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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평론 발행인 칼럼 / 황경규

  • 작성자

    황경규

  • 작성일

    2024.07.06 PM 16:09

  • 조회수

    771

진주평론 창간호(2020년)에 게재된 발행인 칼럼입니다. 창간호 발간 이후 4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홈페이지를 열면서 창간 당시의 다짐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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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평론과 시대정신

 

맹자(孟子)를 평가하는 단어가 있다. 우활(迂闊)이다. 

사전적으로 “사리에 어둡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른다”는 뜻이다. 이 우활하다는 말의 어원은 『사기』 「맹자순경열전」에 나온다. “맹자의 말은 현실과 거리가 멀고, 당시 상황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見以爲迂遠而闊於事情)라고 평하고 있다.

맹자가 살았던 전국시대(戰國時代)는 상앙(商鞅)이나 오기(吳起)와 같은 군사 전략가이자, 현실주의 정치인과 소진(蘇秦)과 장의(張儀)와 같은 정치와 외교에 뛰어났던 인재들을 등용해 부국강병을 꾀하던 시대였다. 이런 시대에 맹자가 거침없이 내뱉은 ‘인의(仁義)에 기반한 왕도정치(王道政治)’와 같은 주장들은 서양의 돈키호테의 말과 행동 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여기서 맹자의 사상을 논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북송(北宋)의 정이천(程伊川)은 “역(易)을 아는 사람 가운데 맹자보다 나은 사람은 없다(知易者, 莫若孟子)”라고 평가했다. 역(易)이란 『주역(周易)』을 의미한다. 주역의 핵심은 시세를 알고 때를 아는 것이다. 정이천의 평가에 따른다면 맹자는 세상 물정 모르는 서생만은 아니었다.

시대의 거울에 비추어 보면 맹자의 이상(理想)은 현실과 동떨어진 허무맹랑한 이상이 아니라, 현실에 기반한 이상이었다. 현실을 몰랐거나 현실을 외면한 것도 아니다. 현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당시의 상황속에서 실현가능한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했던 것이다. 다만 칼을 쥐고 폭정을 일삼던 사람들이 우활하다고 평가했을 뿐이다. 

인의(仁義)에 기반한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설파한 맹자의 바람과는 달리 전국시대의 패권은 진시황(秦始皇)이 거머쥐었다. 천하통일의 기반을 닦은 상앙(商鞅)과 이사(李斯)는 강력한 변법으로 중앙집권과 법치주의의 기초를 닦았고, 마침내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었다. 역사는 이를 ‘패도정치(覇道政治)’라고 평가한다. 

천하가 통일되었다고 해서 백성들의 삶에 평화와 안정이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민중들의 삶은 피폐했다. 여기서 우리는 무모한 이상주의자(理想主義者)보다는 교활한 현실주의자(現實主義者)들이 득세하는 시대가 어떤 결말을 가져 오는지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맹자가 말하는 우활한 왕도정치가 지금 이 시대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명확하게 말하기 어렵다. 다만 뻔뻔한 비굴과 아첨만이 횡행(橫行)하는 이 시대에 왕도정치를 주창한 맹자의 일침(一針)은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과 잘못된 정치로 죽이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하필 왜 이익(利)을 말하십니까. 인(仁)과 의(義)가 있을 뿐입니다.”

시대의 흐름에 굴하지 않고 왕에게 직언했던 맹자의 강직한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아쉬운 시대를 사는 것은 분명하다.

 

     진주평론의 창간정신

 

진주평론(晋州評論)의 창간정신은 ‘시대와 함께 살고 싸우고 성찰하는 진주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올곧은 것은 끝내 살아남아 역사에 박힌다는 시대정신(時代精神)의 실현’이다. 듣기는 좋은데, 현실과 한참은 동떨어져 보인다. 한마디로 맹자처럼 우활하다는 평가를 받기에 딱 좋다. 

오늘날과 같은 다양한 언론환경 속에서 살아남기는커녕, 죽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여길 것이다. 근데 다 알고 시작하는 일이다. 하지만 잔인한 현실을 외면한 이상의 추구가 초래하는 좌절 따위에 쉽게 주저앉지는 않을 것이다. 그럴 것 같았으면 애당초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시대정신의 실현이라는 길은 찾기도 어렵지만 멀고도 험할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일은 역시 만만치 않다. 다행인 것은 기꺼이 그 길에 동참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며, 정작 문제는 무엇을 가슴속에 품고 있는가에 있다. 그것이 시대정신이며, 진주평론이 추구하는 가치이다.

진주평론이 가고자 하는 길도 분명하다. 진주의 천년역사에 뿌리하고 있는 진주정신(晋州精神)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역사속의 진주는 위대(偉大)했다. 진주사람들은 정의(正義)를 위해 분연히 일어섰고, 도덕(道德)을 명분으로 권력과 싸웠다. 역사 앞에서 적어도 인간답게 행동했으며, 이해(利害)가 아니라 시비(是非)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다. 

따라서 생명을 걸진 못하더라도, 진주역사에 기반한 양심이 살아 숨쉬는 글쓰기가 필요한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이 역시 쉽지 않은 길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다만 고개를 주억거리며 주변을 살피거나 눈치를 보지 않고 진주의 역사가 묵묵히 걸어 온 길을 따라 가고 싶을 뿐이다. 

 

토론과 논쟁

 

진주에는 에나 토론(討論)과 논쟁(論爭)이 거의 없다. 일방적이며 주입식 토론과 논쟁만 더러 있을 뿐이다.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유의미(有意味)한 결론을 도출하기 보다는, 미리 답을 정해 놓고 토론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가장 심각한 것은 토론과 논쟁에 따른 결과물의 자의적 해석이다. 그에 따른 여론조작의 폐해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역사가 증명한다. 

진주평론은 지역의 현안을 놓고 대화하고 토론하는 문화를 정착시켜 나갈 것이다.

 전문가들과 이해당사자, 시민들의 의견을 골고루 담아낼 것이다. 매월 최소 1회 이상의 토론회나 대담을 통해 지역의 목소리를 담아낼 것이다. 시의성(時宜性)에 목숨 거는 어리석은 짓도 하지 않을 것이다. 정확한 사실의 기록에 비중을 둘 것이다. 그리고 비록 시일이 걸릴지라도 지역을 위한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도록 노력할 것이며, 최종적으로 진주역사에 정확히 기록하는 책무를 묵묵히 수행할 것이다. 토론과 논쟁은 민주사회 구현의 기본이 된다고 믿는다.

 

보상과 문책

 

보상(補償)과 문책(問責)에도 소홀하다. 지역사회에는 개인의 이익보다 자기희생을 불사하며 공익을 추구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런 사람은 너무 쉽게 잊는다. 더불어 위선과 기만과 변절을 범한 사람의 과거도 너무 쉽게 잊는다. 시간이 지나면 아무 일도 없는 듯 앞소리꾼 행세를 한다 해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래서 공익은 서서히 잊혀지고, 기회주의만 판을 치게 된다. 

이제는 보상과 문책에 철저해야 한다.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져야 할 책임마저 상쇄되는 것은 아니다. 진주를 위해 희생하는 이에게는 보상을, 지역발전을 저해하는 예전의 5도10적과 같은 이에게는 엄중한 문책을 가해야 한다. 그래야만 지역사회 전체가 공익(公益)을 생각하고, 기회주의적 처신을 두렵게 여기게 된다. 보상과 문책은 정의사회 구현의 기본이 된다.  

 

출판의 언론화

 

출판의 언론화는 이미 오래전에 거의 폐기처분 수준에 놓여 있는 의제이다. 이런 상황에서 출판과 언론을 가리지 않고 언론의 자유가 언론기업의 이윤추구로 변질됐다는 세간의 평가를 적시하는 것도 부질없다. 이미 우리는 정론직필(正論直筆)의 가치가 사라진 언론 홍수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대단히 획일적인 거대 언론매체들이 언론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지역의 여론을 조장하고 때로는 급조하기도 한다. 감시와 비판의 영역은 이윤추구로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의 몫이 된다. 이 시점에서 언론의 가치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른바 인스턴트 저널리즘의 홍수 속에서 저널리즘의 품위를 살릴 수 있는 길이 있다. 저널룩(journalook)이다. 저널룩은 저널리즘(journalism)과 북(book)의 합성어이다. 출판의 언론화를 의미하는 저널룩을 지향하는 진주평론은 여러 가지 이슈를 깊이 있게 다룰 수 있는 잡지 형식의 책으로 발간된다. 

물론 책을 언론매체로 활용하는 방식은 명백한 한계를 갖고 있다. 하지만 1분 1초를 다투는 인스턴트 저널리즘도 필요하지만, 사회적 이슈를 느긋하고 심도 있게 관찰하고 평가하는 저널리즘도 필요하다. 진주평론은 세간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평가하고 논하는 평론(評論)’의 가치를 견지해 나갈 것이다. 진주평론 홈페이지(www.jinjureview.co.kr)이 시의성을 그나마 보완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출판의 언론화는 궁극적으로 이른바 언론인들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 더불어 뜻 있는 몇몇 사람이 모여 독립적인 언론활동을 할 수 있고, ‘1인 저널리즘’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또한 거대 매체에만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언론에 대한 후진성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진주 역사 아카이브 구축

 

‘시대에 뒤떨어진 일이고, 돈도 안되는 일이다.’ 계간지(季刊誌)로 발행되는 진주평론 창간 작업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진정으로 걱정하는 말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돈 되는 일을 하려면 애당초 출판의 언론화 따위는 마음에 두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굳이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은 진주 역사와 문화의 아카이브 구축에 뜻을 두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대업적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진주가 성장·발전해 나가는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으로 남기고 싶을 뿐이다. 역사와 문화는 물론이고 정치·경제·인물 등 모든 분야를 다룰 것이다. 후일 진주의 역사를 공부하는 이에게 진주평론의 기록이 자료로 사용될 수 있다면 만족한다. 

진주평론은 지역사회에서 소수의 사람이 뜻을 내어 시작하는 계간잡지이다. 예상컨대, 쉽지 않은 길이 될 것이다. 중간에 멈춰 서게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주평론이 실패하는 결과물을 마중하게 되어도 괘념치 않을 것이다. 진주평론의 창간정신과 가치를 잇는 또다른 누군가가 나타나게 될 것을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진주평론의 창간정신을 되새겨 본다. 

‘시대와 함께 살고 싸우고 성찰하는 진주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올곧은 것은 끝내 살아남아 역사에 박힌다는 시대정신(時代精神)을 실현한다’ 

단언컨대, 진주평론이 제 풀에 쓰러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간절한 기대에 부응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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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일 진주시장 좌하 썸네일 이미지

조규일 진주시장 좌하

조규일 진주시장 좌하 ‘관치 식민지 시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인의 자치가 철저히 배제되고 일본인 총독과 관료들이 모든 권력을 장악한 식민지 관치 체제’를 말합니다. 이 시기의 행정은 일본식 중앙집권적 관료제가 그대로 계승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자치제도는 허울뿐이었으며, 경제는 관치금융과 관치경제로 대표되며, 사회 통제를 위해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철저히 억압했습니다. 해방정국과 군사정권을 거쳐 민주주의가 정착된 작금에, ‘관료가 시장과 사회를 직접 통제·관리하는 관치적 사고방식’은 여전히 지역사회에서 무한대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특히 정치적 이해관계에 기초한 의도적인 민간단체 사업추진 방해 공작과 선별적 지원 혹은 배제 등의 사례들은 너무나 참혹한 지역사회의 민낯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역사회 일각에서 ‘관치 식민지 시대의 부활’이라고 평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은 민주주의 사회에 매우 중요한 원칙입니다. ‘알 권리’는 투명한 행정, 언론 자유, 시민 참여까지 포괄하는 민주주의의 핵심 장치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근데 지금 지역사회는 진주시의 행정 행위들이 헌법이 정한 표현의 자유와 국민주권 원리에 근거한 행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담보하고 있는지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민간단체에 대한 진주시 행정의 과도한 간섭이 대표적입니다. 거의 ‘일제강점기 관치 식민지 시대’와 버금간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특히 민간 주체의 자율적 활동에 대한 행정의 지나친 개입과 통제는 각종 폐해를 낳고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에는 민간단체의 사업을 아예 추진하지 못하도록 행정이 압력을 행사하는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시민들의 눈과 귀를 막는 행위’로 군부독재 시절에서나 벌어졌던 일입니다. 단언컨대, 진주시 행정이 ‘현재 관치 식민지 시대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자인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입니다. ‘진주시에는 501호와 801호가 있다.’라는 비아냥이 세간에 횡행하고 있습니다. 행정이 전방위적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비단 문화예술 분야에만 그치지 않고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행정이 재정지원과 감사 권한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민간단체는 지원 종속과 간섭 부담 속에 심각하게 자율성이 제한되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행정을 따르라. 통제·불균형·관치로의 회귀’를 표방하는 듯한 진주시의 행정을 강력하게 반대합니다. 행정이 시민을 앞질러 선두에 서게 되면 과거 권부(權府)의 공포를 재현하게 됩니다. 행정이 무심코 표현하는 무언의 압력은 개인의 양심을 ‘획일성의 감옥’에 가두게 됩니다. 종국에는 행정의 보복조치가 두려워 ‘자포자기의 감옥’에 갇히게 되면 개인은 물론 지역사회는 두 날개를 잃고 끝없이 추락하게 될 것입니다. 행정이 시민사회의 합의에 기초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설정한 ‘지역 발전론’을 정당화하는 일도 삼가해야 합니다. 먼저 시민사회의 합의를 도출해 내야 합니다. 설사 비판적 시각이 제기되더라도 겸허하게 수용하면서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지역사회는 ‘진주시 행정에 대한 모든 저항적 행위는 결국 무차별 무장해제 당하고 만다.’는 뼈아픈 교훈을 역사에 새기고 있는 상황입니다. 일부를 전체로 확대 해석하는 부분은 마땅히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역사회에는 ‘시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행정행위가 전방위적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우려와 걱정의 목소리가 적지 않습니다. 부디 ‘진주시의 행정이 관치 식민지 시대와 다를 바 없다’는 시민사회 일각의 우려를 씻어낼 수 있는 행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적습니다.

  • 2024-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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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경규/진주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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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公人) 사용 설명서 2(feat. 관료) 썸네일 이미지

공인(公人) 사용 설명서 2(feat. 관료)

공인(公人) 사용 설명서 2(feat. 관료) 공인(公人)이 개인 휴대전화 번호를 시민들에게 직접 공개했다. 더 나아가 아예 휴대전화를 소통창구로 활용했다. 시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겠다는 뜻이다. 휴대전화에 제기되는 수많은 민원들도 직접 답장을 한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앞다퉈 벤치마킹을 하지만 진정성의 차이는 어쩔 수 없이 드러난다. 이른바 ‘진심과 흉내의 차이’이다.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이 그 주인공이다. 정원오 구청장의 지표와 평판을 보자. 행복지수는 서울 자치구 중 상승률 1위, 포용지수는 25위에서 1위로 도약했다. 지역내 총생산(GRDP) 성장률도 서울 25개 자치구 중 2021년 기준 10.9%로 1위를 차지했다. 인물에 대해서도 진정성있는 ‘사람 중심 정치’라는 평가와 함께 높은 평점을 매겼다. 전국적인 화제를 모은 것은 당연했다. 요즘 세상에 판을 치고 있는 관료(官僚)가 아니라, 쉽게 볼 수 없는 제대로 된 공인(公人)이었기에 언론에서도 주목했다. 일반적으로 공인(公人)에 비해 관료(官僚)라는 단어는 부정적 의미로 곧잘 쓰인다. 관료의 사전적 의미와 용례를 살펴보자. ‘관료는 행정을 집행하는 임명직이다. 권력을 배경으로 국민의 의사와 사정을 무시하고 독선적·획일적으로 일을 처리하며,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는데 급급해하는 특성을 갖는다. 이를 비난하는 경우에 관료라는 말을 쓰는 경향이 있다.’ 물론 전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니, 굳이 나서서 오지랖을 떨 필요까지는 없다. 미국 행정학자 랠프 험멜은 「관료제 경험(1977)」이라는 글에서 ‘관료에 대한 5가지 오해’를 적시했다. 50여 년 전의 글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순간, 저절로 고개를 끄떡이며 동의하게 된다. 관료에 대한 5가지 오해를 살펴보자. 사회적 관점에서 관료는 ‘사람을 다룬다고 생각하면 오해이다. 관료는 사람이 아닌 사례(事例)를 다룬다.’ 문화적 관점에서 관료는 ‘정의·자유·폭력·억압·병폐 등에 관심을 갖고 걱정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관료는 통제와 능률에만 관심을 가진다.’ 심리적 관점에서 관료는 ‘우리들과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은 머리와 영혼이 없는 새로운 퍼스낼리티이다.’ 언어적 관점에서 관료는 ‘그들만의 언어를 쓰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관해 의견을 나누기보다는 어떻게 꾸미고 알리는가에만 관심을 갖는다.’ 정치적 관점에서 관료는 ‘공공 관료제가 사회에 대한 봉사기구가 아니라 사회를 지배하는 통제기구라고 생각한다.’고 진단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공인 사용 설명서’ 보다 ‘관료 퇴치 설명서’가 더 필요한 사회를 살고 있는지 모른다. 공인(公人)의 탈을 쓴 관료(官僚)가 지금도 활개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아직도 관료사회에 남아 있는 ‘권위주의에 기반한 조폭 문화’를 목격하면 관료의 부정적 이미지가 좀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이창동 전 문화관광부장관은 자신이 직접 목격했던 의전 행위에 대해 ‘관료사회의 권위주의적 조폭문화’라고 회고했다. 지금도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각종 의전(儀典)이 횡행하고 있다. 흡사 조폭과 흡사해 보이는 이같은 ‘권위에 대한 복종문화’는 여전히 행정과 평범한 일반 시민과의 거리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확인하게 한다. 사실 의전은 관료만이 누릴 수 있는 달콤한 권력이자, 알면서도 모른 척 향유하는 관료의 속내이기도 하다. 물론 의전은 조폭문화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공인(公人)은 ‘지방 소멸을 걱정’하지만, 관료(官僚)는 ‘지역사회를 지배하는 통제기구가 되기를 꿈꾼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공인 사용 설명서’보다도 ‘관료 퇴치 설명서’가 더 시급한 세상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공인(公人)과 관료(官僚). 누구를 선택할지는 시민의 손에 달려 있다.

  • 2024-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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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公人) 사용 설명서 1

공인(公人) 사용 설명서 1 ‘모든 것이 정치와 이념 그리고 거기에 기생하는 무리들에 의한 편리성과 늘공들의 무사안일에서 진주는 서서히 함몰되고 있다.’ 페이스북에서 읽은 글이다. 냉철한 시선으로 진주를 바라본다면 참으로 공감되는 말이다. 그래서 단순히 한 개인의 의견으로 치부해 버리기에도 너무 뼈아픈 지적이다. 지방소멸 위기 극복을 위해 지역사회 전체의 냉철한 자성이 반드시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묻고 싶다. ‘과연 지금 진주는 순항하고 있는가?’함몰되는 진주의 원인으로 지적된 ‘늘공’과 함께 ‘어공’에 대한 엄격한 평가도 해야 한다. 사실 ‘늘공(정규직 공무원)’과 ‘어공(정무직·별정직 공무원)’은 지방 행정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키워드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늘공은 행정의 축이요, 어공은 정책의 추진력을 담당한다고 한다. 근데 그건 각각 제 기능을 발휘할 때의 이야기이다. 시민에게 봉사하기 보다는 머리 꼭대기에 앉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일부 시민들의 지적에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자치단체의 미약한 권한과 열악한 지방재정은 지방자치를 후퇴시키는 한계요인으로 지적받아 왔다. 감시와 견제가 무색한 대의정치 역시 지방자치를 여전히 위협하고 있다. 지방자치 무용론을 주장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산적한 지방자치의 과제 해결을 위해서는 역량과 자질을 갖춘 공인(公人)이 절실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지역발전을 담보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공인(公人) 사용 설명서’를 만들 필요가 있다.공인(公人)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시민의 눈높이에서 방송인 김제동의 발언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국가의 세금 즉, 공공이 내는 돈을 가지고 공공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했다. 그래서 ‘공인들이 나와서 아무리 자신들의 업적을 홍보해도 박수칠 필요가 없다. 왜냐면, 마땅히 자기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이라고 지적했다. 한편으로는 속시원한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훌륭한 공인을 가져야만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전제 아래에서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 규정하고 있는 공인 사용 설명서가 필요한 것은 확실해 보인다.공인(公人)은 지역의 미래를 제시하는 이상과 철학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일수’ 찍는 일에만 급급하고 미래를 위한 ‘적금’ 드는 일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공인(公人)은 시민 세금을 낭비없이 환원하고, 행정의 낭비를 줄여야 하며, 인기·개인 위주의 행정을 해서는 절대 안된다. 공인(公人)은 선거를 의식한 무사안일주의나 인기 영합에 기초한 사업 추진에 올인해서도 안된다. 뻔한 주장의 나열에 불과하다고 여겨서는 절대로 안된다. 지역을 살리는 공인을 선택하는 최소한의 기준이다. 그동안 이 기준에 따라 엄격하게 공인을 평가해 본 적이 있는지 스스로 되돌아보아야 한다. 그래서 이번에야말로 지금의 공인들이 진주를 살리는 ‘공인 사용 설명서’에 부합하는지 꼼꼼히 따져 묻고 심판해야 한다. 그래야 지역이 산다.지방의 발전이 중앙의 발전과 국제화를 가져온다고 주장한 일본 이즈모 시의 이와쿠니 시장의 발언이 한때 주목받은 적이 있었다. 그는 관료 출신은 단체장으로 부적합하다고 주장했다. 관료를 위한 편의주의적 행정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관료적 사고방식을 뛰어넘는 참신한 시각과 아이디어가 공인이 갖추어야 할 제1의 조건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관료 출신은 무조건 안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분명한 것은 지역발전을 저해하는 공인들의 독선과 무능을 바로 잡을 공인 사용 설명서를 반드시 준비하고 평가해야 한다는 점이다. 진주의 내일을 위해 꼭 필요한 공인은 과연 어떤 사람인가. 깊이 고민해 볼 문제이다.

  • 2024-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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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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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수 경남도지사 좌하 3

박완수 경남도지사 좌하 3 두 번에 걸쳐 ‘박완수 경남도지사 좌하’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 이유는 따로 있지 않습니다.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이 가지는 경상남도의 위상과 존재감을 회복하고자 하는 도민들의 염원이 그 바탕에 있었습니다. 과거 경남의 문화·예술 선도 거점기관으로의 회복이 경남도민의 자부심과 직결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그 믿음과 애정에는 변함이 없습니다.최근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의 행보가 과거와 달라졌습니다.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이 가지는 역사성과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더불어 도민·예술인들과 소통하려는 노력도 감지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의 위상과 존재감이 부족하다’는 도지사님의 관심과 지적이 이 모든 변화의 시작이 아닌가 싶습니다. 도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답장에 감사드립니다.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의 신임 관장 역시 새로운 변화를 주도하고 있음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의 현주소에 대한 인식은 물론 주차장 부족 등과 같은 주요 현안의 해결 방안 마련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도민·예술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서로 소통하고자 애를 쓰고 있음은 물론입니다. 실로 과거에는 참으로 찾아보기 어려운 행보입니다. 지역사회와 진심으로 부대끼며 도민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려는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의 바람직한 모습이 비로소 정착되는 모습입니다.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 자체적으로 도민의 문화예술 향유권 보장을 위한 노력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계획단계이긴 하지만 다양한 장르의 소규모 공연과 지역 청년 예술인이 참여하는 버스킹 등의 공연예술은 분명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과 도민들의 간극을 좁히는 훌륭한 시도가 될 것입니다. 경남 지역의 문화예술단체 육성을 위한 기획공연 역시 후일 경남 특유의 문화예술 브랜드 생산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의 변화 움직임에 지역 문화·예술인들도 화답하고 있습니다. 진주의 젊은 문화기획자가 ‘경남문화예술회관 오픈 콘서트’ 기획안을 제안했습니다.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의 공간을 시민과 아티스트에게 개방함으로써 단순한 ‘전문 공연장’에서 벗어나 ‘일상의 예술 플랫폼’이자, ‘도심 속 작은 무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전해왔습니다. 중요한 것은 경남도문화예술회관에 예산을 요청하지 않고 자비를 들여서 스스로 도민에게 봉사하겠다는 것입니다.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의 작은 변화가 이렇게 지역 문화예술계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대한민국 최초의 문화예술회관인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의 위상과 존재감’을 찾기 위해서는 아직도 적지 않은 과제가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천편일률적 기획과 단순 대관의 획일적 운영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순수예술, 전통문화, 지역 고유예술 등 비상업적 장르의 계승과 보전으로 공연 예술 시장의 순기능을 강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지역 문화 원형을 활용한 지역 문화의 특색을 살리는 특성화 전략과 상설 공연의 확대 또한 필요해 보입니다. 지역 출신 예술가를 발굴하는 지역 예술 장려 활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모든 것을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 중장기 발전 방안이라는 그릇에 오롯이 담아낸다면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의 위상은 물론 도민들의 사랑을 받는 공간으로 재탄생할 것으로 믿습니다.이제 ‘박완수 경남도지사 좌하’라는 제목으로 올리는 글은 더 이상 필요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의 위상’을 위해 경남도가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작은 믿음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도민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답장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 2024-07-06
  • 작성자

    황경규/진주향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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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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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제대학교 폐교 부지에 진주교방문화단지 조성하자

진주 청년 기업가와 만남을 가질 기회가 있었다. ‘진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잠시 고민하더니 ‘변함은 없는데 변화(變化)도 없는 곳이 진주이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실 변함이 없는 건 좋은데 변화가 없다는 것은 청년 세대를 비롯한 지역 구성원에게 주어지는 기회 역시 충분치 않다는 뜻으로 읽힌다. 지역소멸 시대에 ‘과연 진주는 변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진지하게 답해야 하는 시기임은 분명해 보인다.올해는 경남도청이 부산으로 이전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경남도청의 부산 이전은 실로 경남 수부 도시였던 진주의 위상 하락과 소멸, 그 이상을 의미하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진주시민들의 격렬한 이전 반대 운동이 지역의 생사 여부를 건 투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경남도청의 부산 이전 100년을 맞은 진주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과연 100년 전 진주시민들의 그 간절한 마음을 갖고 진주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지 자문자답해야 한다. 한국국제대학교가 파산 선고를 받고 폐교된 지 1년 8개월이 지났다. 자산매각이 난항을 겪으면서 폐교된 캠퍼스는 점차 흉물로 변해가고 있다. 한국국제대학교 폐교가 지역경제와 시민의 삶과 직결되는 중대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진주 발전을 위한 특별한 공간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진주출신 경남도의회 의원들이 ‘한국국제대 부지 활용 대정부 건의안’을 발의하고, 진주시의회에서도 5분 발언을 통해 대안 마련을 촉구했지만 진주시는 태도는 여전히 미지근하다. ‘변화가 없다는 것은 도전하려는 의지가 없기 때문’이라는 청년 기업가의 말을 여기서 다시 한번 떠올릴 필요가 있다. 경남에서 첫 파산이라는 불명예를 안은 한국국제대학교 폐교 부지 활용을 위해서는 용도변경 등 국회와 정부 차원의 법과 제도 정비라는 우선 과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정부 지원으로 지자체가 폐교부지를 매입해 지역사회를 위한 공적 용도로 활용하는 방안도 있다. 물론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진주대첩역사공원을 완성하는데 17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역사회가 한국국제대학교 폐교 부지 활용 방안을 위한 토론회 등과 같은 공론의 장을 만드는 일이 우선일 것이다.한국국제대학교 폐교 부지에 ‘진주교방문화단지(晋州敎坊文化團地)’를 조성하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진주교방문화는 천년의 역사를 거치면서 형성된 진주만의 고유하면서도 독창적인 문화유산이다. 한국교방문화학회가 교방문화의 이론적 토대를 구축한 지 오래이고, 진주시의회 교방문화연구회도 ‘교방문화 특화관광도시 진주 조성 방안’ 등의 용역 결과를 내놓으면서 진주교방문화에 대한 인식개선은 물론 지역사회의 관심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제는 실천만이 남아 있다.한국국제대학교 폐교 부지에 진주교방문화의 진수를 담아낸 진주교방문화단지 조성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대한민국 유일무이의 문화콘텐츠이자, 새로운 킬러 콘텐츠로 지역의 관광산업과 지역경제활성화에 큰 몫을 담당해 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의기 논개, 산홍, 기생독립운동 등이 갖는 진주교방문화의 정신사적 가치와 의암별제, 전통가무, 교방음식 등 교방문화의 문화·예술사적 가치를 활용한다면 지역소멸에 대비하는 단초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진주교방문화단지에 진주교방청, 진주교방역사관, 진주교방체험관, 교방음식관, 숙박시설인 교방촌을 조성하자. 그리고 이를 통해 대한민국 전역에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는 지역소멸에 대비하자.진정 ‘변화하는 진주’를 바라는 정치인이 있다면 적극적인 동참을 기대하고 또 기대한다.

  • 2024-07-06
  • 작성자

    황경규/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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