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 채널A 보도본부 선임기자
2024.03.05 PM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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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중국 우한에서 첫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벌써 10개월째다.
코로나가 던진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사람의 생명과 건강에 대한 위협을 넘어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도 우리 사회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졌다.
일상의 평온한 삶이 무너졌다. 맨 먼저 서민들의 밥벌이를 직격했다. 중소여행사가 문을 닫았다. 공연업체들은 손님을 받지 못해 배우들의 밥값도 지급하지 못했다. 매출이 반 토막 난 음식점, 세탁소, 의류매장 사장님들은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죽는 게 아니라 굶어 죽겠다”며 비명을 질렀다.
코로나가 안긴 경제적 파장은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에 비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이전에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이 된 것이다.
지난 3~5월엔 ‘마스크 대란’까지 일어났다. 차량 5부제가 아닌 ‘마스크 5부제’가 실시됐다. 원활하지 않은 마스크의 공급으로 인해 구매가 어려워지자, 지정된 날에만 공적 마스크를 1인당 2개까지만 구입할 수 있도록 제한한 것이었다. 약국 앞에 긴 줄이 생겼다. 마치 구소련 말에 빵 배급을 기다리는 긴 줄이 떠오르는 을씨년스런 풍경이었다.
의사·간호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성공적인 방역을 했다고 볼 수는 있지만, 처음 중국인들을 막지 않음으로써 야기된 초기 대응 실패의 대가는 컸다.
코로나는 정치 지형까지 바꿨다. 4·15총선이 대표적인 예다.
총선 결과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하고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이 참패했다. 여야 정당의 총선 승패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코로나 영향도 절대 과소평가할 수 없다.
조국 사태의 영향으로 조금씩 상승세를 타던 미래통합당의 지지율이 완전 꼬꾸라지기 시작한 것이 올해 3월 중순부터이다.
대구 신천지 사태에서 비롯된 코로나 확산세가 급속하게 꺾이고, 이른바 ‘K방역’이 외국 언론으로부터 호평을 받으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급상승했다.
사실 선거 초반에는 코로나의 급속 확산이 민주당에게 총선 대형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른바 청와대 ‘짜파구리 오찬’ 때 파안대소하는 장면이 공개되면서 많은 비판이 잇따르는 등 민심 이반 조짐이 커졌다.
그러나 코로나는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K방역 성공’이라는 논리 앞에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비례 위성정당 논란, 열린민주당과의 갈등 등 민주당의 악재가 모두 묻힌 것이다. ‘코로나 방패’로 정권의 실정에 대한 심판의 칼날을 피한 것이다.
코로나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압승의 일등공신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축하 전화에 “최근 코로나 확진자수가 크게 감소하는 등 사정이 호전된 것이 총선 승리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을 정도다.
야당인 당시 미래통합당은 문재인 정권의 코로나 대응에 대해 ‘방역 대실패’라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총선 승패의 키를 쥔 중도층의 마음을 잡는 데는 실패했다.
원래 인간의 기저 심리에는 위기 상황이 닥치면, 책임을 맡고 있는 정부 여당에 대해서 지지를 보내면서 위기를 극복하려는 성향이 있다.
바로 이러한 심리가 작동하면서 문재인 정권의 코로나에 대한 초동 대처에 많은 문제점이 있고 여러 가지 권력 비리에 대한 공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몰표를 몰아 준 것이다.
4·15총선 결과는 한국 정치의 ‘구조적 정치변동’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기존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한국의 정치 구도에 있어서, ‘보수 우위’라는 공식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보수 우위’ 구도는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조금씩 깨졌고, 올해 4·15총선은 거꾸로 ‘진보 우위’로 운동장이 기울어졌음을 확인하는 결정판이 됐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1987년 민주화 체제 이후 노태우·김영삼의 ‘보수정권’→ 김대중·노무현의 ‘진보정권’→ 이명박·박근혜의 ‘보수정권’→ 문재인의 ‘진보정권’으로 이어진 보수-진보 정권 교체 ‘10년 주기설’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
이미 지난해 4월에 더불어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은 ‘박근혜 탄핵을 거치면서 기울어진 운동장은 2개의 운동장으로 바뀌었다’는 보고서를 낸 적이 있다. 보고서는 “민주당이 주도하고 탄핵에 찬성한 80% 유권자들의 주류 운동장과 자유한국당과 함께 탄핵에 반대하는 유권자 20%의 비주류 운동장이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 정치에 있어서 보혁 정치적 지형 변화를 공식적으로 문서화 한 것이다.
이에 덧붙여 지난 8월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퇴임한 이해찬의 ‘20년 집권론’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이해찬 전 대표는 “지난 민주당 정부 10년 성과가 불과 2~3년 만에 뿌리 뽑혔다. 20년 정도 연속해서 집권할 수 있는 기획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해찬의 바람대로 ‘민주당 20년 집권’이 가능할까?
한국정치에서 20년 연속 집권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앞서 기술한 것처럼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미국·유럽 등을 봐도 민주국가에선 대략 10년 정도 주기로 정권이 바뀐다. 지금은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이재명 경기지사가 대권후보 지지도 1, 2위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동반질주하고 있다. 그러나 당장 2년 뒤의 대선 결과조차 단정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과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의 ‘위선’과 ‘무능’이 계속되고 있다.
조국-윤미향-추미애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태에서 드러나는 문재인 정권의 ‘위선’은 낯이 뜨거울 정도다. 상식과 법리의 잣대를 적용하면 어렵지 않게 드러날 사실과 진실이 진영 논리로 비화되면서,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왜곡되고 있다.
객관적 정의는 사라져 버렸다. 최소한의 상식과 염치도 없다. 기준은 오직 하나. 이른바 ‘내로남불’이다. 내 편의 잘못이면 ‘그럴 수도 있지, 그걸 갖고 뭘 그래’라며 어떤 큰 잘못이라도 눈감고, 남의 편의 잘못이면 작은 잘못이라도 ‘이런 천하에 나쁜 놈’이라며 실제 이상으로 뻥튀기해서 마구 공격한다.
이에 앞장서는 사람은 주로 소위 ‘586세대’ 의원들이다. 그들이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이 맞나 아연실색할 따름이다.
조국이나 윤미향 사건 등 하나하나가 나라의 법질서와 국민의 도덕 관념을 뒤집어 놓을 엄청난 일인데도, ‘당신들의 천국’에선 쉽게 불의도 정의가 되어 버린다.
오히려 ‘검찰 개혁’ ‘수구꼴통 심판’ ‘토착왜구 박멸’을 내세우며 단번에 프레임을 전환시킨다. 수십 년간 정치권·시민단체·학계·언론계·법조계 등에서 생존하며 구축한 진보 세력의 공생 네트워크는 여전히 강고하다.
그러나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고 고인 물은 반드시 썩는다’고 했던가. 독주하는 권력에 대한 민심 이반이 서서히 감지되고 있다.
정부-여당이 이렇게 ‘똥볼’을 차고 국민들의 지지가 떨어진다고, 민심이 야당인 국민의힘에 바로 손을 내밀까? 절대 아니다. 국민의힘은 멀어도 한참 멀었다. 여전히 많은 국민들은 야당에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현재 집권세력은 정말 강고하다. 어용 시민단체와 어용 언론, 강고한 팬덤까지 단단하게 뭉쳐있다. 반면 우리 야권은 어떤가. 더 신뢰할 수 없고 비호감이 많아서 대안으로 여겨지지 않는 게 문제다”라고 말한다. 아마 많은 국민들의 생각도 안 대표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제1야당인 국민의힘을 이끌고 있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생각은 어떨까. 그의 진단을 한번 들어보자.
”아직도 우리나라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30~40대의 여론이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고 있다. 과연 저 당이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냐, 그저 형식적으로 구호만 내걸고 하는 것 아니냐, 이것을 예리하게 주시하고 있는 것이 현재 우리 현명한 국민의 판단이다.”
나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진단이 맞다고 본다. 야당인 국민의힘이 코로나 정국 속 팍팍한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민심을 얻기 위해서는 김 위원장의 말처럼 ‘혁신’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중도층을 잡아야 집권할 수 있고, 중도층을 잡기 위해서는 ‘혁신’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이명박의 ‘한나라당’, 박근혜의 ‘새누리당’ 이미지를 떨쳐내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비판만 있고 대안은 없는 소수 ‘아스팔트 우파’에게 끌려다녀서도 안 된다. ‘아스팔트 우파’는 목소리만 클 뿐
220|진주평론 통권2호
┃칼럼&논단┃이영훈┃
표가 별로 없다. 최근 몇 번의 선거 결과가 이를 데이터로 보여주고 있다. 강경보수인 ‘집토끼’를 확실히 잡으려고 우클릭할수록 중도층인 ‘산토끼’는 달아난다.
집권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실수로 딴 점수만으로는 한참 부족하다. ‘반 문재인’ 프레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라고 다르지 않다. 민주당의 시급한 과제 역시 ‘혁신’이다. 민주당에서 ‘민주’는 이미 죽었다. ‘정의’도 죽고 ‘공정’도 죽었다.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 ‘서 일병 구하기’에 조국 수호대가 다시 등장했다. 많은 여당 금배지들이 총대를 멨다.
’아무 말 대잔치’도 시작됐다. 어느 의원은 추미애 아들을 ‘안중근 의사’에 빗댔다. 또 다른 의원은 부당한 휴가 청탁을 ‘김치찌개 독촉’에 비유했다. 참 어이없는 일이다.
이런 ‘위선’과 ‘내로남불’을 계속 이어나가면, 결국은 골수 친문 지지층을 제외한 중도층의 지지를 잃고 말 것이다.
민주당 역시 지금 이 시점에서 바뀌지 않으면, ‘20년 집권’은커녕 내년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는 물론 내후년 대선도 장담할 수 없다. 원래 앞서가는 사람이 뒤쫓아 오는 사람보다 더 불안한 법이다.
최근의 민주당은 연일 쏟아지는 잘못에 대해 인정하지도 않고, 사과하지도 않는다. 모든 것이 오로지 전 정권 탓, 야당 탓, 언론 탓이다.
사람이든 조직이든 정당이든, 남의 탓만 해서 성공할 수는 없다.
여야 모두 ‘혁신’ 하면 살고, 그렇지 못하면 죽을 것이다. 민심의 바다는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기도 한다. 국민들이 두 눈 치켜뜨고 지켜보고 있다.
공자의 『논어』에 보면 ‘政者 正也(정자 정야)’라는 대목이 있다. ‘정치(政)란 바로(正)잡는 것이다’라고 풀이할 수 있다.
코로나 시대, 국민들은 지치고 힘들다. 삶이 통째로 무너지기도 한다. 누가 이런 국민의 눈물을 닦아 줄 것인가. 바로 정치다. 정치가 바르면 국민들은 등 따습고 편안하다. 그 반대가 되면 국민들 삶은 춥고 고단할 것이다.
여야가 대화하고 타협하면서 정치의 새 길을 열어나가야 한다.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 국민들에게 힘이 되는 정치가 되기 위해서….
이영훈┃채널A 보도본부 선임기자┃채널A 편집부장-디지털뉴스부장┃동아일보 기자┃국제신문 기자┃고려대 지방자치법학연구회 부회장
1. 대첩광장과 원도심 도시재생사업의 여건 변화 지난 2017년 본 <경제저널>에 동일한 제목으로 원고를 발표한 적이 있다. 이번에는 그 후속편이라 하겠다. 지난 2년 동안 대첩광장과 주변 여건에 많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한 번 더 대첩광장과 원도심 활성화 방안에 대해 점검해 보고자 함이다.변화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대첩광장 발굴과정에서 진주성의 외성(外城) 터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우선 귀중한 유구와 유물을 보존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며, 대첩광장 자체는 새로운 역사적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조성계획의 기본 철학과 설계를 전면 재검토해야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대첩광장이 단순한 광장 조성에 그치지 않고 진주성 본래의 모습인 외성과 내성을 복원해야 한다는 요구도 높아지고 있어 대첩광장 조성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불가피한 실정이다.두 번째 변화는 진주성 북쪽 성북지구가 도시재생뉴딜 국가사업에 선정되어 원도심 일부이기는 하지만 곧 본격적인 사업이 시작될 예정이어서 원도심 재생에 대한 기대감 또한 높아지고 있는 점이다 (그림 1 참조). 한 가지 더 추가한다면 진주가 유네스코 창의도시에 선정되었다는 것이다. 역사문화가 녹아 있는 진주와 그 중심에 서 있는 진주성과 대첩광장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역사문화도시로서 위상을 한층 더 높일 수 있는 기회가 찾아 왔다는 것이다. 성북지구 도시재생사업 지구 및 진주시 대첩광장 위치 이러한 변화 속에서 대첩광장과 원도심 활성화는 원점부터 다시 검토해야 봐야 하므로 이에 대한 방안을 새로운 시각에서 짚어보고자 한다. 2. 기존 대첩광장 계획과 현황 대첩광장은 진주 시에서 2015년 광장조성 공모를 통해 선정된 개발 계획안이다. 총 사업비 980억 원으로 2020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하였다. 개발 콘셉트를 ‘비움’으로 설정하고, 지상부에는 잔디밭을 기본으로 기념관, 기념광장, 추모관을 두며, 지하에는 주차장(400여대)을 만들어 중앙시장과 연결하면서 원도심 상권을 살리려는 계획이었다. 이후에 부지를 매입하고, 지상 건축물도 모두 철거하였다. 그러나 3년간에 걸쳐 문화재 발굴 조사를 하면서 역사적 유물과 유구가 쏟아져 나와 진주성의 역사적 흐름을 재해석하고 대첩광장도 명칭부터 조성방향을 재검토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발굴과정에서 진주성 외성뿐 아니라 남문으로 추정되는 기단석이 발견되었고, 통일신라시대의 배수로와 고려시대의 토성 흔적까지 드러났다. 이외에도 해자 터에 대한 발굴과 복원 등 적지 않은 과제가 남아 있고, 대첩광장 조성은 단기간에 해법을 찾기 어려울 전망이다. 당초 진주대첩광장 조감도 3. 성북지구 도시재생사업 계획과 현황도시재생사업지구로 선정된 성북지구는 진주성과 붙어있고, 공간적으로는 진주성 앞 남강로와 북쪽에 (구)배영초등학교, 서쪽으로 인사동 사거리, 동쪽으로 (구)시청사와 중앙광장 사거리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번 사업의 추진 여부에 따라 원도심 활성화에 상당히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이번 도시재생뉴딜사업은 국비 등 총 552억 원으로 추진될 예정이며, ‘나눔과 머묾, 도심을 치유하다’라는 비전을 설정하고 있다. 그 하위계획으로 ‘머무름’, ‘문화나눔’, ‘희망나눔’, ‘정보나눔’ 4개 분야에 각각 활성화 사업과 추진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이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업은 (구)시청사 부지에 사업비 210억 원으로 청소년 숙박시설과 교육공간으로서 직업 및 진로센터, 도서관, 강당 등으로 구성된 ‘청년 허브하우스’를 건립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다수 사업이 계획되어 있지만 진주성과 대첩광장을 연계한 사업은 다소 부족한 실정이다. ‘해자 나들길’, ‘진주교-천수교 유등거리 조성’ 등을 준비하고 있지만, 성북지역이 공간적으로 진주성과 붙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념적이며 실질적으로 연계된 사업이 부족하여 아쉬운 점이라고 할 것이다. 성북지구 도시재생활성화 사업 내용 4. 대첩광장과 원도심 재생 방안 대첩광장과 원도심은 지역적 여건 변화와 미래의 진주 도심 기능을 감안하면 다음과 같이 활성화 방향을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1) 역사에 현재 그리고 미래를 접목하여 창조적 재탄생의 큰 비전을 마련하자유구한 역사는 그대로 보존하기보다 오늘의 역사를 더 하고 내일을 열어나가는 모습으로 재창조함으로써 더 발전하는 것이다. 대첩광장은 천년 역사 진주가 근대에 들어 무차별한 도시개발로 잃어버린 정체성을 다시 한 번 ‘진주다움’으로 회복하고 시민들의 자긍심을 되찾는 사업이다. 이웃한 성북지구와 원도심은 이를 받쳐주는 도심으로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대첩광장과 원도심은 진주 중심으로서 위상과 기능을 회복하는 계획이 필요하다. 대첩광장은 문화재 발굴조사 과정에서 나타난 유구와 유물 덕분에 초기에 완전히 해소하지 못했던 대첩광장 조성의 기본 철학(예를 들면 ‘비움’)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참에 대첩광장은 천년 역사 진주성(性)을 살리되 무조건적인 보존보다 가까운 과거와 현재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미래의 모습을 투영해 가는 창조적 디자인 개념이 필요하다. 멀리는 삼국시대부터 치열한 경쟁과 첨단도시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스마트한 제4차 산업혁명시대를 이해하고 미지의 미래를 담아내는 거창하고 원대한 사고와 비전이 필요하다. 2) 대첩광장과 원도심 활성화를 연계하는 개발모델을 찾자현재 대첩광장과 성북지구를 포함한 원도심 재생 사업이 동시에 추진되고 있는데 서로 연계성이 부족하다. 각각의 사업은 잘 기획되어 있지만 상호작용이 그다지 활발하게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 최적 개발모델을 모색해야한다는 뜻이다. 대첩광장 발굴로 이 지역 개발 모델을 찾는 데 상당한 시간적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성북지구는 대첩광장과 접해 있고, 대첩광장은 쇠퇴한 원도심 활성화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두 지역 자원을 연계하면서 일관성 있고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방향으로 개발하고 정비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일부에서는 진주성 주변을 전주 한옥마을과 같이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이 지역에는 한옥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 다소 도입하기 어려운 모델일 것이다. 또한 만약에 전주와 같이 지나치게 상업화 될 경우는 전통은 사라지고 비즈니스만 남아, 소위 ‘젠트리피케이션(비싸지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원주민이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현상으로 ‘둥지 내몰림’이라고도 함)’ 현상이 발생할 수 있어 세심한 계획이 필요하다.이런 모델이 아니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재생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 중인 창원-마산 창동모델도 가능할 것이다. 근대 도시의 적당히 낡은 골목길에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밥집과 공방이 들어서고, 유동인구도 늘면서 지역 상권을 회복하고 있는 듯하다. 지금 전국적으로 도시재생사업이 대유행인데, 대첩광장과 원도심을 연계하는 역사와 도시생활이 서로 어울리는 대첩광장 디자인과 재생사업 모델이 보다 심도 있는 차원에서 논의되고 정립되어야 한다. 3) 시민 주도적인 과제 확인과 해결책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요즘 사소한 도시문제 뿐 만 아니라 중요한 시차원의 결정사항이 필요할 때는 다양하고 폭 넓은 시민 참여를 거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집단지성과 시민의 광범위한 참여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추구하고 있다. 이런 시대적 요구에 따라 효율적으로 시민 참여를 이끌어내는 방법이 개발되었는데 요즘 전국적으로 유행하는 리빙랩(living lab.)이다. 리빙랩은 생활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점과 과제를 주민이 생활현장(생활 실험실)에서 스스로 파악하고 그 해결책도 스스로 찾아나가는 시민 주체적인 해결방법이다. 리빙랩은 우리사회에서 이미 사회적 트렌드가 되어 가고 있다. 즉 적극적이고 원활하게 시민참여를 이끌어 내고 해결책을 스스로 찾으며 사업시행과정까지 점검하여 추진하는 토털 액션(total action)이다.도시재생은 주민이 주체가 되어 이끌어나가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리빙랩을 적용하기 가장 좋은 사례이다. 따라서 성북지구 도시재생사업에서도 향후 크고 작은 지역 현안에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주체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방식이 필요하며, 전문가와 행정에서 지원하는 형태로 진행되어야 한다. 4) 도시재생지구에 역사문화의 상징적 랜드마크 하나쯤은 만들자진주성과 어울리며 진주 역사문화를 대변할 수 있는 ‘상징적 랜드마크’를 공공의 선제 투자로 세우는 방안을 고려해 봄직하다. 여기서 랜드마크란 초고층 빌딩을 세우자는 의미가 아니라 도심경관과 어울리는 미래지향적 모습으로 진주의 상징적인 기념물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성북 도시재생지구에 대표적 사업인 허브하우스 조감도는 다소 디자인상의 의미는 약하다고 할 것이다.예로서 엄격하게 건물 고도를 제한하는 영국 런던에서 2002년에 세워진 달걀모양을 닮은 런던시청사를 들 수 있다. 유리로 되어 있지만 높지 않으며 역사적인 건물이 많이 남아있는 런던에서 주변에 전혀 어색하지 않고, 환경친화적 에너지 절약을 내세우며 시대를 대표하는 건물로 디자인되어 런던에 하나의 명소를 더하였고, 많은 관광객을 모아 관광산업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우리 진주에 진주성을 제외하고 이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랜드마크는 어디 있을까? 역사를 자랑하는 진주성과 맥을 같이 하며 진주를 향후 100년간 자랑할 수 있는 랜드마크 하나쯤 있음직하지 않을까? 진주성을 찾은 관광객이 진주의 역사와 문화를 느끼고 만족할만한 진주 원도심 내의 볼만한 곳, 그리고 가볼만한 곳이 필요하다. 대첩광장과 연계한 성북지구와 원도심은 이러한 재생방향이 요구된다. 5) 4차 산업혁명시대의 시대상을 반영할 수 있는 스마트시티를 구현하자성북지구 재생사업에서 특징적인 것은 스마트시티 계획이 부분적으로 적용될 예정이라는 것이다. 스마트시티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도시개발의 새로운 모델로서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업이다. 핸드폰이나 다른 전자기기로 행정, 안전, 문화복지, 관광, 교통 등 도시생활에서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거나 직접 제공하는 방식으로 도시를 첨단화 해 나가는 도시개발 모델이다. 도시재생과정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도시 데이터를 모아 소위 ‘빅데이터’로 구축하고, 이를 분석하여 도시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진주는 스마트시티는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이번 사업계획안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올해 진주시가 정부의 빅데이터센터 구축 2차 사업 교통 분야에 선정되어 속도를 내게 되었다. 교통, 금융, 문화 등의 분야별 흩어져 있던 시스템(플랫폼)을 연계시켜 도시 데이터를 구축하고 분석하여 도시문제를 해결하는 과학적 접근방법을 원도심에 적용한다면 원도심 활성화에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역사도시에서 최첨단 미래도시가 함께하는 멋있는 도시가 전개될 것이다. 6. 결론진주성 외성 터에서 새로운 역사가 발굴되고, 성북지구 도시재생뉴딜사업과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선정되면서 원도심 활성화 전략에 큰 변화가 생겼다. 유물발굴과 보존 방향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첩광장 조성은 좀 더 많은 시간과 고민이 필요하다. 오히려 당초 대첩광장 조성 안에서 기본 콘셉트나 주차장 등 교통처리 면에서 공감대 형성이 다소 부족했던 점을 다시 한 번 정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점에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할 것이다.원도심인 성북지구 도시재생활성화계획에서 대첩광장과 연계하는 사업이 부족한 것은 대첩광장이 발굴조사 중이었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도시재생활성화 사업계획이 일차적으로 완결되었기 때문에 향후 대첩광장 유구와 유적을 보존하고 광장을 재설계하면서 원도심재생과 연계하고, 도시재생활성화 사업에 추가 될 수 있도록 계획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진주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진주를 역사문화도시라고 알고 왔는데 진주성을 제외하면, 정확히 말해 성곽과 성문을 제외하면 도시 내 어디에도 1000년의 역사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현재 시가지는 한국전쟁 이후 1960대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일명 토지구획정리사업이라는 도시개발로 다시 만들어졌기 때문에 1000년 역사가 아니라 50~60년 역사 밖에 안 되는 도심의 모습이다. 게다가 도시성장 과정에서 소외되어 쇠퇴해가는 낡은 콘크리트 덩어리 모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진주의 역사는 천년을 넘어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으며, 이번에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지정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할 것이다.대첩광장과 원도심 활성화는 함께 가야하는 사업이라는 점은 모두 동의 할 것이지만 그 방향과 구체적 전략이 부족하여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에 선정된 성북지구 도시재생뉴딜 사업은 대첩광장과 함께 진주가 진정한 역사문화도시로 재탄생할 수 있는 추진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이번 기회에 당초 대첩광장 조성계획을 재검토하고, 진주성 외성과 내성의 역사를 재조명하며, 성북지구 도시재생사업을 발판으로 원도심이 천년의 역사가 숨 쉬는 진주의 중심으로 재탄생되었으면 한다.
문태헌(경상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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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야기된 언택트(비대면) 시대에 ‘드라이브 스루’, ‘드라이브 인’ 등이 문화예술공연계의 새로운 뉴노멀로 부상하고 있다.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책 등을 대여·구매하는 방식인 드라이브 스루는 아직 일상화 단계에 이르지 못했지만, 자동차 안에서 문화 콘텐츠를 즐기는 새로운 방식인 ‘드라이브 인’은 지역 문화예술공연의 대안으로 자리 잡고 있다. 코로나 시대로 인해 문화예술공연이 주는 현장감에 갈증을 느꼈던 시민들은 공연장에서 박수 대신 깜빡이와 휴대폰 불빛, 경적을 울리면서 새로운 공연문화를 창출해 가고 있다.‘드라이브 인’이라는 문화예술 공연계의 뉴노멀에 부응하는 지방자치단체와 문화예술단체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특히 드라이브 인은 기존의 자동차극장이나 대규모 주차장 등을 공연공간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문화계의 뉴노멀로 부상하고 있는 드라이브 인 공연 활성화를 위한 ‘드라이브 인 시어터’ 확보 등의 다양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드라이브 인’ 새로운 공연문화 정착전국의 문화예술계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새로운 공연문화로 정착하고 있는 ‘드라이브 인’이다. 최근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주민을 위한 문화 이벤트 제공 차원에서 드라이브 인 콘서트를 선보이고 있다.국내에서 처음 드라이브 인 콘서트를 도입한 용인문화재단은 용인시민체육공원에서 드라이브 인 콘서트를 개최했고, 이후 서울 서초구와 진주시 등 다른 지자체에서도 드라이브 인 공연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서울 서초구에서는 5월 한 달 동안 매주 일요일 서초구청 야외 특설무대에서 ‘서리풀 드라이브 인 콘서트’를 개최했다. 자동차 경주장인 강원도 인재스피디움에서는 ‘DMZ 평화이음 드라이브 인 콘서트 with 이승철’ 공연을 개최했다.기업도 가세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경기도 고양에 위치한 국내 최대 체험형 자동차 테마파크인 ‘현대 모터스튜디오 고양’ 인근 킨텍스 제2전시장 주차장에서 자동차 극장 형식의 ‘현대 모터스튜디오 stage X 드라이브 인 콘서트’를 개최했다.이같은 ‘드라이브 인 콘서트’ 문화는 향후 방송계를 비롯한 대한민국 전반에 걸쳐 공연방식의 새로운 뉴노멀로 정착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진주시립교향악단 ‘드라이브 인 콘서트’진주지역에서 처음으로 ‘드라이브 인’ 공연을 시도한 것은 진주시립교향악단이다. 진주시립교향악단은 지난 5월 13일 충무공동 혁신도시 공영주차장에서 제82회 정기연주회인 ‘드라이브 인 콘서트’를 개최했다. 이날 정기연주회에는 200여 대의 차량이 몰려 코로나19로 인해 박탈당했던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마음껏 만끽했다.경남에서 최초로 자동차 극장 형식의 연주회를 선보였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은 진주시립교향악단의 드리이브 인 콘서트에서는 유나이티드 필하모닉 음악감독 및 베하필하모닉 상임지휘자로 재직 중인 김봉미 객원 지휘자의 지휘 아래 영화 ‘미녀와 야수’, ‘시네마천국’, ‘스타워즈’와 요한스트라우스 2세의 ‘봄의 소리’ 등을 연주해 코로나19로 인해 박탈당했던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마음껏 만끽했다.전국적으로 자동차 극장이 드라이브 인 공연장의 대안으로 부상하면서 공원, 운동장 등이 ‘드라이브 인 시어터’로 활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지역 문화예술계에서도 새로운 공연 포맷으로 등장하고 있는 ‘드라이브 인’에 주목하는 한편 지역 고유의 정체성을 반영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예술공연이 이루어질 수 있는 ‘드라이브 인 시어터’의 확대 등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진주 드라이브 인 시어터’ 만들어야‘드라이브 인 시어터’로 활용되는 공간은 자동차극장이나 대규모 주차장이 대부분이다. 최근 자동차극장이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영화관람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도 ‘드라이브 인’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전국의 각 지역에서도 다양한 공간을 ‘드라이브 인 시어터’로 변신시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안동시와 안동축제관광재단은 낙동강변 탈춤공원, 영덕시 청소년상담복지센터는 영덕여성회관 주차장, 영주시의 경우 경북전문대의 옛 중앙고등학교운동장을 자동차극장으로 활용한 바 있다.이에 따라 진주에도 지역의 문화예술계가 다양한 공연을 개최할 수 있는 ‘진주 드라이브 인 시어터’가 만들어져야 한다. 더불어 진주지역에서 ‘드라이브 인 시어터’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대대적인 전수조사 역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일차적으로 진양호 공원 내에 소재하고 있는 자동차극장을 ‘진주 드라이브 인 시어터’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현재 자동차극장은 폐장 이후, 활용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자동차극장을 진주의 드라이브 인 시어터로 활용하는 것도 바람직하다.더불어 진주시립교향악단이 정기연주회 공간으로 활용한 충무공동 혁신도시 공영주차장 등 대규모 주차장은 물론 국립경상대학교를 비롯한 진주지역의 대학이 보유하고 있는 주차장과 초·중·고등학교 운동장을 비상시적인 드라이브 인 시어터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되어야 한다.‘진주 드라이브 인 시어터’ 공간 확보에 있어 중요한 것은 진주지역 문화예술계의 다양한 공연을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의 다양성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진주시립교향악단 등과 같은 대규모 공연예술 이외에 중·소규모 문화예술공연단체들이 활용할 수 있는 소규모 드라이브 인 시어터도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진주 드라이브 인 시어터’ 마련을 위한 진주시와 지역 문화예술단체들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언택트(Untact) 시대와 온라인 공연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지역의 문화예술계가 ‘언택트(Untact)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돌파구 마련에 나섰다. 이른바 ‘무관객 공연’이 그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역의 다양한 예술인들의 무대를 촬영해 온라인을 통해 생중계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비대면 사회 분위기에서 문화예술공연의 활로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안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향후 언택트 시대에 대비한 문화예술공연의 온라인 방송이 대세를 이룰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진주시의 경우, ‘문화예술분야 긴급지원공모사업’을 추진해 언택트 시대에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진주지역의 대표적인 공연들을 지원해 안방으로 배달하고 있는 것이다. 진주시가 추진한 이 사업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예술단체에 대한 지원은 물론 문화 향유 기회를 박탈당한 시민들에게 양질의 문화예술공연을 제공하고자 추진했다.진주시의 긴급지원공모사업에는 지역의 44개 단체가 최종 선정되었고, 이중 공연예술BOX 더플레이(뮤지컬 의기), 경상오페라단(오페라 처사 남명), 김경숙무용단(진주난봉가) 등 5개 단체의 공연은 서경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되었다. 그리고 문화예술그룹 온터(저글링 보부상), 푸른버들 예악원(춘당, 진주춤을 그리다), 극단 현장(카툰 마임쇼) 등 7개 작품은 진주시 공식 유튜브 채널인 ‘하모 진주’를 통해 방송됐다.또한 지역문화예술인들이 자유롭게 진주시 공식 유튜브 채널인 ‘하모 진주’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물론 진주시 공식 온라인 채널 구축 등의 노력이 진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문화생태계 고려한 지원정책 마련돼야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지역의 문화생태계 종사자들은 공연 취소 등으로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경영 위기와 생존권의 위기에 봉착했다. 정부와 지자체의 문화예술 긴급지원사업들이 문화예술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은 탓에 지역 문화예술계의 경영과 생존권의 위기는 여전히 쉽게 풀기 어려운 과제로 남겨져 있다.사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문화예술인들이 처한 위기상황은 그동안의 문화정책과 예술계에 내재된 위기상황이 코로나19로 인해 폭발했다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더불어 코로나19가 향후 문화예술계에 미칠 영향을 감안한다면 문화예술계에 대한 종합적인 지원정책과 대책 수립도 필요하지만, 정책 수립의 방향 역시 문화예술 생태계를 고려해야 한다.이외에도 문화예술계 당사자 중심의 거버넌스를 통한 지원정책 수립과 예술인 직접 지원을 통한 생존권 지원정책 수립, 예술인복지기금 조성, 예술인고용보험, 예술인권리보장법 제정 등의 방안도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칼럼&논단┃정우열┃문화예술그룹 온터 대표
정우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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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동안 봄이 되면 세월호로 희생된 학생들의 모습이 아른거려 가슴이 미어졌다. 그런데 작년에 또다시 헝가리에서 유람선의 침몰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비보를 들은 후부터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인재(人災)나 천재(天災)와 같은 재앙이 왜 인류의 역사와 함께 공존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인간이 그저 목숨이 붙어있기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생물이란 사실을 일깨워 주는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굳이 알베르 까뮈의 말을 가져다 붙이지 않아도 허무한 세상에 내던져진 나약한 인간 존재에 대한 서글픔이 목젖까지 치밀어 올랐다.불가피한 인간 숙명에 대해 고심하면서 길을 걷던 중, 허물어져 가는 담장 아래 곱게 피어난 들국화가 시선을 붙잡았다. 그러자 갑자기 다음 같은 물음들이 제멋대로 머릿속에서 출렁이기 시작했다. “왜 하필이면 순식간에 무너져 버릴 것 같은 담장 아래에 그 들꽃은 자리를 잡았단 말인가? 그 꽃은 부지불식간에 벌어질 일들을 예측은 하고 있는 것일까?”, “왜 하필 그 꽃은 그 담장 아래에서 그토록 아름답게 꽃을 피워내고 있단 말인가?” 이러한 궁금증이 꼬리를 물면서 “인간이 운명을 담보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있기는 한 걸까?”, “공룡이 멸종된 지구상에 새롭게 출현한 인간종도 언젠가는 소멸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회의적인 생각으로 머리가 무거웠다.하지만 이런 고민을 아주 길게 하지는 않았다. 아니 내려놓아야만 했다는 표현이 더 솔직할 것 같다.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 나름대로 창조설이나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이론들을 살펴보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무엇이 맞는지 결론을 얻기는커녕 더 혼란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문제를 반드시 알고 싶다는 나의 의지가 부족한 까닭일 수도 있을 것이다. 변명 같지만 인간의 존재가 필연적이라고 믿기에는 사람의 운명이 보잘것없고 우연적이라고 믿기에는 개개인에게 부여된 삶의 당위성이 너무 분명하기에 그저 교란된 의구심만 증폭될 뿐이었다. 인간운명에 대한 생각은 두뇌에서 다람쥐 쳇바퀴처럼 굴러갈 뿐 정확한 답을 도출해 내지 못한 채, 그리고 해답이 명확하게 없는 질문들을 오랫동안 붙잡고 있는 것은 정신건강에 결코 좋지 않을 것 같아서 다음과 같은 엉뚱한 결론을 맺고 머리에서 지워버리기로 결심했다.“인간의 운명이란 ‘왜 하필’이란 의문사로 세포형성을 하는 혼돈의 개체발생과도 같다.”불가항력적인 사태로 인간의 자존감은 블랙홀에 내동댕이쳐지고 아이러니한 현실은 터벅터벅 시계태엽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시간이 지나면 가슴을 치며 통곡했던 일들도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다는 사실에 씁쓸함을 느끼면서 나는 바쁜 일과에 집중했다. 2020년 1월을 보내기 전까지는 그랬다.그러나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추상적으로 누적된 나의 두려움은 분명한 실루엣을 드러냈다. 21세기의 눈부신 의학기술이 코로나19의 확산을 제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기에 사방에 지뢰가 묻힌 길을 걷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지내야만 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지난날 재앙을 경험한 사람들은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을까? 사실, 인류가 출현하면서 원인을 명확히 파악할 수 없는 수많은 재난이 인간의 생명을 위협해 오지 않았던가? 14세기에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과 1918년 스페인 독감은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최악의 참사가 아니었던가? 인재이긴 하지만 스페인 독감과 더불어 제1차 세계대전은 어떠했는가? 이어서 스페인 내전과 제2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 식민지 등, 그리고 6·25전쟁과 같은 일들은 왜 일어났단 말인가? 이념의 갈등으로 빚어진 혈투로 많은 이들이 꿈도 펼쳐보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하지 않았던가?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미국문학 작가인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의 삶이 떠올랐다. 대개의 사람들은 죽음을 피하려고 노력하지만 헤밍웨이는 ‘인류애’를 실현하기 위해 죽음이 난무한 전쟁터를 스스로 찾아 들어간 행동주의자로서 그의 정신세계는 당대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최근에 헤밍웨이의 작품을 다시 읽으면서 코로나19와 같은 재앙을 마주할 수 있는 인생관이 새로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헤밍웨이의 작품에서 얻은 교훈을 여러 사람과 나누기 위해 나는 이 지면을 활용하기로 했으며, 이 글을 읽은 독자들이 지금의 총체적 난국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인류 공동의 연대의식’에서 발견하기를 희망해 본다. 아이러니한 세상 실존적 삶을 지향하는 헤밍웨이의 인생철학이 인간 제반사에서 일어나는 아이러니를 통해 형성되었다는 주장은 “아이러니 없이는 진정한 삶이 가능하지 않다”라는 쇠렌 키에르케고르의 역설(力說)이 단초가 된다. 헤밍웨이의 작품에서 아이러니는 인간의 유한성을 인식시켜 결국 삶에서 진실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아이러니는 인간이 불가피하게 맞이해야 하는 모순적인 삶을 인식하는 것에 머물게 하지 않고 그것의 한계를 뛰어넘어 인간의 영혼을 정화시켜 새로운 삶을 모색할 수 있는 단계로까지 이끈다. 헤밍웨이가 우여곡절이 많은 삶을 살면서 느낀 아이러니는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전염병이 창궐하던 시기에 전쟁과 같은 부조리한 일을 겪어야 했던 당대의 독자들에게 실존적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헤밍웨이의 작품은 코로나19의 위기에 처한 우리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20세기 초 헤밍웨이는 수차례 유럽에서 발발한 전쟁에 직·간접으로 참여하여 세계정의에 대한 신념을 행동으로 보여준 작가로서 경험을 토대로 한 그의 작품은 진정성과 호소력이 짙다. 헤밍웨이의 초기 작품인 『무기여 잘 있거라』는 전쟁과 사랑이라는 주제로 고통과 절망으로 점철된 세상에서 인간이 피할 수 없는 한계를 다루고 있다.주인공이며 서술자인 프레드릭 헨리는 제1차 세계대전에 자원하여 이탈리아 전선에서 복무 중이며 그의 계급은 앰뷸런스 부대의 중위다. 헤밍웨이는 헨리의 시각을 통해 적·아군조차 구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맹목적인 살육이 자행되는 전쟁터의 실상을 보고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신무기의 각축전이라고 불릴 만큼 최신무기는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가며 선과 악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이 무분별한 참상은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보내기 위해 갖다 붙인 ‘신성과 영광’이라는 단어와는 도저히 연결될 수 없는 단지 경악을 금치 못할 현장일 뿐이었다.헨리는 마치 브뤼겔의 그림인 ‘이카루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을 옮겨 놓은 것 같은 묘사로 이야기의 서두를 꺼내면서 인간 삶 자체가 아이러니하다는 것을 피력한다. 헨리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고리지리아의 가을 평원에는 농작물이 풍성하지만 그 반대편 산들은 폭격으로 나무들이 모두 타버린 다갈색의 벌거숭이가 되어버렸다. 평화와 공포를 연출하는 풍경의 대비는 마치 봄과 같은 포근한 날씨에 가로수길을 걷는 정경과 달리 부상병들의 신음소리와 대조를 이루면서 자연이 주는 평온함을누리지 못하고 서로 아귀다툼을 하는 인간의 우매함을 드러낸다.헨리는 부상병들의 앓는 소리를 무덤덤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전에 콜레라로 7천 명의 목숨이 사라진 것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단지 7천 명의 사상자만 생겼다’라는 표현은 헨리가 마치 전쟁에 익숙해져 사람 목숨에 대한 의식이 마비된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그러나 헨리는 자신이 겪은 정신적 충격에 거리감을 최대한 유지하고 아이러니한 상황에 직접적인 반응을 피함으로써 인간을 파멸하는 전염병의 위협과 전쟁의 실상을 독자가 스스로 파악하도록 이끈 것이다. 전염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죽이는 아이러니의 극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소설에서 계속 쏟아지는 비는 전염병을 돌게 하여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전쟁터의 분위기를 더욱 처절하게 만든다. 끊임없이 내리는 비로 인해 퇴각하는 부대는 결국 혼돈 속에 빠지게 되고 헨리를 포함한 장교들은 곤경에 처한다. 헨리와 그의 부하들이 타고 있던 차가 그만 진창에 빠지게 되자 부하들은 차를 빼낼 생각은 하지 않고 퇴로가 막힐까봐 계속 걸어간다. 장교인 헨리는 그들에게 나뭇가지를 꺾어오라고 명령하지만 그들은 헨리의 명령을 수행하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그 자리를 벗어난다. 헨리는 자기로부터 멀어지는 그들을 향해 총 세 발을 쏘고 그 총에 한 명이 숨지게 된다. 직급으로 묶여진 사회적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헨리는 장교라는 이름으로 병사를 처형할 수밖에 없는 집행자가 되었다.그러나 불행히도 헨리 자신도 부대를 이탈했다는 죄명으로 헌병에게 붙잡히게 되면서 지금까지의 상황은 역전된다. 헨리 중위가 카포레토에서 퇴각하는 도중에 길을 잃고 헤매는데 이 과정에서 이유를 불문하고 탈영자로 몰리게 되어 즉결 처형에 붙여지는 장면은 이치에 맞지 않는 사회적 시스템에 얽힌 인간군상의 무력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헨리뿐만 아니라 부대를 이탈했다는 혐의로 다른 장교들도 순식간에 반역자로 몰리게 되는데 그들을 심문하는 헌병들은 그들에게 해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도축업자들처럼 처형해 버린다. 헨리는 자신도 처형당할 차례가 멀지 않았다는 사실을 느낀다. 그러나 자기 바로 앞에 서 있었던 장교들이 속수무책으로 총살이 되는 장면을 지켜보면서도 그는 조금의 동요도 보이지 않고 냉정함을 고수한다.헌병들이 장교들에게 탈영이라는 죄목을 뒤집어씌우기 위해 사용했던 ‘조국의 신성한 땅’, ‘승리의 열매’라는 말은 억울한 운명에 처한 장교들의 입장과 상충되면서 아이러니가 연출된다. 전쟁은 사람의 생명을 심판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은 채 살육행위가 정당하다는 논리를 만들어내고 있지만 결국 전쟁이란 터무니없는 기준을 내세워 인간의 목숨을 빼앗는 잔혹한 행위일 뿐이다. 헨리의 판단이 여기에 미치자 그는 행동으로 자신의 생각을 옮긴다.헨리는 부당한 죽음을 거부하고 강으로 뛰어들어 진짜 탈영을 시도하게 되는데 이 아슬아슬한 장면에서 독자는 이전에 헨리가 총을 겨누었던 부하의 모습이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헨리도 분명히 이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규칙이나 법이 얼마나 모순적인지를 깨달았을 것이고 그런 불합리한 법을 맹목적으로 복종했던 지난날을 후회했을 것이다. 그는 부조리한 상황을 조우하면서 느낀 아이러니를 통로로 죽음이 목전까지 이르는 다급한 상황 하에서도 탈출을 모색할 수 있는 냉철함을 잃지 않았다. 헨리는 ‘세상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유한한 것과 무한한 것’, ‘일시적인 것과 영원한 것’, 그리고 ‘부조리한 것과 합리적인 것’의 간극에서 발생하는 모순을 인식하는 것이 인간의 정신을 수련하는 과정임을 터득하여 당위성이 배제된 죽음을 거부하고 실존적 투지를 실현한다.그러나 인간의 현실 세계에서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실체이며 삶과 사랑에 반(反)하는 우주의 냉혹하고 무자비한 메타포다. 사형이란 죽음의 위기를 간신히 피해서 사랑하는 여인인 캐서린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그의 운명에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헨리가 캐서린을 처음 만났을 때는 장난삼아 연애를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그녀와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연인이 되었고 탈영한 뒤에는 캐서린과 함께 스위스로 피신한다. 그곳에서 헨리는 자신의 아기를 임신한 캐서린과 아름다운 나날을 보내지만 결국 캐서린은 아기를 사산하게 되고 그녀 또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자신에게 다가올 죽음을 알면서도 끝까지 위엄을 잃지 않은 캐서린의 고결한 모습은 이 소설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헤밍웨이의 중·후반기의 주인공들이 보여준 극기적인 삶의 자세가 캐서린으로부터 축적된 산출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캐서린은 이미 자웅동체처럼 빛과 어둠이 공존하듯 죽음도 삶과 짝을 이룬다는 것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이렇게 깨달은 사실을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도 실천하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헤밍웨이는 ‘죽음’의 과정을 통해 심미적인 삶의 방향을 모색한 작가다. 그는 죽음이 연상되는 극도의 고통을 통해 자기인식에 도달하고, 죽음 앞에서 느껴지는 공포가 시시각각 밀려들면서 뿜어져 나오는 감정들을 아이러니로 승화시켜 죽음에 처한 고통을 초월할 수 있는 힘을 생성한다. 헤밍웨이가 죽음의 현장인 사냥터와 투우장 그리고 전쟁터를 찾아다닌 사실만 보아도 죽음을 통해 강인한 내적의식을 구축하고자 했던 그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따라서, 헤밍웨이의 주인공들은 일촉즉발의 죽음의 상황에 처했을지라도 목숨을 구걸하는 비굴한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절제력과 인내심 그리고 용기가 있으며 무분별하거나 경솔하지 않은 인격을 갖추고 있다. 헨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은 아이러니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비합리적인 체제에 맥없이 희생양이 되는 것이 아니라 거짓에서 진실을 구분하여 ‘육체는 파괴될지언정 정신은 패배할 수는 없다’ 2는 의지를 실행으로 옮길 수 있었던 것이다.헤밍웨이의 이러한 의지는 어린 나이에 그가 직접 경험한 죽음의 현장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심각한 부상을 입었지만 옆에 쓰러져 있는 동료를 죽을힘을 다해 부축해 나왔다. 헤밍웨이의 강인한 삶의 투지와 더불어 타인을 먼저 배려하는 이타심은 그의 여러 작품에 녹아 흐르는데, 특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헤밍웨이의 휴머니즘의 절정을 보여준다. 실제로 스페인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해 폭격이 빗발치는 전쟁터로 뛰어 들어갔던 헤밍웨이의 희생정신은 마리아나 다른 동료들의 안전을 위해 대신 죽음을 선택하는 주인공 로버트 조던의 사랑으로 치환되었다. 이 소설에서 헤밍웨이는 마치 철학가 마틴 부버가 말하는 ‘나-너’의 관계를 통해 인간은 참다운 존재가 될 수 있으며 진정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고 호소하는 듯하다.헤밍웨이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제사로 도입한 존 던의 「죽음에 임하는 기도」는 인간 개개인의 운명이 각기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표방한다. 헤밍웨이의 인류애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 제사는 사람들이 왜 함께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인간이 참되게 존재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의식을 심어주고 있다.1936년에 현대문명과는 멀리 떨어져 다소 원시적인 삶을 살면서 열정적으로 투우를 즐기던 스페인 사람들을 헤밍웨이는 사랑하기 때문에 전쟁으로 인해 그들이 겪고 있을 고난을 방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공화파를 지지했던 헤밍웨이는 스페인 내란이 시작되던 해에 그들을 위한 의료시설을 위해 많은 돈을 기부했다. 또한 1939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수차례 스페인을 방문하면서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당시의 상황을 보고하는 글을 써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헤밍웨이의 자전적 소설인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그가 스페인 내전에서 경험한 일들을 소설형식으로 기록한 작품으로 인간다운 삶의 의미를 찾도록 이끈다.내전이 일어난 무렵에 헤밍웨이가 스페인을 방문하여 목격한 것은 길거리 여기저기에 나뒹구는 이탈리아인들의 시체였다. 그는 기자라는 자신의 본분을 조금도 잊지 않고 내란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했다. 그러나 헤밍웨이의 보도로 인해 공화파를 지지해왔던 그의 정치 성향은 의심을 받게 된다. 헤밍웨이는 자신을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비난에 연연하지 않고 전쟁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스페인 내전의 실상을 숨김없이 알리는 것에만 주력하였다. 이 내란이 한 국가의 분쟁을 넘어 국제적 갈등으로 번지면서 독일과 이탈리아의 새로운 무기실험을 위한 전투로 이어졌고 공화파가 항복한 1939년에는 공중폭격과 정치적 사형집행 등으로 무려 80만 명의 목숨이 이슬로 사라졌다. 이들 중 부지기수는 정치이념과는 무관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로 남는다.헤밍웨이의 페르소나인 조던은 직접 전쟁의 폐해를 실감하면서 여러 갈래로 나뉜 정치적 이념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정치적 대의가 국민의 안위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과 약탈 그리고 살육만을 조장할 뿐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이 소설은 스페인 내란이 잠시 소강상태에 있던 1937년 5월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부터 화요일까지 72시간에 걸쳐서 조던이 공화파 게릴라 부대와 합류하여 파시스트 주둔군과 교전하는 이야기로 구성된다. 미국에서 대학교수였던 조던은 휴가를 맡아 스페인 내전에 가담한다. 그는 전쟁을 지휘하고 있던 소련의 군사 전략가인 골즈 장군에게 공격 개시와 함께 다리가 폭파되어야 한다는 명령을 받고 현지 안내원인 안젤모와 함께 정찰을 시작하면서 소설이 전개된다.헤밍웨이가 공화파의 대의를 위해 투혼을 쏟아낼지라도 독자들에게는 정치적 신념을 넘어 아군이든 적군이든 모두가 하나의 인류임을 각인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일환으로 등장인물인 안젤모의 입을 통해 비록 나라를 지키기 위해 살인을 하고 있지만 자신의 행위가 옳지 않다는 것을 계속해서 토로하도록 이끈다. 안젤모는 아무리 적이라도 그들이 주어진 생을 최선을 다해 살면서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를 깨우치길 바라고 있다. 이어서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상대의 증오심을 불러일으키며 악순환이 될 뿐이라고 언급한다.조던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가담한 공화파 조직 내에서 잔인하게 사람을 죽여 온 파블로가 있다는 사실로 인해 소설이 진행되는 내내 심기가 불편하다. 그러나 누군가를 진심으로 아껴줄 수 있는 조던의 심성은 대원들을 배신하고 부대를 떠났던 파블로의 마음에 변화를 주어 다시 돌아오도록 만들었다. 인간이 어떤 부조리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타인의 본질적인 가치를 인정하여 서로의 부족한 점을 받아들이고 보완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비로소 진정한 연대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조던의 이러한 이타심은 동료들을 끝까지 지켜주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할 수 있는 단계로까지 승화된다.조던은 다리를 폭파시킨 후 부상을 입게 되는데 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자신의 목숨을 먼저 챙기기보다는 동료들이 안전하게 도망갈 수 있도록 사지에 남아 추격자들을 저지한다. 파시스트들에게 강간을 당한 후 트라우마에 시달려왔던 마리아를 진실한 사랑으로 품어주었던 조던이 마리아가 서둘러 피하기를 바라면서 건넨, ‘이제 당신은 나인 거야’란 말은 헤밍웨이가 세상을 향해 절실하게 외치고 싶은 ‘인류는 하나’라는 메시지인 것이다.조금의 망설임 없이 죽기를 각오한 조던의 결정은 사랑하는 여인과 스페인 사람들을 위한 선택이었으며 더 나아가 온 인류를 위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조던의 살신성인의 자세는 그의 육체를 담보로 더 큰 재앙을 막아낼 수 있는 초월적 인류애의 실현이다. 조던의 마지막 행동은 비극의 절정이지만 물리적인 시련을 뛰어넘어 정신적인 승리를 보여준다. 조던이 적군에게 폭탄을 맞고 죽음이 임박해오는 상황에서도 사랑의 시선으로 적군의 비행기를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인류는 하나라는 그의 확고한 신념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동료들을 위해 지독한 고통을 참아 내면서 방호태세를 늦추지 않던 조던의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이타심의 결정체라고 볼 수 있다.헤밍웨이는 정치적 이념을 떠나 전쟁에 가담한 모든 사람들은 하나로 연결되었기 때문에 서로 총을 겨누어 살육하는 행위는 도저히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피진한다. 이렇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실천하기 위해 죽음과 폭력이 난무한 현장도 주저 없이 달려간 헤밍웨이의 투혼은 그의 작품에서 살아 움직이면서 부조리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게 심금을 울리는 메시지를 남긴다.헤밍웨이가 일생을 통해 터득한 교훈은 지구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따뜻한 사랑을 실천했을 때 비로소 아이러니한 세상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죽음이 초읽기로 다가오는 순간에도 ‘적군과 아군은 모두 하나의 인류’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조던의 호소를 통해 우리는 인간이 마음을 기울여서 지켜내어야 하는 대의는 인류 간의 상호의존과 연대의식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즉, 한 개인의 행동과 명분은 죽음이 소용돌이치는 상황에서 공포감을 극복하기 위한 의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폭력에 맞서 타인을 책임질 수 있는 인류애로 전위(轉位)되어야 하는 것이다.사람, 사랑으로 하나 되어20세기 중반까지 전 세계에서 발발한 크고 작은 전쟁들은 일부 공격적 성향을 지닌 소수의 지도층들이 악의적으로 슈퍼바이러스를 퍼트린 전파자처럼 온 세상을 핏물로 적셔놓은 인재였다. 당시 ‘길 잃은 세대’들로 전락한 많은 젊은이들은 삶에 진정한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고 허무주의에 함몰된 채 본능이 이끄는 대로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야 했다. 하지만 방황하던 이들도 폐허가 된 세상을 다시 재건하려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상처로 얼룩진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음 세대들에게는 결코 이러한 재앙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지난날 인간들이 범한 오류에 대해 반성하기도 하고 재난의 원인을 찾아 대안을 논의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흑사병이 휩쓸고 간 유럽에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의식을 환기시킨 르네상스 운동이 이런 까닭으로 시작되었으며, 여러 차례의 재난으로 몸살을 앓아야 했던 20세기를 거치면서 인간의 개개인의 가치가 더욱 존중받게 된 계기도 이런 연유에서 비롯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고무줄 같은 탄력성으로 불가항력인 절망에서도 희망의 싹을 틔워내는 인류의 회복력은 잘못된 사회적 패러다임을 올바른 방향으로 돌려보려고 노력한 수많은 사람들의 의식의 결과물이다. 헤밍웨이에게 영향을 받은 까뮈가 『페스트』에서 살아있는 사람에게 사형을 구하는 것을 아주 당연히 여기는 아버지의 죗값을 짊어지고 역병이 도는 곳을 찾아 들어와 환자를 돌보고 페스트를 퇴치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타루’를 통해 인간다운 삶의 유형을 제시했듯이, 세상을 정화시키려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인류는 잘못된 방향으로 틀어지는가 싶다가도 사람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면서 다시 살만한 세상으로 선회하는 것이다.예수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당부했듯이, 부처가 지금 후회 없이 사랑하라고 가르쳤듯이, 공자가 중요하게 여긴 인(仁)이 사랑이라고 언급했듯이 나-너와의 사랑, 이웃 간의 사랑 더 나아가 인류와의 사랑은 우리가 당면한 힘든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자 열쇠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으며 또 실천하려는 마음이 우리의 가슴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기에 어떤 불행이 숙명처럼 다가오더라도 우리는 함께 지금의 역경을 딛고 일어설 수 있지 않을까.
김효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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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들어가는 말주민자치회 회의나 교육 또는 사업 실행 현장을 방문하다 보면 주민자치회 위원들에게 주민자치를 실시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것을 자주 접한다. 이런 질문을 할 때마다 단골 답변은 이렇다.“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을 말씀드리고, 국민에게 주권이 있고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다(국민주권, 주권재민). 이 국민주권의 구체적 실현 방식이 지방자치이며,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주권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선출직 및 공무원들의 할 일이다. 현재 지방자치제에서 주민주권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식이 바로 주민자치이다.“여러분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고, 국가의 주권을 가진 국민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살고 있는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주민센터나 시청을 찾아 몇 번씩이나 민원을 넣고, 의원을 만나도 속 시원하게 해결된 경험이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우리 피부에 와닿는 체감도가 적은 것도 현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건 여러분이 주인인데 주인다운 행동을 하지 못해 일어난 일이고, 그 주인다움을 하기 위한 연습과 실력 향상을 위해 우린 함께 모이고 공감하고 의견을 하나로 조정하는 일들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밭의 주인이 농사를 짓기 위해 잡초들은 뽑습니다. 그러나 뽑아도 뽑아도 계속 나옵니다. 하나는 작고 힘이 없지만, 땅속의 잡초 뿌리를 보면 서로 엄청나게 얽혀있습니다. 서로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죠. 주민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문제를 자신만이 해결하는 것이 아니고 어쩌면 그 문제를 이웃사람과 이야기하다 보면 그 문제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때 서로 협력하는 거죠. 들판 잡초 풀뿌리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같습니다. 이런 일을 주민자치에서 한다는 것입니다.”현재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절름발이다. 주민자치를 실시하는 독립된 법령이 단 하나도 없다. 지방자치분권 및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에 3개의 조문이 전부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지방자치가 단체자치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이런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해 현 정부가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20대 국회 종료로 자동 폐기되었다. 현 정부가 자치분권 정책을 추진하고 행정안전부를 중심으로 주민자치회 구성을 위한 지원을 다양하게 전개하고 있다.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지방분권과 풀뿌리 주민자치 실현을 국정과제로 설정하여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지만 정부 부처 간의 협의도 어려운 실정이다.국회는 중앙정부가 지방사무인 주민자치를 추진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하고, 이 논리가 정부 부처 중 기획재정부가 예산 편성의 곤란함으로 둔갑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민주권을 실현하고 지방자치를 바로 세우는 일은 주민들의 활동이다. 누구로부터 주어지는 제도와 법률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 속도감 있고, 선출직과 엘리트 공무원들의 논리를 이겨낼 수 있다. 주인이 주인다운 행세를 이제는 제대로 해야 한다. 2장. 단체자치와 주민자치의 이해지방자치는 국민주권의 구체적이며 지방적인 개념으로 주민주권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 지방자치를 단순하게 단체자치와 주민자치의 합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일상적이다. 그러나 단체자치가 내포하고 있는 바와 주민자치가 내포하고 있는 바의 명확한 이해는 향후 정책을 추진하는 주요한 방향이 될 수 있고, 주민자치가 활성화되어야 하는 명확한 이유를 알 수 있다.단체자치는 일정한 지역을 기초로 하는 독립된 단체가 설립되어 중앙정부의 지배에서 벗어나 단체의 사무를 단체의 독자적인 기관에 의해 자주적으로 그 책임 하에 처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지방자치의 원리이다.필자가 이해하는 바에 따라 해석한다면 단체자치의 핵심원리는 중앙정부로부터 지방자치단체가 독립된 권한이 어느 정도인지, 즉 중앙정부로부터의 권한이 지방자치단체로 분권화되었는지가 중요한 것이라고 본다. 선진국이라 하는 국가는 대략 중앙과 지방의 권한이 6:4이거나 5:5 정도이고, 우리나라는 8:2이다. 지방분권에선 선진국가들을 따라가려면 한참은 멀다.단체자치의 핵심원리는 지방분권화가 어느 정도로 이루어져 있는지가 매우 중요하며, 현재 지방자치단체가 중앙정부로부터 꾸준히 요구하고 있는 지방분권 확대가 그 답이라 할 수 있다.주민자치는 지역적 사무가 지역주민의 참여를 통해 그들의 의사에 기초하여 자주적으로 처리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주민과 지방자치단체 간의 관계에 중점을 둔 지방자치의 원리이다.이는 지방자치단체 안에서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에 주민의 참여가 어느 정도 어떤 방식으로 보장이 되어 있는지가 핵심 요소라고 본다. 중앙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 주민참여 방안 활성화 입법과제(주민투표, 주민발안, 주민소환, 주민참여예산, 주민참여)로 제시한 이후 거의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를 제정하였지만, 활성화는 거의 전무하고 그나마 주민참여예산은 대부분 단체장들의 정치적 고려로 활성화되고 있는 현실이다.주민자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다 보면 혹자들은 주민의 대의기관인 의회를 무력화시키는 활동이 주민자치라고 한다. 이런 주장은 의회의 기능을 모르는 몰지각한 발언임과 동시에 지방의회 의원의 책무를 모르는 자들의 문제 제기라고 생각한다. 주민자치와 지방의회는 협력적 관계, 서로를 보완해주는 보충제이다. 주민자치 활동은 의회의 역할을 명확하게 해주면서 지역구 의원들에게 구체적 활동을 명확하게 안내한다는 것이 필자의 경험적 증명이다.우리는 단체장의 치적 쌓기, 무원칙한 수범사례 따라 하기 등으로 예산을 낭비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사업들을 보았고, 아직도 진행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도 존재한다. 대의기관의 역할이 잘못되거나, 정치적인 결정이 이루어지는 사례를 많이 경험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다 효용적인 측면에서의 정책 결정은 주민참여를 통해 이어질 때 높아질 수 있다. 아울러 정책 집행의 갈등이 해소되거나, 정통성과 당위성이 높은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주민자치는 그 지방자치단체의 민주성을 나타내는 것이고 주민자치의 발전이 성숙한 민주주의를 보장할 수 있다고 본다. 즉 주민자치는 대의 민주주의의 단점을 보완하고, 지방자치단체의 다양한 결정 과정에서 소외된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직접 민주주의의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3장. 주민참여와 주민자치의 새로운 시작을 위한 제언진주시는 천년의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역사·문화 예술의 고장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종합예술제의 효시인 개천예술제, 남명의 실천 유학과 경의사상, 왜구와 맞서 싸운 진주성전투 정신, 부당한 권력에 항거한 진주 민중들의 민란, 일제식민지에서 독립을 위한 걸인과 기생들의 만세운동, 신분해방과 인권운동의 시초인 형평사운동 등 진주를 상징하는 많은 역사가 면면히 존재하였고, 지금도 그 사상들이 흐르고 있다. 그래서 진주사람들은 이 역사적 사실들의 총합을 “진주정신”이라는 고유명사로 표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필자가 생각하는 진주정신의 핵심은 이렇다. 첫째, 진주정신은 외세로부터 국가와 진주라는 지역사회를 수호하는 정신이다. 둘째, 백성들의 삶과 문화가 자유롭게 소통하고 융합되는 혁신 발전의 정신이다. 그래서 수호와 혁신 발전의 정신은 어떤 문화와 사조가 유입되어도 지역화와 자기화를 통해 진주문화로 창조시키는 것이다. 결국 진주정신은 창조요, 창조의 기반은 신분에 관계없는 참여와 융합이었다.그러나 이 참여와 융합의 창조 문화가 소수의 집단과 위정자의 전유물이 되기 시작하는 1980년대 이후 진주는 쇠퇴하는 길로 접어들었다. 산업화 과정에서 진주의 전통을 지키고자 했던 집단과 산업화를 추진했던 집단 간의 협력과 대화의 단절이 원인이다. 서로의 사익만을 위해 지역을 이용하고자 한 탐욕의 결과라고 본다. 그래서 전통을 지키려는 집단과 전통을 케케묵은 구식이라고 매도하는 집단과의 한판 판싸움이 결국 쇠퇴한 도시 진주의 결말이었다.우리는 새로운 것에 대한 관대함과 비판정신이 있어야 한다. 무조건 새로운 것을 배척해서도 안 되고 무조건 받아서도 안 된다. 설령 정부 정책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혁신도시가 진주로 오면 진주가 천지개벽이 일어날 것 같았다. 인구가 50만 명이 넘을 줄 알았다. 허상이었다. 어떻게 지역발전에 활용할 것인지 모든 것이 부족했다.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의 외부의 자원은 외톨이 자원이 된다.외톨이 자원이 아닌 공동 자원이 되기 위해서는 참여하는 지역사회의 문화가 변화되어야 한다. 성별과 연령의 관계없는 소통하고 협력의 지역사회 문화가 필요하다. 진주정신의 혁신 창조와 참여와 융합이 필요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추진되고 있고, 새로운 창조적 혁신 사업들이 추진되고 있는 정부의 사업이나 사회의 변화에 대해서 남들이 하는 것을 보고 판단하겠다는 기류가 강하다. 진주시 공직들은 물론이고 진주시민들도 비슷한 생각인 듯하다. 그래서 사회적 경제, 도시재생, 마을공동체, 주민자치회, 사회혁신 정책, 지방분권, 주민참여예산 등등 중앙정부 정책의 단골 메뉴들이 공무원들의 컴퓨터에서 잠자고 있고, 생색만 내는 사업을 하고, 시장의 지시와 관심이 없으면 나 몰라라 한다. 아무리 뛰어난 단체장이 오더라도 일일이 지시하거나 챙길 수가 없다. 그렇다면 진주시민이 나서거나 헌신적 공무원이 나서거나, 시민사회단체가 나서거나, 아니면 선출직 공무원이 나서거나... 아니면 대학의 교수들이 나서거나...중앙정부나 경상남도청이 진주시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 국가는 국민주권이고, 지방자치는 주민주권이다. 결국 주민의 결정이 지역의 성패를 좌우한다.결국 진주의 발전은 진주정신을 다시 나타내고 적극적인 실천 활동을 할 때 가능하다. 창조·참여·혁신·융합의 시작을 하여야 한다. 주민의 참여를 보장하고 권장하는 정책이 진주시 제일의 정책이어야 한다. 백가쟁명의 발전 방안을 모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참여 민주주의, 직접 민주주의가 남강과 같이 흘러야 한다.참여 민주주의 사회, 직접 민주주의 사회는 모든 시민이 함께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지역사회에서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 즉 마을회관(커뮤니티센터, 공유공간)이 있어야 한다. 읍면동 주민센터에 설치된 공간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주민만의 것이 아니다. 여유시간에 건강과 취미, 문화 활동하는 공간도 되어야 하고, 지역주민들을 돕기 위한 활동을 계획하는 회의 공간도 필요하고, 어린이들이 신나고 놀고 재미있는 책을 읽을 공간도 필요하고, 동네 수다방이 되기도 하여야 한다.둘째, 공간에서 소통되는 다양한 이야기가 조정되고 통합되는 공론과 숙의 장을 운영하고 지원해 줄 기관이나 활동가가 필요하다. 상근 활동가도 물론 필요하지만, 소소한 마을의 이야기를 작당하는 소소한 사업들을 그 작당이 일어나는 시간에만 지원할 마을 활동가가 필요하다. 일자리가 아닌 일거리가 있는 주민지원 또는 촉진 활동가의 양성이 필요하다.셋째, 주민들의 행정 참여를 보장하는 직접 민주주의적 통로가 있어야 하고 활성화되어야 한다. 지방자치가 단체자치에 치우치는 절름발이 지방자치가 안되려면 주민자치를 살찌워야 한다. 읍면동별로 설치, 운영되고 있는 주민자치위원회를 점검하고 평가하여 발전적 방향을 내와야 한다.진주시는 주민자치회 실시 사업의 후발주자이다. 단체장의 의지 부족과 공무원들의 무관심, 당사자들의 문제 인식, 지역사회의 관심 부족, 선출직들의 이해타산적 해석이 융합된 결과이다. 주민참여, 주민자치라는 단어가 갖는 불손한(?) 느낌을 지우지를 못하고 있다. 진주가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던 역사적 사실을 말로만 하지 말고 실천을 해야 한다. 행정에 주민참여의 통로를 만들고 동 단위에서 마을의 문제를 문제 당사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해결방안을 만드는 방식이 바로 현재 정부정책으로 추진하는 사회혁신의 핵심이다. 정부는 관리가 우선이고 관리는 관리자의 입장에서 모든 문제를 바라보고 풀어간다. 그래서 많은 예산을 들인 사업이 지역주민들에게 외면받는다. 왜나하면 지역주민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동 단위 주민참여 바람이 풀어야 한다. 그 바람이 전국적으로 900개 이상의 읍면동에서 불고 있다. 거창과 통영, 창원에서 불고 있는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속도전으로 풀어가야 기회가 생긴다. 30개 읍면동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자. 주민자치회는 그야말로 주민이면 누구나 참여하여 6시간 학습을 하고 추첨에 의해 선정되면 된다. 대한민국 국민이 주민자치위원이 되는 조건은 오직 주권이 있는 국민이면 된다. 이것이 주민자치회를 새롭게 구성하는 방식이다. 추첨이 능사가 아니지만, 기존의 방식을 혁신하는 것이고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을 제도적으로 보장해 주는 것이다. 지금 늦었다. 진주시에서는 올 하반기에 본격적으로 추진한다고 하지만 어서 시작하기를 강권한다. 지금은 늦었다.
김일식(서울시 금천구 주민자치사업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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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어지러우면 악덕 무당이 판친다. 제법 괜찮다는 길목엔 천지인을 상징하는 삼색천을 매단 대나무를 대문간에 세워두고 안방엔 신당을 차린다. 소위 신군(神君)을 자처하는 그들은 세상 살이 다급한 민초를 대상으로 혹세무민한다. 그리고 마치 세상 사람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판관처럼 행세한다. 보편적 인식이 그렇다는 말이다. 비단 무당에만 그치지 않는다. 조폭도 마찬가지이다. 이른바 ‘패밀리’의 머릿수가 곧 ‘힘’인 이들은 ‘대부’의 그늘에서 복
‘잣대’라는 말이 있다. 길이를 재는 자로 사용되는 대막대기 혹은 나무 막대기의 일종으로 통칭 ‘자막대기’라고도 부른다. 이 말은 자고로 도덕적인 행위나 사물의 기준을 재단하는 객관적인 근거로 인용되곤 했다. 흔히 ‘객관적이지 못한 일’이나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은 이 잣대를 기준으로 잘잘못을 가리곤 한다.그런데 이 잣대란 말은 그 자체로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잣대가 적용되는 순간, 그것은 객관적이지 못하며 형평성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이 ‘잣대’는 일부 소수 권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