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제공 : 신현규(중앙대학교 교수)
2024.07.12 PM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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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군 대안면, 중안면, 성내면 지역으로 1914년 이들 지역 각 일부를 통합하여 진주면 대안동이라 했다.
1932년에는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일본식 지명으로 개칭되어 영정(榮町)이라 불렀다.
사진의 아래쪽에는 조선 진주(朝鮮 晋州) 진주영정경찰서전통(晋州榮町警察署前通)이라고 적혀 있다.
영정(榮町)은 일본식 지명으로 '사카에초'이며, 일제강점기 '진주의 명동'이었던 곳이 바로 영정이다.
조선미인보감(朝鮮美人寶鑑)에 실린 진주 예기(晋州 藝妓)일제강점기 경성에서 출판된 조선미인보감(朝鮮美人寶鑑)은 조선의 예기 611명의 사진과 이력 등을 기록한 화보집이다. 일제강점기 문화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사료이며 기생사 연구에 필수적인 문헌으로 평가되고 있다.경성일보사의 사장인 아오야나기 고타로가 신구서림(新舊書林)을 운영하던 지송욱(池松旭)과 함께 제작한 책이다. 조선 전도의 미인의 사진과 기예와 이력을 수집하고 조선 언문과 한문으로 서술한 책이다. 발간 목적은 풍속교화를 달성하고 예기들의 용모와 기예를 평가하기 위해서였다. 조선미인보감에는 경성을 비롯한 진주, 대구, 동래, 평양의 권번 혹은 기생조합에 소속되어 있었던 예기 611명에 대한 개인 프로필과 사진을 싣고 있다. 예기들의 연령대는 9세부터 33세까지 다양하다. 조선미인보감에는 진주(晋州)의 예기(藝妓) 15명의 프로필이 실려있다. 원적(原籍)과 현 주거지, 이름과 나이, 그리고 대표적인 기예(技藝)를 상세히 적고 있다.조선미인보감에 실려있는 예기는 다음과 같다.김영희(金英熙, 錦香, 30세), 김단계(金丹桂, 25세), 왕월출(王月出, 22세), 이매홍(李梅紅, 22세), 정진홍(鄭眞紅, 22세), 박농화(朴弄花, 21세), 강채희(姜彩姬, 20세), 이화향(李花香, 18세), 문초운학(文楚雲鶴, 19세), 이죽향(李竹香, 19세), 김계선(金桂仙, 18세), 황능파(黃綾波, 18세), 홍국화(洪菊花, 17세), 김학희(金鶴喜, 16세), 진선옥(陳仙玉, 16세) 1. 김영희(金英熙, 錦香) 원적은 경상남도 진주군(晋州郡) 평안동(平安洞)이다. 전명(前名)은 금향(錦香)이다. 기예(技藝)로는 각종 정재무(呈才舞)와 검무(劍舞)에 뛰어났다. 특히 노래(歌), 우계면(羽界面), 가사(歌詞)에 특별한 재능을 가졌다.
글/ 황경규 사진제공/신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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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포정사 문루는 조선 광해군 10년(1618) 병마절도사 남이흥이 2층으로 신축했습니다.진주목 시절에는 진주성 내성의 관문이었고, 고종 32년(1985) 관찰부가 설치되면서 진주관찰부의 관문으로 영남의 정사를 선포하는 행정중심지를 뜻하는 말로 '영남포정사'라는 현판을 내걸었습니다.1896년 진주관찰부가 경상남도청으로 바뀌면서 관찰사의 집무실인 선화당의 정문으로 사용되었으며, 1925년 도청 소재지가 부산으로 옮겨지기 전까지 경남도청의 정문역할을 했습니다.
글/ 황경규 사진/신현규
298
일제강점기에 반전사진관(飯田寫眞館)이 발행한 엽서이다. 발행날짜는 기재되어 있지 않아 정확한 연도는 알기 어렵다. 사진은 진주선교(晋州船橋) 즉 배다리의 모습이다. 엽서에 의하면 진주선교는 1914년 5월 16일 개통했다고 적혀있다. 사진의 오른쪽에는 1910년대 촉석루와 성곽이 거의 사라져 훼손이 된 진주성의 모습을 볼 수 있다.배다리를 건너는 시민들의 모습과 우마차를 이용해 짐을 나르는 풍경이 보인다.
글/ 황경규 사진/신현규
293
일본 오사카 매일신문 주최로 개최된 조선8경 일반 투표에서 3등에 당선된 사진이다. 경남과 전라남북도를 아우르는 지리산의 풍경과 경남 진주의 명화(名花, 기생) 류앵의 사진을 함께 싣고 있다.
글/ 황경규 사진/신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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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으로 소실되기 이전의 촉석루의 모습을 볼수 있고 강건너에서 빨래를 하는 아낙네의 모습이 정겹다.
자료제공 : 신현규(중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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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어지러우면 악덕 무당이 판친다. 제법 괜찮다는 길목엔 천지인을 상징하는 삼색천을 매단 대나무를 대문간에 세워두고 안방엔 신당을 차린다. 소위 신군(神君)을 자처하는 그들은 세상 살이 다급한 민초를 대상으로 혹세무민한다. 그리고 마치 세상 사람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판관처럼 행세한다. 보편적 인식이 그렇다는 말이다. 비단 무당에만 그치지 않는다. 조폭도 마찬가지이다. 이른바 ‘패밀리’의 머릿수가 곧 ‘힘’인 이들은 ‘대부’의 그늘에서 복
‘잣대’라는 말이 있다. 길이를 재는 자로 사용되는 대막대기 혹은 나무 막대기의 일종으로 통칭 ‘자막대기’라고도 부른다. 이 말은 자고로 도덕적인 행위나 사물의 기준을 재단하는 객관적인 근거로 인용되곤 했다. 흔히 ‘객관적이지 못한 일’이나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은 이 잣대를 기준으로 잘잘못을 가리곤 한다.그런데 이 잣대란 말은 그 자체로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잣대가 적용되는 순간, 그것은 객관적이지 못하며 형평성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이 ‘잣대’는 일부 소수 권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