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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8 17:25(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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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값, 꼴갑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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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경규/진주평론 발행인

  • 작성일

    2026.08.28 PM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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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임금은 결연한 담배 예찬론자였다.  그는 ‘하늘이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이 풀을 내렸는데, 하늘을 도와 정치를 하는 임금은 마땅히 백성들에게 혜택을 두루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천명했다. 담뱃값을 올려서라도 국민 건강을 염려하시는 분과 담배를 권장한 분 중에 어떤 분이 옳은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분명한 차이는 정조 임금에게 있어 담배는 백성들이 근심을 풀 수 있는 기호 식품인 반면, 지금의 나랏님에게 담배는 세금 징수용인 차이가 있을 뿐이다. 백성의 마음을 걱정하는 임금은 성군(聖君)이며, 백성의 고혈을 짜내는 임금은 걸주(桀紂)와 다름없음을 알았으면 하는 바람만 간절하다. 담배는 다양한 이름이 있다.  남쪽에서 와서 남초(南草), 신비한 약효가 있어 남령초(南靈草), 술처럼 사람을 취하게 해서 연주(烟酒), 차(茶)처럼 피로를 해소시켜서 연다(烟茶), 한 번 멋보면 잊을 수 없어 상사초(相思草), 근심을 잊게 해주어서 망우초(忘憂草)라고도 한다.

담배값 꼴갑이네

 

담배 피는 사람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딴 식인가? 

담배 피울 공간도 사라지는 것도 억울한데, 담배 피우는 사람을 야만인(野蠻人) 취급까지 한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물고 있다가 오만상을 찡그리며 지나는 사람의 뒤통수를 볼라치면 왠지 죄인이 된듯 한 기분이 든다. 

 

나랏님을 비롯한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의원님들의 생각도 그런 것 같다. 

‘담배는 인체에 백해무익인데도 피우는 사람이 줄어들지 않으니, 담배값을 올려서라도 금연을 시켜 국민들의 건강을 증진시키겠다’ 

취지는 좋은 듯 한데, 공감은 ‘글쎄올시다’이다

 

오래 전 서울대학교 의대의 모교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국가가 국민들을 담배 중독에 빠트려 놓고 그걸 통해 한 해 수 조 원의 세금 수입을 올리는 것은 마약장사로 떼 돈을 버는 조직 폭력배가 하는 짓과 다름이 없다’

 

교수님의 논리대로라면 국가는 담배의 제조와 판매를 금지시켜야 마땅하다. 

근데, 금지하기는 커녕, 담배값 인상이야기가 솔솔 나온다. 입에 문 담배 연기에서 뭔가 수상한 냄새가 솔솔 난다.

 

여기서 굳이 담배 예찬론을 적고 싶지 않다. 

다만 흡연과 금연 여부는 당사자의 의지에 달린 것이지 국가가 개입할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적시하고 싶다. 

 

어린아이가 생각해도, 국민건강을 위해서라면 담배 제조와 판매를 금지하는게 제대로 된 처방이기 때문이다. 

담배 판 세금은 어디다 쓰느냐 따위의 천박한 질문은 하고 싶지 않다. 꾸짖을만한 것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담배를 적극 권장한 나랏님도 계셨다. 

정조임금은 결연한 담배 예찬론자였다. 

그는 ‘하늘이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이 풀을 내렸는데, 하늘을 도와 정치를 하는 임금은 마땅히 백성들에게 혜택을 두루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천명했다.

 

담뱃값을 올려서라도 국민 건강을 염려하시는 분과 담배를 권장한 분 중에 어떤 분이 옳은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분명한 차이는 정조 임금에게 있어 담배는 백성들이 근심을 풀 수 있는 기호 식품인 반면, 지금의 나랏님에게 담배는 세금 징수용인 차이가 있을 뿐이다.

백성의 마음을 걱정하는 임금은 성군(聖君)이며, 백성의 고혈을 짜내는 임금은 걸주(桀紂)와 다름없음을 알았으면 하는 바람만 간절하다.

 

담배의 해악에 대해서도 천편일률적인 적용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독극물을 애용하면서도 비교적 장수한 사람도 있다. 

 

파이프를 입에 물고 살았던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은 무려 92세까지 살았고, 하루 담배 10갑을 피운 공초 오상순시인은 70세, 소설가 박경리 여사는 83세, 담배의 대명사였던 임어당은 82세까지 살았다.

 

담배는 다양한 이름이 있다. 

남쪽에서 와서 남초(南草), 신비한 약효가 있어 남령초(南靈草), 술처럼 사람을 취하게 해서 연주(烟酒), 차(茶)처럼 피로를 해소시켜서 연다(烟茶), 한 번 멋보면 잊을 수 없어 상사초(相思草), 근심을 잊게 해주어서 망우초(忘憂草)라고도 한다.

 

담배 예찬론자는 아니지만, 한마디 하고 싶다. 담뱃값 인상 꼴깝이네.

당신을 위한 추천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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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기다리며

사람은 본디 가벼운가, 무거운가. 골치 아픈 물음이다. 사실 깃털과 풍선의 경중을 가리는 일이라면 고민할 필요는 없다. 하늘 높이 던져 보면 쉽게 해결 될 일이 아닌가. 근데 사람의 일은 좀 다르다. 낭떠러지 아래로 밀어 구해낼 답이 아니기에 그렇다. 늦었지만 지금에야 자문해 본다. 가벼운가, 아니면 무거운가. 깃털 같은 가벼움을 직감한다. 아니, 개울가 댑싸리 사이를 오가는 송사리 같음이 맞다. 요리 몰리고 조리 몰리며 먹을 것만 찾았다. 잠시도 가만있질 않았다. 해가 저물도록 움직였다.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말이다. 새삼 곱씹을 필요도 없다. 아침마다 꿈꾸었던 행복의 모양새가 어땠는지 말이다. 권태 탓이다. 어쩌면 쉽게 잊어 먹은 까닭이다. 돌이켜 보건대, 마음에 새긴 먹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가벼움으로 온 몸을 부르르 떨지 않았는가. 진정 무던히도 참고 인내하는 법을 그동안 배우긴 한 건가. 지금에 와서 나 자신의 변덕과 분열을 설명할 길이 없다. 분한 것은, 그 변덕스러운 감정 사이를 어떤 서투른 글로도 서술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더한 것은 마음의 흩어짐을 끝내 다잡을 수 없었던 초라함이다. 끝내 지키지 못하고 무심히 세상에 내어주지 않았던가. 사실은 꿈 단지가 턱없이 컸음이다. 그랬기에 한꺼번에 담으려 했고, 많은 것을 담으려 했음이다. 담으려 욕심낼 수록 오히려 채워지지 않는 것이 꿈 단지인 것을 정녕 몰랐던 탓이다. 그리고 마음 한구석의 꿈 단지에 공백이나 다름없는 지난 세월의 부끄러움이 가득 차 있음을 본다. 진정 가벼웠음이다. 이제야 땅을 갈고, 이랑을 만들어야 할 마음의 밭이 너무도 많이 남아있음을 깨닫는다. 내일은 그 밭을 일굴 내 몫의 쟁기 하나쯤은 챙겨두리라. 듬직한 황소 한 마리와 뿌릴 씨앗도 넉넉히 준비할 참이다. 꿈 단지를 이대로 비워둘 수만은 없지 않은가. 애오라지 희망으로 가득 채울 것이다. 아무것도 기대할 것 없고, 더 이상 허리띠를 졸라 맬 여력이 없는 어려운 세상이기에 더더욱 흘러 넘치도록 채우리라. 그토록 가벼웠기에 이토록 텅텅 비어 있지 않는가. 그랬기에 이처럼 절망의 시대를 부여안고 살고 있지 않는가.뒤돌아볼 수 없는 곳에 무언가를 두고 왔다해서, 넋 놓고 후회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 아무리 애를 써도 가질 수 없는 것 한 가지씩 갖고 사는 게 사람의 일이 아니던가. 단지 때로는 희망으로, 때로는 절망으로 다가올 뿐이다. 희망을 기다리며 다시 자문한다. 가벼운가, 무거운가.

  • 202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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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리 찬물 한 바가지

대체 젊다는 것은 무엇이던가. 거짓과 협잡이 난무하는 패악질을 두 눈 치켜 뜨고 맞서 자존을 지켜나가는 일이 아니던가. 더 나아가 기득권에 빌붙는 타락한 시대정신을 비웃고, ‘옳은 것’ 보다는 ‘유리한 것’만 찾아다니는 세상의 부조리를 깨뜨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던가. 주제넘게도 붓 한 자루 꼬나 쥔 시퍼런 청춘이 오래 전, 이 거칠고 거친 세상에 뛰어 들 때는 적어도 그랬다. 그리고 지금껏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천년 도시 진주의 속내에 정제돼 있는 진주정신의 살아있음을 말이다. 더불어 노쇠해 가는 육체가 정신의 격무를 견디지 못해 파탄하는 그 날까지 버티리라 다짐했다. 그것이 진주에서 살아 갈 수 있는 유일한 힘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정작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나도 모르게 어설픈 투사가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람과의 일에서 단지 서로 의견이 조금 다를 뿐인데도 결코 상대방을 인정할 수 없었다. 남의 일은 단점을 들춰내고, 무턱대고 비난의 화살을 쏘아댔다. 그것이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유일한 방법이었기에 그랬다. 그리고 거기에서 새롭게 맛보는 작은 특권과 기득권은 달콤했다. 그러나 그것들이 단지 껍데기일 뿐 이었다는 사실을 알아 채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거머쥔 작은 특권과 기득권을 지키려고 날마다 저지르는 불평등과 불공평에 눈을 감는 내 안의 거짓된 모습에도 개혁과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읽던 책을 내려 놓는 순간, 뒷덜미가 서늘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정수리에 찬 물 한 바가지가 쏟아졌다. 정신이 퍼뜩 들었다.언제부턴가 우리는 내 안의 거짓을 찾기 보다는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데 더 익숙해져 있기에 더욱 그랬다.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겉으로는 올곧은 정신을 내세우면서도, 속으로는 자신만의 기득권을 쫓는 타락한 시대정신들이 많으리라. 어쩌면 나 자신도 그 중의 한 명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나와 주변 세계에 대한 고민의 끈을 놓지 않는 원동력이 되는 ‘정신의 탄력’이란 명제는 여전히 유효해야 한다. 그것이 진주정신이든 다른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혹시라도 한심하고 타락한 시대정신이 천년의 속내를 키워 온 진주정신을 왜곡하고 무참히 짓밟도록 내려 둘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다짐한다. 모래 위엔들 어떠랴. 무엇이든 세워라. 대신 끝이 뾰족하고 날카로워야 한다. 스치기만 해도 크고 오래 남을 상처가 남을 정도면 더 좋다. 설사 실패해 뼈에 사무치는 고통이 찾아와도 괜찮다. 그럴수록 다음 기회는 그만큼 재빠르게 오니까 말이다. 수없이 마음을 다잡고, 미리 예단해 미적거리지도, 꼼지락거리지도 말자. ‘말면 말지’ 하는 마음도 접어 두자. 구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고, 구함이 많을수록 번잡스런 것이 세상 이치지만 도전하지 않으면 이루어지는 것은 단언코 없다.무엇을 세우든, 시작부터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예감한다. 또한 누구도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편안하게 사는 게 어떠냐는 회유도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갖가지 이유가 따라 붙을 수도 있다. 어쩌면 지지부진하다가 슬며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없던 일’이 될 수도 있다. 예측하고 시작했으니 괜찮다. 그 정도야 지금껏 수없이 겪어왔던 일이고 견뎌냈던 일이 아니던가. 그러나 단 하나만 믿자. 진실은 다래끼 돋은 눈꼽에도 끼어 있고, 미운 며느리 속옷에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무엇이든 세워야 한다. 설사 허황된 꿈에 머물지라도, 이상만 가지고 처절한 현실의 벽을 허물려고 한 맹자의 우활(迂闊)함이라 비판받아도 좋다. 대신 절대 겁내지 말아야 한다. 상처가 남으면 어떠랴. 또 뼈에 사무치는 고통이면 어떠랴. 지금 뭔가를 세운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붓 한 자루 꼬나 든 시퍼런 청춘이 세월을 돌고 돌아 다시 세상에 뛰어든다. 딱 봐도 무모하다. 우활하다. 가시밭길이다. 근데 난 괜찮다. 함께 가는 길동무가 있기에 그렇다. 세울 것이다. 끝이 뾰족하고 날카로운 그 무엇인가를.

  • 202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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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

나를 술 푸게 하는 세상 가수이자 개그맨인 정광태가 부른 ‘독도는 우리 땅’을 잘 아실 것이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망언을 한 칼에 보내 버린데 이어 지금까지 국민 애창곡이 된 이 곡은 독도를 소재로 한 노래 중 가장 유명한 곡이다.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리,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 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독도는 우리 땅.” 이 노래 모르면 간첩이다. 독도는 우리 땅이 방송금지 처분을 받은 적이 있다. 전두환 정권 시절 문화공보부로부터 잠정 방송금지 처분을 받은 것이다. 이유를 보면 어이가 없다.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파동이 일어났을 때 전두환 정부의 대일외교 정책 등을 우려해 금지했다’는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친일파나 왜놈 눈치 보는 인간’은 사라지지 않고 존재한다. 바퀴벌레보다 더 끈질긴 놈들이다.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노래가 첫 선을 보인 1982년 이후, 일본이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길 때 마다 이 노래는 전파를 타고 대한민국에 울려 퍼졌다. 2005년에는 독도 노래비가 도동항 광장에 설치되고, 가수 정광태는 본적을 독도로 옮김과 동시에 ‘명예 독도 주민’이 되었다. 반면, 일본은 정광태를 입국금지 명단에 올렸다. 구질구질 한 건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국가가 나한테 해 준게 뭐 있냐.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멘트로 전 국민을 웃음의 도가니에 빠트린 개그 코너가 있었다. 제목은 ‘나를 술 푸게 하는 세상’이다. 남성 취객과 여성 취객이 경찰에게 푸념을 늘어 놓은 콘셉트이다. 술에 취해서 헛소리를 해대는 점이 웃음 포인트지만, 현실을 강하게 풍자한다. 특히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과 같은 명대사는 당시 엄청난 유행어로 등극했다. 코너를 보자. 파출소에 온 남성 취객이 순경에게 ‘독도는 우리 땅’을 아느냐고 묻는다. 순경이 노래 1절을 자랑스럽게 부르자, 다시 질문을 던진다. “그럼 5절을 불러봐” 순경이 당황해하자, 곧바로 이런 멘트를 던진다. ‘이 애국심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더러운 나까무라 순사야!’ 비록 개그 코너지만 1절만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슴을 뜨끔하게 만드는 말이다. 당시 장동건과 고소영의 열애 소식이 연예가를 달구었을 때 남성 취객 역의 박성광은 이렇게 말한다. ‘1등 끼리 사귀는 더러운 세상.’ 그리고 유해진과 김혜수의 열애설이 나왔을 때는 ‘나 같은 사람도 연예할 수 있는 행복한 세상’이라고 외쳤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은 그렇게 가끔은 힘이 되고, 때로는 위로가 되는 외침이었다. 남자 취객이 순경에게 묻는다. ‘한우 좋아해?’ 당연하다는 순경의 대답에 ‘5등급은 먹어 봤어’라고 되묻는다. ‘5등급이 있냐?’라는 반문에 순경의 멱살을 부여 잡으며 이렇게 말한다. “한우 1등급만 기억하는 더러운 육식 순경.” 단순한 개그지만, 여러 상황을 접목시켜 보면 남성 취객의 말은 ‘언제나 옳다’라는 생각을 무의식중에 갖게 된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그것이 ‘나술세’ 즉 ‘나를 술 푸게 하는 세상’이 가진 힘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나를 술 푸게 하는 세상’이란걸 직감한다. 그렇다고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 순경의 멱살을 부여 잡고서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외치다가는 곧바로 유치장 신세를 면치 못한다. 막걸리와 소주 한 잔의 힘을 빌어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향해 외쳐볼 뿐이다. 그마저도 할 수 없다면 이 세상을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 ‘독도의 날’이 언제인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10월 25일이다. 독도의 날은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알리고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제정을 기념하는 날이다. 1900년 10월 25일 고종이 공표한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는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정한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곧바로 이런 멘트를 떠올리신다면 그대는 개그천재이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만 알고 독도의 날은 모르는 더러운 세상.’ 독도의 날은 10월 25일이다. 기억하자.

  • 202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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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은 금칠을 한 감옥이다

백악관은 금칠을 한 감옥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명사(名士)의 자녀치고 문제가 없는 자식들은 드물었다. 총으로 자살을 기도한 스탈린의 장남은 “총 하나도 제대로 쏘지 못하는 주제에…”라는 스탈린의 책망을 들어야 했다. 장남도 장남이지만 차남은 알코올 중독이요, 외동딸 내외는 시베리아로 유배를 당했다.인도의 국부(國父) 간디의 장남은 아버지의 금욕생활과는 달리 아버지의 명성을 팔아 돈을 챙기고 이권을 넘나들다 결국 막대한 부채를 얻었고, 이를 이기지 못해 결국 결핵으로 변사했다. 그리고 처칠 수상의 자녀 셋도 자살하거나 알코올 중독으로 유치장 나들이를 일삼았다.그런데 꼭 그렇지 않은 명사의 자녀들도 있었다.링컨 대통령의 아들 로버트는 변호사, 장관, 외교관을 역임하며 명망을 유지했지만, 주위의 강력한 출마권고에 불구하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았다. ‘백악관은 금칠을 한 감옥’이라는게 그 이유다. 그런 그는 링컨의 후광을 피해 가며 여생을 존경받으며 살았다.서양만 그런 것이 아니다. 지저분하게 누구 누구 아들이 그렇다고 일일이 적지 않아도 온 국민의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독자들의 읽는 수고를 덜어주는 차원에서 구렁이 담 넘듯 넘어가는게 좋을 것 같다. 누워 침 뱉기에 다름 아니니 그냥 건너 뛰는게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을까 싶어서이다.이러한 것을 볼 때 동서양을 막론하고 ‘후광은 액물’이라는 역사의 궤적을 좀체 못 벗어남을 절감케 한다. 큰 나무 아래에서 작은 나무가 자라는 것이 어려운 일이고, 후광을 입는 순간 자신에게 쌓일 마음의 짐을 벗기에는 그 후광이 너무도 무겁기 때문일까? 결국은 예나 지금이나 허세의 공작 날개를 접고 제 갈 길을 묵묵히 걸어 가는 것이 잘 먹고 잘 사는 길에 다다르는 첩경인 셈이다.옛날은 옛날이고 지금은 세상이 많이 달라졌을거라고 생각하는 독자는 없으리라.물론 천만의 말씀이다.대(代)를 이어 이라크와 악연(惡緣)을 맺고 있는 미국의 대통령을 보면 그렇다. 세계평화를 위한 일이라 공언했지만, 전 세계 곳곳에서는 이라크와의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反戰) 움직임이 거세게 일고 있다. 영화시장을 제패하고 있는 미국의 헐리우드에 사는 영화배우들도 그렇고, 프랑스에서도 연일 반전시위가 일어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인간방패를 자처하면서 까지 이라크 주변국까지 날아갔지만 지금도 전쟁은 목하 진행중이다.물론 전쟁이라는 화살은 이미 시위를 떠났으며 과녘을 향해 힘차게 날아가고 있는 중이니 ‘잘한다 못한다’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짓인지도 모른다.어느 유명 작가의 글을 보면 미국은 뉴프론티어나 뉴딜이니 하는 모험이 수반되는 니오니즘의 욕구를 응집하고 수렴하는 인물을 선호하는 나라라고 하니까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그런데 정은 옛정이요, 구관이 명관인 우리 사회에서 과연 이라크 전쟁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비단 이라크 전쟁 뿐이 아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전쟁의 명분이 아무리 정당하다 할지라도 피해를 보는 것은 정작 국민들이다. 나라가 피폐해지고, 가정이 파탄나고, 가족을 잃고, 마침내 미래마저도 불투명해진다. 전쟁은 그런 것이다.서부의 명화 ‘백주의 결투’를 기억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보안관 게리 쿠퍼가 출옥한 악당 4명을 기다렸다가 백주에 처치하는 간단한 줄거리지만, 영화는 팽팽한 긴장을 늦추지 않으며 관객을 영화에 몰입하게 만든다. 청초한 미모의 신부 그레이스 켈리와 주제가인 ‘하이눈’이 없었다면 관객들은 숨이 막혀 끝까지 보지 못하고 영화관을 뛰쳐 나왔을 지도 모르는 영화이다.‘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결투’가 진행중이다. 어쩌면 결투가 아니라 일방적인 두들겨 패기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관객들은 이를 숨막혀 하지 않는다. 이미 나중에 밝혀질 스토리가 백일하에 다 드러나서 그런건 아닐까? 후광은 액물이다. 역사가 증명한다.

  • 202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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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경규/진주평론 발행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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