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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경제의 이상한 역설

  • 작성자

    황경규/진주평론 발행인

  • 작성일

    2026.08.28 PM 17:15

  • 조회수

    111

진주는 사람 지갑은 괜찮다고 하는데, 도시 지갑이 영 시원찮다. 도시의 생산성이 낮은데 시민들의 지갑은 두둑하다? 이것이 지방자치단체가 보여주는 진주 경제의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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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경제의 이상한 역설

 

진주시가 코리아 크레딧 뷰(KCB) 자료를 인용해 진주시의 연간 평균소득이 3,818만 원이라고 발표했다. 월 평균으로 따지면 318만원 수준이며, 경남 18개 시·군 가운데 3위에 해당된다. 경남 평균인 3,611만 원보다 높고, 전국 평균인 3,759만 원보다도 높다. 거기에 경남도 사회조사 결과 소득 만족도까지 경남 시 지역 1위라고 한다. 통계 수치로만 보면 진주는 엄청나게 잘 사는 도시임에 분명하다.

 

일반적으로 지방자치단체가 통계기관의 수치를 인용하는 것은 ‘홍보용’ 성격이 강하다. 공인된 통계기관에서 발표된 바 있는 시민들이 만족하지 못하는 통계를 ‘최대한 은폐’하고자 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주시가 인용한 통계기관의 성격과 특성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진주시가 인용한 자료는 코리아 크레딧 뷰(KCB)의 자료이다. KCB 자료는 개인신용과 금융관련 데이터를 바탕으로 구축되는 추정 소득 통계이다. 따라서 국세청의 근로소득, 종합소득 신고액이나 가구소득 통계와는 산출방식이 다르다.

 

따라서 ‘진주시민의 연간 평균 소득’이라는 표현은 부정확하고, ‘KCB 기준 추정 연간 평균소득’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이 통계수치를 보는 시민들은 일반적으로 진주시민 1명이 연간 벌어들이는 소득이 3,818만원이고, 월평균 318만원인 것처럼 인식하게 된다. 더불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내 소득은 그 정도가 아닌데?”

‘내 소득은 그 정도가 아닌데?’

‘우리 집은 월 318만원도 못버는데?’

‘진짜 진주시민 평균소득이 저렇게 높다고?’

 

여기서 바로 평균의 함정이 발생한다. 

평균의 함정이란 ‘평균값 하나가 데이터의 전체적인 분포나 치명적인 예외상황을 감춰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리게 만드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들면 평균 수심이 1m인 강을 건너던 키170cm인 사람이 익사했다. 강의 시작점은 20cm로 아주 얕고, 중간은 3m로 매우 깊다면 평균 수심은 1m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평균 수심이 1m니까 내 키보다 낮아서 안전하겠지”라고 생각하고 뛰어들면 죽음이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평균이 ‘극단적인 위험인 최대 수심3m’를 감추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평균이라는 놈은 참 재미있다. 

어떤 집의 가장은 연봉 2천만 원이고, 어떤 집의 가장은 2억 원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이 두 집안의 가장의 수익을 평균 내놓고 “평균 수익이 1억 1천만 원이다.”라고 한다면 연봉 2천만 원 받는 사람은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자문하게 된다. “내가 1억 1천만 원을 언제 벌었지?”

이처럼 평균은 전체 규모를 보는 데는 유용하지만 전형적인 시민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평균 소득이 높다고 해서 시민의 생활이 평균치 만큼 좋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진주시가 진심으로 진주시민의 경제현실을 보여주고자 했다면, 전체 진주시민들의 연평균 소득을 정확하게 가리키는 통계수치를 인용했어야 했다. 평균 하나만 발표할 것이 아니라 최소한 다음과 같은 지표도 함께 발표했어야 한다는 뜻이다.

중도층 시민의 현실을 파악할 수 있는 중위소득과 시민들과의 소득격차를 확인할 수 있는 소득 5분위별 분포, 연령별 소득, 근로자 평균 임금, 가구소득 등의 지표가 제시되었어야 했다. 

KCB라는 특정 통계기관이 발표한 자료를 토대로 ‘진주시민의 연평균 소득이 3,818만원이다.’라고 하는 것은 틀린 것은 아니지만, ‘34만 진주시민의 연 평균 소득이 3,818만원’인 것도 아니다. 평균의 함정을 이용한 전형적인 홍보 마케팅 이상으로 봐주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남도 사회도 조사에서 진주시가 소득 만족도 경남 3위라는 순위만으로 진주시민이 경제적으로 잘 살고 있다는 결론을 내려서도 안된다. 이 수치가 인용된 것도 다 이유가 있다.

KCB 자료 진주시민 연평균 소득 3위와 경남지역 소득 만족도 1위라는 진주시의 발표는 언뜻 보면 매우 좋은 그림을 만든다. ‘평균소득도 경남 상위권, 소득 만족도도 경남 시 지역 1위’라는 자료만으로 ‘진주시는 소득도 높고, 소득 만족도 최상위권인 살기좋은 진주’로 변신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생긴다. 바로 이 두 통계의 지표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KCB 연간 평균 소득은 금융과 신용데이터를 활용한 추정 경제소득지표이고, 경남도 사회조사 소득만족도 조사는 시민에게 물어본 주관적 만족도이다. 즉 KCB는 ‘돈을 얼마나 번다고 추정’한 것이고, 경남도 사회만족도 조사는 ‘시민이 자기 소득에 얼마나 만족한다고 답했느냐’이다. 따라서 이 두 가지 자료를 섞어 놓고서는 ‘진주시는 소득도 높고 시민도 만족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소득 만족도는 단순히 소득액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소득만족도는 절대소득이 아니라 생활비 주거비 부채 등을 함께 반영하는 주관적 지표이기 때문이다. 

 

진주시 연평균소득이 3,818만원에 소득 만족도 경남 3위라는 발표만 놓고 보면 이렇게 생각이 들것이다. “우리 진주, 생각보다 괜찮은 동네네?” 

그런데 여기서 의문점이 하나 생긴다. ‘시민은 돈을 잘 버는데, 진주라는 도시는 왜 돈을 잘 못 벌까?’

 

시민이 돈을 잘 벌면 도시도 돈을 잘 벌 것 같은데, 진주는 조금 묘하다. 이른바 연평균 소득이 3,818만원으로 시민 지갑 수준은 경남 3위인데, 도시의 생산성은 못미치는 것이다. 

 

여기서 GRDP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이름부터 어렵지만 지역내총생산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진주라는 땅에서 얼마만큼의 부가가치를 만들어냈느냐”를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KCB가 묻는 것은 “진주에 사는 당신, 얼마 버십니까?”에 가깝고, GRDP가 묻는 것은 “진주라는 동네, 돈 얼마 만들어냈어?”에 가깝다. 이는 질문이 다른 것이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진주의 GRDP에 관한 기사를 보면 진주의 지역내총생산 수준을 확인할 수 있다.

2021년 진주 1인당 GRDP는 2,525만원으로 경남 18개 시군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경남 평균인 3,408만원에 비해 74% 수준이며,함안군의 6,325만원의 43%, 인접한 사천시의 4,529만원의 59.7%에 불과했다. 2024년에는 진주의 1인당 GRDP는 약 2,631만원으로 전국 평균 4,948만원에 한참 모자르는 수치이다. 

 

알기 쉽게 표현하면 KCB는 사람 지갑 검사이고 GRDP는 도시 지갑 검사이다. 결론을 내자면 진주는 사람 지갑은 괜찮은데, 도시 지갑이 영 시원찮다는 것이다.

 

이것이 진주 경제의 역설이다. 

 

진주시민 평균 소득 3,818만 원. 어찌됐던 진주에 대한 희망적인 자료로 보인다. 그런데 이 통계수치를 단순히 ‘진주가 잘산다’라는 식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즉, 이 숫자를 자랑으로만 볼 게 아니라 숙제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민소득이 이 정도라면 이제 진주라는 도시의 생산력도 그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현재 진주에 필요한 것은 “진주시민 여러분, 우리 생각보다 잘삽니다!”라는 홍보가 아니라, “이제는 진주에서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산업을 만들겠습니다.”라는 정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진주의 청년에게 물어봐야 한다. 이게 정말 중요하다. 진주시 평균소득이 3,818만 원이라고 하는데 20대~30대 청년에게 “당신의 연봉은 얼마입니까?”에 이어 “진주에서 그 연봉 계속 받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어봐야 한다.

만약 여기서 청년들의 답이 달라진다면 문제가 있다.

현재 진주에 사는 사람들의 평균소득이 높다는 것과 진주의 미래세대가 진주에서 높은 소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도시의 미래는 현재 주민의 평균소득만 가지고 판단하는 게 아니다. 다음 세대가 얼마를 벌 수 있느냐도 매우 중요하다. 

경남도 빅데이터 분석에서도 평균소득과 함께 중위소득, 소득 불평등 등을 별도로 분석하고 있다. 최근의 분석을 보면 진주경제의 미래는 어둡다.

중위소득은 사실상 정체했고, 소득불평등 지수는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진주 경제가 참 재미있다. 사람은 괜찮은데 도시는 영 신통치 않다. 시민 지갑은 괜찮은데 도시 지갑은 좀 더 두꺼워져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진주의 경제정책은 “우리 시민들 잘삽니다.” 에서 끝날 게 아니라 “우리 도시가 돈을 벌게 만들겠습니다.”로 가야 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우리 자녀들이 다른 도시로 돈 벌러 떠나지 않아도 되게 하겠습니다.”라는데 까지 가야 한다. 

진주의 미래세대에게 희망을 줄 수 없는 도시는 이미 수명을 다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한타령 하나.

 

어쩌면 진주는

 

사람은 적지 않은데 생산이 부족하고

소비는 있는데 부가가치가 부족하고

인재는 있는데 일자리가 부족한

 

‘3부족 도시’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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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진주에서 패배하는 이유

민주당이 진주에서 패배하는 이유 민주당 당원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민주당 정치인으로서 진주에서 어떤 이미지를 만들면 좋겠느냐’는 물음에 ‘민주당이 진주에서 패배하는 이유’에 대해 솔직하게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대화는 2시간여 동안 계속되었다. 민주당은 진주에서 진주시장과 국회의원을 배출하지 못했다. 지난 20여년간의 선거를 분석해 보면 꾸준히 일정한 득표층을 확보했음에도 결정적인 벽을 넘지 못했다. 지난 2026년 전국동시지방선거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엇이 문제일까? 민주당 후보 개인의 문제는 아니다. 진주가 가진 정치지형과 전략부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정치공학적 접근방식이 가진 민주당의 한계가 여실히 반복되고 있지만 돌파하지 못했다. 진주의 정치 환경에 대한 이해 부족 혹은 접근성에서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진주는 오랜 전통의 보수정당 강세지역이다. 진주가 보수의 텃밭으로 자리매김한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공무원과 퇴직공무원의 비중이 높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민주당과 거리를 두는 경향이 높다. 도농복합도시인 진주의 특성상 농촌지역의 보수성이 강한 것도 민주당에게는 약점이다. 더 큰 문제는 진주의 정치가 ‘지역 유지 중심의 인맥정치’가 강하다는 점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민주당은 기초의회에 발을 들여 놓기가 쉽지 않았다. 초창기에는 ‘진주시의회가 지역유지의 놀이터라’는 비아냥이 제기될 정도였다. 지금은 민주당의 지방의회 진출은 많이 나아졌지만 존재감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정당 보다 사람’이라는 진주의 정치 성향이 민주당에게 불리하게 작용되었다. 따라서 민주당은 시작부터 약 40점 이하에서 선거를 시작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진주에서 민주당 계속해서 패배하는 이유이다. 민주당이 실패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로 분석된다.우선 ‘선거철에만 나타나는 정당’이라는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평소에는 존재감이 없다는 의미이다. 근데 선거 6개월을 남겨 놓은 시점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기자회견, 현수막, 공약발표를 시작한다. 하지만 시민들은 이렇게 생각한다.“평소에는 안 보이던 사람들이 또 나타났다.” 진주의 정치는 평소의 신뢰가 결정한다는 이야기가 회자되는 이유이다. 지나친 평가일지 모르지만, ‘민주당은 후보만 바뀌었을 뿐 정당은 성장하지 않았다.’는 지적돠 만만치 않다. 예를들면 후보가 낙선하면 조직도 함께 사라졌다. 그 결과 4년 마다 ‘처음부터 시작’하는 비효율성이 반복되었다. 후보중심의 정치가 낳은 폐해이다. 진주가 직면한 수많은 현안에 대한 이슈 선점에도 무관심했다. 최근에는 LH기능 이전, 발전공기업 통합본사 유치, 공공기관 2차이전 등 진주의 미래가 걸린 아젠다가 있지만 민주당은 조용하다. 이뿐만 아니다. 원도심 공동화, 신 경제성장 동력 부재, 청년 유출, 소상공인 문제, 일자리 부족, 도시 미래 전략 부재 등이 명확함에도 나서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민주당이 이러한 이슈를 선점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선거정국 이외에는 시정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좀 더 사실적으로 말하면 국민의힘 의원보다 한참 떨어지는 수준이다. 물론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진주에서는 여당이 국민의힘이고 야당이 민주당’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이는 지방의회에서 국민힘에 비해 민주당의 역할이 떨어진다는 지적의 우회적인 표현이다. 시민들은 대안을 원하지만 민주당은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비판과 감시의 기능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안을 제시하는 것 자체가 애초에 무리였는지 모른다. 민주당은 ‘진주의 현안에 대한 대안은 이것이다’라는 인식을 주지 못했다. 사실 민주당 스스로 지역 의제를 만들지 못했다는 사실은 애당초 대안이 있을 수 없었다는 점을 스스로 자인한 꼴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다. 민주당은 국민의힘 의원보다 더 지역의제를 발견하고 대안을 제시하면서 시민들과 함께 걷는 길을 만들지 못한 것이 최대의 패인이다. 민주당은 전국정치 이슈에만 집중한다. 진주에서 계엄심판, 정권심판, 정권교체 등 전국정치 이슈에만 집중한다. 상대적으로 지역 이슈는 등한시되었다. 진주의 서민들이 원하는 일자리, 교통, 문화 등의 지역 아젠다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는 진주의 보수층은 물론 중도층을 설득하지 못한 결과로 작용되었다. 사실 지방의회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지역 의제를 만들어 내고 집행부에 촉구하고 대안을 만들어내는 일은 거의 보지 못했다. 민주당이 진주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있다. 민주당은 ‘전국정치’가 아닌 ‘진주정치’를 이야기해야 한다. 진주시장 선거에 있어서 시민들은 ‘민주당 진주시장’이 아니라 ‘진주를 살린 시장’을 필요로 한다. 전국정치에서 벗어나 ‘생활정치’를 일상화해야 한다.진주가 안고 있는 현안에 대해 365일 다뤄야 한다. 선거때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기자회견을 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민주당의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왜 이러한 상황이 되풀이 되는지에 대해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방의회 의원부터 강해야 한다.진주의 민주당 시의원의 역할에 대해 점수를 매긴다면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렵다. 의원 개개인의 활동을 보면 5분 자유발언은 곧잘 하지만 시정질문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까지 진주가 안고 있는 수많은 현안에 대해 민주당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그에 반해 국민의힘 의원들은 시정질문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존재감은 물론 진주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있음을 시민들에게 알린다. 근데 민주당은 없다. 의원 개인의 문제로 귀결되는 대목이다.더 불편한 말을 한다면 ‘진주의 민주당 시의원들은 진주의 민주당이 아닌 의원 개인의 민주당에만 골몰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의제를 이끌어내고, 시민들과 토론하고, 성과를 만들어내는데 까지 이르지 못한다는 의미이다.개인적으로 제9대 진주시의회에서 민주당 시의원의 역할에 점수를 매긴다면 40점도 후할 정도이다. 진주는 어떤 정치인을 원하는 것일까?진주는 이념형 정치인이 아니라 생활형 정치인을 필요로 한다. 시민들이 원하는 후보는 진주를 잘 알고, 민원을 잘 해결하고, 싸움보다 성과를 내고, 전문가 이미지를 가진 정치인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당원을 제외하고 민주당과 진주시민의 거리는 결코 가깝지 않다. 민주당 당원이 아니면 터부시하는 경향이 심하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지도 모른다. 그래가지고는 민주당이 진주에서 자리를 잡기는 어려울 것이다. 민주당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선거가 없는 4년동안 매주 해야 할 일이 있다. 지역현안 브리핑, 정책토론회, 청년간담회, 원도심간담회, 예산 분석, 시민제안 플랫폼 운영, 골목 민원 해결 등이다.이런 활동이 4년 동안 쌓인다면 민주당은 ‘선거때만 나타나는 정당’이 아니라 ‘진주시민들의 아픔을 함께 하는 정당’으로 변모하게 될 것이다. 진주에서 민주당이 패배하지 않기 위한 핵심은 ‘진주시민과의 신뢰의 축적’이다. 민주당이 진주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 속에서 펼치는 정책과 활동으로 존재감을 쌓아 나가는데서 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이라서 찍는다’가 아니라 ‘진주를 위해 가장 잘 준비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때 비로소 진주의 정치지형을 바꿀 가능성이 생길 것이다. 민주당이 진주에서 승리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적은 글이다.

  • 202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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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경규/진주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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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대 진주시의회에 바란다

제10대 진주시의회에 바란다 제10대 진주시의회 전반기 원구성이 마무리됐다. 다수당인 국민의 힘이 의장과 상임위원장 자리를 독식했고, 더불어민주당은 상임위원장 배정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진주시민은 더불어 민주당에 압도적인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 예상된 결과였다. 지역 언론에서는 전반기 원구성의 과정을 상세히 보도했다. 하지만 시민들이 궁금한 것은 따로 있다. ‘진주시의회는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이며, 무엇을 바꾸어 나갈 수 있을 것인가’이다.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 진짜 원구성의 시작이다. 사실 지방의회 원구성 때마다 반복되는 풍경이 있다. 의장 선거, 상임위원장 배분, 정치적 셈법 등이다. 하지만 시민들에게는 누가 어떤 자리에 앉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시민들이 내어준 자리에 앉아서 ‘시민을 위해 어떤 일을 할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의회의 존재 이유는 행정을 감시하고 예산을 꼼꼼히 살피며 시민의 목소리를 대신하는데 있다.지난 의회를 돌아보면 시민들이 아쉬움을 느꼈던 부분도 분명 있었다. 그래서 시민사회에서는 이러한 질문들이 계속 제기되었다. ‘집행부에 대한 견제는 충분했는지, 수천억 원의 예산은 제대로 검증했는지, 시민들이 궁금해하는 문제를 끝까지 파고들었는가?’ 일각에서는 비판만 하는 의회가 문제라는 지적을 하곤한다. 하지만 비판하지 못하는 의회는 더 큰 문제이다. 비판과 감시, 견제와 협력, 이 두 가지를 균형 있게 해내는 것이 지방의회의 본래 역할이라는 점을 늘 잊지 않아야 한다. 앞으로 진주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청년들은 도시를 떠나고 있고, 여전히 원도심을 활력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지역경제는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하고, 대형 개발사업은 시민의 세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끊임없이 검증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럴 때일수록 진주시의회는 집행부의 동반자이면서도, 시민을 대신해 질문하는 감시자가 되어야 한다. 의장은 의회를 하나로 이끄는 리더십을 보여야 하고, 상임위원장은 전문성을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은 공부하는 의원, 현장을 뛰는 의원이라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진주시의회에 지지를 보낸 시민들에게 보답하는 길이 될 것이다. 시민들은 더 이상 보여주기식 정치를 원하지 않는다. 사진 한 장 찍기 보다는 정책 제안을 원한다. 얼굴 알리기를 위한 행사 참석보다는 치열한 토론을 바란다. 정당간의 정쟁보다는 시민의 삶을 바꾸는 결과를 가져오는 정치를 원한다. 이제 전반기 원구성은 끝났다.이제부터는 평가가 시작된다. 앞으로 2년 동안 시민들은 의원들의 말보다 행동을, 약속보다 결과를 기억할 것이다.그리고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의회의 권위는 자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신뢰에서 나온다’ 제10대 진주시의회가 '자리의 정치'를 넘어 '책임의 정치'를 보여주는 의회가 되길 기대한다.

  • 202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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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의장 시대에 바란다

‘여성의장 시대’ 여성 의장 시대는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와 다선 여성 의원의 증가를 확인할 수 있는 의미있는 변화라고 평가할 수 있다. 지방자치가 시작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꽤 오랫동안 지방의회는 여전히 남성이 독식하는 정치문화가 강했다. 그런 점에서 여성 의장의 증가는 지방의회가 과거와 달리 다양성과 대표성을 점점 넓혀가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된다. 전국 곳곳에서 여성 의장이 잇따라 선출되었다. 경남지역을 보면 진주시의회, 창원시의회, 하동군의회, 함양군의회, 거창군의회에서 여성 의장이 탄생했다. 여성 의장의 탄생은 지방의회의 변화로도 읽힌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정착 측면에서는 분명 환영해야 할 일이지만, 주목해야 할 부분도 적지 않다. ‘지방의회의 의장이 여성으로 바뀌면 의회도 바뀔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과연 그럴까? 아쉽지만 그렇지는 않다. 성별이 리더십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결국 성별을 떠나 공정성과 소통, 그리고 책임감이 리더십을 결정한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지방의회 의장의 역할은 분명하다. 최우선 덕목은 집행부에 대한 감시이다. 더불어 지역사회의 미래를 설계하고, 의원 간 갈등을 조정하며, 시민의 목소리를 의회 운영에 담아내는 최고 책임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의장이 특정 정당의 대표처럼 행동하거나, 집행부와 친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하면서 의회의 독립성은 지속적으로 흔들려왔다. 매번 집행부의 거수기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기도 했다. 시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집행부의 손을 들어 주는데 골몰했다. 물론 이면으로 개인의 이익을 도모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의장이 시민들의 대표가 아니라 시장이나 군수의 협력자가 된다면 시민은 의회를 결코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은 뼈아픈 교훈으로 남아 있다. 더 큰 문제는 ‘여성 의장 시대’라는 상징성만 내세워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여성 의장 시대’ 그 이후에 대한 냉정한 평가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여성 의장 시대 이후에 예산 심사는 더 치밀해졌는가, 행정사무감사는 더 날카로워졌는가, 주민의 목소리는 더 많이 반영됐는가이다. 만약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여성 의장 증가는 정치적 기록일 뿐, 정치적 변화로 이어지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여성 의장이 늘어난 지금이야말로 더 엄격한 평가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그래서 ‘여성이라서 잘할 것’이라는 기대도, ‘여성이라서 부족할 것’이라는 편견은 사라져야 한다. 평가 기준은 오직 하나이다. 공정하게 의회를 운영했는가.강하게 집행부를 견제했는가.시민 편에 섰는가. 지방의회는 집행부 거수기가 되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되어서는 안된다. 더구나 의장은 꽃자리가 아니라 가장 무거운 책임을 지는 자리이다. 지방의회가 시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의장의 성별이 아니라 구태의연한 의회의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다수당이 독식하는 원구성 이전에 토론문화가 자리 잡아야 하고, 계파 정치보다 정책 경쟁이 우선돼야 하며, 정당의 이해보다 시민의 이익이 앞서야 한다. 여성 의장 시대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이제 시민은 단순히 성별을 보지 않고 성과를 볼 것이다.직함을 보지 않고 품격을 볼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이렇게 물을 것이다.당신은 여성 의장이었습니까, 아니면 좋은 의장이었습니까?“ 그 질문 앞에서 당당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여성 의장 시대는 지방정치의 진정한 발전으로 기록될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해두고 싶다.정치는 성별로 평가받지 않는다. 다만 의장의 이름앞에 붙어야 할 수식어는 ‘여성의장’이 아니라 ‘공정한 의장’ ‘당당한 의장’ ‘시민의 의장’이어야 한다. 여성 의장 시대가 풀뿌리 민주주의가 정착하는 변화의 계기가 되기를 바래본다.

  • 2026-08-28
  • 작성자

    황경규/진주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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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판 꼬라지

화투판 꼬라지 일제강점기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오락거리는 단연 ‘화투’였다. 밤이면 사랑방이나 주막에서 화투판이 벌어졌고, 농한기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화투를 즐기기도 했다. 근데 문제는 이 화투판이 심하면 가산탕진에 자식까지 내다 팔게 하는 또 다른 마약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정치판도 선거판도 도긴개긴이다. 화투가 불러온 이같은 망조(亡兆)는 국제통화기금시대를 지나, 경제가 겨우 허리를 펴고 있다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소위 ‘육백’ ‘삥오도시’ ‘섯다’ ‘짓고땡’ ‘아도사키’로 이어졌고, 급기야 한때는 ‘박정희 고스톱’ ‘전두환 고스톱’ 으로 부활해 막가기도 했다. 한때는 그랬다. 화투판 풍경을 보자. ‘현금 박치기’ ‘안면 몰수’ ‘촌수 불문’으로 불리는 화투판은 ‘어머님 죽어요’ ‘아버님 쌌어요’라는 막가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상가의 밤샘 고스톱은 그래도 양반 축에나 꼈지만, 해외 공항 로비에서 신문지를 깔고 서너 명 둘러앉아 고스톱을 치는 광경은 각종 언론을 도배하기도 했다. 화투판이 정치판과 다를 게 없다는 비아냥 속에서 이른바 ‘화투판의 불문율’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화투판의 불문율에 칠 것 없으면 ‘비풍초똥팔삼’을 버리라는 말이 있다. 점수도 잘 안 나고 광도 아니고 띠도 아닌 애매한 패들을 빗대어 부르는 표현이다. 근데 이러한 패를 요즘 선거판에 비춰보면 하나도 틀린 게 없다. 하나씩 풀어보자. ‘비’는 비리와 각종 의혹에도 질끈 눈을 감아버리고 일단 ‘모르쇠’로 버티는 사람이다. 사실 결과는 뻔하지만 우선 살고 보자는데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고(go) 스톱(stop) 구분이 잘 안되는 경우이다. ‘풍’은 살랑살랑 바람 부는 대로 이곳저곳 떠돌며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곳만 기웃거리는 사람이다. 겉으로는 ‘어른행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네 아이들조차 손가락질하는 줄은 모르는 사람들이다. ‘초’는 초치고 다니는 사람들을 이름인데, 겨우 먹고 사는 민초들의 멱살을 잡고 대장 앞에 무릎을 꿇리는게 도와주는 일인 양 착각하니 불쌍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이다. 정치를 종교로 생각하는 부류가 이들이다. ‘똥’은 말 그대로 구린내 나는 자들인데, 각종 특혜 의혹 제기에도 ‘깨끗한 놈 있으면 나와 봐라는 식’으로 제 식구 감싸기는 물론이고 주변의 손가락질에는 깔끔하게 고개 돌려 외면하시는 분들이다. ‘팔’은 겉만 보면 팔팔해 보이는데 속은 팍삭 늙은 분을 말하는데, 내거는 기치는 가히 개혁적으로 보이지만 마무리는 ‘상전 눈치보기’의 대가여서 저래도 되나 싶은 분이다. ‘삼’은 평생을 로터리에 서서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손바닥에 침을 뱉어 갈 길 점치는 자이니, 높은 자리에서 배 불리 먹고도 성에 안 차는 사람이다. 앞장서서 내뱉는 해괴한 말주변은 우리를 아연실색케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비풍초똥팔삼'은 버려야 한다는 화투판 선각자들의 얘기가 맞는 듯하다. 아끼다가는 ‘피박’ ‘멍박’ ‘설사’로 피칠갑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옛 어르신들은 화투판과 정치판에 빠진 사람을 보고 ‘모기가 피 빨아 먹듯 돈을 빨아 먹는다’고 했다. ‘화투판은 피를 빨아 먹는 게임’이라는 농담과 궤를 같이 한다. 오래된 잡지에 실린 ‘모기’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정치판이나 화투판에서도 상통하는 글이다. ‘이 땅에 사람으로 태어나 10g도 안되는 너와 더 이상 씨름하고 싶지 않다. 압사한 너의 시체에 경악하거나, 니가 사라진 장롱 위를 노려보며 버티는 것도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 너, 돌아가라. 네 친구들인 파리와 바퀴벌레에게도 조심하라고 일러라. 나 오늘 홈키파 사왔다.’

  • 2026-08-28
  • 작성자

    황경규/진주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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