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평론 평균의 늪에 빠진 진주
평균의 늪에 빠진 진주 진주가 ‘평균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역사적 관점에서 결코 복제 가능한 도시가 아님에도 ‘획일화’ 혹은 ‘평균화’의 수렁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다. 진주의 강점을 스스로 희석시키고, 자발적 평준화에 동참하면서 대한민국 여러 도시 가운데 ‘One of them(그저 그런 도시 중의 하나)’로 퇴색되고 있는 것이다. 진주가 가진 도시 고유의 가치가 발현되었던 ‘Only one(오직 이곳)’이었던 진주의 위상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도시의 평균화와 획일화가 진행되면 도시의 역사성과 정체성은 흐려진다. 타 도시에서 ‘검증된 모델’과 ‘성공사례’가 무차별 도입되면 도시는 개성을 잃게 된다. 궁극에는 시민들도 ‘나도 그냥 그 중의 하나’라는 공동체의 붕괴로 이어지게 된다. 지역사회 일각에서 ‘지금 진주는 어떤 도시로 기억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유이다. 도시의 경쟁력은 독창성과 차별화에서 나온다. 근데 진주는 ‘차별화가 아닌 평준화’, ‘변화가 아닌 안전한 모방’을 선호한다. 타 지자체의 우수사례와 선도도시 모델 등에 주목한다. 다른 도시에서 효과를 거둔 사업이면 ‘실패할 확률이 적다’라는 안전한 선택논리가 작동한다. 더불어 이러한 시도의 이면에 진주의 차별성과 창의성을 갉아먹을 수도 있다는 비판적 인식은 배제된다. 이미 정해져 있는 쉬운 길을 쫓아가는 ‘One of them 도시’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타 지역에서 소비된 모델을 뒤늦게 가져다 추진하는 사업도 적지 않다. 전국에 복제되다시피한 ‘청년몰 모델과 재래시장활성화사업’, 핫플레이스 흉내 프로젝트처럼 변해버린 ‘특화 공간 조성’, 예산 투입과 사업실적이 목표가 된 ‘공공 건축’ 등의 사례처럼 하나같이 공간의 상품화에만 올인하고 있다. 통합전략 없이 개별 사업이 서로 고립된 채 진행되면서 결국 행사성 사업의 반복으로 귀결된다. 도시의 정체성을 ‘찾는 일’에는 소홀한 ‘명분한 화려한 공공사업’만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진주가 ‘Only one 도시’에서 ‘One of them 도시’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은 오래되었다. 행정이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선택의 반복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검증된 모델만 선택한다. 외부 설계와 공모전 당선작을 지역의 맥락과 검토 없이 무조건적으로 수용한다. 창의적 실험과 접근은 ‘안전하지 않다’는 이유로 회피한다. 시민 의견의 수렴과정은 형식적이며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다. 이런 행정 정책의 반복 속에서 결과물은 비슷해지고 도시의 색깔은 날로 희미해진다. 과정속에서 진주만의 독창성이 상실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진주의 정책 설계의 중심에 도시의 고유성·시민성·역사성이 부여되어 있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이러한 고민에 앞서 더 중요한 것은 ‘시민이 던지는 질문’이다. ‘이 사업이 진주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가?’ ‘이 거리는 진주 시민의 일상을 담아내고 있는가?’ ‘이 공간은 진주의 역사와 정체성을 잇고 있는가?’ ‘이 정책의 주인이 시민인가, 행정인가?’ 만약 이 질문에 명확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정책이라면 지금이라도 과감히 중단되어야 한다. 진주가 ‘그저 그런 도시’의 반열에 머물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일회성 오류의 반복이 아니라 구조화된 행정 관행에 있다는 지역사회의 지적은 뼈아프다. ‘뭐라도 하나 더 만드는 도시’가 아니라 ‘하나라도 제대로 만드는 도시’로의 전환점을 맞이해야 한다. 과거 진주는 역사·문화·예술·경제 등 많은 분야에 있어서 적어도 ‘Only one’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도시였다. 지금도 과연 그런가? 진주가 평균의 늪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지금의 진주가 옳은 길을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 그것이 ‘Only one’ 도시 진주를 다시 만드는 첫걸음이다.
- 2025-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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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황경규/진주향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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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Story 조선미인보감(朝鮮美人寶鑑)에 실린 진주 예기(晋州 藝妓) : 5. 정진홍(鄭眞紅)
정진홍(鄭眞紅) 22세이다. 원적(原籍)은 경상남도(慶尙南道) 진주군(晋州郡) 진주면(晋州面) 대안(大安) 2동이다. 현적(現籍)은 경성부(京城府) 삼각정(三角町) 九이다. 예기(藝妓)이다. 양금(楊琴), 가야금(伽倻琴), 각종 정재무(呈才舞)에 뛰어났다. 특상(特上)으로 가(謌), 우계면(羽界面), 가사(歌詞), 시조(時調) 승무(僧舞)로 명성을 얻었다.
- 2025-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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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글/황경규 사진/신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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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평론 거짓을 권하는 사회
거짓을 권하는 사회 ‘거짓을 권하는 사회’는 거짓을 토해내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고, 진실을 말하면 오히려 손해가 되는 사회구조를 말한다. 더 나아가 거짓이 생존전략이 되고, 거짓이 유리한 방향으로 작동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개념이다. 더 큰 문제는 거짓임을 알고도 다양한 이해관계에 의해 침묵과 외면 혹은 터부시가 당연시된다는 점이다. 이것이 ‘거짓을 권하는 사회의 진짜 얼굴’이다. 거짓을 권하는 사회는 지역사회 구성원들을 ‘끼리끼리 뜯어먹기 판’의 공범으로 내몬다. ‘이익 공동체’의 안위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거짓’이 곧 ‘공동체의 이익’이라는 잘못된 사고를 주입한다. 지역사회에 부조리가 횡행해도 구성원의 이익을 해쳐서는 안된다는 판단하에 침묵하거나 진실의 편에 서기를 꺼리게 만든다. 종국에는 스스로 ‘거짓말’의 문을 열게 만든다. 거짓을 권하는 사회의 커다란 폐해이다. 전문가들은 민선 시대에 들어서면서 ‘거짓을 권하는 사회’가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시민의 신뢰 위에서 작동해야 하는 행정의 과도한 권력 남용이 개인·사회·단체에 ‘거부하기 어려운 거짓말’을 요구하고 있다는 강한 비판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인 사례들을 적시하지 않아도 행정 압력의 사례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지역사회에서 ‘굳이 행정과 싸워 봐야 좋을 것 없다.’는 의식의 팽배가 그 뚜렷한 증거이다. 민선시대 행정의 언로(言路) 장악 역시 ‘거짓이 만연한 사회’를 만들고 있다는 지적은 뼈아프다. 행정에 대한 비판 역시 ‘행정 조직에 대한 정면 도전 혹은 정치적 불이익’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언로를 막는 최상의 무기인 각종 보조금으로 상황을 반전시키려 시도한다. 물론 그러한 행위는 비공개적으로 행해진다. 암묵적이며, 때로는 회유도 동반한다. 더 큰 문제는 아무런 죄의식없이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원을 받으면 비판해서는 안된다.’는 식이다. 과연 그런가? 행정에 대한 비판은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 공공성과 책임성, 시민참여 등과 연결되는 매우 중요한 담론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왜곡하고 변질시키려고 시도한다. 예산과 인맥을 통해 비판의 주체를 압박하는 것은 물론 주변인들의 이해관계를 역이용해 압박의 강도를 높인다. 결국 보조금을 지원받는 단체는 울며 겨자먹기로 행정의 압력을 수용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내부 분열 혹은 부분 와해로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행정에 대한 비판은 점차 금기시된다. 이것이 이른바 민선시대 행정 권력의 민낯이다. 지역사회가 거짓을 권하는 사회로 이행되는 원인은 ‘행정 권력은 끊임없이 비판과 견제를 받아야 한다’는 비판적 사고의 멸실에서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지역사회는 부당한 행정 권력에 대해 제대로 된 비판과 견제를 하고 있는지 자문자답해야 한다. ‘행정 권력을 비판하는 일련의 행위는 무차별 보복을 받는다.’는 피해망상적인 사고방식 또한 바뀌어야 한다. 단언컨대, ‘행정은 성역이 아니다.’ 물론 행정 내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거짓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다. 거짓이 유리하게 작동되는 잘못된 행정 시스템의 결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그렇다고 ‘거짓을 권하는 행정 시스템’을 행정 스스로 개선하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진실을 위험하게 여기는 행정’임을 스스로 자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더불어 지역사회를 ‘거짓말을 권하는 공간’으로 더욱 퇴보시켜 나갈 것이다. ‘거짓을 권하는 사회’가 지속되면 ‘거짓이 난무하는 사회’로 변질되고 ‘권력과 이익이 진실을 억압하는 사회’로 퇴보된다. 예방책은 간단하다. ‘거짓을 말해야 살아남는 행정’이 아니라 ‘진실을 말해도 안전한 행정’을 만드는 것이다. 거짓을 권하는 사회에서 행복한 시민은 존재할 수 없다.
- 202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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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규/진주향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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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of 진주 (STORY OF 진주2) 9. 남강을 가로지는 다리는 몇개 일까?
지역과 지역, 사람과 사람을 잇다배다리에서 김시민대교까지 더글러스 맥아더장군은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을 보면서 ‘이 나라가 재건하는데 10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서울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는 한강(漢江)을 중심으로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보란 듯이 성공적으로 일궈냈다. ‘한강’은 역사, 문화, 자연의 보고이며, 한강의 다리들은 대한민국의 발전과 성장을 상징하는 중요한 건축물로 자리하고 있다.한강의 다리(橋)는 몇 개일까? 서울시의 한강 교량 정보에 의하면 반포대교와 잠수교를 같은 다리로 볼 때,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총 32개이다. 한강 최초의 다리는 동작구와 용산구를 잇는 ‘한강철교(1900년)’이다. 가장 먼저 지어진 인도교(人道橋)는 제1한강교라 불리는 ‘한강대교(1917년)’, 제2한강교는 영등포구와 마포구를 잇는 ‘양화대교(1965년)’, 제3한강교는 강남구와 용산구를 잇는 ‘한남대교(1969년)’이다. 한강의 기적은 바로 한강을 지나는 다리의 건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진주에서 일상생활을 하면서 남강을 건너는 다리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는 기회는 드물다. 도시를 구성하는 한 요소임에는 분명하지만, 특별한 것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남강을 지나는 각각의 다리는 저마다의 역사를 간직하면서 사람과 사람, 지역과 지역을 잇는 가교역을 자임하면서 ‘진주 발전과 성장의 견인차이자, 상징물’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진주 남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몇 개일까? 진주시의 「남강 수계 교량 현황」에 따르면 총 15개의 다리가 있다. 수계(水系)는 ‘지표의 물이 점점 모여서 한 물줄기를 이루며 흐르는 하천의 본류나 지류의 계통’을 말한다. 남강 수계에 있는 다리를 순서대로 총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남강 최초의 다리이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배다리(1914. 5. 16)’를 제외하고 대관교(대평면~산청군), 대평교(대평리~사평리), 진수대교(내동면~대평면), 오목교(판문동), 진주대교(평거동), 희망교(평거동~내동면), 천수교(신안동~망경동), 진주교(칠암동~본성동), 진양교(칠암동~상대동), 김시민대교(충무공동), 상평교(상평동~호탄동), 남강교(상평동~문산읍), 금산교(초전동~금산면), 월강교(대곡면~진성면), 장박교(지수면~의령군) 등 15개이다. 배다리 남강 최초의 다리, 배다리 조선시대 군사 요충지였던 진주는 목교(木橋)와 뱃나루(나루터)가 주요 통행수단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남강에 가설된 다리로는 십목교(十木橋)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진양지(晋陽誌)』에는 별원교(別院橋, 주의 안 봉명루 앞에 있다), 대사교(大寺橋, 진주성 북문 밖에 있다), 광탄교(廣灘橋, 청천의 상류에 있다. 겨울만 통행), 황류탄교(黃柳灘橋, 운당의 하류에 있으며 겨울만 통행) 등 29개가 있었다. 남강을 가로지르는 최초의 다리인 배다리(船橋)가 가설되었다. 일제강점기, 사천항을 통해 집결된 물자의 원활한 이동을 위해 남강을 건너는 다리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1914년 5월 16일 우마차와 승용차의 통행이 가능한 배다리가 완공되었다. 배다리의 길이는 120m, 폭 3.6m였다.배다리는 일제가 진주를 비롯한 서부경남 일대의 풍부한 물자를 약탈하기 위한 루트의 필요성에 기인했지만, 진주라는 공간의 일대 혁신을 초래한 계기가 되었다. 사천 등 서부 경남의 물자가 진주 도심으로 유입되면서 진주 도심이 변화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진주의 시내 풍경은 확연하게 변했다. 도심의 확장도 가져왔다. 배다리 가설로 인해 진주의 도심이 남강의 남쪽으로 확대됐다. 배 건너 먼당으로 불렸던 천전지역을 중심으로 한 ‘강남지역 개발’이 시작된 것이다. 강남지역의 도시화를 급속도로 진행시킨 동력은 진주~마산간 철도인 경남선(慶南線)의 개통(1925년)과 진주역의 영업개시(1925년), 남강철교(1927년)의 완공이다. 배다리는 을축년 대홍수로 인해 유실된다. 이에 일제는 배다리를 대체하는 교량 건설의 필요성에 따라 1927년 남강 철교를 가설한다. 남강 철교는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로 당시 서울의 한강교에 버금가는 안전한 교량이었다. 남강 철교의 가설로 인해 진주의 천전리를 중심으로 한 강남지역에는 공장과 기업이 생겨나면서 철도 물류 중심의 번화한 상업지역으로 번성했다. 진주지역에 가설된 다리로 인해 남강을 건너는 대표적인 운송수단이었던 대표적인 나루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루터는 지역과 지역을 잇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 운송수단이었다. 하지만 남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생기면서 교통수단으로서의 기능을 잃고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진양호 전망대남강댐의 산물, 대관교 남강 수계 최초의 다리는 대관교이다. 산청군 단성면 소남리 관정과 대평면 대평리를 잇던 나루터 자리가 대관교이다. 대관교는 하류에 있는 남강댐보강공사 완료 시점인 1999년 1월 7일 착공해 2000년 7월 2일 준공됐다. 연장 560m, 폭 9.2m, 높이 10.5m, 경간 10개이다. 시행청은 경남도 남강댐지원사업소이다. 대관교를 통과한 남강의 물길은 다목적 인공호수인 진양호(晋陽湖)에 이른다. 진양호는 경호강과 덕천강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남강 다목적 댐의 산물인 진양호는 대평면민들의 삶의 터전을 앗아갔지만 소남리와 연결되어 삶의 공간이 더욱 확장되었다. 최근 산청군이 ‘경호강 100리길 자전거도로’와 진주시 대평면 진주청동기문화박물관~산청군 단성면 대관교 구간을 연결해 친환경 자전거 문화확산을 꾀하고 있다. 상촌나루터수몰 지역과 진주를 잇다, 대평교(大坪橋) 대평교는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와 대평면 상촌리를 연결하는 다리이다. 남강 다목적댐 보강공사가 완료되면서 대평면 대평리를 중심으로 남강댐 수몰 지역 주민의 이주단지가 대평면에 만들어졌다. 이에 진주 시내와의 원활한 교통로를 확보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2001년 대평면 대평리와 상촌리를 연결하기 위해 건설된 다리가 바로 대평교이다. 1999년 6월 27일 착공해 2001년 8월 30일 준공되었다. 연장 376m, 폭 9.2m, 높이 10.5m, 경간 8개이다. 시행청은 경남도남강댐지원사업소이다.대평교의 건설로 대평면과 산청군 지역 간의 교류가 원활하게 되었고, 이 일대의 농업에도 큰 변화를 초래했다. 특히 진주에서 출발해 내동면~수곡면~대평면~명석면으로 이어지는 진주 남강 마라톤 코스는 아름다운 진양호반을 일주하는 코스로 전국적으로 유명하다.대평교가 있는 지점은 옛날 상촌 나루터가 있던 곳이다. 상촌 나루터는 남강에 나룻배가 최초로 등장한 이후 지금까지 남강 변에 생겼다가 사라진 수많은 나루 중에 가장 마지막까지 존속했던 나루터이다. 대평교가 건설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진양호를 가로지르다, 진수대교(晋水大橋) 진수대교는 진양호를 가로질러 진주시 대평면과 내동면을 잇는 다리이다. 지리산에서 흘러 온 덕천강의 물길이 닿는 곳이 진주대교이다. 남강댐 건설로 인해 형성된 진양호는 내동면 내평리 상촌마을과 수곡면 내촌리 내촌마을을 연결하는 도로를 집어삼켰다. 진주에서 수곡으로 가는 유일한 길은 사천시 완사면을 둘러가는 방법과 명석면과 대평면을 지나 우회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이에 진주시가 진양호를 가로지르는 진수대교와 부속도로를 개통했다. 진수대교는 1997년 11월 4일 착공해 2000년 10월 28일 준공되었다. 연장 830m, 폭 10.4m, 높이 10.4m, 경간 17개이다. 시행청은 수자원공사 남강댐관리단이다. 진수대교의 건설은 하동군 지역과의 연결은 물론 수곡면을 비롯한 인근 지역 농업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수곡면은 대부분 농가에서 겨울철 비닐하우스를 이용해 딸기 농사를 지어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남강댐 발전소 아래 첫 다리, 오목교 진주시 판문동 남강댐 발전소 바로 아래에 작은 다리가 하나 있다. 남강댐 발전소에 아래에서 시작된 남강 물길 위에 만들어진 첫 다리이다. 옛날 땅 이름이 ‘오목내’라고 불렀다. 오목교라는 이름을 갖게 된 유래이다. 오목교는 남강댐 아래 오목내~내동면을 연결하는 다리로 1989년 11월 30일 착공해 1998년 12월 15일 준공되었다. 연장 100m, 폭 11m, 높이 11m, 경간 4개이다. 시행청은 수자원공사 남강댐관리단이다. 오목교는 진주에서 하동으로 이동하는 여행자들과 통근자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 진주 시내에서 오목교를 지나면 한국수자원 공사가 운영하는 물박물관과 노을공원을 비롯한 휴양공간과 평생학습관 등 교육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남강 가로지르는 가장 긴 다리, 진주대교(晋州大橋) 진주대교는 진주시 평거동과 내동면을 연결하는 다리이다. 남강을 가로지르는 15개의 다리 중 가장 긴 다리이다. 대전~통영간 고속국도 개통(2000년 12월)을 앞두고 건설되었다. 고속국도에서 진주 진·출입이 가능한 서진주 IC와 남해안고속국도와 연결되는 정촌 IC가 가까이 있다. 진주대교는 1992년 12월 28일 착공해 1996년 12월 21일 준공되었다. 연장 1,160m, 폭 24.2m, 높이 17m, 경간 24개이다. 시행청은 한국도로공사 산청지사이다. 진주 남부권 개발 기폭제, 희망교(希望橋) 희망교는 진주시 신안·평거지역과 내동면을 연결하는 다리이다. 희망교의 개통은 상대적 낙후지역이었던 내동면과 정촌면 등 남부권의 발전은 물론 신안·평거지역 교통난 해소에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진주~사천은 물론 하동 간 국도와 곧바로 연결돼 사통팔달의 교통 요충지로 진주의 새로운 관문역할을 하고 있다.희망교는 1997년 4월 27일 착공해 2011년 7월 30일 준공되었다. 연장 270×2m, 폭 10.95m, 높이 10~11.2m, 경간 5개이다. 시행청은 진주시이다.희망교 건설로 평거~내동~가좌동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주거 벨트라인의 형성과 도로변을 중심으로 한 근린시설 및 상업시설이 들어서 남부권의 미개발지역 발전에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천년 진주역사를 남강에 새기다, 천수교(天壽橋) 천수교는 진주시 신안·평거 택지개발지구와 망경동 지역을 연결하기 위해 건설된 다리이다. 천수교는 사단법인 진주천년기념사업회(회장 하순봉)가 천년 진주의 역사를 기리는 기념비적인 사업을 추진하자는 과정에서 건설되었다. 당시 진주천년기업사업회의 목적은 ‘진주 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기념하고 지난 천 년을 더듬어 참다운 우리의 정신과 긍지를 되살려 이를 도약의 바탕으로 빛나는 새 역사를 창조하여 영원토록 계승한다.’였다.신안동과 평거동을 중심으로 한 대형 택지 개발로 인해 상대적 낙후 지역으로 떠오른 망경동 지역 개발을 위한 것이 천수교 가설이었다. 천수교 망경동 지역은 하동 방면 국도와 진주역 진출을 용이하게 하고, 석류로를 통해 남해안 고속국도 진주 IC와의 접근성을 개선하는 효과를 가져왔다.천수교는 1992년 7월 14일에 착공해 1996년 11월 17일 준공되었다. 연장 284m, 폭 24m, 높이 11m, 경간 6개이다. 시행청은 진주시이다. 경남 도내 최초의 철교, 진주교(晋州橋) 진주교는 철골 콘크리트 구조물로 가설된 다리로는 경남 도내 최초이다. 진주교는 진주시의 중앙부와 칠암동, 강남동, 망경동 등 진주의 관문인 남부지역을 연결하는 주 통로이다. 더불어 ‘중앙동~칠암동’을 연결하는 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가장 교통량이 많은 다리이다. 진주교는 일제강점기인 1927년에 건설된 이래 1980년 11월 옛 진주교보다 조금 아래쪽에 건설되었다. 1980년 11월 18일에 착공해 1983년 6월 17일 준공되었다. 연장 272.75m, 폭 25m, 높이 11m, 경간 9개이다. 시행청은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이다.진주교에는 논개를 기리는 뜻에서 교각 아래 부분에 거대한 황동 반지를 부착해 충절의 고장 진주를 상징하는 다리가 되고 있다. 진양교 야경 남강 가로지른 두 번째 다리, 진양교(晋陽橋) 도심 확대 등 진주 발전의 기틀이 마련되면서 칠암동과 도동 지역을 연결하는 다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진양교 건설 이후, 도동 지역의 개발이 본격화된 것은 물론 진주시의 발전 방향이 동부지역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진양교는 남강을 가로지르는 두 번째 다리이다. 1968년 9월 15일에 착공해 1969년 9월 14일 준공되었다. 이후 2004년 10월 21일에는 확장사업이 추진되었다. 연장 260m, 폭 18.9m, 높이 11.4m, 경간 13개이다. 시행청은 진주시이다. 상평교진주의 동쪽 관문, 상평교(上平橋) 상평교는 진주시의 동쪽 관문(關門)으로 상평동과 호탄동을 연결하는 다리이다. 진주상평공업단지 조성과 남해고속국도 진주 IC 건설로 도동지역으로의 접근성 확대를 위한 필요성에 따라 가설되었다. 상평동에 위치하여 상평동과 호탄동을 연결하고 있어 다리 이름을 상평교라 했다.상평교는 1987년 12월 29일에 착공해 1990년 12월 15일 준공되었다. 연장 320m, 폭 25m, 높이 10m, 경간 8개이다. 시행청은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이다.상평교는 진주상평산업잔지의 물류 이동과 남해고속국도, 도동지역을 연결하기 위해 가설되었다. 현재 상평산업단지 입주업체, 진주시청 등의 기관들이 위치하고 있으며 호탄동 택지개발로 인해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진주 광역교통체계 변화 주역, 남강교(南江橋) 남강교는 진주시 상대2동과 문산읍 소문리를 연결하는 다리이다. 남해고속국도 문산 IC 개통 시기에 맞춰 동진로와 문산IC를 직선으로 연결할 목적으로 가설되었다. 남강교는 1996년 6월 13일에 착공해 2001년 12월 31일 준공되었다. 연장 420m, 폭 30m, 높이 13.8m, 경간 8개이다. 시행청은 진주시이다.남강교 건설로 인해 고속국도 진입로가 상평교, 새벼리 방면에 이어 세 곳으로 확대되어 진주시 광역교통체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경남 진주혁신도시와 진주시내를 연결하는 핵심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금산교동부지역 균형발전의 핵심, 금산교(錦山橋) 진주시 초전동과 금산면을 연결하는 다리이다. 금산면의 대단위 택지개발로 교통난 해소와 진주 동부지역의 균형발전을 위해 가설되었다. 특히 금산면의 경우 신도시형 대단위 주거단지가 들어서고 공군교육사령부, 혁신도시 정착 등으로 새로운 인구의 유입이 가속화되는 지역이다. 금산교는 1993년 10월 25일에 착공해 1998년 3월 17일 준공되었다. 연장 400m, 폭 16m, 높이 8.5m, 경간 8개이다. 시행청은 진주시이다.진주의 동쪽에서 진주시내로 진입하는 관문인 금산교는 1936년 병자년 대홍수 이전까지 잠수교(潛水橋)였다. 금산면과 진주시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이다. 금산면(琴山面)에는 황류진(黃柳津)과 구암 나루터가 있었다. 황류진은 금산면 송백리 안담 남쪽에 소재했으며, 마을사람들이 진주로 가던 유일한 뱃길이자, 진주 사람들이 마산과 대구로 가는 나루터였다. 구암 나루터는 잠수교가 있던 자리에 있었다. 김시민대교진주혁신도시의 상징, 김시민대교(金時敏大橋) 경남 진주 혁신도시 서쪽에서 진주 시가지를 잇는 다리이다. 김시민대교는 혁신도시와 진주시의 동반성장을 위해 만들어졌다. 국내 최대 비대칭 사장교인 김시민대교는 주탑 상부에 논개의 정절을 상징하는 쌍가락지와 혁신도시의 진취적인 기상을 표현한 문양을 새겨넣었다. 경남 혁신 도시로의 원활한 진출입을 위해 진주시 상평동과 혁신도시 서쪽인 문산읍 소문리를 잇고 있다. 김시민대교는 2009년 12월 21일 착공해 2013년 7월 9일 준공되었다. 길이는 488.5m, 주탑의 높이는 120m이다.진주혁신도시의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는 김시민대교는 웅장하고 당당한 진주성을 이미지화했다. 달빛 어린 남강을 품다, 월강교(月江橋) 월강교는 대곡면 덕곡리와 진성면 가진리를 잇는 다리이다. 진성면 북쪽에 있는 가진리와 대곡면 가정리를 잇는 가좌진(伽佐津)이 있었다. 월강교(月江橋)가 생기면서 사라졌다. 월강교는 1989년 9월 25일 착공해 1993년 11월 23일 준공되었다. 연장 390m, 폭 10.5m, 높이 10m, 경간 13개이다. 시행청은 경상남도이다.월강교는 ‘달빛이 달에 어린 다리’라는 아름다운 뜻을 품고 있다. 대곡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난 1007번 국도를 따라가면 월강교에 닿는다. 진주·의령의 경계에 서다, 장박교 장박교는 진주시 지수면 청담리와 의령군 화정면을 잇는 다리이다. 장박마을은 앞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옆에는 방어산이 자리하고 있다. 안계나루는 지수면 청담리 안계마을과 의령군 화정면 화양리를 잇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장박교는 연장 380m, 폭 10.5m, 높이 16.5m, 경간 8개이다. 시행청은 경상남도이다.장박교는 진주시와 의령의 경계이다. 진주와 의령을 연결했던 의령 염창마을의 염창나루터는 1972년 남해안고속도로 개설 당시에는 교통수단으로 이용되었지만 장박교가 놓이면서 사라졌다.
- 2025-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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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황경규/진주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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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브리핑 (주간브리핑) 6. 니 돈이모 그리 쓰것나(feat. 국도2호선)
니 돈이모 그리 쓰것나(feat.국도 2호선) “니 돈이모 그리 쓰것나.” 이창희 전 진주시장이 자주 쓰곤 했던 말이다. 행정이 추진하는 사업예산은 효율성의 원칙을 중요한 판단의 근거로 삼고, 낭비없이 효과적으로 집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실 맞는 말이다. 누구든 간에 ‘내 돈이다’라는 생각을 하면 한 푼에 손이 달달 떨리는게 정상 아닌가. 이창희 전 시장 당시에는 ‘예산 낭비’ 요인이 확연한 사업들은 아예 말도 꺼내지 못했다는 후일담도 있다. ‘니 돈이모 그리 쓰것나’라는 말은 시민 세금을 집행하는 행정이 반드시 금과옥조로 여겨야 할만하다. 요즘 지역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신진주 역세권~국도2호선간 연결도로 개설공사’를 보면 이 말이 절로 나온다. 언론에서는 ‘사업 실효성 논란, 공사비 늘어나고 사업 목적성 의문(2024년)’에 이어 ‘종점 조정으로 교통 수요 예측 감소, 실효성 의문 제기(2025년)’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전체 사업비 대략 450억원 대부분이 ‘시비’라는 점이다. 게다가 교통량 분산이나 교통체증 해결에 기여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여기서 언론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진주시가 이토록 공사를 강행하려는 의도는 무엇인가?’ 진주시의회도 ‘전면 재검토’ 등의 문제 제기를 하고 나섰지만, 진주시는 ‘도로개설이 필요하다’는 당초의 입장에서 물러나지 않고 있다. 낭비요인이 있어도 꼭 해야만 한다는 일종의 고집이라고 판단할 수 밖에 없다. 과연 그런가? 낭비 요인이 있더라도 반드시 꼭 해야 될 사업인가는 시민들이 더 잘 알고 있다. 이 사업으로는 당초의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쯤에서 ‘신진주 역세권~국도2호선간 연결도로 개설공사’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먼저 당초 진주시가 밝힌 이 사업의 예측 통행량은 8,900여대였다. 근데 경남도 감사 및 관련 기관 조사에서는 약 2,700여대로 낮아졌다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예측 수요가 무려 70%나 줄어든 것이다. 이런 상황이면 사업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근데 진주시는 통행량이 줄어들지만 사천방향 교통량 분산을 위해 사업을 강행하겠다는 막무가내식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교통량이 감소한 원인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바로 종점 변경이 그 이유이다. 당초 연결지점인 국도 2호선 방아육교에서 정촌 매동마을로 종점이 조정된 것이다. ‘제5차 국도·국지도 5개년 도로건설계획’에서 제외된 것이 그 원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상적이라면 사업중단 혹은 연기를 놓고 고민을 해야 마땅하다. 시민 혈세가 들어가는 일이기에 그렇다. 그런데 진주시는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다. 현재 타당성 재평가 예산도 통과되지 않은 시점에서 종점 변경 노선 인근의 토지보상이 50% 이상 진행됐다. 종점 변경 이전의 노선인 신진주 역세권~국도2호선까지 맞물리는 지점까지의 토지보상도 90% 이상으로 상당한 진척을 보였다. 이미 엄청난 진주시민의 세금이 쓰여진 것이다. 진주시는 이렇게 강변한다. “정촌산단 출퇴근 시 교통분산 효과가 어느 도로보다 크다.” 믿는 사람은 없는데 진주시만 그렇게 믿고 있다. 풀어보면 ‘이미 엄청난 예산이 투입된 상황에서 정촌산단까지의 출·퇴근 교통량 분산을 위해 혈세 450억원을 사용하겠다’는 의지의 천명인 것이다. ‘한 번 시작한 일 끝장을 보겠다’ 혹은 ‘여기서 중단하면 진주시가 모든 책임을 뒤집어 써야 한다’ 등의 생각이 읽힌다. 이보다 더한 혹세무민이 있을 수 없다. 다시 해석하자면 ‘교통량 분산이나 교통체증 해결에 기여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내 돈 아니니까, 하던 대로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사실은 종점 변경 이후, ‘신진주 역세권~국도2호선 연결도로 개설공사’라는 명칭도 맞지 않다. 역세권에서 시작되는 도로가 실제로는 국도 2호선과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진주 역세권~국도2호선 연결도로 개설공사’라는 사업명칭도 변경 또는 폐기되어야 한다. 한마디로 실패한 정책이다. 근데 진주시는 인정하지 않고 항변한다. “정촌산업단지까지 출퇴근에 대한 교통량 분산 효과는 어느 도로보다 크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진주시의 입장과 달리 전문가들은 모두 입을 모아 말한다. “현재 진주~사천간 교통체증의 주요 구간은 국도3호선 사천 IC~사천공단까지의 구간이다. 지금 진주시가 추진하고 있는 구간으로는 절대로 교통체증을 해결할 수 없다.” 정작 진주시만 모르고 있다. 과연 진짜로 모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알면서 모르는 척’하고 있는 것일까. 진주시가 뒤늦게 ‘타당성 재평가 예산 1억원’을 시의회에 제출했다. 진주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찬반이 갈렸지만 결국 찬성 4명, 반대 3명으로 예결특위를 통과했다. 이제 남은 건 타당성 재평가 결과이다. 타당성 재평가 결과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진주시의 의지가 이처럼 강경하다면 ‘경남도 감사 결과, 종점 변경 이후에 교통 수요가 8,900여대에서 2,700여대로 70% 줄었다’는 결과를 뛰어넘는 대안이 나와야 한다. 타당성 재평가 결과도 주목된다. 만약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온다면 ‘실효성 없는 사업 추진과 예산낭비’라는 기존의 비난에 직면할 것이고, 사업 중단이라는 결과가 나온다면 ‘행정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예산낭비’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론은 같다. ‘예산 낭비’로 귀결된다. 그래서 지역사회 일각에서는 이렇게 입을 모아 말한다. ‘진짜 니 돈이모 그렇게 쓰것나’
- 2025-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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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황경규/진주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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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of 진주 (STORY OF 진주2) 8. 진주에는 김중업과 김수근이 있다
진주에는 김중업과 김수근이 있다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과 국립진주박물관 대한민국 1세대 건축가이자,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거목(巨木)인 김중업(金重業, 1922~1988)과 김수근(金壽根, 1931~1986)의 건축작품이 함께 있는 도시가 진주(晋州)라는 사실을 아는 이가 드물다. 한국 건축계의 신화로 추앙받는 김수근과 사회변화와 미래 전망을 현실 건축에 반영한 실천적 존재로 평가받는 김중업은 한국 모더니즘 건축을 이끈 쌍두마차이다. 대한민국에서 건축의 꿈을 가진 건축학도들이 해마다 진주를 찾고 있다. 바로 김중업의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慶尙南道文化藝術會館)과 김수근의 국립진주박물관(國立晋州博物館)을 보기 위해서이다. 국립진주박물관이 이 지역 특산 석재를 소재로 하여 땅속으로 파고드는 ‘고분’ 같은 형태가 인상적이라면,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은 마치 ‘전통 매듭’ 같은 장식적 기둥이 날아오를 듯한 형태가 인상적이다. 하나가 산(山)속으로 들어가는 형국이라면, 다른 하나는 강(江)에 사뿐히 발을 담그고 있는 형국이다. 김진애 작가가 『우리 도시 예찬』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의 도시인 진주의 매력을 표현한 글이다. 그리고 진주의 한 문화인에게서 들은 인상적인 말을 소개했다. ‘진주에는 김중업과 김수근이 있다.’ 이 표현은 진주시민들이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과 국립진주박물관이 대한민국 건축사에서 가지는 위상과 도시의 품격을 표방하는 건축물로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김수근의 국립진주박물관 김수근 작가는 한국 현대 문화 예술사를 새로 쓴 건축가이자, 타임지가 ‘한국의 로렌초 메디치’로 비유한 대한민국 현대 건축 1세대로 한국 건축사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대학원 재학중이던 1960년 우리나라 국회의사당 건축현상설계에 1등으로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워커힐 힐탑 바(1961년) 정동빌딩(1965년) 등을 설계하면서 건축가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이후 부여박물관(1967년), 청주박물관(1979년) 설계를 통해 현대에 살아 있는 전통을 부활시키려고 노력했으며, 마산성당(1978년), 불광동성당(1985년) 건축으로 종교건축의 독특한 양식을 보여주었다. 서울올림픽 주 경기장과 체조·수영·사이클 경기장(1986년)도 김수근의 작품이다. 김수근이 국립진주박물관을 설계한 것은 1979년이다. 국립진주박물관에 대한 건축학적 평가는 다양하다. ‘한국 전통 목조탑을 석조 건물로 형상화했으며 중첩된 지붕형태가 특징이다.’ ‘왜색 느낌이 강하다’ 등의 상반된 평가도 있다. 국립진주박물관 설계 과정을 들여다 보면 건축가의 고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김수근 작가가 국립진주박물관 설계를 하는 과정에서 가장 고민한 부분은 ‘전통적인 건축물과 늦은 구릉지대로 이루어진 진주성 안에 현대 건축을 어떻게 접목하는가’였다. 김수근 작가의 초기 설계 스케치에는 박물관 기능을 지하에 두려는 계획도 있었다. 하지만 박물관이 가지는 고유 기능 상실과 주변 여건으로 인해 진주성과 조화를 이루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마침내 다양한 형태의 지붕이 합쳐져 전통 마을의 이미지를 재현한 오늘날의 국립진주박물관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국립진주박물관은 1984년 개관했다. 김중업의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 김중업 작가는 한국 모더니즘 건축을 이끌었다. 대표작인 ‘주한프랑스대사관’은 콘크리트 지붕 처마선을 직선과 곡선으로 처리하고 단아한 전체 구성과 공간처리로 한국의 얼과 프랑스다운 우아함이 잘 어우러져 한국 현대건축에 큰 영향을 주었다.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부산 UN묘지 정문(1966년)’, ‘3·1빌딩(1969년)’, ‘KBS 국제방송센터(1988년)’, ‘올림픽공원 상징조형물(1988년)’ 등이 있다. 김중업 작가는 한국 문화 속에서 샤머니즘적인 체험과 내면에 분출된 원초적인 힘 등 보이지 않는 무한한 생명력을 느끼게 하는 주제를 가지고 건축에 대한 정취를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김중업 작가가 설계한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은 ‘역사에 대한 관조와 깊이를 바탕으로 한 건축의 기능성과 낙천적인 낭만주의 경향’이 표현된 최전성기 작품이다. 대한민국 건축계에서도 주한 프랑스대사관, 광주문화방송 등과 함께 대한민국 건축사에서 매우 높은 가치를 지닌 ‘3대 건축물’로 평가받았다.‘전통과 현대, 곡선과 직선으로 표현된 예술’이라는 평가를 받는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에 대해‘팔도건축기행’을 연재한 「대전일보」는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을 설계한 김중업 작가의 설계의도를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김중업 작가의 설계 의도를 살펴보면 그 마음이 전해진다. 임진왜란 때 끝까지 민족 수호의 아성이었고, 논개의 의기(義氣)와 더불어 유서깊은 진주성이 남강의 우아한 자태를 빚어 대지조건이 특이하고 매년 개천예술제가 열리는 오랜 전통이 더욱 보람있는 일이라 믿음직스렀다. 그렇기에 전통과 오늘의 만남이 극적인 효과를 나타내야 하고 모이는 이들에게 뿌듯함을 던져 주려고 애썼다. 김중업 작가는 설계과정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부여했다. ‘진주시민과 경상남도의 상징물’임과 동시에 예술성 측면에서도 유니크한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원통 공연장에 넓고 당당한 지붕을 우아한 기둥으로 받친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은 진주의 문화예술 브랜드이자 문화품격으로 자리하고 있다. 김중업의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은 1984년 설계를 완성하고 1988년 준공되었다. 진주에 있는 김수근의 국립진주박물관과 김중업의 경상남도문화예술의 존재만으로 진주는 ‘건축도시 진주’의 명성을 얻기에 충분하다. 다만 그 명성이 오늘에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짚어볼 일이다. 국립진주박물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김수근의 국립진주박물관은 오는 2027년을 끝으로 ‘박물관 40년의 역사’를 마무리하게 된다. 국립진주박물관이 진주시 강남동에 위치한 옛 진주역사부지에 이전될 예정이다. 국립진주박물관 이전 건립은 2019년 6월 진주시와 국립중앙박물관이 옛 진주역 철도용지로 이전 건립하기 위한 사업추진 업무계약 체결을 시작으로 2023년 7월 국제 설계공모를 거쳐 이건 건립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국립진주박물관 국제 설계공모는 ‘문턱이 낮은 박물관’이라는 슬로건 아래 시작됐다. 공모사업에는 한국을 비롯한 13개국에서 47개 작품이 접수되었다. 국립진주박물관이 갖는 건축계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최종 당선작은 ‘자연이 건축이 되고, 건축이 자연이 되는 개념’을 적용한 설계작이 차지했다.국내 기존 박물관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건축 유형이 제시된 것이다. 내부와 외부공간의 경계 허물기와 목재를 이용한 구조와 공간의 구축 등이 핵심이었다. 김수근의 국립진주박물관의 향후 활용계획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진주를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건축물의 이전 후 관리 및 활용방안은 건축을 대하는 진주의 자세를 엿 볼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국립진주박물관 건립계획이 확정된 것은 1978년 12월 8일이다. 김수근 작가의 설계로 1980년 10월 18일 국립진주박물관은 착공식을 가졌다. 4년간의 공사 끝에 1984년 국립진주박물관이 개관되었다. 개관 초기 국립진주박물관은 가야 유물전문 박물관이었다. 하지만 1998년 국립김해박물관이 개관하면서 가야 유물을 넘기고 국립진주박물관은 진주성을 기반으로 한 임진왜란 전문 박물관으로 재개관하게 된다. 두암관 개관(2001년)과 3D 입체영화 진주대첩 제작과 입체영상관 완공에 이어 2008년에는 상설전시실 전시개편사업 이후 12월 10일 다시 재개관을 하게 된다. 다시 2018년에는 상설전시관 전시개편사업으로 임진왜란실 및 역사문화홀을 마련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오는 2027년 이전될 예정인 국립진주박물관의 비전은 ‘전쟁에서 평화·공존·상생으로’이며 목표는 ‘임진왜란 및 동아시아 문화교류의 거점’ ‘경남 역사·문화의 중심’ ‘스마트박물관의 신모델’로 잡았다. 전략으로는 ‘최상의 콘텐츠 발굴’ ‘스마트박물관 구축’ ‘상생과 협력의 문화공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전시’ ‘국제교류’이다.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 건축사적 가치 훼손 논란 진주가 가진 현대 건축문화유산의 가치와 보존에 대한 인식과 각성없이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의 건축사적 가치와 공간 미학이 훼손되는 일들이 자행되었다. 김중업의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이 가지는 가치의 훼손은 2009년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 리모델링이 시작이었다. 지역사회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 리모델링은 강행되었다. 첫 번째 불행이었다.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의 두 번째 불행은 너무나 쉽게 찾아왔다.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 부지 내에 예술창작공간이라는 이름으로 ‘아트스페이스 남강’이 들어섰다. 문제는 대한민국 최고의 건축가인 김중업의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 부지 내에 고작 공사장 컨테이너를 활용했다는 사실이다. 심각한 부조화를 넘어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이 가지는 건축사적 가치의 근본적 훼손이 분명한데도, 그 사실조차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추진했다는 사실이 더 큰 문제였다.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의 세 번째 불행은 2023년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 부지 내 주차장에 ‘경남도립예술단 창작실’을 건립한 것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건축물인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 부지 내에 컨테이너 창작예술공간인 아트스페이스 남강에 이은 건축 테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진주시민들과 사회적 합의와 공론 절차 역시 무시했다. 꽃 그림이 수놓아진 공사용 컨테이너와 회색빛 콘크리트 건물인 경남도립예술단 창작실 건물에 속수무책으로 곁을 내어 준 이 상황이 한국 현대 건축의 대표격인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의 현주소이자, 암울한 미래이다.‘전통과 현대, 곡선과 직선으로 표현된 예술’이라는 평가를 받는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 공간에 지금은 철거되었지만 공사용 컨테이너와 네모반듯한 아파트 모양의 경남도립예술단 창작실이 건축도시 진주의 명성을 갉아먹고 있다. 대한민국 현대 건축의 거장인 김수근과 김중업을 대표하는 국립진주박물관과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21세기 촉석루, 물빛나루 쉼터 건축은 도시의 품격이다. 현재 진주는 현대와 전통 건축이 공존하는 도시로의 선회가 이루어지고 있다. ‘진주를 진주 답게’라는 슬로건 아래 친환경 목조건축 선도도시라는 새로운 브랜드가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진주의 공공건축물 이야기이다.‘물빛나루 쉼터’는 캐나다 우드디자인 앤 빌딩 어워드(2022년)에서 최우수상인 아너(HONOR)를 수상했다. 한양대학교 김재경 교수가 설계했다. 물빛나루 쉼터는 진주의 상징인 촉석루에 견주어 현대적인 루(樓)로 재해석해 장소와 역사성을 통합한 수작(秀作)으로 평가받고 있다. 촉석루의 지붕 곡선과 기둥 및 다포형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전면이 유리로 마감돼 외부에서도 내부의 조형미를 감상할 수 있으며 통유리로 건축된 건물 내부에서 남강을 바라보는 풍경은 힐링과 여유로운 시간을 즐길 수 있다. ‘물빛나루 쉼터가 21세기 촉석루’가 되어 김중업의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과 김수근의 국립진주박물관을 잇는 대표적인 건축물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럼에도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진주에는 김중업과 김수근이 있다.’
- 2025-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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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황경규/진주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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