2024-09-15
  • 작성자

    황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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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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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민(罔民), 백성을 그물질하다

망민, 백성을 그물질하다 ▷ 망민(罔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물 망(罔)자에 백성 민(民)자가 조합된 말로 ‘백성을 그물질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맹자 등문공에 나오는 말로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을 묻는 등문공에게 맹자가 답한 내용입니다.오늘 고전의 향기에서는 맹자가 말하는 망민의 죄, 즉 백성을 그물질하는 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 망민, 즉 백성을 그물질한다 라는 말을 조금 쉽게 설명을 해주시죠? ▶ 중국 등나라의 문공이라는 사람이 맹자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법을 묻자 맹자는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백성의 생활을 두루 공평하게 도와 윤택하게 해주면서 나라의 세금을 알맞게 해서 벼슬아치들을 청렴하게 하며, 백성을 교육시켜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 바로 나라를 잘 다스리는 방법이 된다’ 여기서 맹자는 백성을 항산자(恒産者)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항산자라는 말속에는 백성은 항상 일거리, 즉 먹고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이 있어야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백성들은 방탕해지고 사악해져서 반드시 죄를 저지르게 된다고 했습니다.그리고 맹자는 이러한 상황에 처해 있는 백성이 할 수없이 죄를 저질렀을때 이를 처벌하는 것은 백성을 그물질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군주가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여기서 바로 망민, 즉 백성을 그물질한다라는 말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사실 맹자가 살던 전국시대에는 인권이라는 개념은 물론이고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 역시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군주에 대한 충성을 당연시했던 맹자 또한 망민은 군주가 하지 말아야 할 첫 번째 일로 손꼽았습니다. 이러한 망민의 예는 또 있습니다.맹자 양혜왕편을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나라의 선왕이 맹자에게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옛날 성군인 문왕은 사방 칠십리나 되는 동산을 가지고 있었는데 백성들이 오히려 작다고 생각을 했는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동산은 문왕보다 훨씬 적은 사십리에 불과한데도 오히려 자신의 동산이 크다고 생각하는 백성들이 잘못됐다는 것입니다.이에 대해 맹자는 옛날 문왕의 동산이 칠십리나 됐지만 그 동산에는 풀을 베고 나무를 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동산을 드나들었고, 꿩이나 토끼를 잡는 사람들도 마음놓고 동산을 드나들 수 있도록 해서 문왕이 그 동산을 백성들과 함께 썼다는 점을 강조합니다.그런반면 제선왕은 동산의 크기는 비록 사십리에 불과하지만 동산의 큰 사슴이나 작은 사슴을 죽인 사람을 마치 사람을 죽인 죄와 같이 큰 형벌을 주었기 때문에 제선왕의 동산은 나라 가운데 큰 함정을 파 놓은 것과 같아서 백성들이 오히려 크게 여긴다고 대답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맹자가 말하고자 한 망민은 지도자가 잘못된 제도를 만들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백성들을 범법자로 만드는 일과 다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무릇 백성들의 지도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이같은 망민의 죄를 범하지 않도록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망민, 즉 백성을 그물질하는 것은 자신 스스로 죄를 짓는 것일 뿐 아니라 망민의 결과로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원망까지 짊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이 때문에 고전에서는 무지한 자가 백성을 다스리는 지도자의 길로 나가기를 탐해서도 않되며, 지도자의 길로 나간 자들은 행여나 자신의 독단이 백성들을 그물질 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지는 않은지 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 이와 관련해 올바른 지도자의 길을 이야기하고 있는 고전도 많을텐데 소개를 좀 해주시죠? ▶ 중국 전국 시대(戰國時代)에 오기(吳起)가 지은 병법서인 오자(吳子)의 도국(圖國)편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초나라의 장왕이 신하들과 함께 나랏일에 대해 계책을 논의했는데, 여러 신하들이 장왕의 지략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에 장왕은 조회를 마치고 난 뒤 신하 중에 인재가 없음을 크게 한탄했다고 합니다. 이런 생각을 했던 장왕은 훗날 중국을 통일한 춘추오패 중의 한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반면 위나라 무후라는 임금도 신하들과 나랏일을 의논했는데, 신하들중 아무도 무후의 지략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무후는 조회를 마치고 나와서 자신이 신하들보다 잘났다는 사실에 기뻐했다고 합니다. 훗날 무후는 초나라 장왕과는 달리 오패는 물론 전국칠웅에도 들지 못하는 평범한 임금에 머물고 말았습니다.비록 같은 상황을 맞이했지만 초장왕과 위무후의 모습은 서로 달랐고 그 결과도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자와 현자 즉 어리석은 임금과 현명한 임금의 차이입니다.이 이야기의 교훈은 바로 이면의 이치를 볼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임금은 겨우 현재만 보는데 그치지만 현명한 임금은 과거와 미래도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우자는 드러난 현상만 보는데 비해 현자는 이면에 숨은 원리를 볼 줄 압니다. 이렇기 때문에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그들의 판단과 행동은 정반대의 양상을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결과는 어떨까요? 문자(文子)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성인은 처음에는 이치에 거스르는 듯 하지만 나중에는 합치되며, 뭇사람은 처음에는 이치에 합당한 듯 하지만 나중에는 거스리게 된다’라고 했습니다. 오직 지혜로운 사람만이 이해관계의 변화를 알수 있기 때문에 최후의 합당함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 2024-09-15
  • 작성자

    황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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