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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착공, 진주의 승부수가 안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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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경규/진주평론 발행인

  • 작성일

    2026.02.14 PM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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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

대전~ 진주 고속도로 개통과 남부내륙철도 착공식에서 진주가 잃은 것이 있다. 바로 '진주의 미래'이다. 대전~진주 고속도로가 개통되었지만 수혜는 통영시가 가져갔다. 전 시민과 정치권이 힘들여 가져 온 국책사업에서 진주는 그 어느 것도 얻지 못했다. 남부내륙철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정부의 엄청난 지원금이 지원되는 거점역을 통영에 빼았겼다. 2031년 남부내륙철도가 개통되는대도 진주는 눈만 뻔히 뜨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사실상 무대책이다. 이제 진주의 미래는 끝났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이다. 진주의 미래를 책임지겠다는 사람들과 진주를 대표하는 정치인들은 침묵수행중이다. 현재로서는 절망적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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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착공, 진주의 승부수가 안보인다

 

남부내륙고속철도가 ‘진주를 살릴 호재’라는 세간의 호들갑 중에 절반은 맞다. 

비유하자면, 서울에서 진주로 오는 길이 빨라지지만 역으로 진주에서 서울로 떠나는 길도 빨라진다. 

‘진주의 미래를 여는 기회’인 동시에 ‘지역 소멸을 앞당기는 가속페달’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정작 문제는 KTX 개통에 대비한 ‘진주의 승부수’가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냉철하게 지적한다.

 ‘진주의 대응은 지나치게 안이하고, 너무 느리며, 지나치게 행정적이다.’

 

KTX 착공식이 진주의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사실 착공식은 도시발전의 증거물이 아니라, 정치적 소비의 한 장면에 불과하다. 

진짜 승부는 착공식 이후부터 시작된다.

 ‘2시간대 진주’가 ‘서울 생활권 진주’로 바뀔 수 있다는 긴장감을 가져야 한다. 

‘인재와 기업이 떠나는 도시’가 될 위험성도 최소화해야 한다. 

KTX가 가져올 도시구조의 변화를 정확히 꿰뚫고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진주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착공식 축하 박수’가 아니라 ‘진주의 각성’이다.

 

과거의 교훈을 생각해야 한다. 

대전~진주 고속도로 개통 당시 큰 수혜를 입은 도시는 진주가 아니라 통영이었다. 

통영은 대박이었지만, 진주는 그냥 거쳐 가는 도시로 남겨졌다. 

대형국책사업의 ‘유치’에는 성공했지만 ‘진주의 발전’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이다. 

이는 진주가 ‘전략’이 아니라 단순한 ‘기대’에만 머물렀기 때문이다. 

어쩌면 진주가 준비한 것은 늘 ‘환영’이었고, 준비하지 않은 것은 ‘미래’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냉정하게 보자면 KTX 착공식은 ‘보장된 기회’가 아니라 ‘치열한 경쟁’이다. 

KTX가 개통되면 ‘진주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 것인가?’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거제시는 수도권과 남해안의 연결, 인구·산업기반 강화 등에 전력하고 있다. 

진주 역시 과연 그러한가. 

지금 진주가 준비할 것은 꽃다발이 아니라 전략이고, 현수막이 아니라 도시 설계도이다. 

남부내륙고속철도시대는 대전~진주 고속도로의 사례처럼 ‘진주의 새로운 시험대’가 된다는 점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한다. 

또 망칠 것인가.

 

이제는 진주에 질문을 던져야 할 차례이다.

 ‘KTX시대에 대비해 진주는 어떤 산업을 육성할 것인가’ 

‘진주역 주변은 어떤 도시공간으로 재편할 것인가’ 

‘진주를 찾는 관광객이 머무는 콘텐츠는 무엇인가’ 

‘진주를 떠나는 청년은 어떻게 잡을 것인가’ ‘KTX시대에 걸맞는 진주만의 브랜드는 무엇인가’

 진주는 지금까지 무엇을 준비했는지 자문자답해야 한다. 

‘자신있게 대답하기 어렵다면, 진주는 아직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KTX시대를 대비한 진주의 대안은 늘 ‘관광’이었다. 

그러면서 진주성, 남강, 촉석루, 논개를 들먹인다. 

근데 진주는 관광콘텐츠가 부족한 도시가 아니라 콘텐츠를 산업으로 전환하는 능력이 부실한 도시이다.

 ‘관광 자원 부족’이 아니라 ‘기획의 부재’라는 것이다. 

KTX 시대를 대비한 진주의 관광전략은 과연 있는가?

관광객은 기차를 타고 진주에 오겠지만, 보고 머무를 곳이 없으면 다른 도시로 떠난다. 

대전~진주고속도로 개통 이후 처절하게 겪었지 않았는가. 

체류형 관광도시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에 책임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러면서 진주는 ‘관광 자원이 많다’고 자랑스럽게 말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갈 곳이 없다’고 말한다. 그게 현실이다.

 

이제 착공식은 끝났다. 

‘진주가 멍하니 넋 놓고 앉아서 KTX 특수를 날려 버릴 것인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진주의 미래를 설계할 것인가’의 갈림길에 서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남부내륙고속철도는 착공했지만, 진주의 미래는 아직 착공되지 않았다.

 대전~진주 고속도로의 아픈 교훈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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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의 목마와 진주시장 선거

트로이의 목마와 진주시장 선거 트로이의 목마는 단순한 전쟁 이야기의 교훈을 넘어 오늘날 정치·행정·조직 운영 전반에 걸쳐서 실제로 적용되는 구조적 경고로 회자된다. 특히 정치 분야에서는 선의로 위장된 권력 집착, 안정을 가장한 권력 유지, 협력의 가면을 쓴 지배 의지, 시민의 방심과 착각을 영양분으로 삼는 권력 쟁취 따위를 상징하는 가장 강력한 은유이기도 하다. 트로이의 목마는 겉으로 보기에는 신의 선물이자, 평화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자신들의 손으로 도시를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한 ‘판단의 실패’를 대표하는 산물로 기억되고 있다. 트로이의 비극이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트로이는 전쟁에서 패배한 것이 아니라, 트로이의 목마를 자발적으로 성 안에 들인 판단 오류에 기인한다는 점이다. 진주시장 선거는 트로이의 목마를 성 안에 들이는 중요한 판단과 결정의 과정이다. 전쟁에 지친 트로이 시민들이 목마를 끌어들인 심리의 재현이 되어서는 안된다. 위험해 보이지 않는 선택, 무난해 보이는 선택, 안전해 보이는 선택이 오히려 최악의 선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트로이의 비극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사실 관료형, 관리형, 안전형 리더십이 가지는 가장 큰 위험은 ‘실패’가 아니라 ‘정체’에 있다. 이러한 리더십은 가는 길은 있지만 제대로 된 방향이 없고, 갈등은 없지만 토론도 없으며, 변화도 없지만 책임도 없다. 행정의 모든 과정은 적법한 범위 내에 있지만 인구 감소, 청년 유출, 원도심 붕괴, 재정 부담을 낳는다. 이른바 트로이의 패착을 답습하게 되는 것이다. 진주시장과 트로이의 목마와 공통점은 도시의 성패를 손에 쥔 존재라는 점이다. 만약 ‘행정 경험이 풍부하다’ ‘안정적으로 시를 운영한다’ ‘중앙과 소통이 잘 된다’는 일반적 평가를 받는 인물이 도시의 장기 비전도 없이 중앙 논리와 개발 논리를 들여오는 통로가 된다면 이는 성을 지키는 장수가 아니라 트로이의 목마가 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트로이 시민들이 목마를 선물로 믿었듯이 유권자 역시 이러한 리더십을 안전한 선택으로 오인한다는 점이다. 지금 진주는 안전한 관리가 아니라 비전과 방향이 필요하고, 도시 발전에 대한 결단이 필요하다. 단언컨대, ‘전략과 비전 없는 안정은 쇠퇴의 다른 이름이다’라는 사실을 이번에야 말로 반드시 적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진주의 현주소를 돌아보자. 진주의 미래를 일구어낼 성장 동력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인구는 감소 국면에 들어섰고, 산업 구조는 특정 산업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 원도심은 쇠퇴하는 반면 신도시는 확장되고 있지만 자족 기능은 약하다. 대형 개발사업은 많았지만 성과가 시민의 삶의 질 개선으로 체감되지 않는다. 다가오는 진주시장 선거는 단순한 인물 교체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의 진로를 바꿀 수 있는 전략적 선택의 범주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다시 말하면 ‘정체를 관리할 것인가’ 아니면 ‘전환을 선택할 것인가’의 갈림길에 선 중요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관리형 리더십 보다는 변화형 리더십을 선택해야 한다. 진주의 도시 전략을 단위로 설계할 수 있는 지역비전 자립형 리더십도 시급하다. 더불어 도시의 운명을 설계하고 책임질 전략가형 리더쉽도 반드시 나와야 한다. 트로이를 무너뜨린 것은 ‘이제 위협은 끝났다’는 자기 안심이었다. 진주를 정체와 쇠퇴로 몰아 넣은 것도 ‘이 정도면 잘하고 있다’ ‘안정이 최선이다’라는 자기 합리화이다. 이에 안주하는 순간 진주를 이끄는 시장은 도시를 지키는 성주가 아니라 적에게 성문을 여는 목마가 된다. 이와 함께 ‘진주는 안전하게 늙어가고 기회는 조용히 사라진다.’ 트로이의 교훈을 직시하지 않는다면 진주의 몰락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 2026-02-14
  • 작성자

    황경규/진주향당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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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남긴 불편한 기록 썸네일 이미지

역대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남긴 불편한 기록

역대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남긴 불편한 기록 지방자치제도의 성숙도와 가늠자 역할을 하는 역대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남긴 불편한 기록이 있다. 선거 과정에서 공개된 후보자 정보에서 적지 않은 출마자들이 각종 범죄경력이 있음에도 특별한 제약 없이 선거에 나선 것은 물론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는 사실이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전체 당선자의 약 33%인 1,341명이 각종 범죄전력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범죄 유형도 선거법 위반부터 폭력·사기 등 기타 형사 범죄를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기록이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범죄 경력 출마자들은 형사 범죄, 선거형 범죄, 권력형 범죄, 공직 신뢰를 훼손한 중대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사법적 책임을 졌고, 사면·복권되었으니 문제가 없다.’는 논리를 보호장치로 삼는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정치적 판단은 유권자의 몫이다.’라는 말로 책임을 유권자에게 떠넘긴다. ‘선거로 원하는 결과만 얻으면 된다.’는 식에 다름 아니다. 범죄 사실에 대한 사법적인 책임 종료가 곧바로 공적인 신뢰 회복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아가 사면·복권 역시 엄밀하게 말하면 국가가 형벌을 면제한 행위일 뿐이지, 유권자에게 신뢰를 회복해야 할 의무까지 면제된 것은 아니다. ‘법적 책임 이후에도 정치적·윤리적 책임은 남는다.’는 엄연한 사실을 떠올려야 하는 이유이다. 범죄 경력자의 공직선거 출마에 대해서는 법적 검증 시스템이 가진 한계에 대한 현실적 비판도 존재한다. 하지만 공직사회 전체에 대한 시민 신뢰 하락과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 등 부정적 정치문화의 싹을 키운다는 점에서 우려가 적지 않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법적으로 가능한 일’지만 ‘바람직한 일’인가에 대해서 반드시 냉철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출발점이자 공직 권력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유일한 절차이기에 그렇다. 현행 법제도는 특정한 범죄에 대해서만 출마를 제한하고, 그 이외의 경우에는 유권자의 판단에 맡기고 있다. 법치주의적 관점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구조이다. 하지만 법적인 허용이 곧 정치적 정당성과 공직 적합성과 연결되지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범죄 행위’라는 존재가 아니라 ‘범죄의 성격’이라는 것이다. 선거형 범죄·권력형 범죄를 사기와 폭력 같은 단순 범죄와 같은 기준에 둘 수 없다는 뜻이다 민주주의는 망각 위에 세워지지 않는다. 법적인 자격을 뛰어넘어 ‘정치적 책임에 대한 명백한 태도’와 ‘사회적 신뢰 회복에 대한 설명과 검증이 선행’되어야 한다. ‘침묵’과 ‘기억상실’을 기대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는 성숙한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범죄 경력자의 각종 선거 출마와 관련한 논란은 특정 개인의 일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공직사회의 기준과 수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의 문제이자, 민주주의의 회복과 지방자치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이다. 만약 우리 사회가 기준을 낮게 잡는다면 지방자치는 물론 민주주의의 신뢰마저 침식되고 말 것이다. 다가오는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윤리적 기준과 책임정치의 문턱을 높여야 한다. 단순히 범죄 경력자의 정치 참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자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책임을 유권자에게 전가하기 보다는 출마자 스스로 신뢰 회복을 위한 설명과 검증을 감수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유권자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이기 때문이다. 강조컨대, 유권자를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는 비민주적인 현직 출마예정자에게도 반드시 적용되어야 한다. 지방자치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최전선이다. 그 출발점인 공직 선거에서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가 작동되지 않는다면 지방자치의 미래는 낙관하기 어렵다. 역대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남긴 불편한 기록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 2026-02-14
  • 작성자

    황경규/진주향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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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의 늪에 빠진 진주

평균의 늪에 빠진 진주 진주가 ‘평균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역사적 관점에서 결코 복제 가능한 도시가 아님에도 ‘획일화’ 혹은 ‘평균화’의 수렁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다. 진주의 강점을 스스로 희석시키고, 자발적 평준화에 동참하면서 대한민국 여러 도시 가운데 ‘One of them(그저 그런 도시 중의 하나)’로 퇴색되고 있는 것이다. 진주가 가진 도시 고유의 가치가 발현되었던 ‘Only one(오직 이곳)’이었던 진주의 위상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도시의 평균화와 획일화가 진행되면 도시의 역사성과 정체성은 흐려진다. 타 도시에서 ‘검증된 모델’과 ‘성공사례’가 무차별 도입되면 도시는 개성을 잃게 된다. 궁극에는 시민들도 ‘나도 그냥 그 중의 하나’라는 공동체의 붕괴로 이어지게 된다. 지역사회 일각에서 ‘지금 진주는 어떤 도시로 기억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유이다. 도시의 경쟁력은 독창성과 차별화에서 나온다. 근데 진주는 ‘차별화가 아닌 평준화’, ‘변화가 아닌 안전한 모방’을 선호한다. 타 지자체의 우수사례와 선도도시 모델 등에 주목한다. 다른 도시에서 효과를 거둔 사업이면 ‘실패할 확률이 적다’라는 안전한 선택논리가 작동한다. 더불어 이러한 시도의 이면에 진주의 차별성과 창의성을 갉아먹을 수도 있다는 비판적 인식은 배제된다. 이미 정해져 있는 쉬운 길을 쫓아가는 ‘One of them 도시’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타 지역에서 소비된 모델을 뒤늦게 가져다 추진하는 사업도 적지 않다. 전국에 복제되다시피한 ‘청년몰 모델과 재래시장활성화사업’, 핫플레이스 흉내 프로젝트처럼 변해버린 ‘특화 공간 조성’, 예산 투입과 사업실적이 목표가 된 ‘공공 건축’ 등의 사례처럼 하나같이 공간의 상품화에만 올인하고 있다. 통합전략 없이 개별 사업이 서로 고립된 채 진행되면서 결국 행사성 사업의 반복으로 귀결된다. 도시의 정체성을 ‘찾는 일’에는 소홀한 ‘명분한 화려한 공공사업’만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진주가 ‘Only one 도시’에서 ‘One of them 도시’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은 오래되었다. 행정이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선택의 반복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검증된 모델만 선택한다. 외부 설계와 공모전 당선작을 지역의 맥락과 검토 없이 무조건적으로 수용한다. 창의적 실험과 접근은 ‘안전하지 않다’는 이유로 회피한다. 시민 의견의 수렴과정은 형식적이며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다. 이런 행정 정책의 반복 속에서 결과물은 비슷해지고 도시의 색깔은 날로 희미해진다. 과정속에서 진주만의 독창성이 상실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진주의 정책 설계의 중심에 도시의 고유성·시민성·역사성이 부여되어 있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이러한 고민에 앞서 더 중요한 것은 ‘시민이 던지는 질문’이다. ‘이 사업이 진주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가?’ ‘이 거리는 진주 시민의 일상을 담아내고 있는가?’ ‘이 공간은 진주의 역사와 정체성을 잇고 있는가?’ ‘이 정책의 주인이 시민인가, 행정인가?’ 만약 이 질문에 명확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정책이라면 지금이라도 과감히 중단되어야 한다. 진주가 ‘그저 그런 도시’의 반열에 머물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일회성 오류의 반복이 아니라 구조화된 행정 관행에 있다는 지역사회의 지적은 뼈아프다. ‘뭐라도 하나 더 만드는 도시’가 아니라 ‘하나라도 제대로 만드는 도시’로의 전환점을 맞이해야 한다. 과거 진주는 역사·문화·예술·경제 등 많은 분야에 있어서 적어도 ‘Only one’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도시였다. 지금도 과연 그런가? 진주가 평균의 늪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지금의 진주가 옳은 길을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 그것이 ‘Only one’ 도시 진주를 다시 만드는 첫걸음이다.

  • 2026-02-14
  • 작성자

    황경규/진주향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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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을 권하는 사회

거짓을 권하는 사회 ‘거짓을 권하는 사회’는 거짓을 토해내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고, 진실을 말하면 오히려 손해가 되는 사회구조를 말한다. 더 나아가 거짓이 생존전략이 되고, 거짓이 유리한 방향으로 작동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개념이다. 더 큰 문제는 거짓임을 알고도 다양한 이해관계에 의해 침묵과 외면 혹은 터부시가 당연시된다는 점이다. 이것이 ‘거짓을 권하는 사회의 진짜 얼굴’이다. 거짓을 권하는 사회는 지역사회 구성원들을 ‘끼리끼리 뜯어먹기 판’의 공범으로 내몬다. ‘이익 공동체’의 안위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거짓’이 곧 ‘공동체의 이익’이라는 잘못된 사고를 주입한다. 지역사회에 부조리가 횡행해도 구성원의 이익을 해쳐서는 안된다는 판단하에 침묵하거나 진실의 편에 서기를 꺼리게 만든다. 종국에는 스스로 ‘거짓말’의 문을 열게 만든다. 거짓을 권하는 사회의 커다란 폐해이다. 전문가들은 민선 시대에 들어서면서 ‘거짓을 권하는 사회’가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시민의 신뢰 위에서 작동해야 하는 행정의 과도한 권력 남용이 개인·사회·단체에 ‘거부하기 어려운 거짓말’을 요구하고 있다는 강한 비판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인 사례들을 적시하지 않아도 행정 압력의 사례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지역사회에서 ‘굳이 행정과 싸워 봐야 좋을 것 없다.’는 의식의 팽배가 그 뚜렷한 증거이다. 민선시대 행정의 언로(言路) 장악 역시 ‘거짓이 만연한 사회’를 만들고 있다는 지적은 뼈아프다. 행정에 대한 비판 역시 ‘행정 조직에 대한 정면 도전 혹은 정치적 불이익’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언로를 막는 최상의 무기인 각종 보조금으로 상황을 반전시키려 시도한다. 물론 그러한 행위는 비공개적으로 행해진다. 암묵적이며, 때로는 회유도 동반한다. 더 큰 문제는 아무런 죄의식없이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원을 받으면 비판해서는 안된다.’는 식이다. 과연 그런가? 행정에 대한 비판은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 공공성과 책임성, 시민참여 등과 연결되는 매우 중요한 담론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왜곡하고 변질시키려고 시도한다. 예산과 인맥을 통해 비판의 주체를 압박하는 것은 물론 주변인들의 이해관계를 역이용해 압박의 강도를 높인다. 결국 보조금을 지원받는 단체는 울며 겨자먹기로 행정의 압력을 수용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내부 분열 혹은 부분 와해로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행정에 대한 비판은 점차 금기시된다. 이것이 이른바 민선시대 행정 권력의 민낯이다. 지역사회가 거짓을 권하는 사회로 이행되는 원인은 ‘행정 권력은 끊임없이 비판과 견제를 받아야 한다’는 비판적 사고의 멸실에서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지역사회는 부당한 행정 권력에 대해 제대로 된 비판과 견제를 하고 있는지 자문자답해야 한다. ‘행정 권력을 비판하는 일련의 행위는 무차별 보복을 받는다.’는 피해망상적인 사고방식 또한 바뀌어야 한다. 단언컨대, ‘행정은 성역이 아니다.’ 물론 행정 내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거짓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다. 거짓이 유리하게 작동되는 잘못된 행정 시스템의 결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그렇다고 ‘거짓을 권하는 행정 시스템’을 행정 스스로 개선하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진실을 위험하게 여기는 행정’임을 스스로 자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더불어 지역사회를 ‘거짓말을 권하는 공간’으로 더욱 퇴보시켜 나갈 것이다. ‘거짓을 권하는 사회’가 지속되면 ‘거짓이 난무하는 사회’로 변질되고 ‘권력과 이익이 진실을 억압하는 사회’로 퇴보된다. 예방책은 간단하다. ‘거짓을 말해야 살아남는 행정’이 아니라 ‘진실을 말해도 안전한 행정’을 만드는 것이다. 거짓을 권하는 사회에서 행복한 시민은 존재할 수 없다.

  • 2026-02-14
  • 작성자

    황경규/진주향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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