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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평론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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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평론외전 이건 아니올시다

프랙털이라는 개념은 프랑스 수학자 베누아 만델브로(B. mandelbrot)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른바 ‘미세한 부분에서 전체를 알 수 있다’는 것이 프렉털(Fractal)이다. 프랙털 이론은 ‘자기유사성’과 ‘자기반복성’으로 요약되며, ‘부분이 전체를 대변하고, 전체는 부분의 또 다른 일부분’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프랙털 이론은 혼돈과 무질서로부터 질서의 탄생과 같은 새로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탄생한 패러다임이자, 불규칙하고 무질서한 현상을 왜곡하지 않으면서 자기유사성과 자기반복성으로 ‘무질서 속에 숨겨진 질서’를 밝힐 수 있는 방법론의 하나인 것이다.프랙털 이론을 활용한 TV 예능프로그램이 있었다. 사물의 일부분을 크게 확대해 보여주면, 패널들이 사물의 진짜 모습을 맞추는 코너였다. 우리 주변에 흔해 빠진 사물, 즉 종이, 볼펜, 나뭇잎 등을 200배 혹은 300배로 확대해서 보여주면 패널들은 혼란에 빠진다.확대된 사물은 일반적인 인식공간의 범주에 벗어나 있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확대 비율이 낮아지기 전에는 사물의 원형을 맞추는 패널은 거의 없다. 반면, 확대 비율이 낮아지고, 사물의 원형에 가깝게 접근하면 “겨우 이거였어?”라며 허탈해한다.향후 진주의 100년 미래를 좌우할지도 모르는 남부내륙고속철도 시대를 맞아 진주발전 전략을 마련하는 것은 시대적 요구이다. 진주의 미래가 달려있다면 더더욱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더불어 ‘지금 진주에서 추진되는 각종 대형사업들이 과연 시대적 요구에 적절한 사업인지’와 ‘진주의 백년대계에 대비하는 대형 프로젝트가 맞는지’에 대해 한 번쯤은 뒤돌아보고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다시 말해, 진주시가 추진하고 있는 3대 프로젝트를 비롯해 현재 추진되고 있는 각종 대형사업들에 대해 충분한 논의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발목을 잡자는 것이 아니다. 진주의 미래와 관련된 일이니만큼 조금 더 확실하게 진주의 미래를 준비하자는 것이다.우리 속담에 ‘한 가지를 보면 열 가지를 안다’는 말이 있다. 프랙털 이론이 주창하는 바와는 이론적인 면에서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시사하는 바는 같은 범주에 있는 듯하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각종 대형 프로젝트에 대해 낙관적이기보다는 비관적인 시각이 노출되고 있다는 점을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된다.‘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라는 말이 있다. 미팅을 하면서 ‘킹카’를 기대했는데, 꼭 ‘지뢰밭 속의 폭탄’과 짝이 되고 마는 ‘머피의 법칙’과 친척뻘쯤 되는 말이다. 뭐든지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열심히 하다가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만, 원칙과 기본에서 벗어난다면 그 뒷일은 누가 감당할 것인가. 결국 진주시민이 감당해야 한다. 만약 진주를 걱정하는 진주시민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보통 사람들이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건 아니올시다.”

  • 2024-03-05
  • 작성자

    진주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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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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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평론외전 모기야 모기야

무더위와 장마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만 되면 제일 곤혹스러운 게 ‘점심 때우기’와 무지막지하게 달려드는 ‘모기떼’이다.점심만큼은 ‘밥’에 목숨을 거는 현대인들에게 습관적인 아침 공복과 ‘비만’이 도사리는 저녁을 제쳐두면 애매한 점심시간만 매일 고생이다. 냉면이 하루에 수백 그릇 팔려나간다지만, 그것도 결국 ‘한 끼 때우기’에 불과하다. 역시나 매일매일 풀어야 할 숙제는 ‘오늘은 뭘 먹을까?’ 하는 것이며, 해답은 쉽게 구해지지 않는다.7첩 반상을 표방하는 영양만점 도시락. 한 끼 대용으로는 적당하지만, 질리도록 자주 시키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되는 것이 도시락의 함정이다. 그래서 ‘만만한 게 조조 군사’인 중국집 배달음식. 이른바 중국 음식으로 표방되는 메뉴들은 미식가들에게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도 매일 점심 식단을 점거해 농성 아닌 농성을 벌인다. 그리고 식당 주인의 의기양양한 말씀. ‘지가 뛰어봐야 벼룩이지’.바야흐로 ‘언론 홍수 시대’를 맞고 있다. 진주의 핵심 취재처인 진주시에 등록된 언론사만 55개에 달한다. 뜻밖의 영양만점 도시락과 산해진미 가득한 중국집 메뉴를 기대했다면 오판이다. 애석하게도 미식가들의 냉혹한 평가만 이어진다. ‘불어 터진 면발’ 아니면 ‘식어버린 짬뽕 국물’, 이런 식이다.시민들은 묻고 또 묻는다. 먹고살기도 어려운데 ‘왜?’냐고. 왜 그렇게 자신의 몸무게보다 두 배가 넘는 피를 빨아 먹는 모기처럼 욕심을 부리느냐고 말이다. 그런데 사실 ‘먹고살기 위해서’라면 그 누구도 할 말은 없다. 이 어려운 시절에 편안히 먹고사는 건 전체 국민의 5%에 불과한 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주소이기에 그렇다.언론인 이영희는 『우상과 이성』이라는 책에서 이런 글을 남겼다.‘나의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할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지금까지도 그렇고 영원히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발전, 사회의 진보는 있을 수 없다.’참으로 오래된 잡지에 실린 ‘모기’에 대한 글이 있다. 소개한다.‘이 땅에 사람으로 태어나 10g도 안 되는 너와 더 이상 씨름하고 싶지 않다. 압사한 너의 시체에 경악하거나, 니가 사라진 장롱 위를 노려보며 버티는 것도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 너, 돌아가라. 네 친구들인 파리와 바퀴벌레에게도 조심하라고 일러라. 나 오늘 홈키파 사 왔다.’

  • 2024-03-05
  • 작성자

    진주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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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평론외전 잣대

‘잣대’라는 말이 있다. 길이를 재는 자로 사용되는 대막대기 혹은 나무 막대기의 일종으로 통칭 ‘자막대기’라고도 부른다. 이 말은 자고로 도덕적인 행위나 사물의 기준을 재단하는 객관적인 근거로 인용되곤 했다. 흔히 ‘객관적이지 못한 일’이나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은 이 잣대를 기준으로 잘잘못을 가리곤 한다.그런데 이 잣대란 말은 그 자체로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잣대가 적용되는 순간, 그것은 객관적이지 못하며 형평성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이 ‘잣대’는 일부 소수 권력자의 전유물로 인식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란 말도 만들어 냈다. 물론 지금도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진주의 유력 사회단체장이 이 ‘잣대’에 걸려들었다. 일종의 괘씸죄다. 좀 더 자세하게 풀어보면 ‘알아서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지 않은 죄’ 혹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고위직에게 불평을 쏟아낸 죄’ 쯤으로 보면 된다. 이어진 ‘개인 뒷조사’와 ‘언론플레이’는 기가 막힐 지경이다.이 지점에서 옛날 어르신들이 자주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나이가 들면 죽어야지.”이 말은 단지 ‘나이가 많기 때문에 죽어야 한다’는 의미보다는 ‘올바르지 못한 잣대’가 적용됐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물론 둥지를 튼 자리가 오래돼 썩고, 고약한 냄새가 난다면 새 자리를 만드는 것이 당연하다. 근데 적용된 기준이 ‘객관적·형평성’에서 어긋난다면, 그것은 ‘어설픈 잣대’일 뿐이며 ‘대중의 비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오래전이다. 20~30년 전쯤이다. 모 방송국 TV프로그램 중에 「스타 서바이벌 게임」이란 게 있었다. 일종의 짝짓기 놀이다. 남녀 각각 4명이 출연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출연자를 한 사람씩 탈락시킨다. 마지막에는 남자 2명, 여자 1명이 남게 되는데, 남자 연예인 2명이 혼자 남은 여자 출연자 앞에 서서 장난감 칼을 멋지게 뽑으며 이렇게 외친다. “호랑이야! 내가 간다.”이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는 이 부분이다. 두 자루의 칼끝에는 각기 다른 물건이 달려 있다. 한 사람은 날이 곧추선 칼이 나오지만, 나머지 한 사람은 ‘노가리’나 ‘대파’ 같은 민망한 것이 칼날 대신 달려 있다.당시 시청자들이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배꼽을 잡고 웃는 이유는 ‘바짝 말라비틀어진 노가리’와 ‘숨이 죽어 축 늘어진 대파’가 아니라 사회 통념상 기준이 되는 ‘잣대’가 정작 그곳에 없기 때문이다.행여나 ‘적합한 법집행’이라는 이름의 칼에 민망한 ‘노가리’를 매달고 마구 휘두르는 건 아닌가 생각해 볼 일이다.

  • 2024-03-05
  • 작성자

    진주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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