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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걸의 영화 '영웅'과 자객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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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경규/진주평론 발행인

  • 작성일

    2025.09.10 PM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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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자객열전에 등장하는 자객들은 무조건 나쁜사람들을 죽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고방식과 주관에 따라 자객의 임무를 자청했습니다. 예를 들면 예양이라는 자객의 말처럼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상대를 죽이거나 죽이려 한 사람들이 바로 자객이라는 것입니다. 사마천은 <자객열전>을 쓰면서 자객의 선정 기준을 매우 까다롭게 했습니다. 그 기준의 특징은 의(義)와 보은(報恩)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의와 보은의 정신을 소유하지 않은 암살자는 자객으로 선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연걸의 영화 '영웅'과 자객열전

 

사마천의 <자객열전>은 춘추시대를 살았던 자객들의 삶과 정신을 그린 책입니다. 

 

당시의 자객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단순한 암살범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의리와 의협심을 목숨보다 중하게 여겼으며, 분명한 뜻을 세워 그 뜻을 포기하거나 저버리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자객이었습니다. 

오늘 고전산책에서는 사마천의 자객열전에 등장하는 자객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 자객열전이 중국 무협소설의 원조가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자객열전에는 어떤 자객들이 등장하는지 소개를 좀 해주시죠?

 

▶ 사마천의 자객열전에 등장하는 자객들은 무조건 나쁜사람들을 죽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고방식과 주관에 따라 자객의 임무를 자청했습니다. 

예를 들면 예양이라는 자객의 말처럼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상대를 죽이거나 죽이려 한 사람들이 바로 자객이라는 것입니다.

사마천은 <자객열전>을 쓰면서 자객의 선정 기준을 매우 까다롭게 했습니다. 

그 기준의 특징은 의(義)와 보은(報恩)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의와 보은의 정신을 소유하지 않은 암살자는 자객으로 선정하지 않았습니다.

얼마전 중국인을 대상으로 사마천의 <자객열전>을 영화로 만들었을 때 가장 멋지게 보일 자객이 누구인지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시대를 베려 했던 자객인 형가(荊軻)가 1위였다고 합니다. 

지난 2003년 개봉한 이연걸과 양가위, 장만옥이 주연한 영화 <영웅>이 바로 이 형가를 모티브로 한 영화였습니다.

다음으로 가장 창조적인 자객으로는 물고기 뱃 속에 칼을 감추고 오나라 왕인 요를 암살한 어복장검의 주인공인 ‘결초보은’의 인물인 ‘전제’가 뽑혔고, 다음으로는 가장 감동을 주는 자객이자 자객의 진수를 보여준 ‘섭정(聶政)’이라는 자객이 뽑혔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성과를 거둔 자객은 자객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조말’이었고, 자신을 알아준 주인을 위해 자객이 된 ‘예양’ 등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암살자의 운명을 타고 난 ‘발제’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노력한 ‘미간척’, 이름을 남기기 위해 자객이 된 ‘요이’ 등의 자객이 있습니다.

 

○ 영화 ‘영웅’의 모티브가 된 형가라는 자객은 어떤 인물이었습니까?

 

▶ 형가는 시대를 베려했던 자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형가가 어릴적에 조나라 도읍인 한단으로 여행을 갔다가 그곳에서 훗날 진나라의 시황제가 되는 진나라 왕손인 ‘영정’과 연나라 태자인 ‘단’을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오랜세월이 흘러 영정은 진나라의 왕이 되었고, 진나라의 국력이 강성해지면서 조나라 한단에서 인질생활을 하던 연나라 태자 단은 진나라로 옮겨가게 됩니다. 

이때 태자 단은 진왕이 한단에서 같이 인질생활을 할때 많은 도움을 준 진왕이 자신에게 도움을 줄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진왕이 이를 외면하자, 

이에 태자 단은 진나라 왕을 암살할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이때 발탁된 인물이 바로 형가입니다. 

형가가 태자 단의 청을 받아들인 이유는 점점 더 폭군으로 변해가는 진왕에 대한 우려가 컸고, 이대로 가다가는 이웃나라 전체가 진나라에 복속되고 말 것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형가는 연나라 사신으로 위장해 진나라 왕 앞에 서는 것은 성공했지만, 암살하는데는 실패하고 맙니다. 

따라서 형가는 단순히 진나라왕을 암살하려 한 자객이 아니라 시대 자체를 배려했던 자객이었던 것입니다. 

진나라 왕은 형가를 죽였고, 그러고도 분이 안풀려 시체의 수족을 모두 잘라 길거리에 내걸었다고 합니다.

 

○ 어복장검의 주인공인 전제라는 자객은 자객의 요건을 완전히 갖춘 자객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습니까?

 

▶ 전제라는 자객은 오나라 출신으로 평범한 삶을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오자서’라는 사람을 만나면서 운명이 바뀌게 됩니다. 

전제는 어린시절부터 오자서가 부친의 은인이고 언젠가 그 은혜를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습니다. 

오자서는 아버지와 형이 초나라 평왕(平王)에게 피살되자 오나라를 도와 초나라를 쳐서 원수를 갚은 인물이기도 합니다.

오자서가 초나라에 와서 복수를 칼을 갈던 중에 드디어 전제와 만나게 되고, 두사람은 ‘결의형제’를 맺습니다. 

오자서는 초나라의 제2 공자인 ‘회광’과 손을 잡고 오나라 왕인 ‘요’를 살해할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이때 발탁된 인물이 바로 전제였고, 전제는 선친의 은혜를 갚기 위해 자객으로 나서 오나라 요를 암살하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전제는 의로웠고, 은혜를 잊지 않았으며, 자신의 행위에 대한 보답도 바라지 않았다고 합니다.

 

○가장 감동적인 자객으로 뽑힌 섭정과 자신을 알아준 주인을 위해 자객이 된 ‘예양’은 어떤 인물이었습니까?

 

▶ 섭정이라는 자객은 가장 감동적인 스토리를 갖고 있기도 하지만, 자객의 진수를 보여준 자객이기도 했습니다. 

섭정은 쾌속검의 달인인 ‘표공’의 제자가 된지 10년이 지난 어느날, 엄수라는 사람의 방문을 받게 됩니다. 

엄수는 한나라의 재상인 ‘협누’라는 사람을 죽여달라고 부탁했지만 섭정은 봉양해야 할 노모 때문에 이를 거절하게 됩니다.

그러자 엄수는 섭정의 노모를 5년동안 지극정성으로 봉양했고, 어느날 노모가 세상을 떠나자 삼년상을 마친 섭정이 엄수를 찾아가 그동안의 일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전한 후 홀홀단신으로 한나라 재상인 협누를 죽이기 위해 길을 떠나게 됩니다.

섭정은 심부름꾼으로 가장하고 협누를 찾아가 30여명의 호위병과 20여명의 궁수를 물리치고 당상 위에 앉아있던 협누를 살해하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얼굴이 알려져 엄수에게 화가 미칠 것을 걱정한 섭정은 칼로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고 눈까지 빼낸뒤 자신의 목을 찔러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됩니다. 

그리고 예양이라는 자객은 진나라 사람으로 ‘지백’이라는 사람의 신임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지백이 당시 세력을 넓혀가던 조씨 일파에 의해 살해 당하자 예양은 자신의 주인을 죽인 조양자를 죽이려 하지만 실패합니다. 조양자는 예양의 충성심에 감동을 해 눈물을 흘리며 다시 돌려보내지만 예양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온몸에 옻칠을 하고 눈썹과 수염까지 뽑고는 숯을 먹어 목소리까지 변하게 만든 뒤 다시 조양자를 죽이려 하지만 실패를 한뒤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자살을 하게 됩니다. 

‘사나이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

 

사마천의 자객열전을 보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지극히 평범한 것입니다. 

잔인무도한 한 시대를 베고자 했던 형가의 시대정신과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목숨을 내던졌던 섭정의 결초보은 정신, 그리고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을 줄 알았던 예양의 의로운 모습은 결코 비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자신을 죽이려 했던 자객 예양의 의리에 눈물을 흘린 조양자의 태도를 각박한 지금 이 시대에 과연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습니다.

사마천이 자객열전에서 보여 주고자 한 것은 자객의 행위보다는 그 행위의 목적과 대의명분이었습니다. 

사마천의 자객열전을 읽으면서 눈 앞의 이익만 추구하며 이합집산하는 오늘날의 시대정신을  다시 되돌아 보는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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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례(冠禮)와 계례(笄禮)의 사회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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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9-10
  • 작성자

    황경규/진주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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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서치(feat. 책 빌리는 예의)

‘간서치(看書癡)’○ 오늘 고전산책은 어떤 내용입니까? ▶ 조선시대 선비인 이덕무(李德懋)를 가리켜 ‘간서치(看書癡)’라고 불렀습니다. 간서치란 ‘책 읽는 바보’ 쯤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오늘 고전산책에서는 조선시대 선비 이덕무의 책읽기에 대한 그의 생각과 사상을 알아보겠습니다. ○ 조선시대에 서파(庶派)로 분류되면 벼슬길에 나가기 어려운 신분인 것으로 아는데요? ▶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에 서파(庶派)로 분류된 사람은 벼슬길에 나갈 수 없었습니다. 서파라는 것은 즉 직계를 거슬러 올라가 한 명이라도 서자가 있으면 자동적으로 그 후손이 서파로 분류되는 것을 말합니다.그리고 조선시대에 서파라는 것은 관료로서의 출세 길이 막힌다는 것과 사회적 차별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덕무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내하고 단정한 길을 걷게 됩니다. 이덕무 역시 과거공부를 하고 증광초시(增廣初試)에 합격하지만, 이것은 그의 생애에 어떤 의미를 갖는 사건은 되지 못합니다. 서파로서 사회적 차별을 견뎌야 하는 그의 심정은 ‘관독일기(觀讀日記)’라는 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밤에 희미한 달빛이 은은히 비치고, 풀 벌레의 울음소리가 시끄럽더니 이내 또록또록 들린다. 등불은 가물가물하는데 말없이 홀로 오똑 앉아 있노라니 강개한 감정이 겹겹이 생겨나고 까닭없는 슬픔이 밀려온다. 아마도 가을의 기운이 장부의 뻣뻣한 창자를 단련시키려고 하여 이런 것인가 보다’ 이덕무는 정식으로 직업이 없었습니다. 정식직업이라 부를만한 건 39세 되던 해 얻은 규장각 검서관 자리였습니다. 그런 이덕무가 평생 할 수 있었던 일은 책을 읽는 것 뿐이었습니다. ○ 반쪽짜리 양반에게 있어 독서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 사실 반쪽짜리 양반인 이덕무에게 있어서 책 읽기란 모순이었습니다. ‘책을 읽으면 선비이고, 벼슬을 하면 대부’라는 말이 있듯이 조선이란 사회의 맥락에서 독서란 곧 관료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입니다.하지만 이덕무의 독서는 그것이 아예 불가능했습니다. 여기에서 오로지 지적행위로서의 독서가 생겨납니다. 다른 목적을 갖지 않는 순수한 책읽기 자체에만 몰두했던 것입니다.이덕무는 소위 책을 읽지 않는 양반들의 행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늘 예나 지금이나 인가의 자제들이 밀랍을 먹인 종이로 바른 창문에 화려하고 높은 책상을 두고, 그 옆에 비단으로 장정한 서책들을 빽빽하게 진열해 놓고서, 자신은 머리에 복건을 쓰고 흰 담요위에 비스듬히 누운 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야기를 지껄이고 기침이나 캉캉 뱉다가 한 해가 다 가도록 한 글자도 읽지 않는 것이 가장 유감스럽다’ 그러면서 이덕무는 맹자와 양웅의 이야기를 인용합니다.‘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고 지낼 뿐 만약 가르침이 없으면 금수에 가깝다’는 맹자와 말과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비록 걱정거리가 없다 한들, 금수가 될 것이다’는 양웅의 말을 인용하면서 맹자의 가르침과 양웅의 배움이 바로 독서라고 말합니다.즉 독서를 하지 않으면 아무리 부귀할지라도 그는 인간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덕무에게 있어서 독서는 곧 인간이 되는 길이었던 것입니다. ○ 이덕무를 책 읽는 바보, 즉 간서치라고 부르는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 이덕무는 독서에 골몰하는 자신을 가리켜 간서치, 곧 책읽는 바보라고 불렀습니다.그가 초년에 쓴 간서치전(看書癡傳)을 보면 이덕무를 왜 간서치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남산 아래 바보가 살았다. 눌변이라 말을 잘하지 못했고, 성격이 졸렬하여 세상을 알지 못했고, 바둑이나 장기 따위는 더더욱 몰랐다. 오직 책 보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아 추위도 더위도 주림도 아픈 줄도 몰랐다. 글을 막 배웠을때부터 스물 한 살이 될 때까지 하루도 손에서 옛글을 놓은 적이 없었다. 예전에 보지 못한 책을 보게 되면 기뻐 웃으니 집안사람들은 그가 웃는 것을 보고는 곧 그가 기이한 책을 구한 것을 알곤 하였다. 사람들이 그를 간서치라 해도 그냥 기쁘게 받아들일 뿐이었다’ 읽을 책이 없을 때는 장부나 달력 보기를 마다하지 않았다는 이덕무는 가난했기 때문에 책을 살 돈이 없었고 책을 빌리고 베끼는 것이 책탐을 푸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덕무에게 가장 비판을 많이 받았던 사람은 책을 빌려주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세정석담(歲精惜談)이라는 글에서 이덕무는 스스로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짓이고 자신이 읽지 않으면서도 남에게 빌려 주지 않는 것은 어질지 못한 일이라고 규정짓고 있습니다. ○ 이덕무만의 책 빌리는 예의가 있다구요? ▶ 이덕무는 그의 책 사소절에서 책을 빌리는 예의에 대해 한바탕 설교를 늘어놓습니다. 먼저 그는 ‘남에게 책을 빌려주어서 그 사람의 뜻과 사업을 키워주는 것은, 남에게 돈과 재물을 주어서 그 곤궁과 굶주림을 구제해 주는 것과 같다’라고 했습니다.그리고 주인이 허락하지 않을 경우, 억지로 빼앗아 소매속에 넣고 일어나서는 안되며 남의 책을 빌리면 기한내에 돌려 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빌린 책을 돌려주지 않고 다시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어서는 안되며 빌려준 사람에게는 반드시 보답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덕무는 그의 나이 서른 아홉살에 규장각 검서관이 되었습니다. 검서관은 규장각에서 출판하는 모든 책을 교정하는 직을 말합니다. 이렇게 책벌레 이덕무는 자신의 소원대로 책을 읽는 직업을 갖게 되었고, 1793년 그가 사망하는 해까지 규장각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이덕무가 살던 때와 달리 지금은 책이 범람하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독서하는 교양층은 점점 얇아지고 인문서는 팔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고 지낼 뿐 만약 가르침이 없으면 금수에 가깝다’는 맹자의 말씀을 다시 한 번 기억할 필요가 있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 2025-09-10
  • 작성자

    황경규/진주향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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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 척 하는 사람을 대처하는 좋은 방법

○ 오늘 고전의 향기는 어떤 내용입니까? ▶ 사람의 크기를 무엇으로 잴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자본주의 시대에 걸맞게 오직 돈와 명예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혹은 공부를 많이 해서 박학다식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오늘 고전산책에서는 고전이 말하는 ‘사람의 크기’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현대사회에서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가진 사람을 동경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고전에서는 좀 다르겠죠? ▶ 고전을 보면 이 세가지를 경계하는 글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먼저 춘추좌씨전을 보면 부를 거머쥔 사람들을 경계하는 글이 있습니다. ‘부이불교자 선(富而不驕者 鮮)이요 교이불망자(驕而不亡者) 미지유야(未之有也) 니라’ 즉 ‘부자이면서 교만하지 않는 자가 드물고, 교만하면서 망하지 않는 자가 있지 아니하다’라는 뜻입니다.따라서 일반적으로 부를 가진 사람은 교만하기가 쉬운데 증자(曾子)라는 사람은 부유하다고 해서 잘난체 하는 사람을 대처하는 좋은 방법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피이기부(彼以其富) 아이오인(我以吾仁)’이라 해서 부(富)를 가지고 잘난체 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어질게 행동한다면 전혀 문제될게 없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그리고 명예와 관련해서는 맹자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성문과정(聲聞過情)을 군자(君子) 치지(恥之)니라’ 즉, ‘명성이 실제보다 지나친 것을 군자는 부끄러워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지금 이 세상에는 자신보다 잘난 사람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너무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지식인층을 살펴보면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집니다.권력 또한 국민의 신의를 바탕으로 생기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소위 권력자들은 권력을 가지는 순간 곧바로 국민위에 군림하려고 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그래서 고전에서 사람의 크기를 구분할 때는 반드시 그 사람이 가진 사랑이 얼마나 크고 넓은 지로 경계로 삼고 있습니다. ○ 사랑의 크기로 사람의 크기를 재단하기에는 객관적으로 조금 어렵지 않을까요? ▶ 그래서 고전을 읽다보면 군자(君子)와 소인(小人), 대인(大人)과 소인(小人)이니 하는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이것 역시 사람을 구분하는 잣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인사(人事)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너무 잘 알고 있는 단어이고 일상생활에서 늘 하는 행동이지만 사실 정확히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알고 계신 분들은 드문 것 같습니다. 인사라는 것은 사람 인(人)에 일 사(事), 즉 사람이 해야 할 일, 사람의 도리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사람으로써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하면 군자가 되는 것이고, 그 도리를 알고도 행하지 않는다면 소인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크기는 그 사람이 가진 사랑의 크기가 얼마만큼 큰가에 따라 구분을 지을 수 있습니다. 만약 그 사랑이 천하를 덮을 정도라면 그 사람은 천하만큼 큰 사람입니다. 제 한몸의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알았던 백범 김구 같은 분들을 우리가 위대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설원(說苑)이라는 책에 ‘대인자 은급사해(大人者 恩及四海)요 소인자 지어처자(小人者 止於妻子)’라고 했습니다. 즉, ‘대인은 그 은혜가 천하에 미치고, 소인은 처자에게 그친다’는 뜻입니다.보통 사람들의 사랑은 자기 가족을 살피는데 그치는게 일반적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자기 가족만큼의 크기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 보다 못한 사람은 자기자신만을 사랑하는데 그치게 되는데 그 사람은 자신만큼의 크기를 갖게 됩니다. ○ 말을 뒤집어 본다면 자신의 크기만큼 남을 사랑할 수 있다는 뜻도 되지 않겠습니까?▶ 고전에서 사람의 크기를 말할 때 늘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 대장부의 정의입니다. 맹자는 사내가 세상에 태어나면 무릇 대장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대장부에 대한 정의를 내림과 동시에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맹자가 말하는 대장부는 ‘인(隣)이라는 천하(天下)의 넓은 집에 살고, 예(禮) 라는 천하(天下)의 바른 위치에 서서, 의리(義理)라는 천하(天下)의 큰 도(道)를 행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곧, 천하를 사랑할 수 있는 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입니다.그리고 많은 성현들이 대장부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도 했습니다.맹교(孟郊)라는 사람은 ‘군유장부루(君有丈夫淚) 읍인불읍인(泣人不泣人)’이라고 해서 ‘그대에게 대장부의 눈물이 있다면, 남을 위하여 흘리고 자신을 위해 흘리지 말라’고 했습니다.그리고 원매라는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 영웅이 되고 미인을 얻는 것은 ‘일신의 사랑’이지 ‘천하의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모름지기 세상에 태어나면 일신의 영달이나 추구하는 작은 사람이 아니라 천하의 영달을 추구하는 큰사람이 되기를 희망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백거이라는 사람은 신제능오성감이유영(新制綾襖成感而有詠)이라는 시를 통해 대장부의 포부를 이야기 하기도 했습니다. 헐벗어서 구제할 수 없는 백성들이 많은데혼자만 따뜻하면 어떤 마음일까어찌하면 만 장 길이의 큰 가죽 옷을 구해서온 낙양성 사람을 덮어 줄 수 있겠는가 천하의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가진 사람만이 마치 큰 사람처럼 보이는 거짓된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수긍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되돌아보게 됩니다.거대한 기업들은 국민을 먹여 살린다고 강변하면서 때로는 협박까지 일삼고 있고, 알량한 명예를 지닌 사람들은 마치 세상을 다 거머쥔 것처럼 오만을 떨고 있으며, 권력을 쥔 사람들은 마치 자신의 행동이 법이라도 되는 것처럼 막무가내식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런 사람들의 사람의 크기는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여기서 과연 나의 사랑은 어디까지를 덮고 있는가를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의 사랑이 미치는 곳이 국가인지? 가족인지? 아니면 자신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한번 던져 보시고 만약 그 어딘가에 자신의 마음이 머문다면 그곳이 나의 사람됨의 크기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고전은 말하고 있습니다.

  • 2025-09-10
  • 작성자

    황경규

  • 조회수

    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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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등치는 사람들

정치를 등치는 사람들▶ ‘정치를 등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권력을 앞세워 법을 악용하는 무리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은 사람이 만든 법을 가지고 언제나 사람에게 군림하고, 법을 인간의 족쇄로 만들고 있습니다.‘정치와 권력의 함수’라고 부릅니다. ○ 오늘날처럼 권력의 장치가 공고히 다져져서 무서운 힘을 발휘하는 시대는 없는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 사실 정치를 하는 힘은 권력에 있습니다. 따라서 권력을 쥔 사람은 항상 자신이 칼자루를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법과 힘으로 밀어 붙이거나 아니면 갖은 술수를 부리고 엄포를 놓아서 주눅이 들게 해 세상을 억지로 꿰맞추려고 합니다.역사적으로 보면 이런 이유 때문에 변란이 일어나 때로는 밀려나고 물러나고 빼앗고 빼앗기면서 정권의 다툼이 요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이른바 다스리는 사람, 즉 치자들이 정권욕에 사로잡히면 잿밥에 눈이 팔려 염불을 못하는 중과 다를바가 없게 됩니다. 왜 백성들이 정치를 불신하겠습니까? 정권을 잡으면 특권층이 신흥세력으로 부상하고, 정권을 빼앗기면 다음날로 신흥세력에 의해 구세력이 축출되는 그런 구태를 일삼아왔기 때문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인의 장막에서 부정부패가 기승을 부려 한평생 독립운동을 했던 보람도 없이 망명을 해야 했고, 박정희대통령은 독재의 엄호를 받은 측근세력들의 세도에 희생당했고, 전두환대통령은 척족들이 이권의 사냥꾼들이 되는 바람에 권좌에서 물러난 뒤 절간에서 유배생활을 했습니다. 이처럼 대권을 쥔 이른바 치자들의 말로가 비참하거나 부끄러운 결말에 이른 까닭은 올바른 다스림의 정치를 하지 못하고 힘으로 다스리는 정치, 즉 사람위에 군림하는 정치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2,500년전부터 위정이덕(爲政以德) 즉, ‘정치는 덕으로 하라’고 가르쳤습니다. ○ 사람을 잘 쓰는 것도 나라를 잘 다스리는 중요한 일이 되지 않을까요? ▶ 순자(荀子)의 군도(君道)라는 글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현명한 임금은 금이나 보석 등은 사사로이 사람들에게 주지만, 관직이나 직책은 사사로이 사람들에게 주는 법이 없다’라고 했고, 한시외전(韓詩外傳)에는 ‘인사가 도리에 합당하면 귀신의 일에도 순응할 수 있고 귀신의 일에 순응하면, 내리는 복이 크고 넓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지도자가 인지상정에 얽매여서 인사의 공정을 잃으면 조직의 근본이 흔들리게 됨을 경고한 말입니다.춘추시대의 일입니다. 진나라의 문공이 구범(咎犯)이라는 사람에게 서하라는 곳의 태수로 누구를 삼으면 좋을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구범은 우자고(虞子羔)라는 사람을 추천합니다. 그러자 문공이 우자고와는 서로 원수지간인데 어떻게 추천할 수 있느냐고 묻자, 우자고는 이렇게 대답합니다.‘임금께서는 누가 태수로 적당한지를 물었지, 누가 원수인가를 물은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인간이면서 감정의 애증을 초월할수 없지만 공적으로는 객관적인 시각에서 대상을 판단할 수 있어야 리더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면서도 그 잘못을 알고 미워하면서도 그 장점을 아는 것, 이것이 바로 리더의 엄정함입니다. 구범이라는 사람은 이러한 엄정함을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 임금이 잘못하던 신하가 잘못하던간에 정치를 등치는 사람들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자는 국민들 아니겠습니까? ▶ 이른바 힘으로 하는 정치는 정치를 보기 좋게 화장을 해주는 경우로 변질되기 쉽습니다. 이렇게 되면 법이라는 것이 거미줄과 같아서 새는 그 거미줄을 뚫고 날아가 버리지만 벌레 따위는 걸리고 만다는 탄식이 국민들의 입에서 떠나 본적이 없습니다.그렇다면 법망을 비웃고 날아가는 새는 무엇일까요? 바로 권력을 가진 이른바 힘있는 무리이고, 법망에 걸려드는 벌레는 힘없는 국민들을 말합니다. 따라서 법을 어기지 않으면 아무런 일이 없는 세상을 살수 있지만, 법대로만 하다가는 살아갈 수가 없다는 국민들의 말을 흘려 버릴 수 없습니다.아무리 법치의 세상이라 하더라도 정치를 하는 사람의 됨됨이가 인의(仁義)에 바탕을 두지 않는다면 세상은 항상 무섭게 돌아가고 맙니다. 사람보다는 컴퓨터를 더 믿으려는 세상이 되면 될수록 세상을 다스리는 일에 비인간화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그래서 공자는 권력을 치부의 수단이나 특권으로 여기는 사람을 사이비 정치꾼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 최근 검찰총장 후보자가 논란 끝에 사퇴를 하기도 했지 않습니까? ▶ 아마 이번 사건을 두고 많은 국민들은 소위 이 땅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한번쯤은 생각을 해보셨을 것 같습니다. 사실 검찰총장은 대검찰청의 최상급자이면서 권력의 핵심이나 다름없습니다.그런데 인사청문회를 한 결과는 어땠습니까? 위장전입에 주택 구입자금 의혹, 의심스러운 부인의 명품 쇼핑, 스폰스와 해외골프 여행, 그리고 자녀 결혼식을 국내 최고가의 6성급 호텔에서 하고서도 그곳을 소박하게 ‘조그만 교외’라고 표현하는 후보자의 모습에서 아마 많은 국민들은 우리나라의 이른바 상류층의 도덕불감증과 거짓말 투성이의 위선에 허탈감을 느끼셨을 겁니다.물론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현재 이 땅에서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그와 비슷한 수준에 있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내다보지 않아도 뻔하다는 생각 역시 한번 해보셨을 겁니다. 지금 난장판을 벌이고 있는 여야 정치권이 원하는 것은 과연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과연 그들이 그토록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 과연 국민을 위한 일일까요? 지금 여야 정치권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게 아니라 자신들을 위한 정치를 하고 있다는 국민들의 따끔한 지적을 과연 눈치나 채고 있을까요?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는 소위 대한민국 권력의 핵심을 들여다보면서 과연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합니다.공자는 ‘덕으로 정치를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마도 또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겁니다. ‘제발 정치를 등치지 마라, 이것은 백성의 소원이다’라고 말입니다.

  • 2025-09-10
  • 작성자

    황경규/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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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